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이번에 이 사람 이름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존 샤이반이었군요.



  The Pine Bluff Variant는 샤이반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에피소드였죠. 엑스파일을 통틀어서도 단독에피소드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각본이 힘이 넘쳤고, 그 각본을 너무나 훌륭하게 연출해냈고, 음악도 호흡이 딱딱 맞아떨어졌고... 전 이 작품을 KBS 본방으로 처음 보았는데, 클라이막스쯤 가서는 멀더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저 인간 저렇게 죽어...? 하고 가슴을 졸이며 보았습죠. 몰입의 힘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엑스파일 코멘터리는 항상 재미있는데, 아마도 이건 제가 촬영 뒷이야기스러운 trivia들에 약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사소하고 별 의미 없는 사실들을 얻어듣는 게 재미있어요. 그리고 엑스파일 제작진 중에도 저같은 사람이 많은지, 보면 사소하고 (귀여운) 장치들이 많더군요. 그리고 샤이반이 작가이다 보니 하나의 각본이 완성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도 좀 들려주고, 제작자이다 보니 보우만의 연출이나 로케이션 헌팅에 대한 이야기들도 재미가 쏠쏠합니다.



  샤이반은 처음부터 스릴러 장르를 해보고 싶었다는군요. 몇 년 전부터 '멀더의 잠복근무'를 자기 메모판에 써붙여 놓고 있었는데, 실제로 할 기회가 주어졌던 건 몇 년이 지나서인 5시즌이었다고 합니다 (샤이반은 3시즌부터 합류했습니다). 샤이반 말로는 5시즌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멀더와 스컬리 간에 불신의 요소가 끼어들면서 두 사람 사이가 벌어졌던 터라 스컬리가 멀더를 믿지 못하는 상태로 흘러가는 이 에피소드의 초반부가 그럴싸하게 다가왔지 않느냐는 거지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글 쓸 때 전체적인 스타일은 '히트' 같은 영화를 많이 참고했다고 하고요. 연방검사로 나오는 캐릭터의 이름이 리머스인데 요게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의 주인공 이름이지요. 아는 작품인데 연결시켜 볼 생각은 못했었습니다-_-a;; 스펠링이 Leamas네요. 저는 Rimus쯤 되지 않나 싶었거든요. 이렇게 써놓으니 누구 이름하고 비슷하네욤.; 그 외에도 몇 작품을 더 언급하고, 다른 캐릭터 이름도 어디서 따왔다고 하던데 제가 까먹었습니다.



  제목인 파인 블러프 변종은 아칸사 주에 있는 지역 이름으로, 60년대 후반까지 이곳에 미국 국립 생화학연구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에피소드에서 문제가 되는 연쇄상구균의 변종이 미국 국내 생산품이라는 플롯 전개가 이곳의 존재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목도 그렇게 붙인 거고요.



  이 에피도 로케이션 헌팅이 좋았던 에피라는데, 극중에 나오는 은행은 실제 은행이었답니다. 촬영 당시에는 문을 닫은 상태였지만 한때는 수억 달러를 취급했던 지점이라고, 있었던 그대로 촬영했다고 하더군요. 금고도 그 당시 은행 금고였다고요. 보우만이 여기서 롱샷을 정말 대단하게 찍었다고 샤이반 칭찬이 늘어지더군요^^. 테러리스트들의 본거지가 되는 곳도 운좋게 적재적소를 찾았는데, 거기서 온실용 불투명 비닐 천막이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그걸 그대로 차용하고, 그 외에도 군데군데 차단과 은폐의 상징처럼 그 비닐을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맨 마지막에 문제의 은행을 폐쇄하는 씬에도 옆에 엄청 큰 불투명 비닐 차단막이 등장하고, 테러리스트들이 은행 강도를 상의하는 (멀더에게 가면이 건네지는) 장면에도 멀더 뒤로 같은 비닐이 벽 대신 붙어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다 거기서 착안한 거라는군요. 찍기 시작할 당시에는 그런 연출을 하는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은 상태였대요.



  은행 강도 씬은 샤이반은 '히트'를 많이 떠올리고 썼다네요. 가면 때문에 우습게 보일까봐 스태프들은 걱정이 많았지만 찍고 보니 근사했다고요. 자긴 스킨헤드 캐릭터가 쓴 해골 가면이 좋았답니다. 멀더에겐 원래 늑대인간 가면이 주어질 예정이었는데 데이빗 듀코브니가 어렸을 때부터 드라큘라 가면이 쓰고 싶었다고 자기한테 전화를 해와 대신 그걸 쓰면 안 되겠느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답니다.



  극장도 뱅쿠버에 있는 실제 극장이랍니다. 여기 매표원으로 나오는 배우 이름이 케이트 브래드우드인데요, 넵 바로 톰 브래드우드 씨의 딸이랍니다. 시켜보니 잘해서 썼다고요.^^ 인터넷의 캡쳐 사이트들을 뒤져봤는데 이 아가씨 캡쳐를 찾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세요. 닮았어요. 그리고 멀더가 테러리스트들과의 연락을 위해 사용한 모텔도 뱅쿠버 인근의 모텔인데, 뱅쿠버에 미국 모텔 분위기가 나는 모텔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엑스파일 촬영차 여러 번 사용했던 곳이라, 눈밝은 사람들은 알아봤을지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제 눈은 밝지 않았습니다^^)



5x18 The Pine Bluff Variant

ⓒ 20th Century Fox & 1013 Production



  위 사진은 티져의 공원 매복 장면 중 하나인데요, 멀더가 헤일리가 탄 차를 보내주고 딴 방향으로 뛰어가는 걸 스컬리가 목격하는 대목입니다. 뒷모습만 나왔는데 대역이었답니다. 눈치챈 사람들 별로 없었을 거라고, 어색하지 않게 잘 찍히지 않았느냐고 하네요. (역시 전 눈이 밝지 않다는...^^;;) 근데 스티브 키지악은 듀코브니와 허우대가 정말 닮았어요; 참, 이 공원은 워싱턴의 공원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는 뱅쿠버이고, 워싱턴에 벚꽃이 많기 때문에 벚꽃 많은 공원으로 골라 찍고, 국회의사당은 CG로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근사하게 됐다고 자랑스러워하던데 전 뛰는 멀더 보느라 그 장면 뒤에 배경으로 국회의사당이 지나가는지도 몰랐던OTL...;;



  에피소드 하나를 촬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8일이랍니다. 그래야 방송 스케쥴을 맞출 수 있다네요. 그런 환경에서 영화처럼 다양한 시도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엑스파일은 그렇게 해왔다고, 제작진이 정말 대단한 거라고 하면서, 이 에피소드에도 다양한 촬영 방식을 썼다고 하더군요. 스테디캠부터 에.. 그... 용어를 까먹었는데 카메라길을 설치하고 그걸 따라 찍는 걸 뭐라고 하죠? 멀더의 death march 씬에서 그 기법을 썼는데 아마 그때까지 엑스파일에서 같은 기법을 쓴 것 중 가장 긴 길이였을 거라고 하더군요. 이 부분은 저는 재밌게 듣긴 해도 뭔 말인지 잘 몰라서..(__)a;;



  우야든둥 항상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완성된 각본을 가지고 작업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한 에피소드 내에서 이 장면 찍는 동안 다른 장면 대본 쓰고 그런 일은 다반사라고 합니다. 이 에피소드도 멀더 손가락 부러뜨리는 장면을 찍을 때만 해도 그게 나중에 그렇게 중요해지리라는 생각은 못한 채로 쓰고 찍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작가진에서 '스컬리가 스물 여섯 군데의 은행강도 CCTV만 보고 어떻게 멀더를 알아보지'를 놓고 골머리를 싸매던 중 멀더의 손가락에 댄 부목을 이용하면 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하더군요. 고문씬을 쓸 때 작가진에선 어느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게 가장 효과가 크겠느냐는 걸 놓고 일장토론을 벌였답니다. 그런 취향이라면 엑스파일 작가 스태프 되면 재미가 좋을 거라네요. 자기 얘기 아닌가 싶었어요^o^;;



  은행강도 후 브레머가 돈을 태우는 걸 보고 멀더가 비로소 은행털이의 진상을 깨닫고, 헤일리가 브레머의 정체를 폭로하려다 브레머에게 반격당해 멀더랑 쌍으로 배신자로 몰리는 대목이 가장 쓰기 힘들었다고 하는군요. 워낙 반전에 반전으로 꼬여 있으니까요. 드라마의 대본은 팀웍이기 때문에, 쓰면서 여기저기서 피드백을 많이 받는데, 그게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 장면(멀더의 death march라고 자기들끼리 불렀다던)도, 앞에 언급한 대로 주인공이 죽을 위기에 몰리는 씬이라는 점 때문에 쓰기도 힘들고 찍기도 어려운 대목이었다고 - 어쨌든 시청자들은 이 캐릭터가 다음주에 돌아온다는 걸 아니까요 -, 그래도 자기는 멀더가 차 타고 도망가는 것까지 찍고 싶었지만 43분이라는 러닝타임 제한 때문에 못했다고, 이게 영화였다면 집어넣을 수 있었을 거라고 얘기하네요.



  카터는 항상 '현실처럼 보이는 게 가장 무섭다'고 강조한다고 합니다. 자기도 동의한다네요. 그래서 공포 효과나 충격 효과도 과도하지 않게, 실제처럼 찍으려고 애쓰는데 때로는 그게 쉽지 않다고, 극장에 두 아이녀석들이 숨어들어갔다가 살이 녹아내린 시체들을 발견하는 장면도 어떻게 하면 공포영화 클리셰처럼 찍지 않고 현실감 있게 가는가가 관건이었다고 합니다. 그 뒤 스컬리와 부국장이 시체들 사이를 걷는 것도 찍기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건 다른 것보다도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긴 보여줘야 하는데 (밀레니엄에서 다린 모건이 엄청 깐) 방송심의위원회를 거스르지 않도록 찍어야 해서 어려웠다는군요. 하지만 엑스파일에는 드라마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무적의 스포트라이트급 손전등 조명(뭔가 부르는 말이 있었는데 제가 잘 몰라서...;;)이 있으니까, 그걸 가지고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줄 수 있다고 합니다. 방송을 위한 트릭이라는 투로 들렸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다 보니 관객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제대로 했는가가 신경이 쓰였다는데, 그래도 모든 설명을 다 하지는 않고 남겨두는 것이 엑스파일다운 거라는 발언을 하시네요. 이 @*&#$^$ 같은...^o^;; 엑스파일은 다양한 장르를 모두 포괄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그런 면에서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해왔고 5시즌에서도 시청자들은 엑스파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걱정했을지 모르지만 제작진이 그런 시도를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엑스파일이 이만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아니겠느냐고 하는군요. 이건 제가 살짝 왜곡해서 전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이해한 바로는 그랬어요. 그리고 이 에피소드도 바로 그런 면에서 의미있었고, 특히 배우들이 새로운 연기를 시도해볼 수 있었기 때문에 좋아했다더군요. 멀더가 고문당하는 씬이라던가요. 아참, Pepsi challenge는 듀코브니의 애드립이랍니다. 마지막에 스컬리가 폭발하는 대목도 자긴 좋아한다는군요. 스컬리가 워낙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캐릭터라 언성을 높이는 신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나오면 나올 때마다 좋다고요. 아 그리고 질리언이 과학적인 대사들을 읊는 데 능하다는 칭찬을 합니다.



