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즌'에 해당되는 글 3건


  생각해 보니, 난 도겟이나 레이어스에게는 관심은 있을지언정 그닥 애정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좋아하고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긴 하지만, 멀더와 스컬리를 바라볼 때만큼 그런 강한 감정은 아니다. 심지어 다른 조연들, 론건맨이나 크라이첵, 더 나아가서는 CSM을 볼 때만한 감정도 없다.
  8시즌을 싫어했고, 9시즌은 거의 외전으로 간주하고 봤던 게 원인이다.
  매력적이고 충분히 친근하고 좋은 사람들인데... 가끔은 그렇게 두 사람을 알아가고 좋아할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게 아쉽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다지.. 정은 가지만, 그리 크지 않다.


  하긴, 도겟을 이만큼이나 좋아하게 된 것도 대단한 발전이다. 처음 8시즌 초기에는, 도겟 띄워주느라 나날이 망가져가는 스컬리 캐릭터를 도저히 참고 볼 수가 없어서 매 시간 도겟을 저주했었다;;
  일단 출발부터, 그러니까 within, without에서 도겟은 충분히 사람 자극하는 캐릭터였다. (이 단어 정말 안 좋아하지만, 그래서 사람한테는 한 번도 쓰지 않았지만, '재수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도겟 성우로 김세한 씨를 쓰지 않았다면 도겟이 그렇게 빨리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으리라는 게 지금까지도 갖고 있는 내 생각이다 (내 경우 8시즌은 영어로 먼저 접했었다).


  레이어스는 아무 생각 없이 귀엽다고 생각만 할 뿐.. 엑스파일 전개 자체와는 무관했던 캐릭터였으니까.^^;; (도겟은 멀더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도입했으므로 존재 의미가 조금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난 요즘도 8, 9시즌은 손대지 않는다;; 유일하게 가끔 돌려보는 장면은 empedocles의, 스컬리 병실 앞 복도에서 멀더와 도겟이 나누는 '악'에 관한 대화...


  그 때 멀더는 마음줄에서 뭔가 뽑혀나간 모습이었다. 조용한 체념의 분위기... 드물게 상냥함과 따뜻함을 숨기지 않았던 그 때를 생각하면.. 아, 정말이지 8시즌 후반의 멀더는 나로서는......


  보고싶다.



  (2003. 04. 04)

Posted by Iphinoe

8시즌 푸념

our town 2007. 4. 6. 17:20

  제법 오랜 동안 팬픽 소스를 떠올리면 죄다 8시즌이라, 좋아하지도 않는 플롯에 왜 변명을 해주고 싶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에서야 그게 제 나름대로 8시즌 전개와 화해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노력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깨닫고 보면 무지 단순하고, 팬심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용납이 되는 것 같진 않아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건 8시즌의 앞 시즌 부정하는 내용 전개입니다. 이건 두 가지 측면이 있어요. 하나는 8시즌 전개가 7시즌 속에 깔려 있던 내용을 완전히 뒤엎으며 진행된다는 건데, 이건 무슨 의도로 깔아놓았는지 이해할 수 없거니와 멀더의 귀환과 맞물려서 제대로 매듭도 안 지어준 채 그냥 흐지부지되었다는 점에서 정말 맥락없고 쓸모없는 플롯이었습니다. 게다가 7시즌에서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으로 보였던 멀더-스컬리의 감정 관계가 8시즌 넘어가선 멀더도 없는 판에 송두리째 부정되었다는 점이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그러나 이건 현실적으로 제작 환경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문제긴 합니다. 8시즌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폭스사와 DD의 협상에 달려 있었고 그게 어떻게 끝날지도 모르는 채 7시즌 피날레를 찍었다니 제작진(특히 작가진)의 혼란이야 따로 말할 필요도 없었겠죠. 플롯이 우왕좌왕하는 게 당연합니다. 8시즌 전체는 아무리 돈을 부어넣고 물량 공세로 찍었다 한들 날림공사라는 냄새를 강하게 풍겨요.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일 겁니다. '뇌의 이상으로 죽어가고 있던 멀더'의 스토리라인이 폼만 잔뜩 잡다 중간에 휘발된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스컬리 캐릭터를 망쳐버린 건 정말 용서가 안돼요. 그것도 새로 들어온 도겟을 띄워주느라 스컬리를 망쳐버렸다는 것. 믿는 자 멀더-회의하는 자 스컬리 역할분담을 도겟을 들여와서 한 칸씩 옆으로 옮기는 기계적인 재배치는 물론 멍청하고 한심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 (일단 M&S 궁합이 너무 좋았고 서로에 대해 정의된 입장이었기 때문에 멀더가 빠지면 스컬리도 위치가 흐려지니까요. 이건 그 누구한테도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멀더가 없기 때문에 스컬리가 의식적으로 멀더의 시각으로 사건을 다루려 한다'는 식의 설명은 - 8시즌 중반에 나오죠 -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7년을 지나오는 동안 스컬리와 멀더가 고수하는 입장의 차이는 정말 그래서라기보다는 편의적인 것, 즉 사건 수사에 있어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정도로 변해 있었으니까요.


