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h: Final Conflict'에 해당되는 글 3건


  1.   한동안 폭스채널의 노예처럼 살다가 (주로 몽크Monk와 본즈Bones 때문) 로앤오더Law & Order 2시즌부터 제대로 꽂혀서 한 달 넘게 The "soul" of L&O에 허우적대고 있는 중. 하지만 SVU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덜 먹힐 스타일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3시즌 방영 도중에 콜드 케이스Cold Case에 방송 시간을 내주고 자정으로 밀렸었다. 그러고는 더 할 계획이 없어 보였는데, 최근 7시 반 타임에 3시즌 재방송을 해주고 있어서 들며날며 보고 있다.

  역시, 다시 보는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정자세로 앉아 몰입하게 만드는 에피가 아주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중간중간 집중이 날아가는 경험도 솔찮이 하고는 있다. 재미가 없다는 뜻은 아닌데, 여러 번 보면서도 몰입도가 저해받지 않는 작품이 워낙 드문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엑스파일과 웨스트윙이 내 안에서 정말 대단한 작품인 것. 물론 그 둘 사이에서도 XF와 TWW의 격차는 꽤 크다.

  그럼에도 배우들, 특히 고정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subtle한 연기 할 때는 정말 좋다. 그런 점 때문에 결국 또 보고 또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정말 힘있는 에피소드들이 종종 터져주는 것 때문에.




  2.   L&O 3시즌 첫방 끝나고 나서 그 파트너쉽들이 아까워서 (→ 이 말은 좀 설명이 필요한데, 그러니까 로앤오더는 고정 캐릭터 여섯 체제로 움직인다. 역할에 따라 경찰 쪽에 셋이 있고, 검찰 쪽에 셋이 있는데, 3시즌 끝나면서 고정 캐릭터 둘이 한꺼번에 바뀐다) 만만한 팬픽션닷넷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아뿔싸, 갑자기 EFC에 불이 붙었다. 이 시리즈는 사실 그다지 좋아하는 수준까진 아니었는데, 거기서 놀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좀 뒤져보다, 나와 프로파일링 & 시리즈에 대한 태도가 모두 일치하는 작가들을 생각외로 은근히 많이 발견한 것이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B급 SF인데, 기본 설정이나 캐릭터들의 성숙도 때문에 성인 시청자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물론 내 취향과 비슷해 보이고 길지 않은 작품들만 취사선별해서 읽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원래 드라마에선 아주 가끔 꼬리를 드러냈던 기묘한 아름다움을 증폭시킨 팬픽들을 간간이 만날 수 있다.

  그 덕분에 시리즈 자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고, 그러다 어제 드디어 내가 이 드라마를 몇 편 녹화해 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0-; 잊고 있었다. 오매불망 다시 보고 싶어하는 단 하나의 에피소드는 녹화를 못 했었지만, 원래 시리즈가 어땠었는지 거진 잊어가고 있던 터라 어제 한 번 다시 걸어봤다.

  어설프긴 좀 많이 어설프더라 ㅎㅎ. 원래 이렇게 내놓고 미래세계인 SF는 스타트렉처럼 아예 배경이 다르거나 아니면 돈을 많이 붓지 않는 이상 티가 나기 마련인데, 파이널 컨플릭트Earth: Final Conflict는 돈 없어 보이고 배경도 지구인 데다 트와일라잇 장르적인 성격이 섞인 터라서 화면이 구린 건 어쩔 수 없었다. 좀 과하다 싶을 만큼 형광톤이 되는 것도, 그 때 볼 때는 잘 몰랐는데, 그 뒤에 다른 것들 보다 보니 어설픈 특수효과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 같거든. 배우들도 연기의 맥을 잘 잡지 못해 어설픈 것이 눈에 보인다. 4시즌이면 할 만큼 해왔고, 2-3년 이상 레귤러였던 배우들도 수두룩한데 연기하면서도 다같이 조금씩 어색해 하는 것 같았다OTL..