  이 에피가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았던 건 높은 완성도 때문이었는데, 코멘터리는 그 높은 완성도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졌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군요. 그런 의미에서 엑스파일 제작진들은 다 천재들인 것 같습니다. 샤이반은 사실 초자연 에피소드에선 그다지 잘하지 못해 팬덤에서 종종 까였었는데요, 자기 장기를 숨겨놓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근거는 없는 추측이지만 8-9시즌에서 그의 비중이 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끔 했었지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능한 것 같아요. 수퍼내추럴 팀에서 큰 플롯 전개를 잡아줄 사람으로 데려갔다는 것도 그렇고, 지금 찾아보니 현재 우리나라 케이블에서 방송 시작한 The Legend of the Seeker에도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네요. 이것도 스케일 큰 이야기를 소소한 레벨에서 하고 있지요. 이 코멘터리에서도 샤이반은 5시즌 전체에서 이 에피소드가 차지하는 위치와, 멀더와 스컬리의 관계의 변화가 이 에피소드의 배경을 까는 데 어느 정도로 작용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뉴 스파르탄스라는 이 테러리스트 그룹이 멀더에게 접촉해 오게 된 계기가 멀더가 MIT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반정부 발언을 대놓고 했기 때문이라는 발언이 에피 속에서 나오는데, 샤이반은 (많은 팬들이 추측한 바대로) 그게 Patient X의 컨퍼런스가 아니겠느냐더군요.^^ 콕 집어서 그게 그거였다,라고 하진 않습니다만. 사실 그래 주는 게 팬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제작진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해석을 제시해버리면 남는 게 없으니까요.



  전 다른 무엇보다도 멀더가 죽을 위기에 몰리는 걸 그렇게 근사하게, 믿을 만하게 연출했다는 점에서 이 에피를 오래 기억하고 높이 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텔링하고요. 하지만 제작진은 좀 더 많은 걸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 그 중 하나는 이 에피 다음다음이 바로 5시즌 피날레인 The End(다이애나 파울리의 첫등장)이라는 점에서 그를 위한 배경을 까는 의미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아요. 멀더와 스컬리의 신뢰가 벌어지는 걸 차근차근 깐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5시즌 전체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기억하려면 조금 더 공부(쿨럭;)해야겠네요.



  마지막. 샤이반에 따르면 이 에피의 주제는 중반에 헤일리의 대사로 나오는 Lies within Lies랍니다.


Posted by Iphinoe

  웨스트윙 4시즌을 본격적으로 보았고, 2-3시즌은 드문드문 보고, 5-6시즌은 에피소드 가이드로 채우고 7시즌은 존 스펜서가 출연했던 때까지만 보고 1시즌을 매우 느리게 보고 있는 나로서는 모든 시즌을 다 뒤섞어 캐릭터에 대한 인상을 형성했던 것 같다.


  여기 희생자가 된 게 아무래도 샘 시본이지 싶은 것이, 나는 이 친구가 퇴장하던 시즌부터 제대로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0-; 따라서 나는 윌 베일리에 대해 상당히 빠르게 애정을 형성했고 (워낙이 아무때나 유머를 던져대는 geek스러운 똑똑한 캐릭터에 약하지 - 누구 떠오르시남요^ㅇ^), 그 캐릭터가 6시즌에서 맡은 역할에 많이 아쉬워했다. 반대로 샘 시본은 내게는 떠날 예정이었던 사람으로서 그 이전 시즌까지도 다소는 그렇게 돌아보게 된 감이 있다. 물론 나도 변명거리는 있다. 샘의 퇴장은 굉장히 길게 그려졌었다!! 그리고 웨스트윙은 이 시즌 저 시즌을 섞어서 섭렵한 탓에 내가 스포일러에 굉장히 관대했고, 따라서 세트 뒷이야기들도 이것저것 주워들었었다. 그 와중에 롭 로우가 떠나고 싶어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 그 정보가 이 드라마에서의 샘 캐릭터의 원래 비중과 퇴장 사유에 대해서까지 완벽한 정리를 한 탓에 1-3시즌의 샘 시본까지 그 아우라 아래에서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난 오랫동안 내가 샘 시본에 대해서는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캐릭터 프로필을 이것저것 찾아보다 샘에 대해 내가 사전에 주워들은 정보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샘이 이상주의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우 정치적인 사람이라는 얘기였다. 후자를 먼저 들었는데 공교롭게도 파일럿의 샘의 첫 대사가 후자에 가까웠던 터라 나는 후자를 앞서 기억했다. 그래서 내가 편견을 갖고 시본을 보고 있나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입장이고 (그리고 아마도 그게 사실일 것이다) 해서 샘에 대해서는 별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편이었다. 게다가 1시즌 전반부의 샘은 매우 열성적인 이상주의자였으니까, 샘의 그런 면모를 사랑하는 팬들의 존재에 대해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했다.


  사실 저렇게 말하면 반쯤 거짓말이다. 판단하지 않았냐 하면 실제로는 판단을 했으니까. 전에도 얘기했듯이 드라마 뒷사정에 대해 알게 되면 그게 픽션적 진실하고 뒤섞이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게 잘하는 짓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일단 알게 되면 피해갈 수가 없는 것이다. 두 층위의 현실이 분리가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해서 나는 1-3시즌에서 노골적으로 수없이 변주되는 '샘 이상주의자'의 캐릭터플레이를 반쯤은 유리되어 뜨악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샘 시본이 싫다는 건 아니고 몰입이 되지 않았다는 정도인데, 주로 뜨악함은 샘의 그 이상주의가 너무도 고상하게 그려질 때 나왔다.


  요새 1시즌 14에피 Take the Sabbath Day를 하고 있다. 이 에피는 사형제도와 권력분립의 주제를 엮어서 다룬다. 연방대법원에서 연방법원을 통해 올라온 사형수의 상고 요청을 기각하자, 이 사형수의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들 중의 하나가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샘에게 금요일 밤에 급히 연락을 취해서는 대통령을 설득해 달라고 요청한다. 연방 죄수의 최종 사면권은 대통령이 쥐고 있으므로, 대통령은 사형이 예정된 48시간 안에 이를 중지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샘은 주말에 휴가를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 친구를 잠깐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토비에게 뒷일을 부탁하려 한다. 그런데 그 친구가 토비의 소재를 자꾸 캐묻자, 샘은 토비가 다음날 아침에 어디 있을 것인가를 말해버린다.


  나중에 토비가 샘에게 이 일을 추궁하는데, 샘은 이 이슈를 문제의 중대함과 옳고 그름을 논박함으로써 피해가려고 한다. 이게 내가 싫어하는 전형적인 패턴인데, 변명을 윤리적인 문제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아주 간단히 말해서 목적이 옳으니 방법이 옳진 않아도 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런 자기 확신의 면모가 샘 시본의 캐릭터에서 간간이 보인다. 로리를 대하는 데서도 전형적으로 나타나지("You are trying to reform her(Josh)/me(Laurie)"). 윤리적인 문제와 방법상의 윤리의 문제는 같은 게 아닌데 드라마에서는 이런 샘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구석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언급으로 보아 알 수 있듯 난 그런 거 싫어한다.^^ (어쩌면 비슷한 방식의 화법을 구사해서인지도.)


  여기서 샘은 앞서 말한 대로 사과를 피해가다 결국 '어쩐지 그 순간에는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고 실토하는데, 그 말에 토비는 "Okay." 하고 화제를 거기서 접는다. 분위기는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안하겠다는 톤이었다.


  물론 이건 내 편견이 먼저 베이스를 깔아놓고 그 위에서 맘에 드는 사실을 취사선택한 경향이 없지 않다. 애초에 샘 시본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유보적인 감정이었기 때문에 이 캐릭터를 묘사하는 드라마의 방식에서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을 찾아내고는 유레카를 외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리되지 않는 얘기를 정리해서 쓰려니 머리에 쥐가 나네ㅇ_ㅇ;; 원래 하려던 이야기는, 가장 주인공스럽고 관객의 애정을 담보할 인물로 제시되었던 샘의 캐릭터가 드라마에서 빠진 것이 다른 캐릭터들에 끼친 영향에 대한 거였는데. 하긴 TWW 이야기는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한데 늘 잘 안 나오는 쪽이었다.


Posted by Iphinoe

  아내가 마법을 쓴다

  재미있었다. 남자의 세계와 여자의 세계가 아직 분리되어 있고 서로간에 교류도 많지 않았던 미국의 1950년대 분위기 안에서 요리할 수 있는 상상력으로 거의 최대가 아닐까. 조금 더 거창했어도 재미있었겠지만 아마 그랬다면 조금 더 소박했다면... 이런 감상을 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것은 모두 당신의 것 당신의 것은 모두 내 것' 무시무시했다. 주인공이 스스로도 믿는지 안 믿는지 안 믿고 싶은 건지 분간을 못하면서 시키는 대로 하는 부분이 좋았다.

  보이는 현실 밑에 다른 한 겹의 현실이 깔려 있다는 식의 전개는 잘 다루면 늘 재미있다. 다만... 좀 더 체계적인 현실(=거창한)이었더라도 나쁘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지만, 그건 결국 뽑혀나온 결과물을 보아야 할 수 있는 얘기니까. 게다가 소설에서의 설정은 결말에도 봉사했고. 다 만족이다.




  황금나침반

  읽고 나서 이것저것 검색해 보다가 이 소설이 90년대산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 훨씬 더 나이가 든 것으로 느껴졌었다. 소설은 재미있었는데... 재미있었는데...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조금 더 있었으면 싶기도 했다. 이렇게 프로파간다가 강한 소설은 종종 주제에 이야기가 먹힌다는 느낌을 주곤 하는데 그런 건 비교적 없었다만, 딱 잘라서 없다고 말하기엔 몇몇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좀 더 있었으면 싶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원래 '예언된 아이' 스타일의 이야기에 재미를 덜 느끼기도 하고.

  존 캘빈이 교황이 되어 교황청을 제네바로 옮겼다는 데서 엄청 웃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더 재미있었다. 대체 왜 그렇게 쓴 거지? 이후 전개를 보니 교황이란 존재는 없어도 되겠더만. 그리고 라이라의 세계는 여러 모로 프로테스탄트의 세계 같은데. 게다가 교회와 사상통제가 중심으로 나오는 세계에서 종교가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그 역할이 그다지 그려지지 않은 것도 흥미로운 생략이었다. (일단 안식일에는 미사/예배에 참석한다는 이야기가 없다.) 분명 의도적인 선택일 텐데 무슨 의도인지 궁금하게 했다.

  1편만 읽은 상태에서 영화를 보았는데 그건 나빴다.; 신학적인 이야기를 빼버린 건 나쁘지 않았는데 (어차피 소설에서도 3권에는 가야 본격적으로 나오니까) 이야기가 연결되지 않고 이 장면 급하게 몰아치고, 자 이제 다음 장면, 역시 급하게, 이런 식이어서. 말이 많은 소설에서 말을 빼고 진행하려면 적어도 그것보다는 더 교묘해야 했다. 등장 인물들이 정보성 대화를 나누느라 감정전달을 할 틈이 없다. 이 영화의 주타겟층을 너무 낮춰 잡은 게 아니었나 하는데... 러닝타임이 너무 짧은 것도 그렇고.

  지금같아서는 남은 이야기들도 그다지 기대되지는 않는다.




  벨벳의 악마

  원래는 The Lizard in the Cup보다 먼저 끝냈는데 - 시작은 더 늦게 - 어영부영하다 글 쓸 기회를 놓쳤다. 많이 유쾌한 오락물이고, 취향을 타기는 하겠지만 대리만족의 감정도 있는 것 같다. 주인공이 남자여서 그런가 내 경우는 아니었다만.

  기본적으로 활극의 모양새인데, 음모가 서스펜스를 유지하고 주인공이 스스로에 대한 통제가 약해지는 순간이 있다는 점이 긴장을 유지해 준다. 역사추리의 요소가 섞여 있어서 내 경우는 더 즐겁게 읽긴 했는데, 찰스 2세가 정말 그런 정도의 그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라는 게 아니고 문자 그대로 잘 모르겠다. 왕정복고 시기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고, 이런 시대의 왕은 보이는 것과 자기 자신이 다른 경우가 많은 것이 당연하니까.

