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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실하게 퀸의 팬으로서 썼으니 감안하고 읽으세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동서미스테리북스 출간본으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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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리 아홉 고양이'는 여태까지 봤던 그 어떤 퀸의 소설과도 같지 않다. 우선 연쇄 살인은 엘러리 퀸과 같은 고전기 탐정들의 방식으로는 탐정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상당 부분 제한한다. 연쇄 살인에서 중요한 것은 패턴과 물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용의자 사이를 돌아다니며 피해자의 주변 인물들을 들쑤셔놓고 원한 관계를 추적하고 그것들과 증거와의 연관성을 탐구하는 그런 수사가 이루어질 여지가 거의 없는 것이다. 퀸 부자가 이 사건이 위장된 연쇄살인 사건은 아닌가를 놓고 토론하고, 엘러리가 사건을 도와주겠다고 찾아오는 희생자들의 동생을 선뜻 받아들이는 대신 거리를 두는 것은 두 사람이 고전기 추리소설의 '정통적인' 방법으로 이 사건이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ABC 살인사건'을 연상시킨 내용이었다). 그러나 '꼬리 아홉 고양이'의 아홉 살인 사건은 연막탄 이상의 것이었고, 결국 범인의 윤곽은 우연히 어떤 사실 하나가 노출되면서 드러나게 된다 (= 엘러리의 추리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이 분량 긴 소설의 대부분은 추리와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들이 담당한다.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아우르고 짜임새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연쇄살인이라는 얼굴 없는 무작위적 범행이 뉴욕 시 전체에 몰고 오는 공포와 불안이다. 폭동과 공황 상태에 대한 묘사는 과장일 수도 있지만 이 사건이 사람들의 마음 속을 어느 정도로 헤집어놓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다. 엘러리 역시 그 무게를 알기에 스스로 결심한 바를 어기고 사건을 맡는다. 퀸 경감이 이 연쇄살인의 특별전담반을 맡고, 시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퀸에게 특별수사관의 일을 부탁하는 것은 퀸으로 하여금 일을 회피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한 작가 퀸의 전략이다.;)


  평소의 모습답게 희생자들에서 패턴을 찾아냈지만, 그 패턴이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없어하는 엘러리는 범인을 잡아 사건을 종결짓고도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남아 있다는 것 때문에 고심한다. 이는 엘러리가 어쩔 수 없이 아마추어 탐정이라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통상적으로 경찰은 범인을 잡아 사건을 종결지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검찰은 공소유지를 해 재판을 만들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러나 퀸은 (다른 작품들에서) 스스로 말했듯 진실을 찾아 범인을 쫓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하는 것이다. 물론 범인을 쫓는 사람은 누구나 크건 작건 이 기질을 가지고 있지만, 범인을 잡는 일로 밥을 먹고 살지 않는 사람들은 이 기질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 (물론 홈즈 같은 괴물도 있긴 하다.)


  추리소설이 근대적이라고 느껴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추리소설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폭력적 균열이다. 탐정은 결국 소설 마지막에 범인을 잡아 일탈을 제거하며 흐트러졌던 세계에 질서를 되돌린다. (인식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증거들을 주워모아 의미를 부여하고 체계를 세운다는 점도 근대적이다.) 그런데 이 사건과 그 전 사건 둘 다에서 엘러리는 스스로는 질서를 부여했다고 생각했으나 곧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절망만을 보여주지는 않았으나 그다지 희망적이지도 않다. 엘러리는 다시 지난한 자기 신뢰 회복의 과정을 겪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범인이 체포되고 나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일종의 묘한 흥분과 들뜬 분위기,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딘가 모르게 주변 사람들과 격리되어 앉아 있는 퀸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 인간은 또 기절한다.) 그 전 사건에서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재기 불가능할 타격을 입었던 모습을 보았던 터라, '꼬리 아홉 고양이' 내내 다루어지지는 않지만 저변에 흐르는 퀸의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이 사건 해결로 홍수에 둑 터진 것처럼 거대한 흐름으로 터져나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또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야 말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퀸의 절망은 어떤 것이었을까. 물론 두 사건에서 퀸이 패착을 범한 부분은 조금씩 다르고, '꼬리 아홉 고양이'에서 치러진 희생은 퀸으로서는 손쓸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범인으로 기소된 사람의 매 사건에 대한 알리바이를 다시 검토했어야 할 퀸의 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셀리그먼 박사의 말도 진실이고, 퀸의 자책 또한 진실이다.


  동윤 님 말씀처럼, 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모르겠다. 통상적인 추리소설도 아니고, 하드보일드는 더더군다나 아니며, 책의 앞과 뒤에서 대구를 이루는 퀸의 바닥을 치는 절망은 배경지식 없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이런 도전을 했다는 점에 정말 두 사람(한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다. 당대에는 퀸의 팬층이 두터웠다는 증거로 생각하련다.(^^)



  (2004. 05. 29)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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