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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

카테고리 없음 2009. 3. 6. 23:50

  1.   근래 심사가 좋지 않더니 드디어 꿈에 악마까지 등장했다-_- 비록 목소리만 출연하셨지만 존재감은 물론이고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이 상당하더라. 잠에서 깨어나니 온몸이 긴장해 있었다. 얼마 전에 사탄이 나오는 소설을 읽었는데 그 영향이 지금까지 남아 있나. 하지만 그 작자는 매우 사근사근했는데.



  2.   제대로 음악을 들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살면 정말 곤란한데. 하지만 언제인가부터 음악은 그 자체보다는 실용적인 용도로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거 정말 곤란하다.



  3.   정신이 없고, 혼은 빼놓고 있고, 넋만 겨우 붙어 있는 것 같다. 바쁘다기보다는 정신이 없는 것 같은데, 한 말 또 하고 있네. 해야 할 일은 (드디어) 해서 다행이지만, 저것도 최종본이라기보다는 중간정산본이어서 나 자신으로는 미진하고 공적으로는 어마어마하게 늦어서 그저 죄송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최종본을 뽑았던 케이스로는 The Burden of Proof가 유일한가.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방향에서 압박이 장난아니게 들어왔던 상황이라서 가능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하니 L.A. 컨피덴셜 & 블랙 달리아 글도 있었다)



  4.   어디다 정식으로 다시 이야기해야겠지만, 실은 '수도원의 죽음Dissolution' 덕분에 예전부터 빼어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정도와 깊이에 그렇게까지 자신은 없었던 '옥스퍼드의 4증인 / 핑거포스트 1663'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복합적인 인간상을 모두 소화하면서 빨려드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진정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판단은 주관적인 것이지만. 내 감상이 꽤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5.   지난주에 좀 아팠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했더니 몸이 지쳤던 모양. 어렸을 때는 자주 배앓이를 하고 그 때마다 한두 번씩 토했지만 커서는 자주 아프지는 않는데, 대신 한 번 아프면 하룻저녁에 대여섯 번씩 토한다-0- 이번에는 식도에서 피가 올라올 정도로 심했다. 지금은 90%정도 회복되긴 했는데, 그러고 나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식욕을 잃은 것 같다. 아니 때 되면 배가 고프긴 하는데 뭘 먹어도 맛이 없다-0-



  6.   요새 Jose Chung's Doomsday Defense 음성파일을 만들어둔 걸 자주 돌려듣고 있다. 나중의 Satan Got Behind...의 그 날이 선 태도의 단초가 드러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훨씬 유쾌하고 - 그 색감! 밀레니엄에서 그게 가능할지 몰랐다. 파일럿과 비교해 보라 - 특히나 음악이 분위기를 많이 살려준다. 혐오가 느껴지는 사탄 에피소드와 달리 페이소스가 느껴진달까. 사유의 깊이는 From Outer Space와 비교한다면 떨어질지 모르겠으나 그건 내게 느껴지는 적실성의 문제겠지. 이 사람은 확실히 빼어나다. 주위 사람들이 감당하느라 힘들기는 하겠으나.

    그러고 보니, 그 색감은 다린 모건이 의도한 바였겠지? 처음에 명희님께서 캡쳐만 보여주셨을 때는 이게 MLM인가 싶을 정도로 놀랐었다.



  7.   XF를 비과학적인 드라마로 보는 시선들이 이해가 아주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잘 모르겠다. XF에선 사실 스컬리의 시각 역시 무시되지 않았었다고 생각한다. 과학 vs 신비의 컨셉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이 세상의 작동 원리(그런 게 있다면)를 다 알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드라마였다. 그래서 그런 방향에서 들어오는 비판은 약간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Posted by Iphinoe

  (결정적인 스포일러는 없습니다만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를 미리 해버렸는지도 모르겠네요. 다들 금방 짐작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굳이 숨기지 않았습니다.)




  옥스퍼드의 4증인 (An Instance of the Fingerpost)



  제가 좋아하는 네 가지 요소, 혹은 그 중 세 가지 요소(배합은 책마다 다르지만)를 포함하는 일련의 책들이 그 동안 제법 출판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미스테리'라고 불리더군요. 우리 나라 독자들이 좋아하는 유형의 소설이라면서요? 저도 좋아하는고로 이 부류에 들어갈 만한 새로운 책을 접하게 될 때마다 기쁘긴 합니다만, 그 동안 접했던 책들이 현저히 질이 떨어지거나 자신이 다루는 대상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결여되어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실망을 많이 하고는 어느 순간 기대를 접었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정말 좋았습니다. 강추!!입니다. 이 제목은 구판 제목이고, 지금 시중에 도는 책은 제목이 '핑거포스트'라고 알고 있습니다.