  얘기 하나 더. 읽으면서 내내 '흰 옷을 입은 여인'의 느낌이 있었는데, 뒤의 저작 목록을 보니 딕슨 카가 윌키 콜린스를 탐정으로 삼아 쓴 소설이 있었다OTL;;;


Posted by Iphinoe


  Thanassi Thanatos (tycoon from Sleep) invites him to Greek Island hideout to play role of Mafia in war-game style simulation of business opponents' likely actions. Pibble suggests elimination of Thanatos himself and then investigates the possibility for real.


  피터 디킨슨 공식사이트의 저작 목록에 나오는 이 책의 줄거리 소개는 이러하다. 너무 잘 써놓아서 더 할 말이 없다. 직접 읽어보실 분이시라면 이 아래는 읽지 않으셔도 무방할 것이다. 전에 두 번 정도 시도했다 실패한 적이 있는 소설이었는데 ― 처음 두 쪽을 넘어서지도 못했다 ― 이번에는 그 난관을 비교적 쉽게 넘었고, 그러고 나니 설명도 친절하게 잘 되어 있고 plot twist도 없어서 어렵지 않게 적당히 읽혔다. 배경 세팅이 좀 재밌는데,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사건으로부터 거물 한 사람을 보호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피터 디킨슨을 아동문학의 작가로서만 접했었다. 해서 The Lizard in the Cup을 대하는 내 가장 큰 감정은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아동문학 작가로서 내가 본 (혹은 좋아하는) 피터 디킨슨은 강한 신화적 분위기를 구사하는 사람이었고, 그 위에서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요리했다. 계시와 신적 권능, 신과 인간과의 관계,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기 시작하는 시기의 동요와 갈등과 대립, 변화의 동력으로서의 전쟁 등등. 매우 전형적인 만큼 제대로 다루면 폭발력이 센데, 그가 그러했다. 그 신화적인 분위기의 아우라가 매우 영향력이 강했고 길게 남았었기 때문에, 디킨슨의 추리소설은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꽤 궁금했다.



  이 소설의 무대는 그리스의 한 섬이다. 전형적인 여름 휴양지로, 주요 등장 인물도 몇을 빼면 죄다 외지인이다. 이들은 전직 경찰 간부에 은거 중인 테러리스트, 정보부 소속의 살인 면허를 지닌 요원, 거부와 그의 가신 그룹으로, 도무지 범상치가 않다. 아무튼 일상적인 풍경은 아닌 것이다.


  시점을 조율하고 우리에게 시선을 제공하는 주인공인 피블은 이 거부를 둘러싼 주변 그룹에 최근 어울리게 된 사람이다. 그는 이미 두어 번 그의 호의를 입은 몸이며, 아직까지는 손님으로 대우받고 있지만 문턱에 서 있는 거나 다름없는 위치이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벌써 타나토스가 부리는 사람들 중의 하나고, 스스로도 그와 같은 사실과 위치를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다. 피블은 이 독특한 위치에서 이 그룹의 다이나믹을 관찰하지만, 독립적인 관찰자가 아니며 그 또한 그에 좌우되고 있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기 때문에, 그의 시선은 거리두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스코틀랜드 야드에서 일하다 퇴직한 사람으로 (경찰에서 어떤 계급으로 일했는지 궁금했는데 책 속에서는 도무지 언급이 없어 좀 혼란스러웠다. 다른 작품 소개를 읽어보니 총경으로 퇴직한 듯) 사적으로 아는 사이인 거물 사업가 타나토스로부터의 호출 겸 초대에 응하여 그리스의 한 섬, Hyos로 온다. 어떤 다른 지역에서 타나토스가 보스톤 마피아와 손잡은 기업가들의 이권에 반하는 짓을 했고, 그와 그의 주변인들은 보스톤 쪽에서 그에 대해 어떤 보복 조치를 취해 올 것인가의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피블은 갑작스런 사고로 올 수 없게 된 그 그룹의 한 사람을 대신하여 마피아 쪽의 시각을 제공해주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한다.


  이 회의에서는 이 전체적인 구도에 대한 소개와 함께 두 가지가 드러난다. 하나는 앞으로의 이야기에 원동력이 되는 타나토스 암살 시도에 대한 언급이다. 다름아닌 피블이 마피아 측의 역을 맡아 브레인스토밍을 하다 떠올린 아이디어다. 웃어넘기는 사람들도 있고 그 자신도 그 가능성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상대편이 그러한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그에 대비를 해두는 게 나쁠 것은 없다는 것이다. 타나토스도 그에 동의하고, 임무를 나눈다. 이 섬에 세워진 타나토스의 여름 별장은 (당연하지만) 해변을 끼고 있어서, 물에서의 공격에 대해서는 타나토스의 배와 본토에서 보내져 올 경호원들이 책임지기로 하고, 피블에게는 섬의 안팎을 살펴 외부인 ― 즉 마피아에서 보낸 hit-man ― 의 접근을 알아보는 임무가 맡겨진다.


  섬의 나머지는 외지인들이 들어와 정착한 남쪽 빌라촌과, 가난한 원주민들이 땅을 일구고 고기를 잡으면서 사는 마을, 절벽 끝에 지어진 수도원 정도로 나뉘어 있다. 이 수도원은 수도사들이 은둔하기 위해 몇백 년에 걸쳐 조금씩 넓혀 나간 공간으로, 현재는 쇠락하여 두 명의 수도승만이 지키는 곳이다. 이 수도원은 디킨슨이 꽤나 공들여 묘사하는 장소인데, 비슷한 수도원들을 TV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본 것이 전부인 나도 왜 이 수도원과 그 속에 위치한 동굴에 대한 서술이 이 소설에서 그렇게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것 같다. 플롯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 떠나 상상력을 자극하고 독특한 느낌을 안겨주는 꽤나 비현실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떠나고 세월에 퇴색하여 몰락해 가던 수도원은, 최근 부당하게 징발되었던 땅을 합법적으로 돌려받으면서 갑자기 부유해져 복원 사업을 나름 거창하게 벌이고 있는 와중이다. 이미 이 섬에 호텔을 하나 지어놓고 있는 타나토스는 수도원을 관광 상품 겸 호텔로 개발하려고 눈독을 들이고 있는 터였다. 이 두 수도승들은 타나토스의 표현에 따르면 술독에 빠져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순 사기꾼들인데, 예전에 밀수를 위해 쓰던 나루가 하나 남아 있어 피블의 조사 대상이 된다. 피블은 수도원에 올라갔다가 현지인들과 얽히게 되고, 그 와중에 거기서 수도사들이 성화 그려 파는 걸 돕는 일로 살고 있는 낸시라는 영국 여자와도 안면을 튼다.


  이 조사 와중에 피블은 바로 전날 이 섬에 도착한 외부인과 마주친다. 그는 무려 헬기를 타고 섬 호텔에 도착했고, 그 때문에 섬 주민들의 이목을 있는 대로 끈 상태다. 피블은 그가 누구인지를 바로 알아보았고, 상대 역시 그를 알아보고 접선을 제의해 온다. 버틀러라는 이름의 이 인물은 정부의 비밀 요원으로 살인 면허를 가졌다고 알려져 있으나, 피블은 아직까지는 그와 말을 깊이 섞어본 일이 없고 그를 잘 알지도 못하는 터다. 버틀러는 다음날 피블과 섬 외딴 장소에서 만나, 상부에서 이 섬을 마피아들의 마약 제조 중간기지쯤으로 의심하고 있다면서 조사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해 온다. 피블은 그가 과연 진실을 말하고는 있는지 의심하는 한편 버틀러가 조사한다는 사건과 타나토스에 대한 위협(있다면)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어쩌면 버틀러가 마피아에서 보낸 암살자일 수도 있는 데다, 타나토스 역시 언제나 합법적인 방법만 동원해 온 인물은 아니고, 그의 친구이자 부하들의 그에 대한 헌신은 법의 경계를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피블은 타나토스와 그 주변인들의 다이나믹을 종종 유럽 궁정에 비유해 생각한다. 개인적인 헌신과 집단적인 결속으로 맺어진 이들의 수직적이면서도 애정을 담보한 관계는, 그 속에 있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 피블의 발언인데, 피블 역시 이 속에 끌려들어가고 싶지 않아 하면서도 드러내 놓고 거절하지는 못한다. 앞서 말한, 원탁회의 씬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물리적 공격에 대비해 지역 경찰의 협조를 받자는 것이 피블의 맨 처음 의견에 대해 타나토스는 단칼에 거부한다. 그리고 이어 묻는다. "You still want to help?" 피블은 모두의 강렬한 시선을 대면한다. 책에 나온 바대로, 이는 '네 능력으로는 감당 못할 규모의 휴가 비용을 누가 지불해 주었던가'의 물음이 아니라 '누굴 신뢰하는가? 무엇/누구에 충성하지? 네 친구들이 누구냐?'의 물음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소설의 핵심 주제인 loyalty로, 이 소설은 어떠한 개인 또는 조직에 대한 헌신이라는 것의 무게, 그 의미, 주변의 압력, 그게 담보하는 애정, 그리고 그 속에서의 물고 물리는 관계 ― 즉 정치역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피블은 평생 몸바쳐 일했던 경찰청에서 해고당하다시피 물러난 위치이고, 같은 대상(나라)을 위해 뛰고 있는 비밀 요원은 자신의 조직과 동료, 이념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 피블은 한 개인에 대한 사적인 헌신과 충성으로 맺어진 그룹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그 스스로도 반 정도는 이미 거기 발이 빠진 상태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기대에 거부감을 느끼고 한편으로는 그 병리적인 역학관계를 좋아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그 기대에 부응하는 태도를 취하고 그에 맞게 행동한다.


  그러나 그러한 단단한 결속은 평등한 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각자가 타나토스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는 이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탄생하는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은 심지가 굳고 자신의 신념이 다른 데 있는, 그러나 현재는 타나토스의 여자로 그의 옆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정부뿐이다. 토니라 불리는 이 여자는 누구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할 만큼 강력한 매력과 영향력을 주위에 뿌리고, 타나토스의 시혜를 받는 입장에서도 그에 대해 독립적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다른 인물들은 타나토스의 무게에 휘둘리고, 그러면서도 독자적인 개인으로 남으려 애쓴다.


  그리고 때로는 다름아닌 타나토스 자신이 그런 주변인들의 충성심을 극한까지 내몰아 시험하곤 한다. 그런 일이 피블이 있을 때 한 번 빚어지는데, 바로 토니가 타나토스와 결별하고 떠나면서다. 타나토스는 그 날 오후와 저녁 내내 '친구들'을 조롱하고 놀려대고 괴롭히고, 그들은 번갈아 가며 그 분노의 과녁이 되어준다. 피블 역시 마찬가지인데, 실질적으로는 이 ritual 이후로 그들이 피블을 '우리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피블도 그러했느냐 하면 그것은 다른 문제다.




  피블은 타나토스를 위해 낸시의 안내를 받아 사람들을 만나고 섬을 조사하는 한편, 버틀러의 부탁을 받아서는 타나토스의 집과 배를 수색해 마약의 제조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근거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버틀러에게 전해준다. 그러나 그는 버틀러의 정체와 그가 여기 온 목적을 타나토스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지만, 타나토스 쪽의 이야기는 버틀러에게 완전히 까놓지 않는다.


