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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빚진 감도 있고 해서 이 책 감상을 쓰려고 그동안 수없이 컴을 켰다 말고 창 열었다 닫고 했었는데, 오늘도 시도해 봅니다^^


  스토리는 꽤 간단하면서도 흥미롭습니다. 봄이 한창인 4월, 87분서에는 두 가지 사건이 한꺼번에 접수됩니다. 한 가지는 옷이 전부 벗겨지고 양말과 구두만 신겨진 채 공원에 버려진 시체가 발견된 것이고 ㅡ 타살이 분명했죠. 문제는 시체의 신원을 알아낼 수 있을 만한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형사들은 골치를 썩이게 됩니다 ㅡ , 다른 하나는 메이어 메이어의 아버지와 친했다는 친구분의 공장을 시작으로 하여 시내 수십여개의 상점에 이상한 장난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첫 번째 사건은 스티브 카렐라가 맡아 수사하고, 두 번째 사건은 자연스럽게 메이어 메이어의 담당으로 넘어갑니다. 각자의 사건을 따라가면서 형사들은 신비스럽게 젊은 나이에 60대의 노인과 진지한 관계를 맺어왔던 20대의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기도 되고, 자신의 아버지를 새삼스럽게 되새겨보게 되기도 하고, 죽을 위기를 맞기도 하고 (누구일까요?),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긴 동료 때문에 침울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안도감을 느끼며 그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도 4월 30일을 목표로 한 장난 전화는 계속되고, 아이솔라(도시 이름이죠) 어디에선가는 The Deaf Man으로 알려지게 될 인물의 지휘 아래 모종의 사건이 기획되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슬쩍 끼어드는 이들에 대한 묘사가 메이어 메이어의 사건과 겹쳐들면서 더 큰 그림이 드러나고, 사건은 클라이막스로 치닫게 되죠.


  87th Precinct series로 알려진 이 시리즈를 원서로 보기는 처음인데요, 이걸 읽고 나니 맥베인의 스타일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동안 번역서로도 서너 권 정도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번역되지 않았던 (어느 쪽인지는 다시 체크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모르겠습니다) 문체의 특징들이 드러나는군요. 번역서의 경우에도 두드러졌던 날씨 묘사는 원본에서도 같습니다만, 그 외에도 뭐랄까, 이 시리즈를 '대중소설'로 분류할 법한 특징들이 보입니다. 말주변이 없어 이렇게밖에는 표현을 못하겠는데, 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보면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방식을 즐깁니다. 문장도 꽤 반복적이고요. 만약 '단서가 없어 혼란스러웠다'는 말을 하고 싶다면, 그는 표현을 바꿔가며 같은 문장을 두세 번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가끔은 직접적으로 그 끝에 독자에게 호소합니다. "Coplovers,"라 부르면서, '...이런 상황이라면, 혼란스러운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하는 식이죠. 아주 노골적인 예가 하나 있었는데 다시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이런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좀 계면쩍었습니다. 반복하면서 강조하는 스타일은 저도 익숙한 방식인데, 자주 사용되니 왠지 우습기도 했고요.


  서점에서 제가 서너 권의 87분서 시리즈들 중에서도 이걸 골랐던 것은 이게 비교적 옛날에 발표된 책이기 때문이라는 점도 이유가 되었지만, 그것보다는 책 표지에 나온 두 구절이 흥미를 끌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책 앞표지의 'With a new afterword by the author'였고, 다른 하나는 뒷표지에 커다랗게 나온, 'Ed McBain introduces the Deaf Man in THE HECKLER'였습니다.


  감히 말하건대, 87분서 시리즈의 흐름을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맥베인의 후기만으로도 이 책은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사시라는 건 아닙니다^-^). 어디서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어 The Heckler의 기반이 된 '위협 전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여 The Deaf Man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내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거든요. 저는 The Deaf Man을 다른 책에서는 만나보지 못했습니다만, 맥베인의 말에 따르면 원래 이 캐릭터가 The Heckler에 처음 등장할 때는, 87분서 시리즈의 수장 격인 카렐라 형사의 아내를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고안했으니 한 번 비슷한 장애를 가진 캐릭터로 이번에는 완전한 악인을 등장시켜보자, 는 취지에서 계획했던 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리즈가 거듭되고 이 사람이 계속 '출연'하게 되면서, 어느 새 카렐라의 대척점에 선, 맥베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홈즈에게 모리아티 교수가 그렇듯 스티브 카렐라에게' 그런 존재로 정착하였다고 하는군요.


  이런저런 사연도 있고 하여 읽기 시작하여 끝내는 데 거의 4달 가까이 걸렸습니다만, 보람이 있었습니다.^_^ 왠지 87분서 시리즈의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시리즈에 대해 훨씬 더 잘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덧붙임 - 제목인 The Heckler는 장난치는 사람, 놀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바로 문제의 협박성 전화를 끊임없이 걸어대는 사람을 가리킨 보통명사입니다.


  (2004. 01. 12)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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