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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친절한^^ zootv에 따르면, 이 에피는 방영 당시 그다지 좋지 못한 반응을 받았다고 하지요. KBS 본방 때 본 에피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이후로 접했다고는 해도 워낙 오랜만에 다시 보는 거라, 줄거리를 물론 알고 있음에도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다시 보니, 왜 그렇게 안 좋은 평을 받아야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사람이 좀 과할 만큼 많이 죽어나가고,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로 흘러가긴 합니다만, 재미가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거든요. 엑스파일에 SF적 요소가 한창일 시절이다 보니 범작이 졸작으로 평가받은 것은 아닌가 궁금해하는 중입니다. 보는 눈이 없다 보니 제가 받는 인상에 그다지 신뢰가 가진 않아요. :) 그러니까 이건 질문입니다.


  특히 결말에 대한 비판은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멀더와 스컬리가 바위 위에서 덜덜 떨며 나누는 대화 (DD 진짜 리얼하게 떨더군요^^) 와 연결되는 결말로 충분히 의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멀더가 찾던 게 그럴싸한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악어로 드러났다고 해서 멀더의 추구가 헛된 게 되는 건 아니라는 스컬리의 말이 이 에피의 주제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 사람을 살렸으니 그걸로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 아니냐고,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 멀더에게 묻잖아요. 바위 위에서 나눈 대화는 인생에서 무언가 그럴싸한 걸 추구하고 이룩해야 한다는 명제를 개인이 어떤 식으로 소화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 주제의 연장선상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결말이었다 싶은데 제가 뭘 놓친 건지, 결말이 왜 안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바위 위에서의 대화는 - 그러고 보니 KBS 본방을 봤습니다! 이 대화가 매우 혼란스러워서 이해가 안 됐던 기억이 나는 걸 보니 - 이번에야 제대로 (그리고 완전히)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꾸 이런 식으로 언급하게 돼서 죄송한데요, zootv 에피소드 가이드 비하인드 스토리에 인용된 멀더 대사가 KBS 방송 때 것이 맞나요? 그렇다면 번역을 완전히 반대로 한 거잖아요. 제가 혼란스러웠던 것도 그럴 만했군요. 이 대화 부분만 다린 모건이 썼다고 하던가요? 멀더가 생각하는 자기 모습에 대한 간결하고 효과적인 묘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모비딕하고 연결지어 그렇게 멋지게 풀어내다니 역시 부럽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멀더는 (이미) 의족과 갈고리손을 안고 사는 사람인 게 맞고, 그런 만큼 실은 스컬리가 멀더를 정확하게 보았고 멀더는 스스로에 대해 훨씬 겸손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거겠지요.


  아무래도 이 에피에 대해 제가 호의적인 건 바위 위에서의 대화가 좋았을 뿐만 아니라 여러 모로 멀더라는 캐릭터에 대해 정곡을 찌르고 있다는 점(그리고 그걸 볼 줄 아는 스컬리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대화 전후의 상황이 그에 맞게 주어져 있다는 것 때문인 듯합니다. 특히 결국 자기가 찾아 헤매던 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한탄하는 멀더에게 '사람을 구했는데 그런 소릴 하느냐'는 스컬리의 어조가 위로하는 게 아니라 믿기지 않아 하는 톤인 게 좋았어요. 스컬리는 멀더가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 '포식자'의 존재를 끈질기게 주장해 결국 잡아냈는데도,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았다는 사실보다는 근사하게 들렸던 빅 블루가 악어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우울해하는 걸 얼른 납득하지 못하지요. 위로하는 차원에서 발언하게 만들 수도 있었는데, 두 사람의 입장 차이를 그 부분에서 그렇게 짚어주고 넘어가는 게 정말 근사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초기 시즌답게 유머가 많아서 좋아요! 퀵퀙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 녀석이 먹히기 직전까진 다 유머고, 기념품 가게 주인 캐릭터도 빅 블루 사진에만 매달려온 사진작가(?)도 반쯤은 웃으라고 데려다 놓은 캐릭터지요. 바위 위에 둘이 옹송그리고 앉아 추위에 떨면서 나누는 대화가 '조난당하면 식인도 할 수 있을까요' 같이 초점 일탈한 멀더의 상상력으로 시작하는 것도 웃기고, 거기 스컬리가 거창한 용어들을 들먹이는 이론적 이야기로 답하는 것도 두 사람다운 모습이라 유머러스하고, 나중에 패러데이 박사가 손전등 들고 나타나 멀&스가 뻘쭘해하는 것도 엄청 웃기지요. 사람 머리가 호수에서 정수리부터 솟아오르다 옆으로 누우면서 잘린 목이 드러나는 그런 그로테스크하고 유머러스한;; 연출도 너무나 엑스파일스러워서 사람이 죽었는데 낄낄거리게 돼요.^^ (역시 엑스파일 보다 보면 고어에 강해지는 모양입니다.)


  해서 쌓이는 사람 시체와 개 시체 한 구와 멸종위기에 놓인 개구리들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유쾌하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생각할 거리까지 선사받았고요.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았을 때, 짧은 시간 내에 대량으로 죽어나가는 희생자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에피들 중의 하나가 아니었나 합니다.^_^






p.s. 고백하자면, 바위에서의 대화를 이번에 제대로 접한 이래 줄곧 6-7시즌 클리프행어 Biogenesis & The 6th Extinction I, II에 대한 에이프릴 풀 님의 리뷰와 연관지어 생각하고 있습니다. 피할 수가 없군요.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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