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

재앙의 거리 2014. 7. 17. 20:32

몇 주 전 엘러리 퀸의 단편을 하나 읽다 아껴두었다. 내용은, 뉴욕의 여름을 맞아 더위에 신음하던 퀸이 동네 사람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폰지 사기 - 겉으로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 100% 이율을 보장하는 투자전문가지만 실제로는 뒷사람 돈 받아 앞사람 땡겨주는 시한폭탄 - 를 치고 있는 꾼에게 넘어가 돈을 빌려서 갖다주는 사람들까지 생기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아버지를 움직여 경찰을 출동시키는 얘기다. 그 사기꾼의 사무실로 쳐들어가는 데까지 읽다 덮었는데, 밀실살인의 전형이 막 펼쳐질 참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책을 못찾겠다.



책을 찾지만 못하는 거라면 좋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걸 어디서 읽었을 것인지 생각나는 게 없단 말이다. 일단 영어로 읽다 덮었으니 번역본일 수는 없고, 퀸 단편집은 원서로는 가진 것이 없고, EQ 단편이 실려 있을 법한 단행본이나 잡지는 최근 며칠 사이에 꺼낸 적조차 없다.


그러니 내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그 단편을 읽다 둔 자체가 꿈이었다,뿐인데...


일단 매우 기억이 구체적이고 생생한 건 둘째치고, 뒷내용이 궁금해!!!!!!


그러니 혹시 위와 같은 내용으로 시작되는 엘러리 퀸의 단편을 아시는 분은 어디서 구해 읽을 수 있는지 제보 바람. 후사하겠음.


Posted by Iphinoe

Thieves' Dozen

재앙의 거리 2014. 5. 1. 01:36


으하하;; 차례 보고 뒤집어졌다. 도둑의 dozen답게 11편이 실려있다!! 이런 유머 너무나 좋아^o^


참을 수가 없어서.; 나머지는 읽는 대로 포스팅하겠음. 언제가 될지 모르나...


Posted by Iphinoe


(영어 단어가 무차별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원래 혼자 보려고 쓴 글이어서 그럽니다.)





1.  EQ의 하드보일드. 등장인물들 말투가 그간의 퀸답지 않게 거칠어서 조금 놀랐다만, ghostwritten 중에는 비슷한 것들이 있으니 그런가보다 하였다. EQ의 경찰소설이라니 생각보다 많이 재미있겠다 생각하고 시작했다.




2.  다 읽고 난 감상은, in short, 좋은 작품이로군,임. 이런 게 엘러리가 등장하지 않아서 묻혀야 한다니 안타깝다.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캐릭터들도 입체적이고, 내용도 재미있다. 현실적이라고는 못하겠으나 애초에 현실적인 플롯이 퀸의 장점은 아니다. (나는 상관 안 하는 부분.^^) 영어도 쉽고, 재미 만점이다. 무엇보다 즐거웠다.

...고 해도 되겠지.


근데, 경찰소설이라고 소개를 들었는데, 경찰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경찰 취재를 많이 했다고 하더라만, 아마도 원하는 식의 내용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쓰고 싶었던 정도인 것 같아. 전혀 경찰소설 같지는 않다. 도입부만 그럴 뿐, 늦어도 3장 정도서부터는 통상적인 의미의 경찰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식으로 장르의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좋은 평을 받기가 힘들지만, 역시나 나는 신경 안 쓰는 부분.^-^ 그래도 워낙 하이브리드라서, 그에 개의치 않는 나야 좋아하지만 sub-genre별로도 호불호가 비교적 명확한 경향을 띠는 (특히 우리나라) 추리소설 팬들 사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내 경우에는 하이브리드라서 좀 놀랐고 그 다음에는 아주 마음에 들었거든. 장르를 뒤섞는 재주야말로 제대로 하면 아주 재미있는 거니까.




3.  「Cop Out」의 특징 중 하나는, 읽기가 쉽다는 점. 퀸의 작품이 정말 맞나 싶은 요소들 중 하나다. 다른 것들 읽을 때처럼 (이를테면 국명 시리즈) 어렵지가 않아. 그리고 독자가 있으리라 예상할 만한 반전은 굳이 시간을 들여 묘사하지 않고 그 다음 씬으로 바로 건너뛴다. 따라서 실제로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지만, 경제적인 셈이다. 이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은 EQ가 독자의 마인드를 겸비하고 작가의 마인드를 끈 채로 자기 작품을 바라볼 능력이 있었거나, 아니면 편집자가 좋았다는 뜻이리라.


이 작품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의 EQ 팬페이지에서 찾았다. 맨프레드 리가 이 작품이 ghostwritten이 아니라고 강변했다는 얘기랑 이 작품에서 프레드릭 더네이의 터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혹자의 평이랑 조합해 보면, 결국 이 작품은 Lee의 (더 많은) 노력의 산물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내가 받은 인상이 정확하다면 이건 글쟁이로 독자적으로 서고 싶었던 리의 노력의 결과물이었던 듯(다만 이건 팔할은 추측임).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 작품은 통상의 EQ라기에는 매우 이질적이거든. 정말 다르다.


하지만 다른 대로 정말 좋다. 마지막에 갑자기 환희의 정경을 묘사하는 거라든가, 그 부분에서 갑자기 문장이 현재형으로 바뀌는 것도 깨알같은 터치다. EQ의 유머감각은 감추어져 있지만, 이야기 진술을 건너뛰는 방식이 워낙 뛰어나서 그 정도는 넘어갈 수 있다^^. 마음에 들었다.


두 사람이라는 특성이 있기는 하지만, EQ가 이렇게 저변이 풍부한 작가인 줄 미처 알지 못했다.


Manfy의 역량을 좀 더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이게 almost exclusively Lee-written이라면, EQ의 그 quirky, cocky humour는 (슬프게도) 두 사람 다의 개성이 아니라 Fred의 특성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4.  EQ의 이런 다양한 면모를 보다 보면 문득 이걸 나밖에는 모르고 있나 싶어 아쉬운 마음이 든다 - 설마 아니겠지. Christie는 워낙 다작이기도 해서 그 다양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EQ의 경우에는 - 적어도 우리말을 쓰는 추리소설 팬덤 내에서는 - 없단 말이야. 나로서는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하도 이야기가 드물어서 예전에는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있지도 않은 것을 내가 보고 있나 싶었는데, 「Cop Out」까지 보고 나니 모종의 확신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거다. 늘 거기 있었다. 미국에서 본격물의 전통이 코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라져 버려서 EQ 이야기를 많이 안 하는 것이 아쉽다.




5는 뱀발: 해서 내친 김에 힘을 내어 「The Finishing Stroke」까지 도전하려고 펼쳤다가는 완전히 좌절했다.


내가 이 소설에 대해 특별한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면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이 소설이 두 형제의 협업으로 3기의 마지막이라는 것. 이후 리는 긴 슬럼프에 들어간다. 둘째, 「Inspector Queen's Own Case」 바로 다음 작품이라는 것.


그러나 지금 목차를 통해 살펴보고 '현재'의 EQ 파트 첫 두어 장을 읽어보니, 이 소설은 EQ 두 사람의 매우 개인적인 memoir, 아니면 뒤를 돌아보는 의미가 담겨 있는 작품 같다. 이 책의 이야기는 세 시기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 1905년, 1929년, 1957년이다. 이중 1957년이 '현재'이고, 1905년은 두 형제가 태어난 해, 1929년은 이들의 데뷔작이 출간된 해이다. 맙소사. 게다가 엘러리는 (또) 자기가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엘러리가 예전에 알던 사람은 이미 죽은 지가 20년이 되었다. 맙소사. 이런 개인적인 작품은 설사 작품이 그렇지 않다 해도 나를 대단히 센티멘탈하게 만든단 말이다. 게다가 이 전작에서는 퀸 경감에게 짝을 찾아주었다! 이 사람들 무엇을 준비했단 말인가!!


여튼 그래서, 용기있게 읽어버리려고 꺼내왔는데, 순식간에 기가 꺾여버렸다. 이런 'Adieu'를 온몸으로 외치는 작품에는 - 심지어 제목에까지 'finish'가 들어간다 - 손내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Hoch는 「Face to Face」가 퀸이 직접 쓴 작품이라고 확신하고 있군. 그리고 그가 말한 대로 Lee가 좀더 serious fiction을 쓰고 싶어했다면, 「Cop Out」이 좀더 Lee style이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상당히 뛰어난 작품이다.


Posted by Iphinoe

그 유명한 책.^^ 번역출간된 지 좀 됐지만, 이제야 인연이 닿았다.


이렇게 읽으라는 책은 아니었겠지만 오늘은 진지한 독서도 아니고 해서, 일단 낯을 익힌다는 취지^0^에서 색인을 기준삼아 뒤졌다.