  원래 EFC는 드라마 그 자체보다도 그 설정에서 오는 가능성 때문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라서, 그 어색함에 몸이 근질거려 가면서도 재미는 있었다. 그런 시리즈들이 좀 있다. 다크 엔젤Dark Angel도 그랬고, 로스웰Roswell도 그랬었고. Roswell은 원작이 소설 시리즈였고, DA는 잘 모르겠지만 EFC는 뒤에 소설로도 좀 나온 모양인데 그건 기회 되면 읽어보고 싶다. 소설로는 훨씬 근사하게 뽑혀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서. 전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이 묘사되기 때문에, 무대를 조금만 바꾸어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고, 담길 수 있는 이야기도 많다.




  3.   중요한 건 가장 마지막에. 엑스파일에 대한 생각은 신기하게도 최근 줄어들었다. 나 자신의 원인도 있겠지만, 아마도 큰 부분은 I WANT TO BELIEVE 탓이 아닌가 한다. 이 영화의 존재가 은근히, 의식 못하는 사이에 많은 것을 바꾸었다.

  M&S에 대한 묘사 때문일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영화가 closure이긴 한데 - 후속편이 나오고 아니고를 떠나서 말이다 - proper closure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이건 내 문제일까? 내 문제일지도 모른다.


Posted by Iphinoe

산도발과 크라이첵

our town 2008. 11. 17. 13:05




  Earth: Final Conflict 4시즌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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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내가 Earth: Final Conflict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산도발 때문일 것이다. 원래도 모순된 캐릭터들이 흥미를 끌었거니와, 우연히 지나가다 마주친 4시즌의 한 에피소드에서 산도발이 굉장히 크라이첵 과로 보였기 때문이다. 크라이첵은 처음에 성우 때문에 내 눈길을 끌었고 (사람의 취향이 그렇게나 일관된 것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그 다음에는 그 캐릭터의 단호함과 모호함이 나머지를 채워준 케이스인데, 나는 그의 driving force, 즉 그가 움직이는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것 때문에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이기적인 캐릭터가 아니었고, 그 자신만의 생존을 노리고 움직이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정보의 전모가 전면에 드러난 적이 한 번도 없고, 따라서 겉보기에 양쪽 진영을 모두 오가며 상황에 따라 말바꾸기를 비굴할 만큼 쉽게 하는 모습에 걸맞는 논리를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EFC의 로널드 산도발은 이 시리즈에서 가장 명백한 악역 중 하나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는 2-4시즌까지 시리즈의 명실상부한 메인 악당이었던 조올Zo'or을 능가하는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조올이 인류에 대해 행하는 사악한 짓은 일견 나 또는 우리가 아닌 남에 대한 것이지만, 산도발이 조올의 행동대장으로서 그걸 돕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에 반하는 행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외계인인 Taelon들의 경호원이자 조력자들(Protectors)은 그런 윤리적 판단을 무력화시키고 오로지 Taelon에 대한 충성심만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장치를 머리에 이식하고 있으므로, 따지고 보면 그게 전적으로 그의 잘못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산도발이 조올을 돕는 데 있어 유독 철저했고 그 과정에서 그 스스로의 권력욕이 단 한 번도 경시된 적이 없기 때문에, 그의 가혹함이 유달리 돋보였던 것이다.


  그 구도가 일탈하기 시작하는 게 4시즌 후반부이다. 테일런이 인류를 돕는 척하면서 뒤에서 착취하고 있는 진정한 이유가 밝혀지면서 조올은 단순한 인류의 적이 아니라, 테일런과 인간 모두를 버리고 혼자 살아남으려는 이기적인 존재로 자리매김을 한다. 테일런은 단순히 자리디언이라는 적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에너지 소스의 부족으로 인해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었고, 조올은 인류를 통해 존속의 희망을 찾으려는 테일런 의회의 노력을 이용해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고 있었다. 그는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산도발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은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인데, 이 시리즈의 주인공이 (당연하게도) 산도발이 아닌 고로 자세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 이래서 팬픽 쓰는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겠다.^^ 그러나 밑그림은 주어진다. Companion Protector로서 머릿속에 이식했던 문제의 장치가 고장나면서 자신이 해온 일의 진정한 의미와 결과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된 산도발이 - 그리고 인류와 테일런 양쪽에 대해 숱한 음모를 획책해 온 조올의 오른팔인 그가 모든 진실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 테일런들을 등뒤에서 배반하여 그들과 전쟁 중인 적 자리디언들과 손을 잡고는 상당한 기간 동안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해왔던 것이다.


