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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는 점은 1인칭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서술자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 어떤 장치를 통해 그런 효과가 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부 요인은 특히 초반부에서 그가 독자에게 정보를 다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 ㅡ 의식적이건 아니건 간에 ㅡ 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으로, '나'는 피살자와 '내'가 맺고 있던 관계에 대한 서술을 3장에 이르기까지 암시적으로만 내버려둔다. 그건 1인칭 시점이 독자와의 대화일 수도 있긴 하지만, 때로는 그냥 독백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그 모호한 성격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닌가 싶다. 독자에게 말을 거는 '나'의 경우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부분이라 해도, 독백하는 '나'라면 자신에게 명백한 이야기는 대개 안 하고 넘어가기 쉬우니까. (2005. 01. 12)


  이 장치는 '무죄추정'의 서스펜스를 대부분 담당한다. 숨기는 게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게 의식적으로 하는 기만인지 아닌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읽는 입장에서 자신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소설이 진행되어 갈수록 그 불신의 존재가 점점 중요한 의미를 띄어가기 때문에 무시할 수도 없다.


  독백인지 대화인지, 그 형식의 문제는 굳이 명시되지 않은 채로 끝나지만(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증발Pleading Guilty'은 이 점에서 다르다. 거기선 '나'가 이 이야기를 어떤 형식으로 하고 있는지 밝혀주고 시작한다. 윗사람들에게 보내는 보고서로 시작하거든), 다 읽고 나면 다행히도 그런 불신을 심어놓은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해소가 된다. 그의 이야기가 계속 나를 잡아당기는 건 그런 차원에서다.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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