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이번에 이 사람 이름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존 샤이반이었군요.



  The Pine Bluff Variant는 샤이반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에피소드였죠. 엑스파일을 통틀어서도 단독에피소드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각본이 힘이 넘쳤고, 그 각본을 너무나 훌륭하게 연출해냈고, 음악도 호흡이 딱딱 맞아떨어졌고... 전 이 작품을 KBS 본방으로 처음 보았는데, 클라이막스쯤 가서는 멀더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저 인간 저렇게 죽어...? 하고 가슴을 졸이며 보았습죠. 몰입의 힘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엑스파일 코멘터리는 항상 재미있는데, 아마도 이건 제가 촬영 뒷이야기스러운 trivia들에 약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사소하고 별 의미 없는 사실들을 얻어듣는 게 재미있어요. 그리고 엑스파일 제작진 중에도 저같은 사람이 많은지, 보면 사소하고 (귀여운) 장치들이 많더군요. 그리고 샤이반이 작가이다 보니 하나의 각본이 완성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도 좀 들려주고, 제작자이다 보니 보우만의 연출이나 로케이션 헌팅에 대한 이야기들도 재미가 쏠쏠합니다.



  샤이반은 처음부터 스릴러 장르를 해보고 싶었다는군요. 몇 년 전부터 '멀더의 잠복근무'를 자기 메모판에 써붙여 놓고 있었는데, 실제로 할 기회가 주어졌던 건 몇 년이 지나서인 5시즌이었다고 합니다 (샤이반은 3시즌부터 합류했습니다). 샤이반 말로는 5시즌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멀더와 스컬리 간에 불신의 요소가 끼어들면서 두 사람 사이가 벌어졌던 터라 스컬리가 멀더를 믿지 못하는 상태로 흘러가는 이 에피소드의 초반부가 그럴싸하게 다가왔지 않느냐는 거지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글 쓸 때 전체적인 스타일은 '히트' 같은 영화를 많이 참고했다고 하고요. 연방검사로 나오는 캐릭터의 이름이 리머스인데 요게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의 주인공 이름이지요. 아는 작품인데 연결시켜 볼 생각은 못했었습니다-_-a;; 스펠링이 Leamas네요. 저는 Rimus쯤 되지 않나 싶었거든요. 이렇게 써놓으니 누구 이름하고 비슷하네욤.; 그 외에도 몇 작품을 더 언급하고, 다른 캐릭터 이름도 어디서 따왔다고 하던데 제가 까먹었습니다.



  제목인 파인 블러프 변종은 아칸사 주에 있는 지역 이름으로, 60년대 후반까지 이곳에 미국 국립 생화학연구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에피소드에서 문제가 되는 연쇄상구균의 변종이 미국 국내 생산품이라는 플롯 전개가 이곳의 존재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목도 그렇게 붙인 거고요.



  이 에피도 로케이션 헌팅이 좋았던 에피라는데, 극중에 나오는 은행은 실제 은행이었답니다. 촬영 당시에는 문을 닫은 상태였지만 한때는 수억 달러를 취급했던 지점이라고, 있었던 그대로 촬영했다고 하더군요. 금고도 그 당시 은행 금고였다고요. 보우만이 여기서 롱샷을 정말 대단하게 찍었다고 샤이반 칭찬이 늘어지더군요^^. 테러리스트들의 본거지가 되는 곳도 운좋게 적재적소를 찾았는데, 거기서 온실용 불투명 비닐 천막이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그걸 그대로 차용하고, 그 외에도 군데군데 차단과 은폐의 상징처럼 그 비닐을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맨 마지막에 문제의 은행을 폐쇄하는 씬에도 옆에 엄청 큰 불투명 비닐 차단막이 등장하고, 테러리스트들이 은행 강도를 상의하는 (멀더에게 가면이 건네지는) 장면에도 멀더 뒤로 같은 비닐이 벽 대신 붙어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다 거기서 착안한 거라는군요. 찍기 시작할 당시에는 그런 연출을 하는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은 상태였대요.



  은행 강도 씬은 샤이반은 '히트'를 많이 떠올리고 썼다네요. 가면 때문에 우습게 보일까봐 스태프들은 걱정이 많았지만 찍고 보니 근사했다고요. 자긴 스킨헤드 캐릭터가 쓴 해골 가면이 좋았답니다. 멀더에겐 원래 늑대인간 가면이 주어질 예정이었는데 데이빗 듀코브니가 어렸을 때부터 드라큘라 가면이 쓰고 싶었다고 자기한테 전화를 해와 대신 그걸 쓰면 안 되겠느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답니다.