이제 대강 기억나는 작가들은 다 찾아본 것 같다. 이 책이 매우 개인적인 의견의 서술이지 결코 백과사전적 내지는 통사적 역사서가 아니라는 저자의 코멘트에 동의한다. 엘리스 피터스에 대한 평처럼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도 있고(비록 나는 유쾌하게는 읽었지만), Jim Ellroy에 대한 평처럼 동의는 하지만 동감은 안되는 것도 있고, 아만다 크로스에 대한 평처럼 일부는 맞지만 그 주제상에서는 '이 남자 노인네가 약처먹었나 아니면 남자 노친네인 탓인가' 싶은 것도 있고, 퀸처럼 팬심이 앞서 눈이 멀어 읽는 경우도 있었다. 아, 요근래 내가 너무 많이 들먹이는 작품인 'Presumed Innocent'의 경우는, 시몬즈가 한 말에는 동의하지만 그가 이 작품의 문체 + 그로 인해 빚어지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고찰을 빼먹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Turow가 대가나 거장이라기에는 좀 모자란다고 생각하지만, 그 작품에는 Simmons가 평가한 그 이상이 있다. 적어도 그 작품만은.


여튼 매우 재밌었고, 즐거웠다. 나머지는 좀더 시간을 두고 찬찬히 읽어봐야겠다.^_^


Posted by Iphinoe

출처는 위키피디아.



Kate Fansler mysteries:


-- In The Last Analysis (1964)
-- The James Joyce Murder (1967)
-- Poetic Justice (1970)
-- The Theban Mysteries (1971)
-- The Question of Max (1976)
-- Death in a Tenured Position (1981, Nero Award winner)
-- Sweet Death, Kind Death (1984)
-- No Word From Winifred (1986)
-- A Trap for Fools (1989)
-- The Players Come Again (1990)
-- An Imperfect Spy (1995)
-- The Collected Stories (1997) - most are for Kate Fansler, but not all.
-- The Puzzled Heart (1998)
-- Honest Doubt (2000)
-- The Edge of Doom (2002)


Posted by Iphinoe

몇 년 전에 모 님^^께서 모모한 클럽^^에 올려주신 저작 목록. ghostwritten인 경우 별도로 표시가 되어 있다.
출처는 적혀 있지 않았어서 모르고, 별 표시가 된 것들이 몇몇 있는데 왜 그런지도 알지 못한다.;;;;
기록 목적에서 올려둔다. 이제 보니 특히 장편 중에서는 생각보다 남은 것이 많지 않다.



Ellery Queen, pseudonym for
Frederic Dannay and Manfred B. Lee
Characters: Ellery Queen, Drury Lane


Queen, Ellery,


EQ's First Period:
--The Roman Hat Mystery, Stokes, 1929.
--The French Powder Mystery, 1930.
--The Dutch Shoe Mystery, 1931.
--The Greek Coffin Mystery, 1932. **
--The Egyptian Cross Mystery, 1932.
--The American Gun Mystery, 1933.
--The Siamese Twin Mystery, 1933. *
--The Chinese Orange Mystery, 1934.
--The Spanish Cape Mystery, 1935.


EQ's Second Period:
--Halfway House, 1936.
--The Door Between, 1937. *
--The Devil to Pay, 1937.
--The Four of Hearts, HarperPerennial, New York, 1938.
--The Dragon's Teeth, Signet, New York, 1939. *


EQ's Third Period:
--Calamity Town, Signet, New York, 1942. **
--There Was an Old Woman, Little, Brown, Boston, 1943.
--The Murderer Is a Fox, Little, Brown, New York, 1945.
--Ten Days' Wonder, HarperPerennial, New York, 1948.
--Cat of Many Tails, Little, Brown, New York, 1949. **
--Double, Double, Little, Brown, 1950.
--The Origin of Evil, Little, Brown, New York, 1951.
--The King Is Dead, Little, Brown, New York, 1952.
--The Scarlet Letters, Little, Brown, New York, 1953.
--The Glass Village, Little, Brown, New York, 1954.
--Inspector Queen's Own Case, Little, Brown, New York, 1956.
--The Finishing Stroke, Little, Brown, New York, 1958.


EQ's Fourth Period:
--Dead Man's Tale, Pocket Books, New York, 1961. (ghostwritten by Stephen Marlowe)
--Death Spins the Platter, Pocket Books, New York, 1962. (ghostwritten by Richard Deming)
--Murder with a Past, Pocket Books, New York, 1963. (ghostwritten by Talmage Powell)
--Wife or Death, Pocket Books, New York, 1963. (ghostwritten by Richard Deming)
--Kill as Directed, Pocket Books, New York, 1963. (ghostwritten by Henry Kane)
--The Player on the Other Side, Random House, New York, 1963. (ghostwritten by Theodore Sturgeon)
--The Player on the Other Side, John Curley & Assoc, South Yarmouth, Massachusetss, 1963. (ghostwritten by Theodore Sturgeon)
--The Golden Goose, Pocket Books, New York, 1964. (ghostwritten by Fletcher Flora)
--And on the Eighth Day, Ballantine, New York, 1964. ** (ghostwritten by Avram Davidson)
--The Fourth Side of the Triangle, Ballantine, New York, 1964. ** (ghostwritten by Avram Davidson)
--The Four Johns, Pocket Books, New York, 1964. (ghostwritten by Jack Vance)
--Blow Hot, Blow Cold, Pocket Books, New York, 1964. (ghostwritten by Fletcher Flora)
--The Last Score, Pocket Books, New York, 1964. (ghostwriter unknown)
--Beware the Young Stranger, Pocket Books, New York, 1965. (ghostwritten by Talmage Powell)
--The Copper Frame, Pocket Books, New York, 1965. (ghostwritten by Richard Deeming)
--A Room to Die In, Pocket Books, New York, 1965. (ghostwritten by Jack Vance)
--The Killer Touch, Pocket Books, New York, 1965. (ghostwriter unknown)
--Where Is Bianca? 1966. (ghostwritten by Talmage Powell)
--Who Spies, Who Kills, 1966. (ghostwritten by Talmage Powell)
--Face to Face, HarperPerennial, New York, 1967. ** (ghostwritten by Jack Vance?)
--A Study in Terror, Lancer, New York, 1966. (by Paul W. Fairman and Ellery Queen)
--Losers Weepers, Dell, New York, 1966. (ghostwritten by Richard Deming)
--The Madman Theory, Pocket Books, New York, 1966. (ghostwritten by Jack Vance)
--Shoot the Scene, Pocket Books, New York, 1966. (ghostwritten by Richard Deming)
--The House of Brass, Signet, New York, 1968. (Ellery Queen)
--Cop Out, World, New York, 1968. (Ellery Queen)
--Guess Who's Coming to Kill You? Lancer, 1968. (ghostwritten by Walt Sheldon)
--The Last Woman in His Life, Signet, New York, 1969. (Ellery Queen)
--Kiss and Kill, Dell, New York, 1969. (ghostwriter unknown)
--A Fine and Private Place, Signet, New York, 1971. ** (Ellery Queen) McCall Troubleshooter Series:
--The Campus Murders, Loancer, New York, 1969. (ghostwritten by Gil Brewer)
--The Black Hearts Murder, Magnum, New York, 1970. (ghostwritten by Richard Deming)
--The Blue Movie Murders, Lancer, New York, 1972. (ghostwritten by Edward D. Hoch)
--also see Ellery Queen Novels Ghost Written by Others


Ross, Barnaby, (Ellery Queen)

--The Tragedy of X, 1932. **
--The Tragedy of Y, 1932.
--The Tragedy of Z, International Polygonics, Ltd., New York, 1933.
--Drury Lane's Last Case, 1933.
--Quintin Chivas, Trident Books, New York, 1961. (ghostwritten by Don Tracy)
--The Scrolls of Lysis, Trident, New York, 1962. (ghostwritten by Don Tracy)
--The Duke of Chaos, Pocket Books, New York, 1964. (ghostwritten by Don Tracy)
--Strange Kinship, Pocket Books, New York, 1965. (ghostwritten by Don Tracy)
--The Cree from Minatree, Pocket Books, New York, 1965. (ghostwritten by Don Tracy)
--The Passionate Queen, Pocket Books, New York, 1966. (ghostwritten by Don Tracy)



Collections of Short Fiction
Queen, Ellery,
--The Adventures of Ellery Queen, Frederick A. Stokes, New York, 1934. *
--The New Adventures of Ellery Queen, 1939.
--The Casebook of Ellery Queen, 1945.
--Calendar of Crime, 1952.
--Q. B. I.: Queen's Bureau of Investigation, 1955.
--International Casebook, 1964.
--Queen's Full, 1966.
--Q. E. D.: Queen's Experiments in Detection, World Publishing, New York, 1968.
--The Ellery Queen Omnibus, International Polygonics, New York, 1988. ISBN: 1-55882-001-9 (includes The Adventures of Ellery Queen and The New Adventures of Ellery Queen)


Posted by Iphinoe


제대로 된 리뷰를 쓰려면 시간이 좀 더 흘러야 할 것 같으니 메모성.