  모두가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아주 매우 몹시도 낮다고 했던 암살 시나리오는, 그러나 암살 기도가 실제로 일어난 듯 보이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타나토스와 다른 한 명이 수상스키를 타던 중에 갑자기 불이 붙어 배가 가라앉은 것이다. 그 다른 한 명이 운전 중에 갑자기 연료탱크에 총구멍이 나는 것을 보았다고 했고, 다른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만에 하나에 대비하기 위해 가라앉을 배를 건져서 연료탱크를 확인해 보기로 한다. 토니가 떠나면서 타나토스와 그 주변인들이 겪은 소동은 피블이 다시 찾아간 수도원에서 시선을 끄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버틀러가 타나토스 그룹 내부에서 나온 제보 때문에 지역 경찰에 체포되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피블은 구도를 단순화하기 위해 버틀러를 섬에서 치워버리려고 하고, 그동안 알아낸 모든 사실을 총동원해 일을 매듭짓지만,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었다. 피블이 떠나는 날, 비행장으로 나가는 피블을 배웅하기 위해 해변의 술집에서 모두는 잔을 들지만, 예고없이 총격이 시작되고 두 명이 쓰러진다. 목격자로서 경찰서에서 진술을 하는 피블은 진상을 깨닫고 사건을 정리하는 입장이지만, 이미 모든 것은 너무 늦었다. 경찰과 피블, 그리고 옆 섬에서 불려온 통역자 사이에서 에필로그가 되는 것은 이 작품의 제목인 지역 전설에 대한 이야기이다.


  피블이 그 전설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낸시를 통해서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위생에 그리 신경쓰는 사람들이 아닌데, 그 중에서도 으뜸이라 할 만한 두 수도사도 음식과 물만큼은 신경써서 꼼꼼하게 덮어놓고 지내는 모습을 본 피블이 그에 대해 언급하자 낸시는 Samimithi라는 도마뱀 이야기를 한다. 이 섬에는 그 도마뱀이 음식이나 음료수 위로 지나가면 그 음식이나 물이 독을 지니게 되어 먹으면 탈이 나거나 죽는다는 전설이 있다는 것이다. 그 후로 피블은 때떄로 섬에서 이 도마뱀의 모습을 목격하곤 하는데, 타나토스가 자기 우산 아래 전직 테러리스트 하나를 불러들여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버틀러에게 말해야 할 것인가를 피블이 고민할 때, 그는 이 도마뱀을 생각한다. 우정의 컵 안에 도사리고 있는 독. 토니의 매혹에 피블이 휘둘리고 있던 탓에 때떄로 터져나오는 고민들에 이 전설이 섞였지만, 결말에 엮여 이야기가 여기까지 오면 스포일러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기분은 흡사 무언가에 얻어맞은 느낌이다. 새로운 주제는 아닌데 뒷맛이 묵직했다. 전달이 좋았다는 뜻일 것이다. 최근에 무언가를 열망한다는 것과 자존심 또는 자존감의 문제를 결부시켜 생각케 했던 일이 있어 흡수도 더 잘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크게 오락적이라고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해서 심오한 사색이 담겨 있다고 할 것은 아니고,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서의 일상적이지 않은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설이지만 깜짝 놀랄 만큼 좋은 작품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의외였다. 주변에 추천할 생각은 꿈에도 없지만, 이 작가를 좀 더 찾아 읽게는 될 것 같다.






  남은 얘기 하나. 전체적으로 유머가 많지 않은 작품이나, 가끔 큰 웃음 주시는 대목이 있어 유쾌한 전환이 되었다. 그 중 하나는 '디킨슨 영감 뜬금없이 웃겨주시네'라 생각하다 뒤에 가서 이해한 대목도 있긴 한데 그건 설명할 자신이 없어 넘어가고, 타나토스가 수도원의 두 수도승들에 대해 평한 것이 재미있었다. 이 수도사들이 밀수에 전문가들이라면서 타나토스는, 그들이 죽어서 천국에 간다면 밀수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방금 이 대목에 웃지 않으셨다면 그건 전달자 탓이다.-.ㅡ


  얘기 둘. 그리스어를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하지 못하는 피블은 타지를 여행한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쪽 언어를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묘한 수치심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일상에 섞여들 수 없고 그냥 물과 기름같은 존재가 되는 여행자라는 위치에 대해. 이 역시, 비슷하다고는 못해도 그에 걸친 경험을 했었던 터라 이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얘기 셋. 이건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동의할 이야기인데, 책을 읽으면서는 물론이고 읽고 나서도 피블에 대해서는 별 감정이 없고, 버틀러가 좋아지려고 한다. 이건 첫 번째 남은 얘기와 연관이 있어서 써놓긴 해도 이해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잖아도 이 친구 어딘가 오프비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난 그게 이 사람의 직업과 그가 속한 세계 탓인가 했었거든. 그걸 명백하면서도 직접적이지 않게 펼쳐놓다니 대단한 글솜씨다. 장인의 붓질이 느껴진다. 외국인으로서 원서를 읽을 때 반은 반투명한 장벽을 치고 읽는 거나 다름없는 내가 이런 걸 집어낼 수 있었다는 것은 ― 게다가 암시로만 이루어진 작업이었다 ― 작가가 뛰어나단 뜻이다. 명백하다는 것은 버틀러의 말투가 다른 사람보다 아주 약간 더 구어체라는 정도인데, 실질적으로는 그게 전부다. 원래 말을 글로 쓰면 아이러니컬한 화법이 잘 전달이 안 되기 마련인데, 노골적이지 않으면서 재미있었다.


Posted by Iphinoe

  본즈Bones와 엑스파일을 비교하는 시청자들이 많다는 것 같다. 나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브레넌-부스 파트너쉽(AF님 표현마따나 동일인의 좌뇌와 우뇌 같은 그런 페어링, 로맨스를 내포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관계)이 가장 직접적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얼른 주목하게 되긴 하지만, 실제 두 드라마가 연계선상에 있는 건 조금 다른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엑스파일의 초기 시즌을 돌려보면서 새삼 실감한 거지만 초반 시즌의 장난스런 분위기는 본즈에서 몇 배로 노골적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매우 유사하다. 정공법으로 수사를 다루는 수사담치고 이렇게 농담하는 분위기로 밀고 나가는 드라마, 그리고 그걸 잘하는 드라마는 꽤 드문데, 나는 본즈가 그래서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를 다른 데서 본 건 NCIS가 유일한데, 그건 등장인물들간에 수평관계보다 수직관계가 더 주목받는 편이라 세팅이 좀 다르고, 그보다는 그 가벼움의 레벨이 다르다. NCIS에서는 그게 겉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면 본즈나 엑스파일에서는 삼가 말하기 식으로 한 겹 아래로 깔려 있다. 농담이나 재치있는 말주변 같은 요소로 장난같은 분위기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상황이나 묘사의 방식 등에서 가벼움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전자건 후자건 다 보기 즐겁기는 한데, 난 아무래도 후자 쪽에 더 끌려서, 본즈가 보기 더 재미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3시즌까지의 얘기고, 그 이후는 전개되어 가는 방향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과는 좀 달라서 어떨지 모르겠다.


Posted by Iphinoe

(또) 소사

afterwards/chitchat 2009. 4. 3. 13:25

  1. The Reader 영화를 보았는데, 책에선 직접적 언급을 가능한 한 회피했던 수치심에 대한 이야기는 더 많이 하고, 책에서 많이 했던 죄의식(의 전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안 했다는 게 첫인상이었다. 더 묵혀 봐야 분명해지겠지만, 그래서 마지막 대화가 약간 오락가락했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전후 첫세대가 전쟁 세대에 던지는 질문을 주제로 삼았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책은 그보다는 더 복잡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 1인칭 나레이션이 있을까 없을까 매우 궁금했는데, 답은 얻었다.^^



  추가 (스포일러 있음)

  씨네21의 리뷰를 방금 읽었는데,

  '달드리와 헤어는, 50년 동안 숨겨온 비밀을 ‘집필’이라는 행위로 털어놓는다고 마무리짓는 원작의 결론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구현할까 고심했다. “마이클은 딸에게 한나와의 사연을 들려줌으로써 고해성사를 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해방시킨다.”(달드리) “원작은 대화의 강력한 수단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도 ‘대화’를 사용했다.”(헤어) 이 선택이 과연 효과적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마이클이라는 독일 전후 세대(2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의 곤혹스러움은, 한나라는 1세대보다 3세대와의 화해를 향해 나아가는 쪽으로 좀더 비중이 커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집필을 하는 것과 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위는 의미가 같지 않으니까.
  실은 나도 약간은 같은 생각을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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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나저나 보고 싶었고 볼만했고 보고 있었는데 정말 피곤해서 눈꺼풀이 진짜 무거웠다. 집중을 못했으니 당연히 놓친 게 있을 것 같은데, 책을 읽고 본 탓으로 볼 건 다 봤다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레나 올린이 두 번 나온다는 건 눈치채지 못했다=_=)



  3. 말 나온 김에, 한두 시간마다 '아 머리가 돌지 않아'를 중얼거리며 카페인을 찾아 나서는 내 모습이, 레몬즙을 공급해야 총기가 돌아오는 (그것도 10분간!) 자포드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장면에 웃는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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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

카테고리 없음 2009. 3. 28. 23:44

  1. 요샌 진짜 시간이 날아간다. 포스팅도 겨우 한 달에 한 번 꼴로 하는 것 같은데... 벌써 3월 말이라니, 3월은 다 어디로 간 거야. 아니, 내 시간은 다 어디로 간 거지? (Baby Blues 인용)


  2. 소설을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경험을 하는 예는 무수히 많다. 읽었으니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저기 좋다 싫다 떠벌리고 다녔지만 실제로는 근 15년 전에 예문의 편집본으로 한 번 읽고 다시 본 적 없는 '반지전쟁'을 정말 언제 다시 읽어야 하는데. 원제목이 싫다는 것은 아니지만 'Lord'는 번역이 좀 애매한 단어고 해서 예문의 선택을 그 점에서는 좋아한다. 그리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기도 하고.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는 혼자 꿋꿋이 그 이름으로 부르고 다녔었다. (하긴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는 별로 불러줄 일이 없었다.)


  3. 실은 이게 쓰고 싶었다. 갑작스러운 생각 같지만, 난 원래 XF 팬들이 크라이첵에게 붙인 ratboy라는 별명을 거의 반은 애칭으로 받아들이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누구 때문에 그게 더 이상은 가능하지가 않다. 내 크라이첵을 내놔!!

  사실 즐겨 부른 별명은 아니었다만, 그래도.


Posted by Iphinoe

소사

카테고리 없음 2009. 3. 9. 17:11

인가... 하여간.;


전화번호가 바뀌었습니다. 예전에 016 - *** - ****에서
지금은 010 - 3*** - ****으로 되었습니다.
네, 그렇다고요..

Posted by Iphinoe

소사

카테고리 없음 2009. 3. 6. 23:50

  1.   근래 심사가 좋지 않더니 드디어 꿈에 악마까지 등장했다-_- 비록 목소리만 출연하셨지만 존재감은 물론이고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이 상당하더라. 잠에서 깨어나니 온몸이 긴장해 있었다. 얼마 전에 사탄이 나오는 소설을 읽었는데 그 영향이 지금까지 남아 있나. 하지만 그 작자는 매우 사근사근했는데.



  2.   제대로 음악을 들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살면 정말 곤란한데. 하지만 언제인가부터 음악은 그 자체보다는 실용적인 용도로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거 정말 곤란하다.