  극장도 뱅쿠버에 있는 실제 극장이랍니다. 여기 매표원으로 나오는 배우 이름이 케이트 브래드우드인데요, 넵 바로 톰 브래드우드 씨의 딸이랍니다. 시켜보니 잘해서 썼다고요.^^ 인터넷의 캡쳐 사이트들을 뒤져봤는데 이 아가씨 캡쳐를 찾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세요. 닮았어요. 그리고 멀더가 테러리스트들과의 연락을 위해 사용한 모텔도 뱅쿠버 인근의 모텔인데, 뱅쿠버에 미국 모텔 분위기가 나는 모텔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엑스파일 촬영차 여러 번 사용했던 곳이라, 눈밝은 사람들은 알아봤을지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제 눈은 밝지 않았습니다^^)



5x18 The Pine Bluff Variant

ⓒ 20th Century Fox & 1013 Production



  위 사진은 티져의 공원 매복 장면 중 하나인데요, 멀더가 헤일리가 탄 차를 보내주고 딴 방향으로 뛰어가는 걸 스컬리가 목격하는 대목입니다. 뒷모습만 나왔는데 대역이었답니다. 눈치챈 사람들 별로 없었을 거라고, 어색하지 않게 잘 찍히지 않았느냐고 하네요. (역시 전 눈이 밝지 않다는...^^;;) 근데 스티브 키지악은 듀코브니와 허우대가 정말 닮았어요; 참, 이 공원은 워싱턴의 공원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는 뱅쿠버이고, 워싱턴에 벚꽃이 많기 때문에 벚꽃 많은 공원으로 골라 찍고, 국회의사당은 CG로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근사하게 됐다고 자랑스러워하던데 전 뛰는 멀더 보느라 그 장면 뒤에 배경으로 국회의사당이 지나가는지도 몰랐던OTL...;;



  에피소드 하나를 촬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8일이랍니다. 그래야 방송 스케쥴을 맞출 수 있다네요. 그런 환경에서 영화처럼 다양한 시도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엑스파일은 그렇게 해왔다고, 제작진이 정말 대단한 거라고 하면서, 이 에피소드에도 다양한 촬영 방식을 썼다고 하더군요. 스테디캠부터 에.. 그... 용어를 까먹었는데 카메라길을 설치하고 그걸 따라 찍는 걸 뭐라고 하죠? 멀더의 death march 씬에서 그 기법을 썼는데 아마 그때까지 엑스파일에서 같은 기법을 쓴 것 중 가장 긴 길이였을 거라고 하더군요. 이 부분은 저는 재밌게 듣긴 해도 뭔 말인지 잘 몰라서..(__)a;;



  우야든둥 항상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완성된 각본을 가지고 작업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한 에피소드 내에서 이 장면 찍는 동안 다른 장면 대본 쓰고 그런 일은 다반사라고 합니다. 이 에피소드도 멀더 손가락 부러뜨리는 장면을 찍을 때만 해도 그게 나중에 그렇게 중요해지리라는 생각은 못한 채로 쓰고 찍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작가진에서 '스컬리가 스물 여섯 군데의 은행강도 CCTV만 보고 어떻게 멀더를 알아보지'를 놓고 골머리를 싸매던 중 멀더의 손가락에 댄 부목을 이용하면 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하더군요. 고문씬을 쓸 때 작가진에선 어느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게 가장 효과가 크겠느냐는 걸 놓고 일장토론을 벌였답니다. 그런 취향이라면 엑스파일 작가 스태프 되면 재미가 좋을 거라네요. 자기 얘기 아닌가 싶었어요^o^;;



  은행강도 후 브레머가 돈을 태우는 걸 보고 멀더가 비로소 은행털이의 진상을 깨닫고, 헤일리가 브레머의 정체를 폭로하려다 브레머에게 반격당해 멀더랑 쌍으로 배신자로 몰리는 대목이 가장 쓰기 힘들었다고 하는군요. 워낙 반전에 반전으로 꼬여 있으니까요. 드라마의 대본은 팀웍이기 때문에, 쓰면서 여기저기서 피드백을 많이 받는데, 그게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 장면(멀더의 death march라고 자기들끼리 불렀다던)도, 앞에 언급한 대로 주인공이 죽을 위기에 몰리는 씬이라는 점 때문에 쓰기도 힘들고 찍기도 어려운 대목이었다고 - 어쨌든 시청자들은 이 캐릭터가 다음주에 돌아온다는 걸 아니까요 -, 그래도 자기는 멀더가 차 타고 도망가는 것까지 찍고 싶었지만 43분이라는 러닝타임 제한 때문에 못했다고, 이게 영화였다면 집어넣을 수 있었을 거라고 얘기하네요.