1.  조심스레 했던 기대보다 훨씬 좋은 책이었다. 맥락을 잘 알 수 없었던 '악의 기원'과 '킹은 죽었다'까지 좀더 잘 이해가 된 느낌이다(소위 '라이츠빌 시리즈' 장편 연작이 '일곱 번의 살인 사건 Double, Double'로 일단락된 뒤 위의 두 작품이 나왔거든. 이후 'The Glass Village'까지 셋이 매년 한 편씩 연달아 나온다. 그 다음 해 작품은 'Inspector Queen's Own Case'). EQ가 지금 받고 있는 평가보다 여러 의미에서 훨씬 더 도전적인 작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이런 면모들 때문이지. 시대에 대한 고찰의 흔적을 어떤 식으로든, 미숙하건 치기어리건 작품에 담으려고 애쓴 것이 이 세 작품의 특징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악의 기원' 같은 작품은 많고 그중 이건 평작에 속하고, 같은 주제라면 '킹은 죽었다'보다는 피터 디킨슨의 'The Lizard in the Cup'이 낫다. 그에 비하면 여러 모로 더 빼어난 'The Glass Village'가 번역이 안 된 것은... 애석하지만 퀸의 부재 때문이겠지.)


2.  EQ가 특히 헐리우드에서 활동했던 시기에 대해서 알고 나서는, 매카시즘의 시대를 이 두 사람은 어떻게 살았나 궁금해했었다. 더쉘 해밋 같은 사례도 있었고. 게다가 'The Glass Village'가 매카시즘을 은유적으로 다룬 작품이라고 듣고 나니 더 궁금해졌었다. 아직 리와 더네이의 이 시기 행보에 대해서는 크게 들은 바가 없지만, 적어도 동시대인으로서 이 시기를 어떻게 생각했었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3.  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읽기를 좀 꺼려했었다.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물론 이유의 하나지만, 더 크게는 퀸이 EQ의 작품들에서의 가벼운 분위기를 세팅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퀸도 없는데 다루는 주제는 매카시즘이라니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만약 꼭 퀸 같은 캐릭터가 등장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매너리즘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편히 볼 수 없었을 것 같고. 그런데 기우였다. 이 소설에는 유머가 넘쳐난다. 키득거리게 하는 정도지만 guilty pleasure 정도는 될 것 같다. 법정에서 머리를 싸매쥐고 고심해야 하는 나이드신 판사님들 캐릭터 너무 다 귀여워=0=


4.  참, 퀸이 등장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작품 내적으로 분명히 있었다. 이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처음에는 퀸을 넣을 요량으로 이야기를 쓰고 있었을 텐데, 어느 시점에서 방향전환을 했으려나. 그리고 퀸이 등장하지 않는 EQ 이야기인 이 작품이 바로 다음 작품인 'Inspector Queen's Own Case'의 탄생에는 어느 정도의 계기를 제공했는지도 꽤 궁금하고. 결국 나중에는 라디오극으로 만들면서는 퀸을 끼워넣은 것 같지만, 그러면 이야기의 집중력이 아무래도 좀 흐려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5.  주제의식이 핵심인 작품이다보니 추리소설 속 사건으로서는 비교적 복잡하지 않게, 간결하게 간다. 엘러리 퀸이 좋아하고 즐겨하는 화려한 스타일과는 다르다.



Posted by Iphinoe

1.  EQ가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과 같은 트릭으로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님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었던가?), 그 작품이 진행중이었다면 어디까지 진행되었건 매우 보고 싶다. 비교가 되었을 것 같거든. 'Y의 비극'과 '비뚤어진 집'은 정말 비교가 된다.


2.  사람들이 이 소설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것 같진 않은데, 'Presumed Innocent'도 서술 트릭 작품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 작품의 흥미진진한 점 중 하나는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의 트릭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으로, 이 작품의 서스펜스의 상당 부분은 독자들이 화자를 믿을 수가 없게 한다는 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화자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기소되었고, 무죄를 주장하면서 법정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정작 이자가 정말 살인범일 수도 있다는 의혹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피해자와 내연 관계였던 사실이 있다는 것을 3장에 이르기까지 숨기면서 짐짓 수사에 대한 이야기와 선거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그런데 그게 꼭 의도적이지는 않을 수도 있는 것이, 누구든 자신에게 자명한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는다.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니 그 생략이, 침묵이 의도적인 은폐인지 아닌지 독자로서는 영 판단이 안 서는 것이다.

이는 매우 subtle한 장치이고 효과라서 책을 처음 읽으면서 주의를 제대로 기울이고 있는 독자만이 그 뉘앙스를 잡아올릴 수 있고, 또 번역본으로 읽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판본에 따라 그 효과가 느껴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분명 거기 있다. 나로서는 터로가 과연 어느 정도 의도하고 썼는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Posted by Iphinoe

  아만다 크로스의 단편집이 있길래 몇 달 전에 사두었다가 오늘 소개글과 첫 번째 단편을 읽었다. 작품은 크로스의 스타일 그대로였고, 소개글을 통해 들은 작가의 목소리는, 글쎄 살아 있었다면 한 번쯤 만나 보고는 싶지만 막상 만나면 다쳐서 올지도 모르는 유형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 팬슬러 시리즈는 케이트 팬슬러의 개성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썼었는데, 그 때는 그게 얼마나 정확한 말인지 몰랐었다. 오늘 보니 크로스 본인이 아예 이렇게 썼구나. "...I thought these stories might be of interest to some readers who had found themselves attracted to Kate Fansler and the life she leads and has led."





  방금 말야, 위 영문에서 딱 한 글자 오타를 냈다. 탈자가 있었다. 그게 빠지니 문장이 이렇게 되더라: "...I thought these stories might be of interest to some readers who had found themselves attracted to Kate Fansler and the lie she leads and has led."뭐 꼭 문법적으로 맞는 표현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렇더라는 거다.^^


Posted by Iphinoe

양들의 침묵

재앙의 거리 2010. 4. 29. 01:12

  케이블에서 해주는 걸 지나가다 중간서부터 보았다. 한 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보지 못했던 영화인 바 그건 이번에도 그랬다;; 하여간에 그래서 예전에 이 소설의 번역본을 사두었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손전등을 들고 찾아나섰는데 ― 이젠 낮에도 내 책장을 뒤지려면 빛이 추가로 필요하다 ― 역시나 기억을 따라 예상했던 자리에 있었다.


  고려원이 부도났던 무렵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각권 삼천원에 팔던 출판사 책들 중에서 집었었다. 지금 보니 무려 날짜를 적어놓았네. 이런 거 안 한지 오래됐는데... 제값을 치르지 않고 구했던 새책들 중 하나다.



  산 뒤 적어도 한 번은 읽었을 것이지만, 이 소설에서의 대화는 매우 복잡해서 어른들의 대화란 이런 모양인가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대화 뒤의 대화, 발화를 통해 한 겹 아래 깔린 채로 오가는 커뮤니케이션은 왠지 '어른의 대화'로 내게 각인되어 있었다. 이제는 성인이라 해도 항상 이런 intense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니며 특히 이런 걸 잘 쓰는 작가는 많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이상하게도 어려서는 그런 걸 잘 하는 작가들을 자주 접했었다.


  예를 들어놓지 않으면 다음에 내가 감을 잡지 못해 헷갈리니까. 첫 번째 희생자가 호수(또는 강)에서 발견되었을 때 스탈링은 보조로 현장에 불려나간다. 이 때 크로포드는 텃세를 부리는 지역 보안관의 어깨에 한 팔 턱 걸치고 그를 구워삶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총을 찬 유일한 여성인 스털링을 일부러 대화에서 배제하는 수법을 사용한다. 돌아오는 길에 크로포드는 그런 행동에 대해 스탈링에게 해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지만 스털링 역시 알고 있다. 이 때 소설에서의 스털링은 '당신은 널리 잘 알려진 인물이고 경찰들도 그 일거수일투족을 우러러본다'까지만 얘기하고 크로포드는 나머지를 알아듣는다. 영화에서는 스털링이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의 처신으로서는 부적절했다'까지 언급하고 크로포드가 반쯤 사과한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이다.