  이 정도 되면, 내가 왜 크라이첵과라고 했는지 이해할 것이다. 테일런은 인간들을 이용하고 있었고 조올은 그런 테일런들의 노력까지 이용할 마음이 있었으며 산도발은 테일런에 대해 무조건적인 헌신과 충성을 세뇌시키는 장치를 이식받아 그런 조올의 음모를 전적으로 돕고 있었다. 그러다 테일런들의 본질을 깨닫고는, 그동안 해온 일을 바로잡으려 노력한다. 다 좋다. 그런데 이 자가 취한 해결 방식이 지극히 자기중심적인데다 근시안적이어서, 그 점이 재미있달까 흥미있달까 그러했다.


  산도발이 취한 액션을 보자. 그는 우선 지구정부와 접촉해서 사면권과 금전적 보상을 얻는 대가로 테일런들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다. 그러나 자신의 진의를 사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모종의 배신감에 사로잡힌 것 같다. 이 계획이 불발되자 한 발 더 나아가 테일런들의 적인 자리디언과 뒷거래를 한다. 테일런들을 멸망시키고 나면 지구의 지배권을 넘겨달라는 것이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는 배신당하고 테일런과 인류는 함께 공멸의 위기까지 몰린다. 그럼 대안은 없었느냐? 있었다. 윤리의식이 모호하긴 하나 상황에 따라 손잡을 수 있는 좀 더 나은 테일런도 있었고, 활동 중인 저항 조직도 지구에 있었지만, 산도발 역시 다른 사람의 선의를 쉽게 믿지 못하고, 거기다 저항 조직의 능력을 의심한 터라 그는 자기 보기에 빠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뼛속까지 악당이라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데 방법까지 글러먹었다, 너무 재미나다.


  확실히, 테일런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충성을 담보하게 하는 그 장치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이후의 산도발은 여러 측면에서 크라이첵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산도발과 크라이첵을 같이 놓고 보다 보니, 크라이첵의 선의에 대해 믿고는 싶었지만 그다지 확신이 없었던 내 그동안의 숙제에 서광이 비치는 것도 같다.^^


  크라이첵에게는 권력욕이 없다. 산도발이 궁극적으로 괴물이 되는 것은 그가 문제의 기계장치를 이식하고 저지른 짓들의 사악함 때문이 아니라, 그 장치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이 그동안 무슨 짓을 해왔는지 깨닫고서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취한 방식이 너무나 엇나갔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본인이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 자기파괴적인 성향이야 없더라도 에고가 강한 인물이긴 하다 - 그렇다 해도 이미 그 시점에 이르러 그것밖에 대안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리고 거기 지구의 지배권을 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건 이 캐릭터가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는 얘기인 것...ㅡㅡ; 5시즌은 보지 않았지만 5시즌의 산도발이 이미 제정신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긴 5시즌에 이르러서는 시리즈 자체가 미친 상태였지만.


  하고자 하는 말이 내 안에서도 그다지 분명했던 것이 아니라 중언부연한 느낌이긴 한데, 어쨌든 이걸로 끗ㅡㅡ;