  3.   정신이 없고, 혼은 빼놓고 있고, 넋만 겨우 붙어 있는 것 같다. 바쁘다기보다는 정신이 없는 것 같은데, 한 말 또 하고 있네. 해야 할 일은 (드디어) 해서 다행이지만, 저것도 최종본이라기보다는 중간정산본이어서 나 자신으로는 미진하고 공적으로는 어마어마하게 늦어서 그저 죄송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최종본을 뽑았던 케이스로는 The Burden of Proof가 유일한가.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방향에서 압박이 장난아니게 들어왔던 상황이라서 가능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하니 L.A. 컨피덴셜 & 블랙 달리아 글도 있었다)



  4.   어디다 정식으로 다시 이야기해야겠지만, 실은 '수도원의 죽음Dissolution' 덕분에 예전부터 빼어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정도와 깊이에 그렇게까지 자신은 없었던 '옥스퍼드의 4증인 / 핑거포스트 1663'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복합적인 인간상을 모두 소화하면서 빨려드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진정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판단은 주관적인 것이지만. 내 감상이 꽤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5.   지난주에 좀 아팠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했더니 몸이 지쳤던 모양. 어렸을 때는 자주 배앓이를 하고 그 때마다 한두 번씩 토했지만 커서는 자주 아프지는 않는데, 대신 한 번 아프면 하룻저녁에 대여섯 번씩 토한다-0- 이번에는 식도에서 피가 올라올 정도로 심했다. 지금은 90%정도 회복되긴 했는데, 그러고 나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식욕을 잃은 것 같다. 아니 때 되면 배가 고프긴 하는데 뭘 먹어도 맛이 없다-0-



  6.   요새 Jose Chung's Doomsday Defense 음성파일을 만들어둔 걸 자주 돌려듣고 있다. 나중의 Satan Got Behind...의 그 날이 선 태도의 단초가 드러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훨씬 유쾌하고 - 그 색감! 밀레니엄에서 그게 가능할지 몰랐다. 파일럿과 비교해 보라 - 특히나 음악이 분위기를 많이 살려준다. 혐오가 느껴지는 사탄 에피소드와 달리 페이소스가 느껴진달까. 사유의 깊이는 From Outer Space와 비교한다면 떨어질지 모르겠으나 그건 내게 느껴지는 적실성의 문제겠지. 이 사람은 확실히 빼어나다. 주위 사람들이 감당하느라 힘들기는 하겠으나.

    그러고 보니, 그 색감은 다린 모건이 의도한 바였겠지? 처음에 명희님께서 캡쳐만 보여주셨을 때는 이게 MLM인가 싶을 정도로 놀랐었다.



  7.   XF를 비과학적인 드라마로 보는 시선들이 이해가 아주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잘 모르겠다. XF에선 사실 스컬리의 시각 역시 무시되지 않았었다고 생각한다. 과학 vs 신비의 컨셉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이 세상의 작동 원리(그런 게 있다면)를 다 알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드라마였다. 그래서 그런 방향에서 들어오는 비판은 약간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Posted by Iphinoe

  영국사에서 튜더 왕조는 여러 모로 돋보이는 위치를 차지한다. 내전을 마무리짓고 근대의 거대 제국으로 거듭나는 기초를 세웠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같은 맥락에서 해양제국의 패권을 확보하여 수 세기에 이르는 번영을 위한 기반을 다져가는 시기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같은 시기 유럽사에서의 흐름과 발맞추어 영국의 종교적 전통을 수립하는 때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게다가 튜더 왕가 인물들의 개인사가 워낙 흥미진진하다 보니 대중의 관심을 받기에도 부족함이 없달까.


  유럽사의 맥락에서 보더라도 이 시기는 중요한 전환기다. 아메리카 대륙이 유럽의 지도 안으로 들어와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하는 것도 이 때이고, 중세 이래 유럽을 지배해 온 로마 가톨릭이 그 전과는 다른 성격의 도전을 받으며 서양 기독교가 두 갈래로 쪼개진 것도 이 시기다. 그러나 튜더 왕조 아래 영국이 겪은 종교적 변화는 대륙에서의 흐름과 발맞추면서도 다른 양상으로 나아간다.


  그 다름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들어와서였지만, 헨리 8세가 수장령을 내려 교회를 왕권 아래 통합하기 시작한 이래 그 가능성은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16-7세기 영국의 종교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영국이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를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수도원의 죽음'은 정확히 이 시기를 다루고 있다.


  왕이 영국 교회의 최고 우두머리라 선언한 헨리 8세는 그동안 로마 교황청에 세금을 바쳐왔던 수도원들의 재정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수도원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와 해산 작업에 착수한다. 이 와중에 한 지역 수도원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파견된 왕의 특사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당시 왕의 재상 격이던 토머스 크롬웰은 주인공 매튜 샤들레이크를 보내 사건을 조사하게 한다. 샤들레이크는 특사를 죽인 것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임무와 함께 수도원을 압박해 원장으로 하여금 수도원을 헌납하도록 하게 하는 임무를 지고 파견되지만, 그는 종교적 개혁에 대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신체적 약점에서 출발하는 다름 때문에 권력 안에 있어도 밖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수도원에서만 이방인인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속에서도 이방인으로 존재하며, 그 때문에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소설은 샤들레이크의 시각을 따라가며 당시의 시대상과 이 시기를 규정짓는 많은 이슈들을 조명한다.


  샌섬이 풀어가는 이 이야기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배경과 주제와 공간을 빠짐없이 다루며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종교개혁이라는 큰 주제에 대한 고찰이 소설 전반에 걸쳐 흐르고, 수도원이라는 공간을 둘러싸고 있었을 법한 모습들에 대한 스케치도 다채롭게 펼쳐지며, 당대의 생활상은 물론이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직면했을 법한 종교적,윤리적,현실적인 이슈들도 짚어내는 데 상당한 비중을 할애한다. 좀 냉담자적인 쪽으로 치우쳤을지는 모르나 그거야 이 소설이 샤들레이크의 1인칭 서술이니 자연스런 노릇이다.


  인물화도 다채롭고, 그들을 묘사하는 방식도 성실한 편이다. 계층적으로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성별, 인종적으로도 당시의 시대상을 충실히 묘사하려는 듯 소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았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노력은 종종 역효과를 낳고는 하는데, 이 책도 도입부에서 신대륙을 통해 들어온 문물을 묘사할 때까지만 해도 그 함정에 잘해야 반은 빠지고 반은 피해간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했으나, 중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수도원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벗어나서도 중심을 유지하는 저력을 보인다.


  다양한 개인사를 지닌 등장인물들이 있지만 읽는 입장에서 가장 동화하기 쉬운 캐릭터는 역시 주인공 샤들레이크다. 이 소설이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이어서만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속내를 때로는 불편함을 인정하면서까지 정직하게 드러내어 독자들과 공유하기 때문이다. 강한 신념의 소유자가 아닌 회의하는 사람인 만큼, 공감하기도 무난하다. 천재형 탐정도 아니고 인생의 지혜를 자랑하는 원숙한 탐정도 아닌 그는 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고, 나머지는 각자가 느끼고 줍는 만큼일 것이다.


  수도원에 일어날 변화의 단초가 핵심 배경이 되는 만큼 이 소설은 기존의 수도원이 어떤 문제를 담보한 곳이었는지를 밝히는 데에 인색하지 않고 그에 대해 분명 매우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만, 그만큼 이 시대에 첨예한 대립의 원인이 되었던 종교개혁이라는 이슈에 주목한다. 신념으로 일하는 사람들, 신념으로 반대하는 사람들, 오랜 세월 견고하게 우뚝 서 온 제도에 기대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 시스템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사회를 바꾸려 하는 사람들, 다양한 모습이 스친다. 서로 반목하는 두 극단의 입장과 함께 그 모두에 냉소적일 수밖에 없는 민초들의 시각까지 포괄하고 있다. 한 가지만 하더라도 버거웠을 만한 일이지만, 그 둘이 깊이 맞물려 있으니만큼 샌섬은 두 가지를 모두 다루는 정공법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썩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중세 말기의 풍속화와 근세 종교개혁기의 사상의 단초 두 가지를 모두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이 시대에 관심가진 사람들에게 일독을 추천하는 책이다.



  남은 이야기는, 그럼에도 내가 왜 이 책에 미적지근한 감정을 느끼는가에 대해서다. 해답이 정말 안 나는 문제 중의 하나였는데 아직까지도 만족스런 설명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생각의 실마리가 두엇 정도 있고, 남은 분량으로는 그걸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나는 이 시기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번역 또는 문체의 이슈이다.


  종교개혁기에 대한 해석이라는 이슈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엄청나게 거창한 문제고, 다음으로는 답이 안 나는 문제인 데다, 마지막으로 내 개인적인 문제기 때문이다. 하나의 경향성을 지닌다고 모두가 인정하는 시기가 있다고 할 때 그 경향을 과연 무엇이라고 부를 것이냐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간단하게 끝나는 법이 없고, 그건 근세 유럽의 변동을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16-7세기 유럽을 종교개혁기라고 부를 때 그 핵심을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물음은 너무 커서 답이 안 나는 질문이고, 당연히 모든 개인의 의견이 저마다의 정당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 시기를 바라보는 샌섬의 시각은, 마지막에 모든 일을 보고 들은 한 인물이 남기고 떠나는 이야기에 방점이 찍힌 것을 볼 때, 그 인물의 견해에 가장 가깝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사실 더 정확한 표현은 샌섬이 자기 시각을 그의 입을 빌어 표현했다는 것이지만.) 바로 이 시기의 종교적 갈등은 인간 삶의 부조리, 신분과 계급, 불평등의 문제에 비추어 볼 때 비본질적인 권력다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작가가 감정이입하고 공감하고 교류한 쪽이 종교적 신념이 서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물론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견해에 그다지 동의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이 문제가 내가 이 소설에 대해 유보적이게 만드는 데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행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별로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라는 말이지.) 다른 걸 다 떠나서, 작가가 이 이야기를 쓰는 와중에 어느 새 종교개혁가라고 묘사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제일 변방으로 밀려나 버렸다는 내 느낌은 지극히 편파적인 것인지 아니면 나름 그럴싸한 것인지 판단을 못하겠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그보다는 좀 더 실증(?)적이고 좀 더 모호한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의 인물 묘사가 얄팍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 머리를 굴려봐도 확고한 답을 알 수가 없다. 샌섬은 각각의 등장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그런 배려를 받은 캐릭터의 수는 하나 둘 정도가 아니다. 주인공은 물론이고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을 위시하여 수도원의 모든 인물, 심지어 실질적으로는 잠깐 등장하는 토머스 크롬웰까지 단선적인 인물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정확히 무엇이 모자라서 이 책에서의 인물 묘사가 스테레오타입이라고 느껴지게 하는 것인지, 생각하면 구체적이지가 않다. 통찰력의 깊이의 차이라고 한다면 말이야 간단하고 그럴싸하지만 실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고찰의 깊이가 딱히 모자라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물론 대중소설에서 아주 깊이 들어갈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작가가 자신이 다루는 주제들을 가벼이 여긴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그래서 고민하게 되는 것이 문체라는 이슈다. 이 소설은 사실 플롯이나 시대상의 반영이라는 점에서나 흠잡을 데가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파고들어가다가 결국 캐릭터가 단순화되었다는 내 느낌이 설정이나 깊이의 문제라기보다는 전달의 문제, 즉 어떤 식으로 서술하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의 문체의 문제는 번역의 어려움인가 싶은 것과 작가 자신의 경향인 듯한 것이 뒤섞여 있다. 외모를 묘사할 때 날카로운 눈매 운운하며 시작한다던지 하는 그런 부분들이 너무 판에 박혀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작가 자신의 경향이겠고, 번역의 어려움은 꼬박꼬박 등장하는 '종교개혁가'나 '교황 제도 지지' 같은 표현이 그 예가 되겠다. Reformer라는 단어는 '…가'라는 호칭으로 대칭될 수 있는 단어도 아니고, 그 가진 뜻을 그 이름으로 다 담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명사로 일대일 번역을 하기보다 형용사적으로 좀 더 부드럽게 고쳤으면 좀 낫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하다 보면 흐릿해져서 이게 과연 본질적인 문제인지 의심하게 된다.


