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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다른 데서 써서 완성되면 여기 올리자,고 생각했더니 쓸데없이 시간이 들어서 포기. 글의 성격인즉슨 잡담인데 쓸데없이 말이 복잡해지는 것도 싫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앞부분은 다른 데서 쓰기 시작했고, 중간에 여기로 가져와서 말 나오는 대로 올립니다. 아마 그 경계가 어디인지까지 표가 확 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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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러리 퀸의 1931년작인 '네덜란드 구두의 비밀The Dutch Shoe Mystery'는 퀸의 주무대 뉴욕에 있다는 네덜란드 기념 병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다룬다. 시간차 트릭과 밀실 트릭을 변형 혼합하여 수수께끼로 제시하는 작품이고, 다 펼쳐놓고 보면 물적 증거 몇 가지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사건을 풀어간다. (이 정도면 스포일러는 피해갔나=_=) 몇 년 전에 헌책방에서 영문판 페이퍼백이 돌아다니는 걸 보고 사두었는데,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병원 내부 묘사가 너무 심란해지는 부분은 더러 건너뛰기도 했-0-고 사전은 최소한으로만 찾았으나, 그 외에는 비교적 충실하게 읽었다.



  엘러리 퀸의 작품에서 많은 경우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현학을 장난스레 써먹는 그 유머 감각 ― 차라리 '기교'라 부르고 싶은 ― 이다. 으스대고 있는 게 맞긴 한데 말투는 농담 따먹자는 식이어서, 내놓고 잘난척을 하면서도 그걸 귀여운 수준으로 만든다. 독자를 향해 눈을 찡긋해 보이는 것처럼. 이 재주 부리는 말투는 등장인물 엘러리 퀸만 그런 게 아니고 작가 엘러리 퀸으로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다시 말하면 글의 문체가 그렇다는 것이고, 퀸의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 원문의 맛을 보고 싶었던 것은 상당 부분 이 사탄같은 말솜씨 때문이었다.


  퀸만 그런 게 아니고, 고전기라고 불리는 시대의 작품들에는 대체적으로 유머가 많이 배어 있다. 코넌 도일와 아가사 크리스티 역시 유머를 살려 글을 썼다. 이들의 유머 중에는 영어라는 언어의 특성에 기대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원어로 읽을 때에야 비로소 잡아낼 수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존재한다. 영어는 관계사와 같은 수식어를 통해 한 문장에 여러 개의 정보를 담는 게 가능한데, 그 정보들 사이에는 별다른 관계가 없을 때도 많다. 영어로 쓰인 글에서 이를 이용해 유머를 구사하는 걸 종종 보는데, 그런 유머는 상당 부분 어감의 문제이다 보니 문장 구조가 다른 우리말로 옮겨오면 덜 명백해지는 경우가 생긴다.


  엘러리 퀸이 주로 구사하는 유머는 위에 썼듯 성격이 좀 다른 것이어서 번역된 뒤에도 살아남는 종류의 유머 감각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The Dutch Shoe Mystery'를 읽어 보니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전부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뻐기는 태도가 전체적으로 톤다운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등장인물) 퀸의 발언보다 (작가) 퀸의 서술을 통해 드러나는 잰체하는 유머가 콕 꼬집어 말할 수 없을 만큼 은근히 조금씩 톤이 낮추어져 있었다. 이 작품이 겨우 퀸의 세 번째 소설이기 때문에 그런 유머가 더 노골적이진 않나 생각하는데, 나야 진즉에 넘어간 상태라 그런 유머 감각에(도?) 낄낄거려 가며 매우 즐겁게 보았다.



  퀸을 왜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늘 말해 왔었는데, 이 독서를 통해 모종의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딱히 그 덕분이라기보다는, 오랜 동안 이 문제에 대해 알게 모르게 생각을 해왔고 그 덕분에 형성된 모종의 느낌이 이 시기에 이르러 구체화될 기회를 잡았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이번에 새삼 깨달은 것은 내가 확실히 EQ의 유머감각에 약하다는 것이다. 즐거움을 준다,는 그 이상에 매우 몹시 충실하다. 물론 이건 내 성향하고 퀸이 구사하는 유머하고 맞는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지만, 퀸이 정말 잘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이 정도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어려서 접한 탓이 큰 듯.




  가외의 생각들.


  1. 이 역시 새로운 건 아닌데, 퀸이 경찰의 초동수사를 참 잘 그려낸다는 생각을 새삼 했다. 상세하고 사실적이다. 내내 농을 하고 있다는 스타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현실감 있게 느껴질 수 있도록 잡아주는 게 바로 이 부분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네덜란드 구두의 비밀'은 넉넉잡아 반 이상의 분량이 초동수사를 묘사하는 데 할애되어 있는데, 이건 국명 시리즈의 전반적인 공통점이고, 더 후기작들까지도 이어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관계자이면서도 수사의 당사자는 아닌 엘러리 퀸의 동선을 따라다님으로써 경찰이 사건 현장에서 으레 하게 되어 있는 반복적인 활동들에 지면을 지나치게 할애하는 위험은 방지한다. 이것의 대표적인 예는 '프랑스 파우더의 비밀'. 작가 퀸은 탐정 퀸을 적절한 순간에 시체가 발견된 현장에서 빼내어 범죄 현장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올려보낸다. 경찰이 '헤집어놓기' 전에 둘러볼 수 있도록, 적절한 핑계를 달아서.


  2. 의외로 영어가 어렵지 않았다. 물론 단어 수준은 내가 사전 없이 읽을 수 있는 정도를 상회하지만, 문장구조가 까다롭다거나 하는 그런 어려움은 없었다. 내용을 다 알고 읽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하신다면 ― 당연히 그것도 있겠지요. =) 그러나 단편, 특히 도입부에서 자주 부리는 고도의 기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쩌면 이렇게 느끼는 건 문맥일탈 맥락없는 인용이 장편에선 좀 드물어서인지도-_-


  사족. 이건 퀸 씨와는 전혀 관계없는 얘기. 어찌된 게 요새는 우리말로 글을 써도 문장 구조나 단어 선택이 매우 영어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괴롭다. 이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을 듯한데, 왜냐면 해당 경우에 우리글에서의 모범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내 지식이 형편없이 빈약하기 때문.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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