  따라서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사건에 대한 스컬리의 태도라기보다는 도겟에 대한 스컬리의 태도입니다. 둘 다 불편하지만 후자의 경우 반감이 더 커요. 제작진이 작정하고 띄워주는 게, 그리고 그 와중에서 스컬리의 캐릭터가 희생되는 게 보이잖아요. 그게 절정에 달한 게 로드러너였기 때문에 그 에피만 생각하면 지금도 헛웃음이 나면서 분노게이지 수직상승이라는 모순되는 반응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겁니다. 좋아해달라고 쓴 신이 도겟에 대한 호감을 늘이는 쪽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이 드라마에 염증을 일으키는 쪽으로 작동한 거죠. 그런 부작용을 모를 제작진이 아니었다고 보기에 왜 그런 이상한 만듦새를 보였는지 이해 불능입니다.


  왜 싫어했는지를 자꾸 되풀이해 말하는 것은 '아 나 정말 8시즌 싫어'를 강조하려는 게 아니고, 실은 일종의 심리치료입니다-0- 8시즌이 남긴 상흔을 씻어내고 완전소중 팬의 모드로 돌아가려면 어떻게든 이 상처를 극복해야 하는 거예요. 극복하고 싶거든요. 좋아한다구요. 8시즌과 좋은 관계에 있지까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떻게든 화해는 해야 '추억'하는 입장에서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작업이 쉽지가 않군요.




  (2006년 12월 20일)


Posted by Iphinoe

2002년에 수룡님 홈페이지에서 했었던 이벤트 응모글이었습니다.^^ 이 글은 2003년 1월에 손을 본 두 번째 버전입니다.

글 접는 태그를 시험해보려고 하는데 잘 안 되는군요. 이번엔 되려나...



길어서 접습니다


제 7시즌 최고의 에피는 연작 에피소드, sein und zeit와 closure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closure입니다. sein und zeit은 그 자체로는 별로...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에피소드로 기억합니다만..^^ 제가 이 에피소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멀더가 사만다를 *감*정*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Redux II 에서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만다를 보았던 게 우리가 사만다를 직접적으로 접했던 에피소드의 마지막이었고, 사실상 사만다를 다루었던 에피소드로서도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맞나요..?? ;;;)


사실 그 사만다 진짜이길 많이 바랬었습니다. 드라마 내러티브상으로도 괜찮은 설정이라고 보았고, 멀더가 사만다를 찾아다니면서 끊임없이 마주쳤던, 사만다가 이용당하고 고통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사실이 아니길 바랬다는 점에서요.


사실 사만다는 멀쩡히 보통 인생을 살아왔던 겁니다!! DNA 뺏긴 다음엔 말이죠.. (사만다 클론은 있었으니.^^)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는데, sein und zeit의 처음 한 20분 정도를 보아 나가면서, 열 좀 받았었습니다.


Paper Hearts의 재탕이잖아!!!!!!!!!!!!!!!!


원판의 그 복잡한 영어를 거의 반도 못 알아듣는 저의 머리로도 상황이 파악이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혼란한 산타 마을의 상황을 보며, 스컬리, 스키너, 무릎꿇고 손을 머리 위로 올린 용의자 위로 카메라가 떠오르며 끝없이 펼쳐질 것만 같은 둔덕들.. 무덤들을 보여주며 sein und zeit가 끝났었죠.


그리고 두근반 세근반 하면서 일 주일을 기다렸습니다.



closure에서 제가 처음 좋아하는 장면, 처음 시작 부분의 멀더 나레이션입니다.