  그 얘기는 이쯤 됐고, 전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이윤기 씨의 번역이 좋다 ― 더 나은 단어 없냐 ― 싶었던 부분이 있다. 어쩌면 사실적이지는 않았는지도 모르겠으나, 클라리스의 말투의 문제다. FBI 같은 수사조직 내 위계질서는 장난이 아니라고 알고 있고, 아직 정식 요원도 아닌 연수생의 신분인 스탈링과 section chief급인 잭 크로포드 간의 격차는 까마득한 정도가 아니라… 흠, 넘사벽이라는 단어도 실은 부족할 터이다. 그러나 스탈링의 말투는 매우 소탈할 때가 많다. 원문에서도 매우 직설적이고 가끔은 대등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렉터에 대해서는 다름. 별도서술) 번역이 스탈링의 말투에서 '-시-'를 되풀이해 생략하고 종종 '저' 대신 '나'를 넣어 이 점을 그냥 보여주었다.


  렉터와의 관계에서는 이게 조금 다른 것이, 물론 말투가 확 바뀐다는 것은 아니지만 스탈링이 렉터를 어느 정도 두려워하고 있어서다. 스탈링은 크로포드에게는 굳이 맞서려 하지 않았다(아예 안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렉터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꼈고, 두려웠기 때문에 당당해지려 애를 썼다. 그리고 그게 대부분 드러난 편이고. 해서 크로포드도 스탈링을 가르치고 렉터도 스탈링을 가르쳤으나, 스탈링과 렉터와의 관계가 덜 평등했던 것.



  또 다른 얘기. 사실 채널 돌리다 발견하고 계속 앉아 본 것은 이게 버팔로 빌을 Ted Levine이 연기했다는 걸 알고 처음 온 기회였기 때문이었는데, 정말 좋았다. 캐서린 마틴이 납치당하기 전까지는 거의 드러날 일이 없고, 무언가 미스테리어스한 면이 생각보다 중요한 캐릭터라서 묘사하기 어려웠을 것인데 설득력있었다. 이 특유의 분위기가 버팔로 빌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때는 깨어지기 쉬운데, 연기가 살렸다고 생각한다. 캐서린 마틴을 데려다 집 구덩이에 처박은 뒤 혼자 노래 틀어놓고 춤추는 부분은 원래 없었던 걸 배우가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는 데 필요하다고 건의해서 넣은 것으로 들었는데, 일맥상통하는 부분. :)


  렉터의 후일담도 궁금하지 않고 스탈링의 후일담도 궁금하지 않지만 렉터&스탈링의 후일담은 궁금한데, 한니발을 읽어볼까 말까 생각 중이다. 영화도 영화지만 소설 자체에 대해서도 평이 엇갈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긴 요새는 틈이 쉬이 나지 않는다.



  오늘 얘긴 여기서 끗-.








    그나저나 스킨을 바꾸든지 해야겠다. 이 스킨이 무난하긴 한데 위에 박혀 있던 문자를 지우느라 손을 좀 댔더니 오류가 생겨서리. 지난번에 좀 바꿔볼까 하고 건드렸다가 더 덧난 것 같네.

Posted by Iphinoe

  감히 이 책을 대하는 불특정 다수에 대해 충고를 할 수 있다면,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야기는 많고 다양한 방식으로도 할 수 있는데 왜 하필 유대인이어야 하느냐는 생각 - 그런 생각이 마음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다면 - 만 접어두면 좋겠다. 추측했던 대로 작가는 유대인이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었을 뿐이다. 뿌리뽑힌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매우 보편적인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여서, 역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나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런 식의 발언을 시작한 김에 하나만 더 해 보면, 추리소설은 수수께끼 풀이이고 그것이 이 장르가 지니는 개성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뵈면 종종 당황스럽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어' 말하는 게 아니라 추리소설이면서 범죄 해결이 아닌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소설은 매우 많다. 두 가지를 함께 하는 소설도 매우 많다. 분류하자면 '유대인 경찰연합'은 전자에 속한다.


  내용 소개는 쓰기 어려우니 생략하고...;


  나는 이 소설이 추위에 대해 직접적이지 않지만 꾸준히 시선을 두고 있는 점이 제일 마음에 닿았다. 알라스카의 겨울 이미지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싯카와 이 이야기 자체의 뒤에 둘러진 거대한 배경인데, 이게 공동체의 소멸을 앞두고 있고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구성원들의 조용한 체념이 면면이 배어 있는 소설의 분위기 속에 흐르듯 녹아들어 쉽게 잊히지 않는 애잔함을 남긴다.


  그 와중에 인간들이 어떤 헛된 희망을 품었건, 그것이 어떻게 이용당했건, 이 이야기의 핵심은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체세계지만 어차피 우리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이권을 노린 암투는 어느 세계에서나 마찬가지였을 뿐이다.


  p.s. 추천 감사합니다. 눈에 띄는 제목 때문에 관심이야 있었지만, 덕분에 당겨 읽었어요.^^


Posted by Iphinoe

  Limitations와 도입부에서 다루는 내용이 매우 같아서 낚여서 읽었다.; 전개는 역시나 전혀 달랐다.^^ 확실히 흡인력 있는 작가다. 예측 가능한 전개로 쓰면서 이렇게까지 끌어당기는 건 예사 재능이 아니므로. 결말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누구나 다 알지만 그래도 끝까지 즐기면서 읽게 된다. 게다가 사회고발적인 것 같으면서도 무게가 없다. 매우 비상하고 정말 신기하다.


  아닐 거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자꾸 드는 생각이 있다. 톰 클랜시처럼 그리샴도 팀으로 움직이는 작가군인가 하는 궁금증이다. 이렇게 한 사람의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 소설을 읽을 때면 그런 기분이 계속 드는데, 그리샴은 이게 크라이튼보다 더하다. 이게 내 편견인지 아닌지 알 도리도 없고.


  혹시나 하여 위키피디아를 두드려 봤는데 단서는 없네. 장편 하나 쓰는 데 6개월이라니, 으음ㅡㅡ;;; 하여간 여러모로 부럽다^ㅇ^


Posted by Iphinoe

  드디어 다 읽었다. 질질 끌고 있던 숙제를 해치운 말투인데 이게 과장이 아닌 것이 다 읽는 데 40일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럴 분량이 아니다. 장편이라기보다는 중편에 더 가까운 길이인 것 같고 (판형이 좀 크긴 하지만 제법 얇다) 이야기도 그다지 긴 느낌이 아닌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ㅇ_ㅇ;;



  터로우의 주무대인 시카고 인근의 킨들 카운티. 주 항소법원의 판사로 일하는 조지 메이슨을 중심으로 세 가지 이야기가 얽혀 있다. 메이슨의 아내가 암을 선고받고 수술에 이어 항암 치료 중이고, 메이슨은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사건의 주임판사가 되어 판결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최근 잇따라 협박 메일을 받고 있다.


  주 등장인물들은 재빨리 소개되고, 복선도 친절하게 초반에 깔린다. 추리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라서 긴장감이 없을 정도인데, 후반부에 사건이 풀려가는 것도 그 전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일전에 터로가 냉정한 작가는 아니라고 말한 바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 점은 재삼 확인했다. 버릴 수 있는 캐릭터만 버리고 나머지는 안고 간다. 나로서는 알고 본 만큼 얻었고 그래서 불만은 없다만, 딱히 추천하고픈 작품은 아니다. 읽는 재미가 넘치냐 하면 그랬던 것은 아니라서. 하지만 언어장벽에 너무 길게 잡고 있던 것까지 작용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은 말하기 어렵겠다.



  아래는 진짜 내용소개.



  예후가 낙관적이기는 해도 부인이 암 투병 중이라는 것이 조지 메이슨의 심리상태에 전반적인 배경을 깔아 주고, 협박자의 정체가 플롯을 앞으로 끌어나감과 동시에 주된 서스펜스를 제공한다면, 메이슨의 심적 갈등에 핵심이 되는 것은 그가 판결을 내려야 하는 문제의 사건에 대한 것이다. 7년 전에 일어난 성폭행이 관건인데, 당시 가해자들이 촬영해두고는 그 뒤에도 종종 돌려보았던 비디오테이프의 존재를 피해자가 알게 되면서 비로소 가해자들이 형사기소가 되었다. 비디오테이프가 현존하니 범죄가 실제 이루어졌는가 아닌가는 논박의 대상이 되지 않고, 변호사의 핵심 논점은 이 사건이 너무 시간이 흐른 뒤 기소가 이루어졌다는 소위 statute of limitations(공소시효)인데, 그와 관련해서기도 하지만 메이슨이 주로 고민하는 점은 가해자들이 7년이 지나 지금은 나름 번듯한 사회 구성원이 되어 있다는 점, 즉 자신도 대학생이던 60년대에 그리 다르지 않은 짓을 저질렀던 기억이 이 사건 덕분에 다시 살아나 그를 사로잡았다는 점 때문이다. 사건에 개인사를 투영하게 된 것이고, 그런 만큼 과거와 화해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매듭을 짓기 전에는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스토리라인과 협박자 스토리라인은 대체적으로 말해서 병존할 뿐 엮여 있지 않다. 전자의 결론이 무엇이냐는 역시나 터로의 성향상 예측이 가능하고 (게다가 Limitations는 터로의 소설 중에서도 매우 안전한 축에 속한다), 그 결론이 무엇이냐 자체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 이야기의 핵심은 메이슨이 그동안 잊고 살았던 예전의 과오를 인식하고 그걸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했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내가 보기에는 좀 약하다. 게다가, 자세히 들어가면 스포일러가 된다는 핑계로 길게 쓸 생각은 없지만, 한쪽이 다른 쪽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방편으로 검토되는 것도 실은 불만이다.



