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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하고도 비밀스러운 이력을 지닌 옥스포드의 언어학 교수 제임스 애셔는 한밤중에 돌연히 한 스페인 귀족의 방문을 받는다. 그는 자신을 전설 속의 존재인 뱀파이어라 소개하고, 그들에게 닥쳐온 위협 때문에 애셔의 수사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부를 위해 비밀 요원으로 활약했던 경력이 있는 애셔는 분명 그들이 찾아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만, 애셔는 그들 옆에서 존재론적(?) 위협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사건이 해결되면 그들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된 자신을 뱀파이어들이 살려두지 않을까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사건을 풀어 나가는 사이 어느덧 의뢰인이자 자기 목줄을 쥔 그와 신뢰를 쌓게 되고, 사건은 차근차근히 그 전모를 드러낸다.


  현실적이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은 종종 아름다움이나 추함을 묘사하는 데 있어 극단을 달리는 통에 재미있어지곤 한다. 이 소설이 많이 빚지고 있는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도 그렇고, 이 소설도 그렇다. 근대적 인간인 애셔와 그의 아내 리디아의 캐릭터가 이들이 사는 세상을 우리 사는 세상으로 포섭해 오려고 애쓰기는 하지만, 그리고 추리소설/스릴러의 구조를 가져와 뼈대를 세우고 반전에 가까운 결말을 배치하고는 있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제일 인상에 남는 것은 500년 묵은 스페인 귀족 돈 이시드로의 캐릭터일 것이다.


  특별히 독창적인 이야기는 못 된다지만, 배경이 되는 시대에 주목하게 하는 덕분에 생각할 거리를 얻었다. 인류 역사에서 흥미로운 이행기가 되는 지점이 몇몇 있다. 그 중 근대라 불리는 18세기 후-20세기 초반은 시기적으로 우리와 가장 가깝기도 하고, (소설 속에도 언급이 나오지만) 우리 사고의 기반을 이루는(혹은 이룬다고 착각하는) '이성'의 세계로 옮겨가는 시대이기도 해서, 여러 모로 흥미를 끄는 것 같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변화하는 이행기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혼돈, 그리고 다수 세계관의 공존은 여러 모로 매력적인 소재와 주제일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의 분위기는 거기에 꽤 기대고 있다. 특히 뱀파이어의 존재를 생리학/화학적으로 증명해 보려는 리디아의 노력은 배경이 이 시대이기에 제일 빛을 발한다. 이 시대에 특징적이라 할 수 있을 그 미묘하고 섬세한 긴장이 배경으로 쓰인 것을 보니 흥미로웠다.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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