  P.S. 드라마 자체에 대한 첨언. 사실 그다지 좋아하는 시리즈도 흥미있어하는 시리즈도 아니었다만, 설정이나 산도발의 캐릭터 같이 당기는 요소들이 몇몇 있었다. 각 에피소드가 재미있다기보다는 전체 설정과 캐릭터 설정에서 보이는 가능성이 매력적이어서 관심을 가졌던 편이다. 그 가능성을 시리즈가 120% 다루어주진 않았기에 그 점이 아쉬웠으나, 전체적으로 B급 SF였던 터라 할 수 있는 한은 했다는 생각이다. 5시즌은 제외. 거긴 총체적 난국에 드라마에 대한 추억마저 (있었다면) 망쳤을 재앙이었다. 엑스파일 8-9시즌은 사실 여기 대면 명함도 못내민다.
  이 드라마는 주연급이 자주 교체된 편인데, 나는 르네 팔머 Renee Palmer, 리암 킨케이드 Liam Kincaid, 조올 Zo'or, 다안 Da'an, 로널드 산도발 Ronald Sandoval이 메인급이던 3-4시즌에 제일 익숙해 있다. 따뜻하고 넓은 마음씨의 휴머니스트 분 Boone 요원을 사랑하는 코어팬들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정작 나는 분 요원을 잘 모른다. 내게 이 시리즈의 여주인공은 (릴리가 아니라) 르네이고, 남주인공은 모르겠다. 산도발은 전 시즌 출연한 유일한 캐릭터이긴 하지만 나도 양심이 있지 주인공이라 부를 수는 없고, 리암에 대해서는 좀 유보적이다.




  P.S. II.  쓰긴 했는데, 이 시리즈에 대해 관심가지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E 채널에서 방송은 했었다.


Posted by Iphinoe

팬픽 잡담

afterwards/chitchat 2008. 11. 5. 21:52

  최근 팬픽션닷넷에서 놀고 있습니다. 제가 접했고 캐릭터 또는 스토리에 일부나마 관심을 가져봤던 미드가 생각보다 꽤 많더군요. Popular나 Earth: Final Conflict처럼, 우리나라에는 방송되지 않았거나 방송되었어도 거의 이야기되지 않았던 시리즈들도 있습니다.


  보통 TV시리즈 팬들은 웹에 팬픽션 아카이브를 별도로 가지고 있죠. XF에겐 고사머, 스타게이트 SG-1은 스타게이트팬닷컴이 있고, 로앤오더는 아포크리파에 주로 모이는 것 같더군요. 로스웰은 종영 전에는 크래쉬다운이 대표적이었는데 요즘은 활동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버피버스야 버피월드가 꽉 잡고 있지요. 그러니 팬픽션닷넷에서 접할 수 있는 정도를 가지고 경향성을 운운한다는 건 좀 부정확한지도 모르겠지만, 목록을 죽 훑으면서 관심가는 걸 골라내다 보면 모종의 일관성이랄까 경향 같은 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스타게이트나 엑스파일은 일단 대작들이 많고, 스케일이 큰 것들도 자주 나옵니다. 로앤오더는 의외로 비그넷 위주더라구요. EFC는, 최근에 찾아보고 놀랐는데, 시리즈의 메인 안타고니스트라 할 수 있는 산도발에 대해 양가적이거나 꼭 전향적이진 않다 해도 은근한 태도를 지닌 팬픽들이 제법 있더군요. 사실 원작에서는 그렇게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다뤄지진 못했었어요. (아쉬웠던 부분이라...)


  팬덤에서 팬픽이 나름대로의 경향을 수립해 가는 걸 보면 가끔 재미있을 때가 있는데, 스타게이트처럼 매 회가 포스트 에피 팬픽을 불러서 이게 독립장르화된다거나 아니면 엑스파일처럼 케이스파일/로맨스물의 분리 성향이 두드러진다던가 하는 장르적인 경향성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팬픽을 통해 캐릭터들에 대한 특정 프로파일링이 고착되는 현상이 제일 흥미로워요. 스타게이트 팬덤에서 잭과 다니엘 페어가 보이는 양상은 너무 정형화되어 재미가 없을 지경이고, 어느 드라마에서나 캐릭터에게 드리우는 트라우마가 강한 특정 에피소드들은 수없이 반복되죠. 심지어 겨우 2시즌 하고 끝났던 Popular에서도 커플링이 거의 정해져 있더라고요.


  집단적으로 형성되는 독립적인 우주란 (종종) 재밌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함께 창조한다는 게 굉장히 흥미롭고 매우 강렬한 경험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투입과 산출의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경우는 더 그렇죠.


  (결론은 없습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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