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타는 이 글이고, acrobat 님께서 그에 해주신 말씀과 관련해서 몇 가지 첨언합니다.




  제 글이 약간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써진 것 같아요. 원래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1. '네덜란드 구두의 비밀'의 문체가 번역본으로 볼 때보다 원본이 아주 살짝 더 얄미운 느낌이더라,
  2. 그게 퀸을 귀엽게 만드는 유머의 원천 중의 하나이고 또 (우연이 아니게도) 내게 먹히는 종류의 매력이다
  3. 고전기 영미권 작가들이 구사하는 유머에 번역하면서 전달이 잘 안 되는 것들이 종종 있는데, 퀸이 구사하는
  유머는 그와 달리 비교적 잘 살아남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더라

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건 어감의 문제라 나 자신은 퀸의 문체가 아주 약간 더 잘난척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100% 확신하기는 역시 어렵다,는 쓰려다 만 말이고요.


  저도 EQ의 유머는 단편에서 좀 더 노골적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도입부에서 불필요한 인용이나 쓸데없이 복잡한 미사여구를 기용해 머리를 어지럽히고 시선을 교란하는^^; 때가 많죠. 그것도 역시나 퀸의 매력 중의 하나고요. 그게 매력이 될 수 있는 근원은 acrobat 님 말씀대로 퀸이 미숙한 젊은이(=도전하는 자)의 심성을 지닌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과,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 기저에 깔린 감성이 자기비하적인 색채를 은연중에 간직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겠지요. 퀸이 시리즈의 흐름에 따라 설정상 나이를 먹을 만큼은 먹으면서도 나이를 먹는 것 같지 않는 것은 전자의 요소가 후자와 면밀히 결부되어 시리즈 전반에 흐르고 있는 덕분일 겁니다. 지금 생각나는 예는 시그마 시리즈 중 가장 나중 작품인 '일곱 건의 살인 사건'인데, '로마 모자의 비밀'에서부터 시작해 엘러리가 몇 살인지를 따져 보면 그 나이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그게 잘 드러나지 않죠. 캐릭터 본인은 나름 애쓰지만 작가로서의 묘사를 보면 이 인간 (정신)연령이 본래 몇 살인지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


  실은 원 글을 쓰면서 cocky 또는 cockiness 요 단어를 너무나도 쓰고 싶었는데, 요새 양쪽 언어를 분리해서 쓰려고 노력하는 중이라 자제했습니다. 제게 있어 어감상=_=;; 엘러리 퀸 개인이 주는 느낌을 이 이상 잘 설명해 주는 단어가 없더군요. 얄밉다는 단어도 글 쓰고 나서야 생각났고, 실은 제게 있어서는 꼭 정확하진 않아요. 이렇게 되면 심란해집니다.


  그리고 이건 여기까지 acrobat 님께 동의하면 자동적으로 그 다음도 동의하는 게 될 것 같아서 덧붙이는데, 저도 엘러리의 논점일탈하는 인용이나 꼭 애들이 어깨를 으쓱하고 뽐내는 것 같은 수준의 유머(실은 둘은 같은 맥락이죠)를 다 좋아하고, 그 근간에 있는 은근한 자기비하와 그에 공존하는 자신감까지 좋아하긴 하는데, 그 이유를 찾으라면 제 경우는 가벼운 수다가 주는 편안함을 살갑게 여기고 있다는 게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퀸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스스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있고 그게 시리즈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잖아요. 자기비하도 같은 맥락이고, 내놓고 뻐기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거죠. 그래서 아무리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아무리 심각해진다 하여도 기본적으로는 유쾌한 정서를 지니고 있고요.


  물론 저도 퀸의 정서에 아주 많이 공감합니다. 기본적으로는.-.ㅡ;;



  그리고 퀸이 홈즈의 정통적 계승자라는 말은 그 자체로 설명이 더 필요한 발언인 것 같은데요. 얼마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명제일까요? 추리소설사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하니 그 이상은 말하기 어렵지만, 퀸 경감에 대한 애정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서.^^ 저도 퀸 경감을 좋아하는 건 사실인데, 퀸 경감 본인을 좋아한다기보다는 퀸 부자가 함께 있을 때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 이상 깊게 들어가 뭔가를 건지지는 못했는데, 어쨌든 그래서 얄팍하다거나 가볍다는 지적도 때로 받아온 퀸의 1기 작품들에 대한 애정을 꿋꿋히 피력하고 있는 것이지요. 더할 나위 없는 오락이 되어주니까요.


Posted by Iphinoe

  1956년작입니다. 데뷔작 '로마 모자의 비밀'이 1929년에 나왔고, 마지막 장편이 1971년(A Fine and Private Place)에 나온 것 같;;으니 후기작에 속하는 것일까요. 두찬 님께서 클럽에 올려주신 리스트에 의존하자면 퀸이 직접 쓴 작품입니다.


