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간단하게 보고 간명하게 정리해낼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부러움을 느낀다. 그건 능력 이전에 기질의 문제인 것 같다. 문제의 핵심을 간파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결론으로 그렇게 단호하게 질러갈 수 있는 걸 보면 부러울 뿐이다.

  그러나 그런 목격담은 나를 스치고 지나갈 뿐, 나를 변화하게 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오래 자취를 찾아오던 분의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들었다기보다는 새 소식이 없다는 걸 확인한 건데, 꽤 큰 대가를 치르신 것 같다. 어디나 그렇듯이 학계는 발 들여놓기가 쉽지 않은 곳인데, 이분은 자기 신념으로 사표를 던졌었다. 그게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2년 전의 책에서, 그 뒤로 여전히 아무 데도 적을 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가장 최근 소식이지만, 그게 가장 최근 소식이라는 건 다시 말해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 성 싶지 않다는 뜻이 된다.

  학교에 적을 두지 못하는 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나는 거의 알지 못한다. 우리 나라에서 흔히 보게 되는 모습과 같은지 다른지도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내 느낌으로 그분은 보장된 자리를 박차고 나간 거였다. 그럴 수 있는 단호함도 타고난 성격의 발로라는 생각을 자주 하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불가능한 정도로 강한 신념이기에 무언가 복잡하게 뒤섞인 심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정말 근황을 알고 싶다면 알 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이분을 알 만한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닫고 내 스스로의 개념없음에 이마를 탁 쳤다. 하지만 가는 길 도중에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어쨌든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내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를 아실 날이 오기를. 그리고 그게 의미가 있는 감사가 되기를. 너무나도 감사드리고 있으니 그 힘이 조금이나마 전해졌다면 좋은 일이 있으리라 믿고 싶었는데 좋은 일은커녕 악재가 터졌으니 내가 무언가를 더 기원한다는 건 핀트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것 같지. 그러니 다만 그렇게만 빌 뿐이다.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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