서정적이고, 고아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영어로 보았으니 나레이션은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그 분위기와 그 아래로 펼쳐지는, 무덤을 하나하나 파헤쳐가며 시신을 수습하는 무거운 얼굴들, 밤이 되어 산 사람들은 물러간 공간에서 하나하나 떠올라 빛을 받으며 어디론가 향하는 아이들, 제가 감상적인가요? 아름답더군요.


그리고 다음으로 기억하는 장면은 사만다의 일기장을 발견한 멀더가 식당에서 스컬리와 함께 그 일기를 읽어내려가던 장면.



일기의 내용도 사람을 울렸지만 (네. 감상적입니다ㅡ.ㅜ) 그 순간 멀더의 복잡하고 슬픈 표정, 스컬리의 함께 슬퍼하고 위로해 주고자 하는 얼굴... (무슨 말이라도 해 주고 싶은데 할 말을 찾지 못한 표정으로 보였었죠)


모두 어우러지면서, 멀더의 슬픔이 진하게 다가왔고, 그만큼 비극성이 부각된... ^^ 그런 장면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은... 멀더가 소년의 영혼을 따라 빛의 언덕 (마땅히 부를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붙였습니다^^) 으로 인도되어 사만다를 만나는 장면...


정말 듀코브니 연기 잘하더군요. (식당에서에 이어 두번째로 감동먹음)

사만다의 밝은 미소, 그리고 반가워하고 안도하며 마음을 놓는 멀더의 표정...


사만다가 달려와 멀더를 끌어안고, 멀더가 손을 들어 사만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모습이 저로 하여금 절로 미소를 짓게 했답니다.


물론 이 부분에는 결정적으로, 모비의 음악이 작용했죠. 그 음악이 없었다면 그러한 감동을 받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 자리에 딱 들어맞더군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지막 장면.

스컬리의 괜찮느냐는 물음에 멀더가 "I'm fine."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I'm free.." 라고 했던 장면...


그 "I'm FREE" 에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Paper Hearts의 재탕에 가까운 내용, 멀더답지 않은 뉴에이지적 나레이션, 결국 사만다는 죽은 지 오래다는 사람 허무하게 만드는 결론) 기분이 되었습니다.


Redux II에서도 멀더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내러티브 속에 놓여 있는 사만다를 만납니다.


그러나 멀더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죠... 사만다가 두려워하고 겁내는 것을 알고 떠나보내긴 하지만, 마음 속으로 사만다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는 게 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Biogenesis에서도 스컬리의 돌연한 (사실 말도 안 되는) 물음에 '사만다'라는 (역시 말도 안 되는) 대답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겠죠..


하늘을 올려다보며 "I'm free"라 한 멀더를 보는 순간 저는 이제 더 이상 엑스 파일에 사만다는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물론 8시즌의 향방을 둘러싼 스포일러를 모르지 않았지만요)


멀더는 드디어 사만다를 놓아보낸 겁니다. 그 어둡고 암울한 기억, 자신을 저주처럼 사로잡고 있던 주문을 벗었던 겁니다..


물론 고통스러운 결말입니다만, 멀더를 위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I'm free"라 말하는 멀더의 기뻐하는 것이 아닌, 정말 '자유가 됨'을 드러내는 그 마지막 얼굴은 압권이었습니다.


(표현이 엉망이군요...-_-)




자... 그럼 미진한 감은 있지만 거기서 내버려 두고.. (더 잘 쓰기에는 능력이 딸리므로)


최악의 에피로 넘어가 보면,


제게 있어 최악의 에피는 둘입니다. 우열을 도저히 정할 수 없어 둘 다 쓰기로 했습니다.


둘 다 8시즌인데요, 하나는 roadrunner(종말의 신도들)이고, 다른 하나는 vienen(외계 바이러스)입니다.



'종말의 신도들'이 싫은 이유는 단연코, 스컬리입니다.ㅡ_ㅡ;;


그 에피 내에서의 스컬리에 대한 묘사가 저를 열받게 한 데다 그 전의 3주 동안 스컬리의 캐릭터화가 이그러지는 것에 내내 열받아오던 것이 절정에 달하면서 폭발했고 마지막으로, 저런 심란한 에피소드를 다른 사람도 아닌 빈스 질리간이 썼다는 데 있습니다.


