'러스티 사비치'에 해당되는 글 1건


  드디어 다 읽었다. 질질 끌고 있던 숙제를 해치운 말투인데 이게 과장이 아닌 것이 다 읽는 데 40일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럴 분량이 아니다. 장편이라기보다는 중편에 더 가까운 길이인 것 같고 (판형이 좀 크긴 하지만 제법 얇다) 이야기도 그다지 긴 느낌이 아닌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ㅇ_ㅇ;;



  터로우의 주무대인 시카고 인근의 킨들 카운티. 주 항소법원의 판사로 일하는 조지 메이슨을 중심으로 세 가지 이야기가 얽혀 있다. 메이슨의 아내가 암을 선고받고 수술에 이어 항암 치료 중이고, 메이슨은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사건의 주임판사가 되어 판결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최근 잇따라 협박 메일을 받고 있다.


  주 등장인물들은 재빨리 소개되고, 복선도 친절하게 초반에 깔린다. 추리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라서 긴장감이 없을 정도인데, 후반부에 사건이 풀려가는 것도 그 전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일전에 터로가 냉정한 작가는 아니라고 말한 바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 점은 재삼 확인했다. 버릴 수 있는 캐릭터만 버리고 나머지는 안고 간다. 나로서는 알고 본 만큼 얻었고 그래서 불만은 없다만, 딱히 추천하고픈 작품은 아니다. 읽는 재미가 넘치냐 하면 그랬던 것은 아니라서. 하지만 언어장벽에 너무 길게 잡고 있던 것까지 작용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은 말하기 어렵겠다.



  아래는 진짜 내용소개.



  예후가 낙관적이기는 해도 부인이 암 투병 중이라는 것이 조지 메이슨의 심리상태에 전반적인 배경을 깔아 주고, 협박자의 정체가 플롯을 앞으로 끌어나감과 동시에 주된 서스펜스를 제공한다면, 메이슨의 심적 갈등에 핵심이 되는 것은 그가 판결을 내려야 하는 문제의 사건에 대한 것이다. 7년 전에 일어난 성폭행이 관건인데, 당시 가해자들이 촬영해두고는 그 뒤에도 종종 돌려보았던 비디오테이프의 존재를 피해자가 알게 되면서 비로소 가해자들이 형사기소가 되었다. 비디오테이프가 현존하니 범죄가 실제 이루어졌는가 아닌가는 논박의 대상이 되지 않고, 변호사의 핵심 논점은 이 사건이 너무 시간이 흐른 뒤 기소가 이루어졌다는 소위 statute of limitations(공소시효)인데, 그와 관련해서기도 하지만 메이슨이 주로 고민하는 점은 가해자들이 7년이 지나 지금은 나름 번듯한 사회 구성원이 되어 있다는 점, 즉 자신도 대학생이던 60년대에 그리 다르지 않은 짓을 저질렀던 기억이 이 사건 덕분에 다시 살아나 그를 사로잡았다는 점 때문이다. 사건에 개인사를 투영하게 된 것이고, 그런 만큼 과거와 화해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매듭을 짓기 전에는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스토리라인과 협박자 스토리라인은 대체적으로 말해서 병존할 뿐 엮여 있지 않다. 전자의 결론이 무엇이냐는 역시나 터로의 성향상 예측이 가능하고 (게다가 Limitations는 터로의 소설 중에서도 매우 안전한 축에 속한다), 그 결론이 무엇이냐 자체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 이야기의 핵심은 메이슨이 그동안 잊고 살았던 예전의 과오를 인식하고 그걸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했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내가 보기에는 좀 약하다. 게다가, 자세히 들어가면 스포일러가 된다는 핑계로 길게 쓸 생각은 없지만, 한쪽이 다른 쪽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방편으로 검토되는 것도 실은 불만이다.



  정돈 안 된 글인데 이건 이 글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을 의사가 별로 없기 때문.; 이걸로 되었다.






  p.s. '무죄추정'의 주인공 러스티 사비치는 여기에도 모습을 내비친다. 꽤 비중있는 조연 중의 하나다. 그가 어디에 최종적으로 닻을 내렸는지를 알 수 있다. 그나저나 난 왜 이 이야기를 매번 빼먹지 않고 하는 거지=_=


  p.s. 하나 더. 이 글 쓰려고 터로의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비로소 안 사실. 터로는 전작에 바로 이어 나온 이 Limitations를 제외하면 시계추처럼 정확하게 3년에 한 권씩 내놓는 작가였는데, 이 작품 이래로 아직 신간이 없다. 외부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보아 아닌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건강에 문제가 있는가 염려가 된다. 존 스펜서가 그렇게 갑자기 (어디까지나 내게 그랬다는 것이지만) 가버리신 이후로는 40년대생들에 대해서는 해가 갈수록 더 불안해져서.;


Posted by Iphinoe

사이드바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