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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해서 집에 있게 된 책인지도 모르고, 얼마나 오래 집에 있었는지도 모르는 책이 몇 권 있다. '꼬마신관 타론'도 그 중 하나인데, 언젠가부터 그 책을 꽤 좋아해서 내 책꽂이에 (내가 책을 좀 밝히는데다 까탈스럽게 다루다보니;; 집 책 중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소유권을 분명히 하는 편이다) 꽂아놓고 그 동안 가끔 때때로 다시 읽어줬었다. 원제가 'The Blue Hawk(당연히 원제를 더 좋아한다)'이다.


  영국에서 아이들을 위한 판타지에 주는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는데, 스토리가 과연 우화적... 아니 신화적이다. 기원전의 이집트-분위기는 고왕국 같다-를 지리적/지역적/문화적으로 닮았으되 섬기는 신이 좀 다른 일종의 alternative universe에서, 어렸을 때부터 신을 섬기는 신관으로 뽑혀 신전에서만 자라온 타론이라는 아무 힘 없는 소년 신관이 아차 하는 사이에 신관 집단과 왕 사이에서 벌어지는 주도권 다툼에 휘말려들고, 그 와중에 성장통과 형이상학적&윤리적 성찰을 함께 겪는다는 내용이다. (별 내용 아닌데 엄청 어렵게 썼다;;;;)


  무엇보다도 그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꿈결처럼 떠도는, 약간은 현실과 유리된 듯한 (단지 판타지라서가 아니다). 가끔은 부유하는 듯하고 가끔은 냉철한 시각을 택하는, 아아 지금 내 지쳐빠진 뇌로는 정의가 안 되는 분위기. 책 표지 색 탓도 있겠지만 그래서 이 소설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색감이다. 붉은빛과 약간의 보랏빛이 진한 듯 연한 듯 섞인 노을의 강한 빛깔, 딱 그 색이다. 원색보다는 파스텔톤에 더 가깝다. 내 주위의 공간을 꽉 채우듯 다가와 어느새 나마저도 물들여버리는 색.


  설명하려 하면 할수록 그 선명하면서도 모호한 인상이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것 같다. 참 어렵다.


  주제는 놀랍게도 상당히 무겁다. 책을 아우르는 주제는 옳고 그름과 취사선택의 문제 & 정치적 선택의 문제 & 과하면 좋지 않다는 중도의 논리지만, 책 뒤로 가면 신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종교의 문제의 한 면도 비교적 예리하게 도려내어 읽는 사람 앞에 펼쳐준다. 애들 책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는데, 솔직히 원문을 접해보기 전까지는 딱히 애들만 보라고 쓴 책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원문의 단어가 너무 애들용이어서 혹시 revised edition(단어를 쉽게 다시 고쳐쓴 버전을 뭐라고 하더라??)인가 생각했을 정도다.


  작가는 Peter Dickinson. 몇 달 전에야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SF계에서 유명한 작가라고 한다. 꽤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던 사람인 모양이다. 'The Blue Hawk'만 봐도 확실히 그렇다. 이 책이 워낙 안 유명한 책이라 - 상 탔다고 다 유명한 건 아니니까 - 작가도 그러려니 하고 생각해오던;; 참이라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었다.


  '내 어린 시절의 책'이랄 정도로 좋아하고 매료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 다시 잡으면 좋고 흐뭇하고, 평생 곁에 두고 보물처럼 쓰다듬어주고 예뻐해주고 싶은 책이다. 다시 출판될 리 없을 것이라 추천할 수가 없어 아쉽다. :)



  (2003. 12. 01)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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