  전 사실 이 책이 단편집인 줄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제목의 'case'에 제멋대로 's'를 붙여버리고는 혼자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퀸 노경감님의 단독 수사집이라! 멋있는 컨셉이 아닙니까? 아버지와의 공조수사를 빙자한 엘러리의 수사담도 재미있지만, 두 사람의 콤비플레이를 보여주려면 아무래도 '범인'인 아버지가 '비범인'인 아들의 그늘에 가리게 되니까요. 엘러리가 조연으로 나오건, 아예 나오지 않건, 아버지 퀸의 독자적인 수사담도 재밌겠다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장편인 걸 알고 나서 조금 기운이 빠지긴 했습니다만, 그건 순전히 원서를 읽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안타깝다는 정도였지, 기대가 줄어든 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여러 사건을 보는 게 한 사건을 보는 것보다 더 재미있을 수는 있겠지만, 제 생각에 퀸의 진가는 아무래도 단편보다는 장편에서 빛나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이 책은 '센터 가의 경감 퀸의 수사담'이 아니라, '은퇴한 센터 가의 경감 퀸의 수사담'입니다. 제 기대가 결정적인 부분에서 배반당한 것이지요. 부하들을 떼거지로 몰고 다니는 당당한 간부급 경찰 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이제 퇴물이 되어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정년퇴직자 퀸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불만이냐고 물으신다면, 불만입니다!!! 불만이고말고요. 리처드 퀸은 더 이상 경찰이 아니고, 전직 경감인 섬처럼 탐정 개업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는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입장에서 뛰어다니게 됩니다. 아마추어지만 적어도 뉴욕 경찰과 최소한의 공조 관계라도 맺고 있었던 엘러리와는 달리 그는 철저하게 무관의 시민이거든요. 게다가 이 소설에서 나레이터가 있다면, 그건 퀸이라기보다는 사건의 관계자이며 퀸과 핑크빛 모드를 연출하게 되는 다른 주인공입니다. 퀸은 자기 목소리를 가질 때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소설 진행 시간 동안 그 여자의 눈으로 '보여지게' 됩니다. 즉, 제가 못마땅한 것은, 한마디로 이 소설은 리처드 퀸이라는 캐릭터에게 그가 가졌던 무게와 그동안 수행해준 역할만큼의 대접을 못해주고 있다는 거죠. 명색이 '퀸 경감의 단독 수사'를 전면으로 내세운 소설이 말입니다.^^


  수사 대상이 되는 사건은 상당히 냉혹한 범죄입니다. 태어난 지 이제 겨우 세 달 된 아기가 피살자거든요. 이 아기는 아이를 기를 입장이 되지 못하는 어머니가 낳아, 불법 입양 주선을 전문으로 하는 악덕 변호사의 손을 거쳐 한 부잣집에 입양이 됩니다. 바로 이 아이가 죽은 것이지요. 정황이 애매하기 때문에 사고사인가 살인인가가 논란이 되고, 시신을 처음 발견한 간호사는 살인을 주장하지만, 간호사가 봤던 증거가 범행 현장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경찰은 여자가 환상을 봤다고 단정하고, 검시재판도 사고사로 결정을 내립니다. 그러나 리처드 퀸은 간호사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두 사람은 함께 범인을 쫓습니다..


  리처드 퀸도 경찰직을 떠난 상태인 데다, 파트너 역할을 맡는 이 여자는 철저하게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본격물이라기보다는 모험담에 가깝습니다. 약간은 하드보일드적인 성격과 크리스티의 가벼운 모험물 같은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퀸은 발로 뛰는 편이고, 퀸의 파트너는 퀸을 보조하면서 동시에 보호를 받는 존재가 됩니다. 퀸은 수사의 방향을 잡느라 고전하지만, 단서가 놓여 있는 곳까지는 제대로 찾아갑니다. 그러나 마지막의 추리는 퀸이 아니라 무려 퀸의 파트너의 몫이 됩니다. 퀸은 대부분의 액션을 담당하지만, 처절하리만치 실질적으로 한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뼈아픈 실책까지 저지르게 되지요.


  그러나 로맨스는 결실을 맺습니다. 제일 큰 스포일러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범인 이름을 대지는 않았으니...;; 퀸의 마지막 대사는 "엘러리가 이 일을 알면 뭐라고 할까?"인데(엘러리는 이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내내 유럽에 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저도 그게 제일 궁금하군요. 그 다음 장편은 1958년작 'The Finishing Stroke'인데, 이 책은 언제나 구해볼 수 있게 될까요..




  p.s. 퀸을 그린 방식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느라 정작 책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못한 것 같네요.=)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려면 범인의 정체를 밝히고 시작해야 하니... 그런 건 다음에 마음이 난다면 생각해보고 싶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어느 세월에 가능할지.



  (2005. 02. 12)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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