  이 소설은 시리즈물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것은 아니라고 들었다. 그러나 어쨌든 시리즈화된 지금은, 두어 편을 더 읽는다면 지금의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이 시리즈가 토머스 크롬웰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를 좀 더 보고 나면 해답의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그의 캐릭터가 흐릿한 것이 내게는 흥미로웠다. 내가 흐릿하다고 말한 것은 크롬웰의 동기가 불분명하게 나왔다는 뜻에서다 -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단 하나의 분명한 동기를 가지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개는 여러 가지 것이 얽혀들어 자기기만과 함께 근사한 추진력을 이루게 되는 것이 상례다. (그렇지 않다면 바로 fanatic이 되는 것이고 거기서부터는 보통 사람의 이해를 벗어난다.) 그 모습을 어떻게 그려내는지를 보고 나면 이 시리즈에 대한 전체 인상이 설 것 같다. 그러나 그럴 정도로 관심이 지대하냐 하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아직도 남은 얘기.


  1. 연쇄살인이라는 단어의 뜻을 아무래도 분명해 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이야기에서 살인이 여러 건 일어나긴 하지만 그것들이 연쇄살인은 아니었다. 다 지나고 보니 그렇더라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연쇄살인이라 부를 요소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건 용어 정의의 문제다.


  2. 책을 읽으려고 든 채로 승강기에 탔는데, 내 손가락이 '…의 죽음' 이 세 글자를 가리고 있었나 보다. 한 통로 사시는 다른 분이 승강기에 올랐다가 날 보시고 궁금하면 성당에 한 번 나와보라고 권하고 가시더군. 예의상 나머지 단어는 가르쳐드리지 못했다.


Posted by Iphinoe

  킴 매너스가 돌아가셨다. 맙소사.......
  가끔은 명복을 빈다는 게 적절하지 않은 것 같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설명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노릇이지만, 하여간 그렇다.
  남김없이, 유감없이 불태우고 떠나셨길 빈다.


Posted by Iphinoe

소사

afterwards/chitchat 2009. 1. 26. 16:35

  엘러리 퀸의 단편 중에 'My Queer Dean'이라는 것이 있는데, 말하면서 무의식중에 단어의 자음을 바꾸어 발음하는 교수가 등장한다. vanished Bulgarian이 banished vulgarian이 된다던가 하는 그런 건데,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실수라서 학생들만 우왕좌왕하고 조교과 지인들은 웃는 그런 농담으로 묘사된다.


  작가 엘러리다운 조크라서 귀엽게 봤지만 그런 캐릭터 자체는 좀 '용썼네' 류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어제 떠들다 지극히 자연스레 '역도성 식류염'이라고 말해버렸다-_-;; 어찌나 황당했던지 말한 사람 & 듣고 있던 사람 모두 박장대소.


  생각보다 그렇게 현실을 벗어난 설정은 아니었구나; 아무리 그래도 습관적으로 그런다는 건 좀 그렇지만.;;


Posted by Iphinoe

저기

카테고리 없음 2009. 1. 20. 17:20

잊고 있지 않습니다. 요즘 좀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래요.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사...(꾸벅)

Posted by Iphinoe

소사

카테고리 없음 2009. 1. 5. 15:15

  1.   인터넷에 글을 쓸 때 애매한 것 중 하나는 포지셔닝이다. 아마 내 자신이 스스로의 위치를 애매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도 크게 작용할 텐데, 가끔은 어디까지, 어디서부터 글을 써야 할지 정리가 안 될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애초에 글을 두 버전으로 쓸까 하는 생각도 있는데, 그런다 해도 실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머뭇거리게 되는 것 같다.


  8이 뛰어나고 2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는 책에 대해 리뷰할 때 2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실은 안타까움에 그 원인이 있다. 하지만 계산을 정확히 하자면 리뷰에서의 분량도 8:2로 맞춰주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그렇다 보니 글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쉽지 않게 된다. 하고 싶은 말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그건 해결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부차적인 것으로 보고.



  하지만 정말이지, 타이밍 죽인다. If it's some sort of a cosmic joke, I don't appreciate it. At all.




  2.   르 귄의 소설을 읽으면서 난감하게 느끼는 문제가 하나 있는데, 문체다. 르 귄은 신기하게도 우리말로 번역되면 문체가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이건 번역자가 누구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서, 그게 신기한 점이다. 이윤기 씨가 번역한 에코처럼 번역자 자신의 개성이 반영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일 수 있다는 얘기. 원문으로 읽으면 담담한 문체인 것이 번역으로는 동화스럽기도 하고 (바람의 열두 가지 방향에 실린 몇 단편에 쓰인 존대어 쵝오=_=d), 전체적으로 더 부드럽다. 원문은 대체적으로 건조한 스타일인 것 같은데.


  난 그게 르 귄의 소설 면면에 흐르는 강한 우화성 때문이 아닌가 하는데 아직 확신은 가지 않는다.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




  3.   작년부터 눈치채 가고 있었지만 올해 들어 확신하게 된 사실이 있으니... 유머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싱거운 유머라면 더더욱 좋다. 한국 드라마를 잘 안 보게 되는 것도 8할은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미국 드라마도 유머가 아예 거세될 거라면 정말 아주아주아주 잘 만들어야 한다. Carnivale 보다가 포기한 것도 결국은 유머의 부재 때문이었던가 생각하게 된다... 아니, 그 황량한 잿빛에 숨막힐 것 같기도 했다구.


  난 deadpan humour라 불리는 시치미 뚝 떼고 하는 유머에 약한데, 그런 것치고는 또 노골적인 말장난에도 약하다. 이 두 가지가 다 초특급인 드라마는 웨스트윙인데, 여긴 또 시니컬한 조크도 일품이라, 역시 나한테는 보고 있으면 재치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 그러려면 몇 가지 눈감아야 하는 요소가 있지만, 이 드라마를 한 회 한 회 보면서 내가 킬킬거리는 빈도를 생각할 때 그 정도는 지불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엑스파일을 매우 진지하게 보았던 기억이다.; 역시 이 드라마는 내 성향에 매우 일치하는 듯하면서도 모든 걸 일탈하는 구석이 있다. (모든 화제가 엑스파일로 귀결된다 - 전형적인 팬 증상.)


Posted by Iphinoe

  자, 이제 멀더와 스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죠. :-)






  당연하지만 스포일러 경고








  지금은 벌써 어언 네 달 전이 되었는데, 극장에 가서 처음으로 I WANT TO BELIEVE를 보고 나오던 그 때의 느낌은, '새 엑스파일이 나왔다'는 사실과 관련된 감상을 모조리 제외하면 당혹스러움에 가장 가까웠을 겁니다. 가장 두드러졌던 요인은 스컬리에 대한 묘사였지만, 찬찬히 생각해본 결과 멀더에 대한 묘사도 그 못지않게 결부되어 있었고, 그렇다 보니 결과적으로 M&S에 대한 묘사도 한몫 하고 있었어요.


  먼저 해둘 말은, 침대를 같이 쓰는 멀더와 스컬리라는 설정에는 전혀 거부감도 낯설음도 이질감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이 그다지 놀라울 것도 없었고요. 전 원래부터 멀더와 스컬리에게 좋은 결말이라면, 그러니까 두 사람이 행복하다면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었고, 그 두 사람의 관계가 어디로 수렴해 가고 있는지는 5시즌부터 명백했고 7시즌 이후로는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norm으로서는 진작 수용했던 것 같아요. 제가 스스로를 노로모로 간주했던 건 상당 부분 드라마 내에서 그게 잘 그려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확신이 없고 불안감도 컸기 때문인데, 의외로 이 부분에 대한 영화의 묘사는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솔직히 멀더, 외계인에게 납치 고문당하고 군사법정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탈옥수가 되더니 삶이 안정을 찾은 거냐 싶었지만 ㅋㅋ 어쩌겠습니까, 엑스파일에서 플롯의 개연성을 따지는 건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 쿨럭) 멀더와 스컬리의 로맨스가 드라마에서 직접적으로 그려지는 걸 꺼려했던 또다른 이유는 그것이 엑스파일의 형식과 전개에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는데, 이건 포맷이 TV 드라마에서 영화로 바뀐 지금은 더 이상 적용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I WANT TO BELIEVE를 보며 이질감이나 당혹감을 느낀 건 멀더 스컬리 로맨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멀더와 스컬리라는 개인에 대한 묘사가 기대를 너무 벗어났기 때문이었어요. 새 극장판에서는 멀더와 스컬리의 단점이 비대하게 그려졌고 플롯 전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소화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을 뿐더러,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드라마에서도 간간이 그려졌던 거지만 스컬리는 특정 계층/부류의 사람들, 특히 법의 경계선에 걸쳐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종종 필요 이상으로 적대적입니다. 군인 가정에서 자랐고 현재 경찰직에 몸담은 사람의 편견의 산물이라고 이해하려고 해도 실은 그렇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전과자라고 해서 그런 태도로 다루는 건 다분히 감정적이니까요. 지금은 FBI를 떠났다지만 그 전부터도 그랬거니와, 인생이 뜻한 바대로 풀려가는 건 아니라는 걸 아는 나이에 이르러서도 그런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공격적이 되는 건 사람이 성숙하지 못한 거잖아요. 수사를 위한 전략적인 선택도 아니었고, 실제로 도움이 되지도 못했죠.


  이 편견과 대결하는 과정이 이 영화에서 그려졌느냐 하면 실은 그런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결말이 다른 방향으로 나거나 아니면 결말에서 적어도 언급이 있었어야 할 겁니다. 이건 그냥, 조 신부에 대한 스컬리의 불신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로만 사용된 다음 (제가 보기엔) 휘트니 요원이 죽은 뒤 어딘가에서 그냥 영화 밖으로 사라진 것 같아요. 예전부터 스컬리의 그런 편견섞인 태도가 불편했던 터라 더 크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계속 거슬렸습니다. 피할 수가 없었어요T_T.


  멀더 역시, 다른 사람 특히 스컬리를 대할 때 자주 보이는, 대화가 안되는 먹통멀더^^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멀더는 협상 내지는 적어도 설득을 해야 할 시점에서 삐지는 경향이 있어요. 이 영화 내내 그랬다는 건 아니고, 중간에 병원 탈의실에서 스컬리랑 이야기할 때 그렇습니다. 스컬리가 '더 이상은 돕지 못하겠다'며 수사협조를 거절하는 그 시점은 화를 내야 할 시점이 아닌데, 멀더가 "Good luck." 하고 돌아서는 걸 보면 벌써 알 것 같죠. 그리고 심지어 휘트니 요원이 죽고 조 신부를 찾아왔다가 복도에서 두 사람이 대화할 때도, 스컬리는 위로를 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 자식은=_=; 아직 화를 내고 있어욧 (사실 여기서는 화낸다기보다는 자기 나름대로 결론짓고 사실전달을 하는 거지만).


  그렇잖아도 둘 사이가 많이 안정되어 보여서, 멀더의 일상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일에 몸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 즉 그 안정되어 보이는 모습이 실은 모래 위에 쌓은 성일지도 모르나 - 그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려는 판인데 멀더가 또 토라지고 있으니 이건 멀더답다고 해야 할지 카터답다고 해야 할지 싶더군요. 다행히 그들의 갈등은 엑스파일답게 한쪽이 위기에 빠지자 다른 한쪽이 구출하러 오면서 승화됩니다ㅡㅡ;; 정말 패턴은 바뀌지 않았어요.





  이 글은 '멀더와 스컬리' 이야기도 섞여 있지만 그보다는 '멀더'와 '스컬리'에 대한 것입니다. 멀더와 스컬리의 관계에 대해 이 영화가 취한 입장에 대해서는 (문장 좀 보게) 독립적인 글로 쓸 생각은 아직 없어요. 극장판 2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생각나면 또 건드릴지 모르지만, 이것으로 일단락짓겠습니다. 많이 길었고 별로 영양가 있는 내용도 아니었고 걸리기도 오래 걸렸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Iphinoe

  주티비의 '엑스파일: 나는 믿고 싶다' 단관행사 때 한 가지 눈에 띄었던 점은 스키너 부국장이 등장하는 순간 환호가 제일 컸다는 것입니다. 뒤통수만 보였는데도요. 심지어 스컬리와 멀더가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도 그렇지는 않았어요.