  17세기 왕정복고 시대의 영국에서 일어난 한 살인사건과 그 숨겨진 진상을 네 명의 증인이 각각 자기가 바라본 대로 서술하는 구성인데,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사법살인'이 주는 서스펜스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사법살인을 지휘하고 뒤에서 덫을 놓은 사람은 이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어보였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물리적으로 상당한 거리를 갖고 있었던 전혀 뜻밖의 인물입니다. 진실은 표면에 드러나 있지 않았지만, 그에 관계했던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완전한 지식을 손에 쥐지 못하지요. 뒤에서 진두지휘한 자조차도 말입니다. 몇십 년이 지난 뒤에야 '진상'을 알게 되는 한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증언이 없었다면 결코 나머지 퍼즐을 끼워맞추지 못했을 겁니다. 네 사람의 증언은 각기 전 사람들의 증언을 뒤엎으면서 진행됩니다. 머리가 좀 아프고, 지루할 수도 있지만, 덕분에 소소한 서스펜스도 놓치지 않습니다.



  두 번째의 매력이라면,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현재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너무도 교묘히 결부되어 있어서 사건에 정말로 긴박성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구성하는 네 명의 증인 중 첫번째 인물인 콜라의 증언은 서막을 열고 기본을 제공하며, 외부에서 들어와 앞뒤 사정을 잘 모르는 입장인 이방인의 모험소설에 가깝습니다. 콜라는 스스로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존재로 묘사하죠. 이 사람의 증언만을 통해 볼 때 드러난 것은 그 자체로 명백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증인인 잭 프레스콧의 증언은 이 사건이 과거에 있었던 다른 사건과 결부되어 있었다는 걸 알게 해 줍니다. 그의 증언은 완전한 본격추리물로서, 어찌나 정통적이었던지 그의 증언을 뒤에서 뒤집게 될 세 번째의 증언이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 대충 가늠이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제가 예측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물론 있지만요. 그 다음 증인인 월리스의 이야기는 스릴러의 요소가 조금 더 섞여 있고, 그 나름의 '진상'과 '반전'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네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롭습니다. 월리스는 물적 증거보다는 사람들의 증언과 정황적 증거를 토대로 비약적 추리를 통해 사건의 얼개를 끼워맞춰 나가는데, 나중에 그것들이 네 번째 증인인 우드의 증언을 통해 어떻게 반박되어 가는지를 보는 게 아주 재미있거든요. 우드의 증언은 앞서의 세 증언을 정리하면서 진상을 밝혀줍니다. 그리고 그들이 수사했던 '그 당시의 사건'과 그들 전 세대에 있었던 '과거의 사건'이 어떻게 맞물려돌아가 사법살인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는가, 그 과정에서 무엇이 은폐되었는가가 드러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의 매력은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입니다. 당대 영국을 운영했던 정치인과 귀족들은 물론이고, 리처드 보일에 존 로크에 크리스토퍼 렌까지, 그리고 전 전혀 몰랐지만 수학자나 암호학자라면 월리스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지도 모르는 노릇이죠. 전 개인적으로 보일과 로크에서 가장 재미를 보았는데, 보일은 워낙 유명한 화학자기 때문이고, 로크는 제가 예전에 수업시간에 담당해서 조원들과 함께 발제를 준비하기도 했던 인물이랍니다. 물론 서양정치사상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저희는 로크의 '통치론'을 나누어 읽었고, 그 사람의 생애에 대해서도 조사했었습니다. 주로 명예혁명과 관련해서였지만요.



  과거의 일, 특히 남의 나라에 있었던 일에 대해 수박 겉핥기 식으로 배울 때, 우리가 잘 잊어버리는 것은 '쉽게 일반화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원칙이 아닌가 합니다. 역사책은 아주 자주 특정 세기의 '특징'을 몇 줄로 요약해주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 문제를 갖고 수없이 다른 입장을 가졌을 테니까요. 크롬웰의 사후에 일어났던 왕정 복고에 대해 전 '물리적 마찰이 없었다'고 들은 기억만 갖고 있었지만, 그 말이 갈등의 존재까지 없애주는 건 아니라는 거죠. 역사적 기술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대해서도 함부로 판단하는 대신 끊임없이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걸 이런 책들이 환기시켜 주었달까요.



  (2005. 01. 31)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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