  정돈 안 된 글인데 이건 이 글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을 의사가 별로 없기 때문.; 이걸로 되었다.






  p.s. '무죄추정'의 주인공 러스티 사비치는 여기에도 모습을 내비친다. 꽤 비중있는 조연 중의 하나다. 그가 어디에 최종적으로 닻을 내렸는지를 알 수 있다. 그나저나 난 왜 이 이야기를 매번 빼먹지 않고 하는 거지=_=


  p.s. 하나 더. 이 글 쓰려고 터로의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비로소 안 사실. 터로는 전작에 바로 이어 나온 이 Limitations를 제외하면 시계추처럼 정확하게 3년에 한 권씩 내놓는 작가였는데, 이 작품 이래로 아직 신간이 없다. 외부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보아 아닌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건강에 문제가 있는가 염려가 된다. 존 스펜서가 그렇게 갑자기 (어디까지나 내게 그랬다는 것이지만) 가버리신 이후로는 40년대생들에 대해서는 해가 갈수록 더 불안해져서.;


Posted by Iphinoe


  Thanassi Thanatos (tycoon from Sleep) invites him to Greek Island hideout to play role of Mafia in war-game style simulation of business opponents' likely actions. Pibble suggests elimination of Thanatos himself and then investigates the possibility for real.


  피터 디킨슨 공식사이트의 저작 목록에 나오는 이 책의 줄거리 소개는 이러하다. 너무 잘 써놓아서 더 할 말이 없다. 직접 읽어보실 분이시라면 이 아래는 읽지 않으셔도 무방할 것이다. 전에 두 번 정도 시도했다 실패한 적이 있는 소설이었는데 ― 처음 두 쪽을 넘어서지도 못했다 ― 이번에는 그 난관을 비교적 쉽게 넘었고, 그러고 나니 설명도 친절하게 잘 되어 있고 plot twist도 없어서 어렵지 않게 적당히 읽혔다. 배경 세팅이 좀 재밌는데,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사건으로부터 거물 한 사람을 보호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피터 디킨슨을 아동문학의 작가로서만 접했었다. 해서 The Lizard in the Cup을 대하는 내 가장 큰 감정은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아동문학 작가로서 내가 본 (혹은 좋아하는) 피터 디킨슨은 강한 신화적 분위기를 구사하는 사람이었고, 그 위에서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요리했다. 계시와 신적 권능, 신과 인간과의 관계,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기 시작하는 시기의 동요와 갈등과 대립, 변화의 동력으로서의 전쟁 등등. 매우 전형적인 만큼 제대로 다루면 폭발력이 센데, 그가 그러했다. 그 신화적인 분위기의 아우라가 매우 영향력이 강했고 길게 남았었기 때문에, 디킨슨의 추리소설은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꽤 궁금했다.



  이 소설의 무대는 그리스의 한 섬이다. 전형적인 여름 휴양지로, 주요 등장 인물도 몇을 빼면 죄다 외지인이다. 이들은 전직 경찰 간부에 은거 중인 테러리스트, 정보부 소속의 살인 면허를 지닌 요원, 거부와 그의 가신 그룹으로, 도무지 범상치가 않다. 아무튼 일상적인 풍경은 아닌 것이다.


  시점을 조율하고 우리에게 시선을 제공하는 주인공인 피블은 이 거부를 둘러싼 주변 그룹에 최근 어울리게 된 사람이다. 그는 이미 두어 번 그의 호의를 입은 몸이며, 아직까지는 손님으로 대우받고 있지만 문턱에 서 있는 거나 다름없는 위치이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벌써 타나토스가 부리는 사람들 중의 하나고, 스스로도 그와 같은 사실과 위치를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다. 피블은 이 독특한 위치에서 이 그룹의 다이나믹을 관찰하지만, 독립적인 관찰자가 아니며 그 또한 그에 좌우되고 있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기 때문에, 그의 시선은 거리두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스코틀랜드 야드에서 일하다 퇴직한 사람으로 (경찰에서 어떤 계급으로 일했는지 궁금했는데 책 속에서는 도무지 언급이 없어 좀 혼란스러웠다. 다른 작품 소개를 읽어보니 총경으로 퇴직한 듯) 사적으로 아는 사이인 거물 사업가 타나토스로부터의 호출 겸 초대에 응하여 그리스의 한 섬, Hyos로 온다. 어떤 다른 지역에서 타나토스가 보스톤 마피아와 손잡은 기업가들의 이권에 반하는 짓을 했고, 그와 그의 주변인들은 보스톤 쪽에서 그에 대해 어떤 보복 조치를 취해 올 것인가의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피블은 갑작스런 사고로 올 수 없게 된 그 그룹의 한 사람을 대신하여 마피아 쪽의 시각을 제공해주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한다.


  이 회의에서는 이 전체적인 구도에 대한 소개와 함께 두 가지가 드러난다. 하나는 앞으로의 이야기에 원동력이 되는 타나토스 암살 시도에 대한 언급이다. 다름아닌 피블이 마피아 측의 역을 맡아 브레인스토밍을 하다 떠올린 아이디어다. 웃어넘기는 사람들도 있고 그 자신도 그 가능성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상대편이 그러한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그에 대비를 해두는 게 나쁠 것은 없다는 것이다. 타나토스도 그에 동의하고, 임무를 나눈다. 이 섬에 세워진 타나토스의 여름 별장은 (당연하지만) 해변을 끼고 있어서, 물에서의 공격에 대해서는 타나토스의 배와 본토에서 보내져 올 경호원들이 책임지기로 하고, 피블에게는 섬의 안팎을 살펴 외부인 ― 즉 마피아에서 보낸 hit-man ― 의 접근을 알아보는 임무가 맡겨진다.


  섬의 나머지는 외지인들이 들어와 정착한 남쪽 빌라촌과, 가난한 원주민들이 땅을 일구고 고기를 잡으면서 사는 마을, 절벽 끝에 지어진 수도원 정도로 나뉘어 있다. 이 수도원은 수도사들이 은둔하기 위해 몇백 년에 걸쳐 조금씩 넓혀 나간 공간으로, 현재는 쇠락하여 두 명의 수도승만이 지키는 곳이다. 이 수도원은 디킨슨이 꽤나 공들여 묘사하는 장소인데, 비슷한 수도원들을 TV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본 것이 전부인 나도 왜 이 수도원과 그 속에 위치한 동굴에 대한 서술이 이 소설에서 그렇게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것 같다. 플롯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 떠나 상상력을 자극하고 독특한 느낌을 안겨주는 꽤나 비현실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떠나고 세월에 퇴색하여 몰락해 가던 수도원은, 최근 부당하게 징발되었던 땅을 합법적으로 돌려받으면서 갑자기 부유해져 복원 사업을 나름 거창하게 벌이고 있는 와중이다. 이미 이 섬에 호텔을 하나 지어놓고 있는 타나토스는 수도원을 관광 상품 겸 호텔로 개발하려고 눈독을 들이고 있는 터였다. 이 두 수도승들은 타나토스의 표현에 따르면 술독에 빠져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순 사기꾼들인데, 예전에 밀수를 위해 쓰던 나루가 하나 남아 있어 피블의 조사 대상이 된다. 피블은 수도원에 올라갔다가 현지인들과 얽히게 되고, 그 와중에 거기서 수도사들이 성화 그려 파는 걸 돕는 일로 살고 있는 낸시라는 영국 여자와도 안면을 튼다.


