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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는 절대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산다. 이러다 언제 큰코 다치지..

  어쨌든 최근 병원에 출퇴근하면서 추리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다음은 그 결과물들 첫번째. 할란 코벤의 작품을 연달아 읽게 돼서, 감상도 몰아서 쓴다.



  현재 우리 나라에 출간된 코벤의 작품은 모두 세 편이다. 밀약, 단 한 번의 시선, 마지막 기회. 모두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고, 재미있게도 모두 2권짜리로 출판되었다('단 한 번의 시선'을 제외하면 솔직히 분권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설마 코벤도 20대 여성들의 핸드백을 겨냥한 기획이었나?). 번역자도 모두 다르다. 읽은 순서는 (그냥 집었다) 밀약, 단 한 번의 시선, 마지막 기회였다.


  병원에서 읽을 책으로 코벤을 택한 것은 우선 온라인 서점에 나와 있는 세 편에 대한 소개가 모두 입맛 당기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고, 속도감이 대단하다는 평을 들었던 터라 짧은 시간 내에 집중하고 손에서 뗄 수 있어야 하는 상황에 적합하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다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선택한 게 아니었긴 하지만, 읽고 보니 그런 상황에서 코벤은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코벤의 소설은 현대 미국 스릴러의 선 굵은 전개를 그대로 갖추고 있다. 빠르고, 거침없이 흘러가며, 액션 위주고, 읽고 나면 그대로 내려놓으면 그만이다. 읽을 때 즐겁게 읽고 아무 생각 없이 덮으면 된다. 여흥으로서는 그만이고, 병원 들락거리면서 읽기에 매우 알맞아 그 존재에 감사하기는 했지만, 다른 때 읽었다면 매우 불만족스러웠을 책들이었다.


  최초의 불만은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서 나왔다. 주인공이건 아니건 관계없이, 나는 코벤이 자기 작품의 캐릭터들을 제대로 살려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모두 포함해서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스테레오타입들이고, 나조차 더 혼란스럽게 만들 부연을 해보자면 생생한 고유의 개인으로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들이었다. 밀약의 주인공이 아내와 초등학교 때부터 평생의 사랑을 키워온 얘기는 비현실적이건 아니건 얼마든지 진짜같이 쓸 수 있지만, 코벤의 이야기에서 벡 박사의 사랑은 그냥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당위 기제로서 놓여 있을 뿐이었다. 우린 이렇게나 서로 사랑했어! 믿기지 않아도 사실이야! 하고 주인공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 봤자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 문제는 매우 미묘하고 나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성격의 것이라서, 언제나 불만이라기보다는 찝찝한 기분을 남기는 정도였는데, 그것이 결정적으로 불만이 되는 지점은 매 권 말미에 선사되는 반전의 내용이 폭로되면서였다. 이 세 권에서 코벤이 짜내는 반전의 패턴이란 매번 똑같은데, 기존 캐릭터 중의 하나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독자들 앞에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전은 매번 충격으로만 그려질 뿐, 그 정서적 함의가 전혀 전달되지 않아 한 편 한 편 읽어던질 때마다 캐릭터들이 제대로 취급받지 못했다는(그리고 내 경우는 독자인 나도) 이상한 기분이 증폭됐던 것이다. 아래 다시 쓰겠지만, '마지막 기회'의 경우는 특히 코벤이 반전의 의외성에만 노림수를 두지 않고 무게를 제대로 두어 썼다면 훨씬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아쉬움을 남긴다는 건 아쉬워할 만큼은 좋았던 작품이라는 뜻이니까, 다른 작품들이 번역되어 나온다면 읽어보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이 다음부터는 한 수 접고 바라보게 될 것 같은 기분이다.



나머지는 각 권에 대한 내용입니다.

1. 밀약 (원작 2001)


  '멘톨'에서 출간한 이 책은 교열이 엉망이다. 맞춤법이 교정되지 않은 것은 기본이고, 문장 어색한 것도 전혀 손보지 않은 채 그대로 있으며, 따옴표의 탈자가 심각하고, 등장 인물들이 대화를 주고받을 때 영어 식의 문단나누기를 그대로 옮겨놓아서 누가 말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잦았다. 이 책을 원작으로 영화가 나왔던 것도 아닌데 왜 출간을 서둘러야 했는지(다른 이유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물어보고 싶다.

  '밀약'은 초등학교 때부터 불타는 연애 끝에 결혼하고 6개월 만에 아내를 잃은 벡 박사가 8년 뒤 아내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아내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휘둘리게 되는 이야기다. '밀약'과 '단 한 번의 시선'까지 읽을 때,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만능천사, 암흑가의 보스 역이 두 권에 걸쳐 모두 등장하는 게 사뭇 인상적이었다. 그런 기능적인 인물의 존재는 코벤이 감정의 힘에 이끌려 움직이는 주인공을 그리면서도 정작 캐릭터들은 매우 기능적인 존재로 보았다는 내 의심을 뒷받침해 주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다. 반전까지는 괜찮았으나 그 뒤의 결말이 대충 마무리지은 느낌이었고, 에필로그 때문에 위에 장황하게 쓴 불만이 첫 또아리를 틀었다.



2. 단 한 번의 시선 (원작 2004)


  '비채'에서 모중석 스릴러 클럽 시리즈의 일부로 출간했다. 코벤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듯한데, 세 작품 중에서도 제일 나았다.

  몇몇 등장인물이 '밀약'과 겹치는 것을 보고 코벤이 나름대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마지막 기회'까지 보고 나면,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예의상 얼굴을 내미는 정도의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핵심은 한 갈래의 이야기 - 15년 전의 사진 한 장이 담고 있는 과거는 무엇인가? - 지만, 주인공은 여럿이다. 흥미진진하게 끌어 가고,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물론 반전도 기다리고 있다. 내 아쉬움이라면 역시 캐릭터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는 것 같으면서도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지 못하는 심리 묘사다. 프롤로그를 장식했던 인물이 본편에서는 꼭 필요한 만큼만 등장해서 필요한 역할만 해주고 빠지는 게 꽤 재미있었다.



3. 마지막 기회 (원작 2003)


  삐그덕거리면서도 결혼 생활을 그럭저럭 꾸려 가던 중 '나'는 집 안에서 습격을 받아 중태에 빠진다. 병원에서 깨어나 보니 아내는 죽었고 딸은 사라졌다. 하지만 사건 정황이 뭔가 아귀가 맞지 않고, 유괴범들은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어오지만 나는 기회를 날려버린다..

  '마지막 기회'는 실망스러웠다고 생각하는 '밀약'보다는 '단 한 번의 시선' 쪽에 가까운 작품이지만, 구성면에서는 '밀약'과 더 비슷하다. 단선적인 캐릭터, 단 한 가지의 목표만을 위해 움직이는 주인공, 사방에서 그를 노리는 악역들, 결말에서의 반전 폭로, 배신감 주는 에필로그.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기회'는 반전을 충격적으로 만드려고 너무 애쓰지 않았다면 더 정서적인 울림이 큰 작품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부성애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인 만큼 반전과 그에 이어진 결말에서도 그 부분을 제대로 다루었어야 하는 건데, 아무래도 코벤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라는 걸 너무 안이하게 취급한다. 결말에 대한 불만은 '마지막 기회'에 대한 것이 제일 크다.


다시 접습니다



  각 권에 대해 막연하게 쓴 건 아무래도 내가 느낀 아쉬움이 반전을 보고 형성된 것이라 그 내용을 다루지 않으려면 달리 방법이 없어서였다. 이 문제는 정말 해결점이 안보인다.



  (2006. 08. 18)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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