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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가 무차별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원래 혼자 보려고 쓴 글이어서 그럽니다.)





1.  EQ의 하드보일드. 등장인물들 말투가 그간의 퀸답지 않게 거칠어서 조금 놀랐다만, ghostwritten 중에는 비슷한 것들이 있으니 그런가보다 하였다. EQ의 경찰소설이라니 생각보다 많이 재미있겠다 생각하고 시작했다.




2.  다 읽고 난 감상은, in short, 좋은 작품이로군,임. 이런 게 엘러리가 등장하지 않아서 묻혀야 한다니 안타깝다.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캐릭터들도 입체적이고, 내용도 재미있다. 현실적이라고는 못하겠으나 애초에 현실적인 플롯이 퀸의 장점은 아니다. (나는 상관 안 하는 부분.^^) 영어도 쉽고, 재미 만점이다. 무엇보다 즐거웠다.

...고 해도 되겠지.


근데, 경찰소설이라고 소개를 들었는데, 경찰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경찰 취재를 많이 했다고 하더라만, 아마도 원하는 식의 내용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쓰고 싶었던 정도인 것 같아. 전혀 경찰소설 같지는 않다. 도입부만 그럴 뿐, 늦어도 3장 정도서부터는 통상적인 의미의 경찰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식으로 장르의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좋은 평을 받기가 힘들지만, 역시나 나는 신경 안 쓰는 부분.^-^ 그래도 워낙 하이브리드라서, 그에 개의치 않는 나야 좋아하지만 sub-genre별로도 호불호가 비교적 명확한 경향을 띠는 (특히 우리나라) 추리소설 팬들 사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내 경우에는 하이브리드라서 좀 놀랐고 그 다음에는 아주 마음에 들었거든. 장르를 뒤섞는 재주야말로 제대로 하면 아주 재미있는 거니까.




3.  「Cop Out」의 특징 중 하나는, 읽기가 쉽다는 점. 퀸의 작품이 정말 맞나 싶은 요소들 중 하나다. 다른 것들 읽을 때처럼 (이를테면 국명 시리즈) 어렵지가 않아. 그리고 독자가 있으리라 예상할 만한 반전은 굳이 시간을 들여 묘사하지 않고 그 다음 씬으로 바로 건너뛴다. 따라서 실제로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지만, 경제적인 셈이다. 이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은 EQ가 독자의 마인드를 겸비하고 작가의 마인드를 끈 채로 자기 작품을 바라볼 능력이 있었거나, 아니면 편집자가 좋았다는 뜻이리라.


이 작품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의 EQ 팬페이지에서 찾았다. 맨프레드 리가 이 작품이 ghostwritten이 아니라고 강변했다는 얘기랑 이 작품에서 프레드릭 더네이의 터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혹자의 평이랑 조합해 보면, 결국 이 작품은 Lee의 (더 많은) 노력의 산물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내가 받은 인상이 정확하다면 이건 글쟁이로 독자적으로 서고 싶었던 리의 노력의 결과물이었던 듯(다만 이건 팔할은 추측임).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 작품은 통상의 EQ라기에는 매우 이질적이거든. 정말 다르다.


하지만 다른 대로 정말 좋다. 마지막에 갑자기 환희의 정경을 묘사하는 거라든가, 그 부분에서 갑자기 문장이 현재형으로 바뀌는 것도 깨알같은 터치다. EQ의 유머감각은 감추어져 있지만, 이야기 진술을 건너뛰는 방식이 워낙 뛰어나서 그 정도는 넘어갈 수 있다^^. 마음에 들었다.


두 사람이라는 특성이 있기는 하지만, EQ가 이렇게 저변이 풍부한 작가인 줄 미처 알지 못했다.


Manfy의 역량을 좀 더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이게 almost exclusively Lee-written이라면, EQ의 그 quirky, cocky humour는 (슬프게도) 두 사람 다의 개성이 아니라 Fred의 특성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4.  EQ의 이런 다양한 면모를 보다 보면 문득 이걸 나밖에는 모르고 있나 싶어 아쉬운 마음이 든다 - 설마 아니겠지. Christie는 워낙 다작이기도 해서 그 다양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EQ의 경우에는 - 적어도 우리말을 쓰는 추리소설 팬덤 내에서는 - 없단 말이야. 나로서는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하도 이야기가 드물어서 예전에는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있지도 않은 것을 내가 보고 있나 싶었는데, 「Cop Out」까지 보고 나니 모종의 확신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거다. 늘 거기 있었다. 미국에서 본격물의 전통이 코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라져 버려서 EQ 이야기를 많이 안 하는 것이 아쉽다.




5는 뱀발: 해서 내친 김에 힘을 내어 「The Finishing Stroke」까지 도전하려고 펼쳤다가는 완전히 좌절했다.


내가 이 소설에 대해 특별한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면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이 소설이 두 형제의 협업으로 3기의 마지막이라는 것. 이후 리는 긴 슬럼프에 들어간다. 둘째, 「Inspector Queen's Own Case」 바로 다음 작품이라는 것.


그러나 지금 목차를 통해 살펴보고 '현재'의 EQ 파트 첫 두어 장을 읽어보니, 이 소설은 EQ 두 사람의 매우 개인적인 memoir, 아니면 뒤를 돌아보는 의미가 담겨 있는 작품 같다. 이 책의 이야기는 세 시기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 1905년, 1929년, 1957년이다. 이중 1957년이 '현재'이고, 1905년은 두 형제가 태어난 해, 1929년은 이들의 데뷔작이 출간된 해이다. 맙소사. 게다가 엘러리는 (또) 자기가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엘러리가 예전에 알던 사람은 이미 죽은 지가 20년이 되었다. 맙소사. 이런 개인적인 작품은 설사 작품이 그렇지 않다 해도 나를 대단히 센티멘탈하게 만든단 말이다. 게다가 이 전작에서는 퀸 경감에게 짝을 찾아주었다! 이 사람들 무엇을 준비했단 말인가!!


여튼 그래서, 용기있게 읽어버리려고 꺼내왔는데, 순식간에 기가 꺾여버렸다. 이런 'Adieu'를 온몸으로 외치는 작품에는 - 심지어 제목에까지 'finish'가 들어간다 - 손내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Hoch는 「Face to Face」가 퀸이 직접 쓴 작품이라고 확신하고 있군. 그리고 그가 말한 대로 Lee가 좀더 serious fiction을 쓰고 싶어했다면, 「Cop Out」이 좀더 Lee style이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상당히 뛰어난 작품이다.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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