  이 조사 와중에 피블은 바로 전날 이 섬에 도착한 외부인과 마주친다. 그는 무려 헬기를 타고 섬 호텔에 도착했고, 그 때문에 섬 주민들의 이목을 있는 대로 끈 상태다. 피블은 그가 누구인지를 바로 알아보았고, 상대 역시 그를 알아보고 접선을 제의해 온다. 버틀러라는 이름의 이 인물은 정부의 비밀 요원으로 살인 면허를 가졌다고 알려져 있으나, 피블은 아직까지는 그와 말을 깊이 섞어본 일이 없고 그를 잘 알지도 못하는 터다. 버틀러는 다음날 피블과 섬 외딴 장소에서 만나, 상부에서 이 섬을 마피아들의 마약 제조 중간기지쯤으로 의심하고 있다면서 조사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해 온다. 피블은 그가 과연 진실을 말하고는 있는지 의심하는 한편 버틀러가 조사한다는 사건과 타나토스에 대한 위협(있다면)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어쩌면 버틀러가 마피아에서 보낸 암살자일 수도 있는 데다, 타나토스 역시 언제나 합법적인 방법만 동원해 온 인물은 아니고, 그의 친구이자 부하들의 그에 대한 헌신은 법의 경계를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피블은 타나토스와 그 주변인들의 다이나믹을 종종 유럽 궁정에 비유해 생각한다. 개인적인 헌신과 집단적인 결속으로 맺어진 이들의 수직적이면서도 애정을 담보한 관계는, 그 속에 있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 피블의 발언인데, 피블 역시 이 속에 끌려들어가고 싶지 않아 하면서도 드러내 놓고 거절하지는 못한다. 앞서 말한, 원탁회의 씬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물리적 공격에 대비해 지역 경찰의 협조를 받자는 것이 피블의 맨 처음 의견에 대해 타나토스는 단칼에 거부한다. 그리고 이어 묻는다. "You still want to help?" 피블은 모두의 강렬한 시선을 대면한다. 책에 나온 바대로, 이는 '네 능력으로는 감당 못할 규모의 휴가 비용을 누가 지불해 주었던가'의 물음이 아니라 '누굴 신뢰하는가? 무엇/누구에 충성하지? 네 친구들이 누구냐?'의 물음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소설의 핵심 주제인 loyalty로, 이 소설은 어떠한 개인 또는 조직에 대한 헌신이라는 것의 무게, 그 의미, 주변의 압력, 그게 담보하는 애정, 그리고 그 속에서의 물고 물리는 관계 ― 즉 정치역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피블은 평생 몸바쳐 일했던 경찰청에서 해고당하다시피 물러난 위치이고, 같은 대상(나라)을 위해 뛰고 있는 비밀 요원은 자신의 조직과 동료, 이념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 피블은 한 개인에 대한 사적인 헌신과 충성으로 맺어진 그룹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그 스스로도 반 정도는 이미 거기 발이 빠진 상태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기대에 거부감을 느끼고 한편으로는 그 병리적인 역학관계를 좋아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그 기대에 부응하는 태도를 취하고 그에 맞게 행동한다.


  그러나 그러한 단단한 결속은 평등한 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각자가 타나토스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는 이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탄생하는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은 심지가 굳고 자신의 신념이 다른 데 있는, 그러나 현재는 타나토스의 여자로 그의 옆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정부뿐이다. 토니라 불리는 이 여자는 누구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할 만큼 강력한 매력과 영향력을 주위에 뿌리고, 타나토스의 시혜를 받는 입장에서도 그에 대해 독립적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다른 인물들은 타나토스의 무게에 휘둘리고, 그러면서도 독자적인 개인으로 남으려 애쓴다.


  그리고 때로는 다름아닌 타나토스 자신이 그런 주변인들의 충성심을 극한까지 내몰아 시험하곤 한다. 그런 일이 피블이 있을 때 한 번 빚어지는데, 바로 토니가 타나토스와 결별하고 떠나면서다. 타나토스는 그 날 오후와 저녁 내내 '친구들'을 조롱하고 놀려대고 괴롭히고, 그들은 번갈아 가며 그 분노의 과녁이 되어준다. 피블 역시 마찬가지인데, 실질적으로는 이 ritual 이후로 그들이 피블을 '우리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피블도 그러했느냐 하면 그것은 다른 문제다.




  피블은 타나토스를 위해 낸시의 안내를 받아 사람들을 만나고 섬을 조사하는 한편, 버틀러의 부탁을 받아서는 타나토스의 집과 배를 수색해 마약의 제조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근거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버틀러에게 전해준다. 그러나 그는 버틀러의 정체와 그가 여기 온 목적을 타나토스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지만, 타나토스 쪽의 이야기는 버틀러에게 완전히 까놓지 않는다.


  모두가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아주 매우 몹시도 낮다고 했던 암살 시나리오는, 그러나 암살 기도가 실제로 일어난 듯 보이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타나토스와 다른 한 명이 수상스키를 타던 중에 갑자기 불이 붙어 배가 가라앉은 것이다. 그 다른 한 명이 운전 중에 갑자기 연료탱크에 총구멍이 나는 것을 보았다고 했고, 다른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만에 하나에 대비하기 위해 가라앉을 배를 건져서 연료탱크를 확인해 보기로 한다. 토니가 떠나면서 타나토스와 그 주변인들이 겪은 소동은 피블이 다시 찾아간 수도원에서 시선을 끄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버틀러가 타나토스 그룹 내부에서 나온 제보 때문에 지역 경찰에 체포되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피블은 구도를 단순화하기 위해 버틀러를 섬에서 치워버리려고 하고, 그동안 알아낸 모든 사실을 총동원해 일을 매듭짓지만,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었다. 피블이 떠나는 날, 비행장으로 나가는 피블을 배웅하기 위해 해변의 술집에서 모두는 잔을 들지만, 예고없이 총격이 시작되고 두 명이 쓰러진다. 목격자로서 경찰서에서 진술을 하는 피블은 진상을 깨닫고 사건을 정리하는 입장이지만, 이미 모든 것은 너무 늦었다. 경찰과 피블, 그리고 옆 섬에서 불려온 통역자 사이에서 에필로그가 되는 것은 이 작품의 제목인 지역 전설에 대한 이야기이다.


  피블이 그 전설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낸시를 통해서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위생에 그리 신경쓰는 사람들이 아닌데, 그 중에서도 으뜸이라 할 만한 두 수도사도 음식과 물만큼은 신경써서 꼼꼼하게 덮어놓고 지내는 모습을 본 피블이 그에 대해 언급하자 낸시는 Samimithi라는 도마뱀 이야기를 한다. 이 섬에는 그 도마뱀이 음식이나 음료수 위로 지나가면 그 음식이나 물이 독을 지니게 되어 먹으면 탈이 나거나 죽는다는 전설이 있다는 것이다. 그 후로 피블은 때떄로 섬에서 이 도마뱀의 모습을 목격하곤 하는데, 타나토스가 자기 우산 아래 전직 테러리스트 하나를 불러들여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버틀러에게 말해야 할 것인가를 피블이 고민할 때, 그는 이 도마뱀을 생각한다. 우정의 컵 안에 도사리고 있는 독. 토니의 매혹에 피블이 휘둘리고 있던 탓에 때떄로 터져나오는 고민들에 이 전설이 섞였지만, 결말에 엮여 이야기가 여기까지 오면 스포일러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기분은 흡사 무언가에 얻어맞은 느낌이다. 새로운 주제는 아닌데 뒷맛이 묵직했다. 전달이 좋았다는 뜻일 것이다. 최근에 무언가를 열망한다는 것과 자존심 또는 자존감의 문제를 결부시켜 생각케 했던 일이 있어 흡수도 더 잘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크게 오락적이라고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해서 심오한 사색이 담겨 있다고 할 것은 아니고,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서의 일상적이지 않은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설이지만 깜짝 놀랄 만큼 좋은 작품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의외였다. 주변에 추천할 생각은 꿈에도 없지만, 이 작가를 좀 더 찾아 읽게는 될 것 같다.






  남은 얘기 하나. 전체적으로 유머가 많지 않은 작품이나, 가끔 큰 웃음 주시는 대목이 있어 유쾌한 전환이 되었다. 그 중 하나는 '디킨슨 영감 뜬금없이 웃겨주시네'라 생각하다 뒤에 가서 이해한 대목도 있긴 한데 그건 설명할 자신이 없어 넘어가고, 타나토스가 수도원의 두 수도승들에 대해 평한 것이 재미있었다. 이 수도사들이 밀수에 전문가들이라면서 타나토스는, 그들이 죽어서 천국에 간다면 밀수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방금 이 대목에 웃지 않으셨다면 그건 전달자 탓이다.-.ㅡ


  얘기 둘. 그리스어를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하지 못하는 피블은 타지를 여행한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쪽 언어를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묘한 수치심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일상에 섞여들 수 없고 그냥 물과 기름같은 존재가 되는 여행자라는 위치에 대해. 이 역시, 비슷하다고는 못해도 그에 걸친 경험을 했었던 터라 이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얘기 셋. 이건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동의할 이야기인데, 책을 읽으면서는 물론이고 읽고 나서도 피블에 대해서는 별 감정이 없고, 버틀러가 좋아지려고 한다. 이건 첫 번째 남은 얘기와 연관이 있어서 써놓긴 해도 이해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잖아도 이 친구 어딘가 오프비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난 그게 이 사람의 직업과 그가 속한 세계 탓인가 했었거든. 그걸 명백하면서도 직접적이지 않게 펼쳐놓다니 대단한 글솜씨다. 장인의 붓질이 느껴진다. 외국인으로서 원서를 읽을 때 반은 반투명한 장벽을 치고 읽는 거나 다름없는 내가 이런 걸 집어낼 수 있었다는 것은 ― 게다가 암시로만 이루어진 작업이었다 ― 작가가 뛰어나단 뜻이다. 명백하다는 것은 버틀러의 말투가 다른 사람보다 아주 약간 더 구어체라는 정도인데, 실질적으로는 그게 전부다. 원래 말을 글로 쓰면 아이러니컬한 화법이 잘 전달이 안 되기 마련인데, 노골적이지 않으면서 재미있었다.