  카터는 항상 '현실처럼 보이는 게 가장 무섭다'고 강조한다고 합니다. 자기도 동의한다네요. 그래서 공포 효과나 충격 효과도 과도하지 않게, 실제처럼 찍으려고 애쓰는데 때로는 그게 쉽지 않다고, 극장에 두 아이녀석들이 숨어들어갔다가 살이 녹아내린 시체들을 발견하는 장면도 어떻게 하면 공포영화 클리셰처럼 찍지 않고 현실감 있게 가는가가 관건이었다고 합니다. 그 뒤 스컬리와 부국장이 시체들 사이를 걷는 것도 찍기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건 다른 것보다도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긴 보여줘야 하는데 (밀레니엄에서 다린 모건이 엄청 깐) 방송심의위원회를 거스르지 않도록 찍어야 해서 어려웠다는군요. 하지만 엑스파일에는 드라마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무적의 스포트라이트급 손전등 조명(뭔가 부르는 말이 있었는데 제가 잘 몰라서...;;)이 있으니까, 그걸 가지고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줄 수 있다고 합니다. 방송을 위한 트릭이라는 투로 들렸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다 보니 관객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제대로 했는가가 신경이 쓰였다는데, 그래도 모든 설명을 다 하지는 않고 남겨두는 것이 엑스파일다운 거라는 발언을 하시네요. 이 @*&#$^$ 같은...^o^;; 엑스파일은 다양한 장르를 모두 포괄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그런 면에서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해왔고 5시즌에서도 시청자들은 엑스파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걱정했을지 모르지만 제작진이 그런 시도를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엑스파일이 이만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아니겠느냐고 하는군요. 이건 제가 살짝 왜곡해서 전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이해한 바로는 그랬어요. 그리고 이 에피소드도 바로 그런 면에서 의미있었고, 특히 배우들이 새로운 연기를 시도해볼 수 있었기 때문에 좋아했다더군요. 멀더가 고문당하는 씬이라던가요. 아참, Pepsi challenge는 듀코브니의 애드립이랍니다. 마지막에 스컬리가 폭발하는 대목도 자긴 좋아한다는군요. 스컬리가 워낙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캐릭터라 언성을 높이는 신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나오면 나올 때마다 좋다고요. 아 그리고 질리언이 과학적인 대사들을 읊는 데 능하다는 칭찬을 합니다.



  이 에피가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았던 건 높은 완성도 때문이었는데, 코멘터리는 그 높은 완성도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졌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군요. 그런 의미에서 엑스파일 제작진들은 다 천재들인 것 같습니다. 샤이반은 사실 초자연 에피소드에선 그다지 잘하지 못해 팬덤에서 종종 까였었는데요, 자기 장기를 숨겨놓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근거는 없는 추측이지만 8-9시즌에서 그의 비중이 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끔 했었지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능한 것 같아요. 수퍼내추럴 팀에서 큰 플롯 전개를 잡아줄 사람으로 데려갔다는 것도 그렇고, 지금 찾아보니 현재 우리나라 케이블에서 방송 시작한 The Legend of the Seeker에도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네요. 이것도 스케일 큰 이야기를 소소한 레벨에서 하고 있지요. 이 코멘터리에서도 샤이반은 5시즌 전체에서 이 에피소드가 차지하는 위치와, 멀더와 스컬리의 관계의 변화가 이 에피소드의 배경을 까는 데 어느 정도로 작용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뉴 스파르탄스라는 이 테러리스트 그룹이 멀더에게 접촉해 오게 된 계기가 멀더가 MIT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반정부 발언을 대놓고 했기 때문이라는 발언이 에피 속에서 나오는데, 샤이반은 (많은 팬들이 추측한 바대로) 그게 Patient X의 컨퍼런스가 아니겠느냐더군요.^^ 콕 집어서 그게 그거였다,라고 하진 않습니다만. 사실 그래 주는 게 팬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제작진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해석을 제시해버리면 남는 게 없으니까요.



  전 다른 무엇보다도 멀더가 죽을 위기에 몰리는 걸 그렇게 근사하게, 믿을 만하게 연출했다는 점에서 이 에피를 오래 기억하고 높이 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텔링하고요. 하지만 제작진은 좀 더 많은 걸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 그 중 하나는 이 에피 다음다음이 바로 5시즌 피날레인 The End(다이애나 파울리의 첫등장)이라는 점에서 그를 위한 배경을 까는 의미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아요. 멀더와 스컬리의 신뢰가 벌어지는 걸 차근차근 깐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5시즌 전체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기억하려면 조금 더 공부(쿨럭;)해야겠네요.



  마지막. 샤이반에 따르면 이 에피의 주제는 중반에 헤일리의 대사로 나오는 Lies within Lies랍니다.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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