스컬리는 분노할 수는 있어도, 비합리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에 대해서는 그렇습니다.


도겟에 대해 스컬리가 분노했던 것은 절대적으로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그러나 도겟에 대해 비합리적으로 대하는 것은 스컬리답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8시즌 초반에서 내내 스컬리는 변명에 급급한 것처럼 그려지게 되죠ㅡ_ㅡ++


그런데 이 '종말의 신도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제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스컬리를 열심히 부각시켰습니다.


총을 넘겨준다는 어이없는 설정, '나에게 아이가 있단 말야!'라는 어처구니없는 대사 (아이가 있다는 걸 상기시킨 것만으로도 너무 열이 받았거든요^^) 어디서 구원자처럼 나타난 도겟은 또 전형적인 수퍼히어로처럼 스컬리를 번쩍 들어 안고 걸어갑니다. 거기다 쓸데없이 달라붙는 스컬리 옷차림, 그리고 마지막의 사과까지, 완전히 역겨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엑스 파일이라는 드라마 자체의 방향에 대해서 회의하게 만들더군요.



우선 스컬리가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스컬리는 파트너를 무시하고 현장으로 혼자 달려갈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싫어하는 파트너여도, 반드시 같이 갈 겁니다. 더군다나 바로 앞의 에피소드 '박쥐인간'에서 서로 도움 받아가며 사건을 해결했는데 갑자기 그 다음에 마음이 바뀌어서 도겟에겐 사건에 대해서 알리지도 않고 혼자 간다고요?


그건 절대 스컬리가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ㅡ_ㅡ;; (말하다가 또 열받는..)


그리고 총을 넘겨주는 것, 여러 분들이 말씀하셨듯이 법집행관으로서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말도 안 되죠.


그리고 "내겐 아이가 있단 말야!!" 하고 비명을 지를 때 전 그 비명 때문에도 충분히 열받았지만 (아이...-_-++)


그 때 스컬리의 옷차림이 너무 돋보이는 바람에 기겁했습니다. 도대체 1013,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완전히 노골적인 '희생양'의 모습을 드러내는 스컬리..


그리고 대조적으로 너무나 쿨하고 멋있게 나타나 사건을 수습하며 돌아다니는 도겟..


쳇.


이게 1013의 8시즌 전략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아...... 한숨밖에 안 나오더군요.


그리고 마지막에서 스컬리의 사과.


그 상황이라면 사과하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 스컬리를 사과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아넣은 작가한테 하도 화가 나서 TV를 끄고서도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답니다.


아직도 roadrunner는 제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에피소드입니다.




roadrunner는 단독 에피소드니까 그나마 지워버릴 수라도 있죠. 엑스 파일 전체적인 이야기 진행에 크게 영향을 안 미치니까요.


그러나 이 '외계 바이러스', vienen은 제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조차 없는 에피소드입니다.


멀더가 FBI를 이 에피소드를 통해 떠났으니까요.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저를 화나게 합니다!!


8시즌을 마지막으로 듀코브니가 엑스 파일을 완전히 떠나며, 그렇기 때문에 멀더도 엑스 파일을, 나아가 FBI를 떠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8시즌의 마지막에 멀더가 엑스 파일을 떠날 줄 알았습니다.


마지막에 음모론 에피소드가 나오면서, 음모론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새롭게 깨달은 멀더가, '자신이 남아있는 것이 스컬리와 아기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이게 제가 들은 스포일러 내용 그대로입니다^^) 엑스 파일을 떠나는 것으로, 스컬리와 아기의 인생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실 거대한 음모의 소용돌이에서가 아니고서는 멀더가 스스로 엑스 파일을 접고 물러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멀더가 어떤 사람입니까.ㅡ_ㅡ;;


그런데 멀더는 너무도 어이없게 가버렸습니다.ㅠ.ㅠ



스포일러를 접하지 않았던지라, 이 에피소드가 멀더가 떠나는 에피소드인 줄 몰랐습니다.


vienen 내용 자체는 그럭저럭 봐줄 만했고, 특히 기름 대신 흑유라는 설정은 멋있어서 멀더와 도겟 사이에 정형화된 티격태격이 오갈 때를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고 있었지요.


사무실에서 도겟이 멀더와 마주칠 때만 해도, 멀더가 그 순간 '해고'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멀더가 자진해서 책임을 뒤집어쓰고 떠나요? 어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ㅡ_ㅡ++


멀더는 그만 일에 엑스 파일을 내놓을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이게 순전히 저 혼자만의 생각입니까?