Posted by Iphinoe

  영국사에서 튜더 왕조는 여러 모로 돋보이는 위치를 차지한다. 내전을 마무리짓고 근대의 거대 제국으로 거듭나는 기초를 세웠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같은 맥락에서 해양제국의 패권을 확보하여 수 세기에 이르는 번영을 위한 기반을 다져가는 시기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같은 시기 유럽사에서의 흐름과 발맞추어 영국의 종교적 전통을 수립하는 때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게다가 튜더 왕가 인물들의 개인사가 워낙 흥미진진하다 보니 대중의 관심을 받기에도 부족함이 없달까.


  유럽사의 맥락에서 보더라도 이 시기는 중요한 전환기다. 아메리카 대륙이 유럽의 지도 안으로 들어와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하는 것도 이 때이고, 중세 이래 유럽을 지배해 온 로마 가톨릭이 그 전과는 다른 성격의 도전을 받으며 서양 기독교가 두 갈래로 쪼개진 것도 이 시기다. 그러나 튜더 왕조 아래 영국이 겪은 종교적 변화는 대륙에서의 흐름과 발맞추면서도 다른 양상으로 나아간다.


  그 다름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들어와서였지만, 헨리 8세가 수장령을 내려 교회를 왕권 아래 통합하기 시작한 이래 그 가능성은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16-7세기 영국의 종교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영국이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를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수도원의 죽음'은 정확히 이 시기를 다루고 있다.


  왕이 영국 교회의 최고 우두머리라 선언한 헨리 8세는 그동안 로마 교황청에 세금을 바쳐왔던 수도원들의 재정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수도원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와 해산 작업에 착수한다. 이 와중에 한 지역 수도원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파견된 왕의 특사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당시 왕의 재상 격이던 토머스 크롬웰은 주인공 매튜 샤들레이크를 보내 사건을 조사하게 한다. 샤들레이크는 특사를 죽인 것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임무와 함께 수도원을 압박해 원장으로 하여금 수도원을 헌납하도록 하게 하는 임무를 지고 파견되지만, 그는 종교적 개혁에 대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신체적 약점에서 출발하는 다름 때문에 권력 안에 있어도 밖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수도원에서만 이방인인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속에서도 이방인으로 존재하며, 그 때문에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소설은 샤들레이크의 시각을 따라가며 당시의 시대상과 이 시기를 규정짓는 많은 이슈들을 조명한다.


  샌섬이 풀어가는 이 이야기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배경과 주제와 공간을 빠짐없이 다루며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종교개혁이라는 큰 주제에 대한 고찰이 소설 전반에 걸쳐 흐르고, 수도원이라는 공간을 둘러싸고 있었을 법한 모습들에 대한 스케치도 다채롭게 펼쳐지며, 당대의 생활상은 물론이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직면했을 법한 종교적,윤리적,현실적인 이슈들도 짚어내는 데 상당한 비중을 할애한다. 좀 냉담자적인 쪽으로 치우쳤을지는 모르나 그거야 이 소설이 샤들레이크의 1인칭 서술이니 자연스런 노릇이다.


  인물화도 다채롭고, 그들을 묘사하는 방식도 성실한 편이다. 계층적으로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성별, 인종적으로도 당시의 시대상을 충실히 묘사하려는 듯 소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았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노력은 종종 역효과를 낳고는 하는데, 이 책도 도입부에서 신대륙을 통해 들어온 문물을 묘사할 때까지만 해도 그 함정에 잘해야 반은 빠지고 반은 피해간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했으나, 중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수도원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벗어나서도 중심을 유지하는 저력을 보인다.


  다양한 개인사를 지닌 등장인물들이 있지만 읽는 입장에서 가장 동화하기 쉬운 캐릭터는 역시 주인공 샤들레이크다. 이 소설이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이어서만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속내를 때로는 불편함을 인정하면서까지 정직하게 드러내어 독자들과 공유하기 때문이다. 강한 신념의 소유자가 아닌 회의하는 사람인 만큼, 공감하기도 무난하다. 천재형 탐정도 아니고 인생의 지혜를 자랑하는 원숙한 탐정도 아닌 그는 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고, 나머지는 각자가 느끼고 줍는 만큼일 것이다.


  수도원에 일어날 변화의 단초가 핵심 배경이 되는 만큼 이 소설은 기존의 수도원이 어떤 문제를 담보한 곳이었는지를 밝히는 데에 인색하지 않고 그에 대해 분명 매우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만, 그만큼 이 시대에 첨예한 대립의 원인이 되었던 종교개혁이라는 이슈에 주목한다. 신념으로 일하는 사람들, 신념으로 반대하는 사람들, 오랜 세월 견고하게 우뚝 서 온 제도에 기대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 시스템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사회를 바꾸려 하는 사람들, 다양한 모습이 스친다. 서로 반목하는 두 극단의 입장과 함께 그 모두에 냉소적일 수밖에 없는 민초들의 시각까지 포괄하고 있다. 한 가지만 하더라도 버거웠을 만한 일이지만, 그 둘이 깊이 맞물려 있으니만큼 샌섬은 두 가지를 모두 다루는 정공법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썩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중세 말기의 풍속화와 근세 종교개혁기의 사상의 단초 두 가지를 모두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이 시대에 관심가진 사람들에게 일독을 추천하는 책이다.



  남은 이야기는, 그럼에도 내가 왜 이 책에 미적지근한 감정을 느끼는가에 대해서다. 해답이 정말 안 나는 문제 중의 하나였는데 아직까지도 만족스런 설명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생각의 실마리가 두엇 정도 있고, 남은 분량으로는 그걸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나는 이 시기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번역 또는 문체의 이슈이다.


  종교개혁기에 대한 해석이라는 이슈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엄청나게 거창한 문제고, 다음으로는 답이 안 나는 문제인 데다, 마지막으로 내 개인적인 문제기 때문이다. 하나의 경향성을 지닌다고 모두가 인정하는 시기가 있다고 할 때 그 경향을 과연 무엇이라고 부를 것이냐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간단하게 끝나는 법이 없고, 그건 근세 유럽의 변동을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16-7세기 유럽을 종교개혁기라고 부를 때 그 핵심을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물음은 너무 커서 답이 안 나는 질문이고, 당연히 모든 개인의 의견이 저마다의 정당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 시기를 바라보는 샌섬의 시각은, 마지막에 모든 일을 보고 들은 한 인물이 남기고 떠나는 이야기에 방점이 찍힌 것을 볼 때, 그 인물의 견해에 가장 가깝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사실 더 정확한 표현은 샌섬이 자기 시각을 그의 입을 빌어 표현했다는 것이지만.) 바로 이 시기의 종교적 갈등은 인간 삶의 부조리, 신분과 계급, 불평등의 문제에 비추어 볼 때 비본질적인 권력다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작가가 감정이입하고 공감하고 교류한 쪽이 종교적 신념이 서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물론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견해에 그다지 동의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이 문제가 내가 이 소설에 대해 유보적이게 만드는 데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행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별로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라는 말이지.) 다른 걸 다 떠나서, 작가가 이 이야기를 쓰는 와중에 어느 새 종교개혁가라고 묘사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제일 변방으로 밀려나 버렸다는 내 느낌은 지극히 편파적인 것인지 아니면 나름 그럴싸한 것인지 판단을 못하겠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그보다는 좀 더 실증(?)적이고 좀 더 모호한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의 인물 묘사가 얄팍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 머리를 굴려봐도 확고한 답을 알 수가 없다. 샌섬은 각각의 등장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그런 배려를 받은 캐릭터의 수는 하나 둘 정도가 아니다. 주인공은 물론이고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을 위시하여 수도원의 모든 인물, 심지어 실질적으로는 잠깐 등장하는 토머스 크롬웰까지 단선적인 인물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정확히 무엇이 모자라서 이 책에서의 인물 묘사가 스테레오타입이라고 느껴지게 하는 것인지, 생각하면 구체적이지가 않다. 통찰력의 깊이의 차이라고 한다면 말이야 간단하고 그럴싸하지만 실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고찰의 깊이가 딱히 모자라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물론 대중소설에서 아주 깊이 들어갈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작가가 자신이 다루는 주제들을 가벼이 여긴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그래서 고민하게 되는 것이 문체라는 이슈다. 이 소설은 사실 플롯이나 시대상의 반영이라는 점에서나 흠잡을 데가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파고들어가다가 결국 캐릭터가 단순화되었다는 내 느낌이 설정이나 깊이의 문제라기보다는 전달의 문제, 즉 어떤 식으로 서술하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의 문체의 문제는 번역의 어려움인가 싶은 것과 작가 자신의 경향인 듯한 것이 뒤섞여 있다. 외모를 묘사할 때 날카로운 눈매 운운하며 시작한다던지 하는 그런 부분들이 너무 판에 박혀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작가 자신의 경향이겠고, 번역의 어려움은 꼬박꼬박 등장하는 '종교개혁가'나 '교황 제도 지지' 같은 표현이 그 예가 되겠다. Reformer라는 단어는 '…가'라는 호칭으로 대칭될 수 있는 단어도 아니고, 그 가진 뜻을 그 이름으로 다 담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명사로 일대일 번역을 하기보다 형용사적으로 좀 더 부드럽게 고쳤으면 좀 낫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하다 보면 흐릿해져서 이게 과연 본질적인 문제인지 의심하게 된다.