  물론 스컬리와 멀더는 정도차는 있지만 외양이 눈에 띄게 변한 채로 등장했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환호가 나올 수는 없었겠지요. 또 스키너 부국장은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번 영화에 재등장한 유일한 기존캐릭터였으니, 그런 열광적인 환성이 당연한 것이긴 했습니다. 그러니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접어도 되는 일이었겠지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어떤 면에서는 이 드라마를 그동안 부침없이 꾸준히 좋아해 오면서 종종 했던 생각의 연장선상이기도 합니다.


  바로 스키너는 이 드라마 시리즈에서 유보 없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캐릭터들 중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방점은 유보 없이에 찍혀 있는 거죠, 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다른 캐릭터들은, 심지어는 메인인 멀더와 스컬리까지도 좋아한다는 말이 그렇게 당연한 듯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 판단으로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엑스파일에서 스키너와 동급은 론건맨뿐입니다. 펜드렐이라던가 척 같은 좀더 마이너한 캐릭터들을 드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들은 드라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같지 않잖아요.


  멀더나 스컬리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말을 한 사람에 대한 가늠자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의 성향, 취향, 기타 등등에 대한 판단의 지표가 될 수 있죠. hidden agenda 혹은 subcontext 없는 호오가 존재하기 힘든 거예요 (→ 우리말로는 도무지 표현이 생각이 나지 않고, 영어 표현은 아무래도 사전적 정의를 멋대로 전용해다 쓰는 것 같긴 한데 도저히 적절한 단어를 못찾겠네요). 조연들도 상당수가 그렇습니다. 담배 피는 남자CSM을 좋아한다 말하는 것은 (무리없는 발언이고 결코 소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정치적 선언'이 됩니다. 상황과 개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발언을, 선택을 변호해야 하는 거죠. 제가 직접 체험한 건 삐약이 눈물 정도밖에 안 되겠지만, 팬덤에 지치지 않는 논쟁거리를 제공한 멀더리스트와 스컬리스트의 입장 차이 같은 현상이 한 예가 될 수 있겠군요. 물론 그 토론에는 다른 요소도 그 못지않게 작용합니다만.


  거기서 예외적인 캐릭터가 스키너와 론건맨입니다. 론건맨은 정말 보편적으로 사랑받고 거기에 아무도 이견이 없는 캐릭터들이죠. 스키너 역시 우리편과 적을 포괄하는 접촉 범위에 ― Memonto Mori를 보면 2시즌에 결별한 것처럼 나옴에도 불구하고 스키너는 CSM과 원하면 언제든 접선할 수 있습니다 ― 5시즌 초반까지도 필요하면 언제든 모호하게 그려지는 allegiance에도 불구하고 팬덤에서의 호감도는 종종 제 예상을 상회합니다.


  전 그 요인이 크게 두 가지에 기반하는 것이 아닌가 짐작하는데, 우선은 스키너에 대한 묘사가 경제적이었다는 데 원인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3시즌 Avatar, 4시즌 Zero Sum처럼 스키너에 온전히 바쳐진 에피들이 있다는 사실은 역으로 스키너가 외부적으로 '보여지는' 면이 많은 캐릭터였다는 뜻이죠. (Musings of CSM은 기능이 좀 다른 에피소드라 같은 맥락에서 평가해선 안된다고 보고요.) 캐릭터의 부정적인 면을 묘사하는 데 있어 집착적일 만큼 집요하게 파고드는 게 엑스파일의 특징이고, 그 과정에서 그걸 절대 매력적이지 않게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긴 하지만, 스키너나 론건맨 같이 약간은 기능적인 입장에서 출발한 캐릭터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예리한 메스를 들이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도겟과 레이어스가 M&S의 대체 캐릭터로 등장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함에도, 다른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 부분이 커요. 설득력이 있었는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적어도 도겟에게는 파고들 여지를 주려고 노력했지만 레이어스와는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었지요.


  두 번째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게 실은 더 흥미롭고 불명확한 문제인데, 스키너가 이 시리즈에서 일종의 '좋은 가부장' 역할을 담당..아니 전담한 캐릭터다 보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겁니다. 엑스파일의 대체가족 구도는 여러 분석에서 이미 논한 바가 있는 내용이라 굳이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그 속에서 스키너의 '좋은 상사/관리자/아버지/가부장'으로서의 역할이 어떻게 형성되고 작용하는지는, 뭐 그를 제외하고는 FBI에서 합리적이고 선이 분명하면서도 포용적인 간부급 인물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것을 상기한다면 그걸로 이미 Q.E.D.(증명종료)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얘기는 조금은 개인적이고 약간은 꺼려지는 이야기인데... 저는 사실 이 부분이 조금은 껄끄럽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껄끄럽다고 말하기조차도 껄끄러운데, 우야든둥 저도 스키너를 매우 좋아하고 이런 윗사람이 현실 속에 존재하기가 쉽지 않으며 있어주기만 한다면 그저 감사해야 할 존재라는 걸 알지요. 그리고 그런 걸 다 떠나서 드라마에서 묘사된 스키너라는 개인에 대한 애정도 당연히 크고요. 그럼에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 문제가 엑스파일이라는 드라마 자체에 대한 제 태도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쓰기는 거창하게 썼는데, 간단히 말해서 저는 이 드라마에서 가족주의에 반하는 시각을 보는 것이 좋았어요. 이건 개인적인 선호의 문제라, 제가 그렇다고 엑스파일이 그런 방향으로만 가야 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멀더와 스컬리의 관계가 명백하게 흘러가기 시작한 5시즌 이후로는 적어도 두 사람이 함께하는 것이 두 사람에게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했고, 아마 그랬기 때문에 I WANT TO BELIEVE에서 침대를 함께 쓰는 두 사람의 모습에도 그다지 저항감이 없었을 겁니다. 카터가 잘 그려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혹감도 별로 없었어요. 그러나, 혹은 그럼에도, 이 시리즈가 내가 알던 그 모습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은 셈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약간은 미묘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같지요. 그리고 선량한 가부장으로서의 스키너의 존재가 이 새로운 구도 속에 일종의 확인 도장을 찍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엑스필들의 극장판 2 단체관람 때 스키너의 등장에 쏟아진 환호 속에 느꼈던 당혹스런 이질감의 정체와 그 근원을 파악해 보려는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부디 너무 돌은 던지지 말아주세요^^;


Posted by Iphinoe

  1.   한동안 폭스채널의 노예처럼 살다가 (주로 몽크Monk와 본즈Bones 때문) 로앤오더Law & Order 2시즌부터 제대로 꽂혀서 한 달 넘게 The "soul" of L&O에 허우적대고 있는 중. 하지만 SVU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덜 먹힐 스타일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3시즌 방영 도중에 콜드 케이스Cold Case에 방송 시간을 내주고 자정으로 밀렸었다. 그러고는 더 할 계획이 없어 보였는데, 최근 7시 반 타임에 3시즌 재방송을 해주고 있어서 들며날며 보고 있다.

  역시, 다시 보는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정자세로 앉아 몰입하게 만드는 에피가 아주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중간중간 집중이 날아가는 경험도 솔찮이 하고는 있다. 재미가 없다는 뜻은 아닌데, 여러 번 보면서도 몰입도가 저해받지 않는 작품이 워낙 드문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엑스파일과 웨스트윙이 내 안에서 정말 대단한 작품인 것. 물론 그 둘 사이에서도 XF와 TWW의 격차는 꽤 크다.

  그럼에도 배우들, 특히 고정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subtle한 연기 할 때는 정말 좋다. 그런 점 때문에 결국 또 보고 또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정말 힘있는 에피소드들이 종종 터져주는 것 때문에.




  2.   L&O 3시즌 첫방 끝나고 나서 그 파트너쉽들이 아까워서 (→ 이 말은 좀 설명이 필요한데, 그러니까 로앤오더는 고정 캐릭터 여섯 체제로 움직인다. 역할에 따라 경찰 쪽에 셋이 있고, 검찰 쪽에 셋이 있는데, 3시즌 끝나면서 고정 캐릭터 둘이 한꺼번에 바뀐다) 만만한 팬픽션닷넷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아뿔싸, 갑자기 EFC에 불이 붙었다. 이 시리즈는 사실 그다지 좋아하는 수준까진 아니었는데, 거기서 놀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좀 뒤져보다, 나와 프로파일링 & 시리즈에 대한 태도가 모두 일치하는 작가들을 생각외로 은근히 많이 발견한 것이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B급 SF인데, 기본 설정이나 캐릭터들의 성숙도 때문에 성인 시청자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물론 내 취향과 비슷해 보이고 길지 않은 작품들만 취사선별해서 읽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원래 드라마에선 아주 가끔 꼬리를 드러냈던 기묘한 아름다움을 증폭시킨 팬픽들을 간간이 만날 수 있다.

  그 덕분에 시리즈 자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고, 그러다 어제 드디어 내가 이 드라마를 몇 편 녹화해 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0-; 잊고 있었다. 오매불망 다시 보고 싶어하는 단 하나의 에피소드는 녹화를 못 했었지만, 원래 시리즈가 어땠었는지 거진 잊어가고 있던 터라 어제 한 번 다시 걸어봤다.

  어설프긴 좀 많이 어설프더라 ㅎㅎ. 원래 이렇게 내놓고 미래세계인 SF는 스타트렉처럼 아예 배경이 다르거나 아니면 돈을 많이 붓지 않는 이상 티가 나기 마련인데, 파이널 컨플릭트Earth: Final Conflict는 돈 없어 보이고 배경도 지구인 데다 트와일라잇 장르적인 성격이 섞인 터라서 화면이 구린 건 어쩔 수 없었다. 좀 과하다 싶을 만큼 형광톤이 되는 것도, 그 때 볼 때는 잘 몰랐는데, 그 뒤에 다른 것들 보다 보니 어설픈 특수효과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 같거든. 배우들도 연기의 맥을 잘 잡지 못해 어설픈 것이 눈에 보인다. 4시즌이면 할 만큼 해왔고, 2-3년 이상 레귤러였던 배우들도 수두룩한데 연기하면서도 다같이 조금씩 어색해 하는 것 같았다OTL..



  원래 EFC는 드라마 그 자체보다도 그 설정에서 오는 가능성 때문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라서, 그 어색함에 몸이 근질거려 가면서도 재미는 있었다. 그런 시리즈들이 좀 있다. 다크 엔젤Dark Angel도 그랬고, 로스웰Roswell도 그랬었고. Roswell은 원작이 소설 시리즈였고, DA는 잘 모르겠지만 EFC는 뒤에 소설로도 좀 나온 모양인데 그건 기회 되면 읽어보고 싶다. 소설로는 훨씬 근사하게 뽑혀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서. 전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이 묘사되기 때문에, 무대를 조금만 바꾸어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고, 담길 수 있는 이야기도 많다.




  3.   중요한 건 가장 마지막에. 엑스파일에 대한 생각은 신기하게도 최근 줄어들었다. 나 자신의 원인도 있겠지만, 아마도 큰 부분은 I WANT TO BELIEVE 탓이 아닌가 한다. 이 영화의 존재가 은근히, 의식 못하는 사이에 많은 것을 바꾸었다.

  M&S에 대한 묘사 때문일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영화가 closure이긴 한데 - 후속편이 나오고 아니고를 떠나서 말이다 - proper closure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이건 내 문제일까? 내 문제일지도 모른다.


