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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덕사, 1992)



  책 서문에는 폴레트의 글이 붙어 있습니다. 그 짧은 머리말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바늘 구멍>이 나온 직후인 1976년에 쓰여졌으며, 나의 잘 안 팔린 소설들 가운데선 가장 낫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전 폴레트의 다른 작품으로는 '바늘 구멍'밖에 보지 못했지만, '종이돈'이 잘 짜여진 소설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동의합니다.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내용은 런던의 정,재계와 한 석간 신문사를 중심으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다룹니다.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일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발표가 기다리고 있고, 그 발표를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있고, 어떻게든 괜찮은 기사를 뽑아내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으려는 신문이 있습니다.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은 서로 부지런히 정보를 얻어내고 교환하며 일을 저지르고, 삶을 정리하려는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 고리가 되고요. 마지막에는 그 모든 정보가 신문사로 모여들지만, 변화된 상황에 따라 그 정보는 제자리를 잃어버리고 맴돕니다. 얼핏 보기에는 좌충우돌하던 모든 요소들이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것들은 또다른 변수가 되겠죠. 소설은 그런 미래를 열어놓고 끝납니다.


  권선징악적이지 않은 결말이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재미를 줄이고, 센세이셔널하지 않은 묘사가 그 자리를 메우는 소설입니다. 등장 인물이 많고,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입니다. 하루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내린 각 개인의 판단이 모두 어우러져 하나의 큰 그림을 형성하는 그런 유기적인 전개가 복잡하게 그려지지는 않지만, 모두가 맞물려 돌아가며 큰 얼개를 짜나가는 것만큼은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이를테면, 대규모 노상 강도는 한 등장 인물의 행동으로 계획에 없는 사상자가 생기면서 경찰에게 노출되었고, 덕분에 한 기업가는 당장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 둘이 손잡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아 평판이 중요한 기업인에게는 이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현재의 사건은 곧 미래의 복선이 되고, 그건 다시 결말을 열어놓습니다. 흥미로운 구조였어요.


  인물 하나 하나는 시간과 공을 들여 창조되었고, 그런 만큼 그들 각자가 지니는 배경과 상황, 행동의 배경에 뜬금없는 면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계된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이 날을 기점으로 크게 전환하게 되고, 정,재계 판도에 변화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날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그저 그런 하루였을 뿐입니다. 그런 점이 좋았어요. 요약만으로는 진부해 보이는 스토리지만 서술 과정이 유기적으로 짜여져 있어서 실제로는 설득력 있게 전개됩니다.


  인간은 관계를 맺고 산다,는 진부한 명제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진작 절판된 책인 것 같아 아쉽지만 추천해봅니다.



  (2004. 08. 02)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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