(하긴.. Kevin Petterson은 vienen 리뷰에서, 멀더는 그 이전 에피에서부터 자신이 더 이상 엑스 파일과 함께할 수 없으리란 걸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썼습니다만 저로서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잘 모르겠어요.)


멀더가 떠나는 이 장면에서, 그것도 너무나 순식간에 이루어진 (말 끝맺자마자 일어서서 손 내밀고, 도겟과 악수하고 바로 나가버렸죠) 과정에서 저는 충격을 흡수할 여지가 없어 덜덜 떨었습니다.


기가 막힌다는 말 아시지요? 정말로, 문자 그대로, 기가 막히더군요.


가슴이 뻐근하고 묵직하게 뭔가 얹혀 있는 듯한 통증이...


얼마나 놀랐으면, 얼마나 뜻밖이었으면 몸이 그런 반응을 보였겠습니까......-_-;;


그 날 저는 순전히 멀더 때문에, 충격을 흡수할 수가 없어 여기저기 인터넷을 들쑤시면서


새벽 다섯 시 가량까지 앉아 있었습니다.


ㅡ_ㅡ;;;


여담이지만, 사실 그렇게 FBI를 떠나고 엑스 파일을 떠난 멀더가 깨끗이 사라졌다면 그 뒤로 화가 더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멀더는 엑스 파일을 떠났을 뿐이지 계속 엑스 파일들을 파헤치고 돌아다니잖습니까..


스컬리의 출산이 임박했기 때문이라고요?


그러니까 멀더는 8시즌 마지막에 엑스 파일을 떠났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맞지 않겠어요?


아아....


떠나기로 결심한 멀더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스컬리를 찾아와 아이를 사이에 두고 스컬리와 키스를 나누는... (이 장면은 모 카페에서 미리 보았음) 그런 장면을 상상했던 저에게 이건 너무도 과도한 배신이었습니다.




지금 읽으니 방방 떠서 쓴 글 같군요. 8시즌에 대해서는 배신감이 참 컸었습니다. 바로 위에 8시즌에 대한 글을 올리게 될 테니 거기 언급이 됐겠지만요. 참, 2003년 1월 버전에는 이 밑에 다른 어조로 쓴 추신이 있었는데 그것도 올려두겠습니다.



길어서 또한번 접습니다


아직도 8시즌은 내게는 악몽이고 잊어버리고픈 끔찍한 기억이다. 흡족한 에피를 찾을 수가 없었고, 도겟 캐릭터 때문에 스컬리가 망가져 가는 걸 내 두 눈으로 지켜봐야 한다는 게 정말 싫었다. 스컬리가 8시즌 전반부 내내 편협하고 꼬장꼬장하고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내세우며 히스테리컬한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가 된 건 오로지 그렇게 함으로써 도겟을 띄워주려는 의도라고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스컬리는 그럴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건 캐릭터에 대한 왜곡이었다고 본다.


거기다 더해, 8시즌에서 7시즌을 모조리 다시 쓰며 만들어낸, '멀더와 스컬리가 나누었던, 그 어느 때보다도 둘이 감정적으로 가까웠고 안정되어 있었던 그 관계 밑에 뇌의 이상으로 인해 죽어가던 멀더가 있었다'는 설정은 그 때는 물론이고 아직도 용서가 안 된다.


within-without 2부작에서 비현실적으로 큰 가족 묘비;; (심각해야 하는 순간인데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와 함께 등장한, '죽어가고 있었고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던 멀더' 설정이 처음 등장했을 때 나는 당연히 그게 권력협회 or 담배맨 쪽이 상습적으로 해온 증거 조작의 일부라 믿었다. 결국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언젠가는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며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리라, 그래서 멀더가 돌아오면 모든 것이 정리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멀더의 모습을 (비록 플래시백이라지만) 오랜만에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the gift를 내가 싫어하는 이유는 거기서 '죽어가는 멀더' 설정을 현실화해 버렸기 때문이다. (도겟의 말이나 병원 기록 가지고는 안 된다)


멀더가 돌아와서 슈퍼 솔저로 재탄생할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부활하는 바람에 흐지부지되었지만, 그 플롯은 아직도 용서가 안 된다.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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