Posted by Iphinoe

산도발과 크라이첵

our town 2008. 11. 17. 13:05




  Earth: Final Conflict 4시즌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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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내가 Earth: Final Conflict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산도발 때문일 것이다. 원래도 모순된 캐릭터들이 흥미를 끌었거니와, 우연히 지나가다 마주친 4시즌의 한 에피소드에서 산도발이 굉장히 크라이첵 과로 보였기 때문이다. 크라이첵은 처음에 성우 때문에 내 눈길을 끌었고 (사람의 취향이 그렇게나 일관된 것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그 다음에는 그 캐릭터의 단호함과 모호함이 나머지를 채워준 케이스인데, 나는 그의 driving force, 즉 그가 움직이는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것 때문에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이기적인 캐릭터가 아니었고, 그 자신만의 생존을 노리고 움직이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정보의 전모가 전면에 드러난 적이 한 번도 없고, 따라서 겉보기에 양쪽 진영을 모두 오가며 상황에 따라 말바꾸기를 비굴할 만큼 쉽게 하는 모습에 걸맞는 논리를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EFC의 로널드 산도발은 이 시리즈에서 가장 명백한 악역 중 하나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는 2-4시즌까지 시리즈의 명실상부한 메인 악당이었던 조올Zo'or을 능가하는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조올이 인류에 대해 행하는 사악한 짓은 일견 나 또는 우리가 아닌 남에 대한 것이지만, 산도발이 조올의 행동대장으로서 그걸 돕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에 반하는 행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외계인인 Taelon들의 경호원이자 조력자들(Protectors)은 그런 윤리적 판단을 무력화시키고 오로지 Taelon에 대한 충성심만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장치를 머리에 이식하고 있으므로, 따지고 보면 그게 전적으로 그의 잘못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산도발이 조올을 돕는 데 있어 유독 철저했고 그 과정에서 그 스스로의 권력욕이 단 한 번도 경시된 적이 없기 때문에, 그의 가혹함이 유달리 돋보였던 것이다.


  그 구도가 일탈하기 시작하는 게 4시즌 후반부이다. 테일런이 인류를 돕는 척하면서 뒤에서 착취하고 있는 진정한 이유가 밝혀지면서 조올은 단순한 인류의 적이 아니라, 테일런과 인간 모두를 버리고 혼자 살아남으려는 이기적인 존재로 자리매김을 한다. 테일런은 단순히 자리디언이라는 적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에너지 소스의 부족으로 인해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었고, 조올은 인류를 통해 존속의 희망을 찾으려는 테일런 의회의 노력을 이용해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고 있었다. 그는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산도발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은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인데, 이 시리즈의 주인공이 (당연하게도) 산도발이 아닌 고로 자세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 이래서 팬픽 쓰는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겠다.^^ 그러나 밑그림은 주어진다. Companion Protector로서 머릿속에 이식했던 문제의 장치가 고장나면서 자신이 해온 일의 진정한 의미와 결과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된 산도발이 - 그리고 인류와 테일런 양쪽에 대해 숱한 음모를 획책해 온 조올의 오른팔인 그가 모든 진실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 테일런들을 등뒤에서 배반하여 그들과 전쟁 중인 적 자리디언들과 손을 잡고는 상당한 기간 동안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해왔던 것이다.


  이 정도 되면, 내가 왜 크라이첵과라고 했는지 이해할 것이다. 테일런은 인간들을 이용하고 있었고 조올은 그런 테일런들의 노력까지 이용할 마음이 있었으며 산도발은 테일런에 대해 무조건적인 헌신과 충성을 세뇌시키는 장치를 이식받아 그런 조올의 음모를 전적으로 돕고 있었다. 그러다 테일런들의 본질을 깨닫고는, 그동안 해온 일을 바로잡으려 노력한다. 다 좋다. 그런데 이 자가 취한 해결 방식이 지극히 자기중심적인데다 근시안적이어서, 그 점이 재미있달까 흥미있달까 그러했다.


  산도발이 취한 액션을 보자. 그는 우선 지구정부와 접촉해서 사면권과 금전적 보상을 얻는 대가로 테일런들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다. 그러나 자신의 진의를 사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모종의 배신감에 사로잡힌 것 같다. 이 계획이 불발되자 한 발 더 나아가 테일런들의 적인 자리디언과 뒷거래를 한다. 테일런들을 멸망시키고 나면 지구의 지배권을 넘겨달라는 것이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는 배신당하고 테일런과 인류는 함께 공멸의 위기까지 몰린다. 그럼 대안은 없었느냐? 있었다. 윤리의식이 모호하긴 하나 상황에 따라 손잡을 수 있는 좀 더 나은 테일런도 있었고, 활동 중인 저항 조직도 지구에 있었지만, 산도발 역시 다른 사람의 선의를 쉽게 믿지 못하고, 거기다 저항 조직의 능력을 의심한 터라 그는 자기 보기에 빠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뼛속까지 악당이라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데 방법까지 글러먹었다, 너무 재미나다.


  확실히, 테일런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충성을 담보하게 하는 그 장치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이후의 산도발은 여러 측면에서 크라이첵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산도발과 크라이첵을 같이 놓고 보다 보니, 크라이첵의 선의에 대해 믿고는 싶었지만 그다지 확신이 없었던 내 그동안의 숙제에 서광이 비치는 것도 같다.^^


  크라이첵에게는 권력욕이 없다. 산도발이 궁극적으로 괴물이 되는 것은 그가 문제의 기계장치를 이식하고 저지른 짓들의 사악함 때문이 아니라, 그 장치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이 그동안 무슨 짓을 해왔는지 깨닫고서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취한 방식이 너무나 엇나갔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본인이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 자기파괴적인 성향이야 없더라도 에고가 강한 인물이긴 하다 - 그렇다 해도 이미 그 시점에 이르러 그것밖에 대안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리고 거기 지구의 지배권을 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건 이 캐릭터가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는 얘기인 것...ㅡㅡ; 5시즌은 보지 않았지만 5시즌의 산도발이 이미 제정신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긴 5시즌에 이르러서는 시리즈 자체가 미친 상태였지만.


  하고자 하는 말이 내 안에서도 그다지 분명했던 것이 아니라 중언부연한 느낌이긴 한데, 어쨌든 이걸로 끗ㅡㅡ;







  P.S. 드라마 자체에 대한 첨언. 사실 그다지 좋아하는 시리즈도 흥미있어하는 시리즈도 아니었다만, 설정이나 산도발의 캐릭터 같이 당기는 요소들이 몇몇 있었다. 각 에피소드가 재미있다기보다는 전체 설정과 캐릭터 설정에서 보이는 가능성이 매력적이어서 관심을 가졌던 편이다. 그 가능성을 시리즈가 120% 다루어주진 않았기에 그 점이 아쉬웠으나, 전체적으로 B급 SF였던 터라 할 수 있는 한은 했다는 생각이다. 5시즌은 제외. 거긴 총체적 난국에 드라마에 대한 추억마저 (있었다면) 망쳤을 재앙이었다. 엑스파일 8-9시즌은 사실 여기 대면 명함도 못내민다.
  이 드라마는 주연급이 자주 교체된 편인데, 나는 르네 팔머 Renee Palmer, 리암 킨케이드 Liam Kincaid, 조올 Zo'or, 다안 Da'an, 로널드 산도발 Ronald Sandoval이 메인급이던 3-4시즌에 제일 익숙해 있다. 따뜻하고 넓은 마음씨의 휴머니스트 분 Boone 요원을 사랑하는 코어팬들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정작 나는 분 요원을 잘 모른다. 내게 이 시리즈의 여주인공은 (릴리가 아니라) 르네이고, 남주인공은 모르겠다. 산도발은 전 시즌 출연한 유일한 캐릭터이긴 하지만 나도 양심이 있지 주인공이라 부를 수는 없고, 리암에 대해서는 좀 유보적이다.




  P.S. II.  쓰긴 했는데, 이 시리즈에 대해 관심가지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E 채널에서 방송은 했었다.


Posted by Iphinoe

The X-Files

homo literatus 2008. 11. 11. 22:04

  이 포스팅만은 분류가 애매한데 할 수 없다...;




The X-files 2x25 Anasazi

ⓒ 20th Century Fox & 1013 Production


  스컬리 침실의 책장. 왼쪽 아래로 침대 틀이 보인다. 어두운 오른쪽 책장은 제외하고, 왼쪽 책장을 보면 두께가 장난들이 아닌 데다 대부분이 하드커버다. 스컬리가 읽는 심심풀이 땅콩 페이퍼백들이 있다면 그건 어떤 종류의 책들일까나. (→ '티파니에서 아침을'. 어느 에피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우야든둥 스컬리가 아직은 사적인 삶이 있던 초반 시즌이었다=_=;;)





The X-files 4x17 Tempus Fugit

ⓒ 20th Century Fox & 1013 Production


  아주 잠깐 지나가는 스컬리 책장. Anasazi에서는 사각에 놓여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침실 한켠에 서 있다. 꽂혀 있는 책들의 두께로 보아 이쪽은 단행본이라기보다는 잡지나 복사물 위주인 듯. 탁상등 옆에 침대가 있는데, 어쩌면 2시즌과 4시즌 사이에 방 배치가 바뀐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P.S. 멀더 책장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멀더가 아파트에 책장을 두고 사는지 아닌지의 여부부터가 미지수라서 말이다. 지독한 일벌레 타입이었으니 아예 필요한 건 다 사무실에 갖다두고 지냈는지도?


Posted by Iphinoe

팬픽 잡담

afterwards/chitchat 2008. 11. 5. 21:52

  최근 팬픽션닷넷에서 놀고 있습니다. 제가 접했고 캐릭터 또는 스토리에 일부나마 관심을 가져봤던 미드가 생각보다 꽤 많더군요. Popular나 Earth: Final Conflict처럼, 우리나라에는 방송되지 않았거나 방송되었어도 거의 이야기되지 않았던 시리즈들도 있습니다.


  보통 TV시리즈 팬들은 웹에 팬픽션 아카이브를 별도로 가지고 있죠. XF에겐 고사머, 스타게이트 SG-1은 스타게이트팬닷컴이 있고, 로앤오더는 아포크리파에 주로 모이는 것 같더군요. 로스웰은 종영 전에는 크래쉬다운이 대표적이었는데 요즘은 활동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버피버스야 버피월드가 꽉 잡고 있지요. 그러니 팬픽션닷넷에서 접할 수 있는 정도를 가지고 경향성을 운운한다는 건 좀 부정확한지도 모르겠지만, 목록을 죽 훑으면서 관심가는 걸 골라내다 보면 모종의 일관성이랄까 경향 같은 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스타게이트나 엑스파일은 일단 대작들이 많고, 스케일이 큰 것들도 자주 나옵니다. 로앤오더는 의외로 비그넷 위주더라구요. EFC는, 최근에 찾아보고 놀랐는데, 시리즈의 메인 안타고니스트라 할 수 있는 산도발에 대해 양가적이거나 꼭 전향적이진 않다 해도 은근한 태도를 지닌 팬픽들이 제법 있더군요. 사실 원작에서는 그렇게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다뤄지진 못했었어요. (아쉬웠던 부분이라...)


  팬덤에서 팬픽이 나름대로의 경향을 수립해 가는 걸 보면 가끔 재미있을 때가 있는데, 스타게이트처럼 매 회가 포스트 에피 팬픽을 불러서 이게 독립장르화된다거나 아니면 엑스파일처럼 케이스파일/로맨스물의 분리 성향이 두드러진다던가 하는 장르적인 경향성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팬픽을 통해 캐릭터들에 대한 특정 프로파일링이 고착되는 현상이 제일 흥미로워요. 스타게이트 팬덤에서 잭과 다니엘 페어가 보이는 양상은 너무 정형화되어 재미가 없을 지경이고, 어느 드라마에서나 캐릭터에게 드리우는 트라우마가 강한 특정 에피소드들은 수없이 반복되죠. 심지어 겨우 2시즌 하고 끝났던 Popular에서도 커플링이 거의 정해져 있더라고요.


  집단적으로 형성되는 독립적인 우주란 (종종) 재밌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함께 창조한다는 게 굉장히 흥미롭고 매우 강렬한 경험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투입과 산출의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경우는 더 그렇죠.


  (결론은 없습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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