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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다음 학기 수업 때문에 '군주론'을 읽었습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정치사상서가 그 이전까지의 책과 다른 점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한다'에 집중했다는 점에 있죠. 물론 수단은 목적에 봉사하고, 여기서의 목적은 '군주의 권력 유지와 확대'에 있습니다. (그 권력을 갖고 어디에 쓸 것이냐는 군주에게 달렸습니다만,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써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는 것으로 보아 마키아벨리는 이 책에서는 적어도 '모두가 안전하게 ㅡ 행복하게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ㅡ 살 수 있는 나라' 정도를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군주에게 돌아가는 것은 명성과 권력, 그리고 그에 따르는 부와 안전이겠지요.)


  그의 주장의 요지는, 사람은 이상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페어 플레이를 하다가는 권력 근처에도 못 가보고 몰락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키케로의 구분을 빌려 세상에 존재하는 싸움의 종류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법률에 의거하는 싸움이고 다른 하나는 힘에 의거한 싸움인데, 첫 번째 방법은 인간의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짐승들의 것이랍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서 첫 번째 방식을 따른 싸움만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언제든 두 번째 방식으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법정 영화인 이 영화에서도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을 갖고 있고 그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기적인 악의 화신으로 설정된 악덕 변호사(라기보다는 기실 브로커나 스토커에 가깝습니다만^^)는 당연히 짐승들의 방식을 택하고, 반대편에 서 있는 변호사 ㅡ 준비한 것은 논리와 이상과 열정뿐인 ㅡ 는 그런 적에 맞서 과연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를 고민합니다. 법정에서의 승리가 가져올 사회적인 파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때, 그것을 이끌어내기 위해 가야 하는 길이 더럽다면 과연 그 길을 가야만 하는가, 의 문제가 되겠지요. 과연 그는 흔들릴까요?


  영화를 보시면 이 질문이 사실 두 번 제기된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자기의 손에 패를 쥐고 게임을 합니다. 목표는 승리와 그 승리가 이끌어낼 부산물입니다. 누가 이길 수 있을까요? 강한 자가 늘 이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개는 강한 자가 이기기 쉽습니다. 그리고 모두를 배려하기 위해 설정된 규칙에 따르는 사람보다는 그 규칙을 따르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 더 강합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게임은 두 번 반복됩니다.


  이 영화는 영미법 계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을 배심원 제도가 지닌 맹점을 다룬 법정 영화이자 스릴러입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이 싸움은 법정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 뻔한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꽤 흥미롭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늘 하는 잡담.


  1. 존 큐색/더스틴 호프만/진 해크먼/레이첼 와이즈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극도로 피했는데, 잘한 짓이었습니다. 이 영화 보실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신 분들은 영화 선전용 전단지도 보지 말고 가세요^^ 좀 역설적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역시 아무 것도 모르고 가는 게 좋군요.-_-;;


  2. 큐색은 이 영화를 Identity 찍고 나서 찍은 모양인데, 더 젊어진 것 같습니다-0- Identity나 Grosse Pointe Blank에서는 무언가 좀 부자연스럽게 표정을 지을 때가 있었는데 그건 연기였던가 봅니다. 압도적이거나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인상적인 (하도 키가 커서 그런지도 모르지만요) 모습이어서 좋았습니다. 하긴 역이 그렇군요.


  3. 더스틴 호프만 아저씨, 나이를 잡수셨습니다.. 당연한 일인데,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익숙하고, 권위적이고, 열정적이고, 사려깊고, 고뇌하고, 여전히 멋있었습니다.


  4. 진 해크먼, ^^d


  5. 전 레이첼 와이즈가 참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매스컴을 잘 타는 것 같지는 않은데, 보고 있으면 정말 예뻐요. '미이라'로 알려져서 그렇지, 상당히 다양한 역을 소화하더군요. 편안하고, 아름답고요. 큐색이랑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6. 딜런 맥더못이 나와서 5분만에 죽습니다-0-;; 제 가슴이 아프더군요. 큰 화면에서 보기는 처음인 듯 싶은데.. The Practice는 이미 끝났나요? 어떻게 끝났는지 아시는 분 계세요?


  7. 재판정 안에서 벌어지는 일보다 재판정 뒤와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 주가 되다 보니, 그리고 피고 측 변호팀에서 변호사보다 배심원을 담당한 인물이 더 중요한 존재로 나오다 보니 정작 defending lawyer가 조연도 그런 조연이 없더군요. 그러나, 물론, 그런 역은 '그럼에도' 제 역할을 해줄 사람이 맡아야 하는 법. 엑스맨에서 신판 맥카시 상원의원을 맡았던 아저씨, 깐깐한 역에는 전문인데 이번에도 역시 변호사 역을 맡으셨습니다. 전 왠지 이 분 봐서 반갑더만요.


  8. 잘려나간 스토리라인이 두엇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연 여자 중 하나를 조금씩 오래 비춰주는데다, 초반에 중요한 듯 나온 웬들 로(더스틴 호프만)의 조수 역할을 맡은 사람이 뒤로 가면서 그냥 빠져버리더군요. bluffing일 수도 있지만요.


  9. 엔딩 크레딧 음악이 좀 이해가 안갑니다. 너무 서정적이었어요.


  10. 나와서, 이 영화 전단지를 찬찬히 훑어보다 그제서야 알았는데, 전단지에 '존 그리샴의 원작'만 커다랗게 박혀있고, 주연 배우 넷에 대한 간단한 소개도 있는데 감독 이름은 없더군요. 그러고 보니 저도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모릅니다. 스타 파워라는 게 이런 것이로군요. (새삼스럽게-_-;;)



  (2004. 02. 04)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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