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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x14 Grotesque 잡담

our town 2007. 4. 21. 08:15

  이 에피는 본방송 때 한 번 보고 며칠 전 처음으로 다시 본 것인데요, 이유인즉슨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는 엑스파일이 호러물이라지만 이상하게도 저한테는 볼 때에는 물론이고 보고 나서도 무섭다는 느낌을 주는 에피가 별로 없는데, 이 에피만은 한 번 보고 그 속에서 묘사된 광기에 영향을 받아버렸는지 다시 보려는 생각을 하면 좀 걸리더군요. 명희 님의 표현을 슬쩍 빌려오자면 '미친 파란색'이 에피 내내 절절 흐르는데, 정말 아름답고 그로테스크했습니다. 어둠을 이렇게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한 색채로 묘사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처음 볼 때는 몰랐었으니, 어쩌면 이제 와서야 이 에피의 미학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도 모르죠.


  내용설명, 필요없지요?^^


  수사지원부(행동과학부는 멀더가 엑스파일에 들어오기 이전 시점에도 이미 이렇게 바꾸어 불렸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확신은 못하겠습니다) 소속으로 멀더가 엑스파일에 빠져 떠나기 전에 속해 있던 팀 리더인 빌 패터슨이라는 캐릭터, 혹시 'He runs the investigative support unit out of Quantico.'이란 말이 그가 수사지원부 과장이라는 뜻은 아니겠지요...? 엑스파일 처음 만들 때 FBI 쪽 사람들과 만나 자문도 꽤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자기들한테 자문해줬던 사람들을 홀랑 데려다가 벗겨먹은-_-;; 셈이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사실 그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혼자 내내 즐거워하긴 했습니다만.


  예전 직속 상관에 대해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는 멀더는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패터슨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었다는 멀더의 언급은 있지만... 저런 상태로 내내 같이 일하지는 못했을 테고, 아마도 특히 헤어질 때 아주 안 좋게 헤어졌던 모양이죠. KBS 더빙 때는 어떠했는지 기억나지 않고, 예술영화 자막에 따르면 패터슨이 멀더 이야기를 한 번 꺼냈던 것처럼 묘사되는데(패터슨 뒤에 따라다니던 부하 요원의 말입니다), 실제로 그가 한 말은 '술 몇 잔 들어가고 분위기 좋아지면 패터슨은 늘 멀더 요원 얘길 해요. 진짜 천재라고.' 정도의 뜻이었더군요. 패터슨이 멀더를 '훈련'시키고 있었던 것일까요.ㅡㅡa;;


  재미있는 대화는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멀더의 과거 '잘나가던 요원 시절'이 나오는 에피들은 대화들이 찬란해서 정말 보는 즐거움을 주죠. 이번에 이 에피에서 찾아낸 부분은 멀더를 염려한 스키너가 스컬리를 따로 불러 멀더의 상태에 대해 묻는 장면인데, 스컬리가 경찰다운 의리를 지켜 파트너 보호에 집중하자(이 여자 정말 거짓말 못하는군요. 에이프릴 풀 님 말씀이 실감났습니다. 저라도 알아보겠어요.) "멀더가 걱정되나, 스컬리 요원?"하고는 스컬리가 "아뇨."하고 대답하자 "비공식적인(개인적인) 질문이었다면?"하고 다시 물어놓고 스컬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불쑥 "나도 그렇네.(나도 걱정돼)"라고 자답하는 장면이었어요. 이 사람들의 의사소통 방식, 진짜 경이롭지 않습니까^0^


  예전에 처음 봤을 때는 진흙으로 빚은 악마 부조 안에 시체 머리통이 들어 있었다는 내용이 제일 그로테스크하다는 심정이었습니다만, 안 본 사이에 머릿속에서 익숙해졌는지(좀처럼 이 설정이 잊히질 않았거든요)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패터슨이 멀더에게 면도칼을 휘두르는 장면에서 '앗 저 얼굴에 흠집이라도 나면 어쩌라고!!'가 먼저더군요. 9년(3-9시즌까지 7년, 종영 후 2년)여 동안 저도 변한 것이겠지요^^. 패터슨의 부하 요원은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고, 나중에 또 등장시키면 재미있을 듯한 캐릭터였으나, 죽어버려서 안타까웠습니다.


  이 에피를 상당히 충격적으로 기억하고 있었긴 했지만, 의외로 스토리는 꽤 진부했던 것 같아요. 악마의 존재를 그렇게 직접적으로 다루겠다는 것도 요즘 잘 먹히는 선택은 아니고, 또 수사관이 범인으로 드러난다는 것도 그렇게 새로운 것도 아니고요 (전 패터슨이 범인으로 드러난다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만, 놀랍지는 않더군요). 그럼에도 그 젖은 듯한 어둠은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이 에피의 미덕은 그 아름다움인 것 같아요. 에미에서 촬영상을 탔었던가요? 그럴만한 작품이라는 데 백만스물다섯표 던집니다.



  (2005. 01. 31)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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