  이 소설은 시리즈물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것은 아니라고 들었다. 그러나 어쨌든 시리즈화된 지금은, 두어 편을 더 읽는다면 지금의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이 시리즈가 토머스 크롬웰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를 좀 더 보고 나면 해답의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그의 캐릭터가 흐릿한 것이 내게는 흥미로웠다. 내가 흐릿하다고 말한 것은 크롬웰의 동기가 불분명하게 나왔다는 뜻에서다 -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단 하나의 분명한 동기를 가지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개는 여러 가지 것이 얽혀들어 자기기만과 함께 근사한 추진력을 이루게 되는 것이 상례다. (그렇지 않다면 바로 fanatic이 되는 것이고 거기서부터는 보통 사람의 이해를 벗어난다.) 그 모습을 어떻게 그려내는지를 보고 나면 이 시리즈에 대한 전체 인상이 설 것 같다. 그러나 그럴 정도로 관심이 지대하냐 하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아직도 남은 얘기.


  1. 연쇄살인이라는 단어의 뜻을 아무래도 분명해 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이야기에서 살인이 여러 건 일어나긴 하지만 그것들이 연쇄살인은 아니었다. 다 지나고 보니 그렇더라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연쇄살인이라 부를 요소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건 용어 정의의 문제다.


  2. 책을 읽으려고 든 채로 승강기에 탔는데, 내 손가락이 '…의 죽음' 이 세 글자를 가리고 있었나 보다. 한 통로 사시는 다른 분이 승강기에 올랐다가 날 보시고 궁금하면 성당에 한 번 나와보라고 권하고 가시더군. 예의상 나머지 단어는 가르쳐드리지 못했다.


Posted by Iphinoe

  'In the Last Analysis(1964)'는 Amanda Cross의 데뷔작으로, 그의 탐정인 Kate Fansler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완역본이 출간된 적은 없고, 고려원에서 93년 출판된 '세계 여성작가 서스펜스 걸작선'을 통해 작품 일부를 접할 수 있습니다.


  Amanda Cross의 본명은 Carolyn G. Heilbrun으로, 콜롬비아 대학에 오래 몸담은 영문학 교수입니다. 추리소설을 쓰기 위해 선택한 필명이 아만다 크로스였고요. 1960년대만 하더라도 아카데믹한 환경에 종사하는 사람이 추리소설을 쓴다는 것이 안 좋게 비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필명을 통해 익명으로 남으려 했다고 하더군요. 작가가 누구인지는 한 팬이 저작권 등록에 대한 기록을 추적하면서 알려졌다고 합니다. 교수직으로부터는 93년에 은퇴했고, 2003년에 사망했습니다. 아만다 크로스의 장편은 모두 14편으로, 전부 케이트 팬슬러가 아마추어 탐정으로 등장하는 추리소설입니다.


  작품 세계는 작가가 익숙한 환경들에 주력하는 것 같습니다. 케이트 팬슬러의 캐릭터부터 뉴욕의 한 대학 영문학 교수라는 점에서 작가와 유사하고, 영문학에 대한 또는 그와 관련된 언급이 무시로 등장하며, 그가 민감하게 느끼고 평생 정치적으로 발언해 온 페미니즘의 이슈가 작품 구석구석에 깃들어 있습니다.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Death in a Tenured Position'은 아예 그 주제에 천착한 작품이고, 다른 작품들에도 여성주의적 고찰의 흔적은 곳곳에 배어 있지요.


  데뷔작인 'In the Last Analysis'는 60년대만 해도 비교적 낯선 소재였던 정신분석/정신치료를 가져왔습니다. 뉴욕의 한 대학 교수인 케이트 팬슬러는 자기 학생인 재닛 해리슨이 믿을 만한 정신과의를 추천해 달라 부탁해 왔을 때 절친한 벗이고 명성 있는 정신과의인 이마뉴엘 바우어를 소개해 줍니다. 그리고 7주 뒤 재닛 해리슨은 바우어의 진료실 소파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죠. 바우어는 자연스럽게 용의자로 떠오르고, 모종의 책임감을 느낀 케이트는 이 사건을 해결하는 일에 뛰어듭니다. 그는 전부터 알고 지내 왔고 개인적인 일로 자신에게 빚을 지기도 한 지방검사실의 리드 암허스트를 통해 경찰 쪽의 동향을 얻고, 사건 조사를 위해 조수로 고용한 제리가 물어오는 정보를 그 스스로 알아낸 사실과 더해 사건을 풀어나갑니다. 아마추어 탐정으로 움직이는 만큼 사건의 수사는 법정에 내놓을 수 있는 증거보다는 손에 들어온 것들을 엮어내는 케이트의 직관력과 상상력에 의존하여 풀려가는데요, 기회와 수단의 요소가 모두 바우어 의사에게 불리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이 문제가 커 보이지만, 나중에는 이야기의 중심이 기회&수단으로부터 동기로 옮겨가면서 주변 인물이었던 사람 하나가 서서히 중요한 존재로 부각됩니다.


  발표된 이듬해 에드가 상의 Best First Mystery 부문 후보작입니다만, 빼어나긴 해도 사실 이 소설이 만장일치로 추리소설 독자들의 감탄을 살 만하다 싶은 구석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사건은 센세이셔널하지만 그 자체로 매혹적이지는 않으며, 플롯이 특별하다거나 범인이 특별하다거나 하진 않아요. 확실히 의외기는 하지만. 묵직한 사회적 함의가 있다거나 하지도 않지요. 이 이야기를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느냐 아니냐의 여부는 등장인물의 성격, 작가의 문체나 개인적 성향 등의 개성이 취향에 맞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제 제한된 지식 내에서 감히 말한다면, 아만다 크로스가 추리소설계에 한 기여는 상당 부분 케이트 팬슬러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그리고 추리소설계에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아 온 여성주의 이슈에 대한 주목이라는 점에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는 확실히 'Death in a Tenured Position'이 가장 탁월하지요. 그러므로 이 소설은 팬슬러에 대한 워밍업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안 좋은 평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데요, 잘 써진 좋은 소설이고 전 엄청 좋았어요.^^)


  이 책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는 좀 다른 방향으로 나가게 되는데, 그건 전적으로 고려원의 '세계 여성작가 서스펜스 걸작선' 때문입니다. 전 팬슬러의 첫 번째 활약상을 이 발췌본으로 먼저 읽고 그 다음에 원작을 구해 읽었는데, 덕분에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 이런 화제를 간단히 부르려고 '정보전달의 문제'라 이름붙였습다만, 아마도 이 이슈가 학문적으로 연구되는 분야들에서는 - 기호학이나 문학이론 같은 - 정의가 명확한 전문용어가 있겠지요.


  고려원의 발췌본은 짤막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1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을 15장부터 다루고 있습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앞뒤로 붙어 있어요. 쓸데없이 낭비할 시간이 있던고로 15장부터 일대일 대조를 해봤는데, 주로 대화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후반부 스토리에 호흡을 주기 위해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반응을 번역자가 덧칠해 넣은 것을 제외하면 내용 추가는 따로 없었습니다. 약간의 윤색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대로 번역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상황이 이러하니, 고려원의 발췌본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에 이르면 등장인물들은 이미 사건을 중반 정도 겪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바쁜 사람들이라 자기들이 이미 아는 정보를 구구절절히 다시 설명하지 않아요. 특히 케이트의 정신없는 화법은 다른 등장인물들에게도 따라가기 힘든 수준이라, 이따금 다른 캐릭터들이 불평을 토로할 정도지요.


  따라서 이 발췌본의 미스테리이자 독자들이 풀어야 할 수수께끼는 범인이 누구인가 (어차피 독자들이 푼다는 것은 불가능한) 보다, 사건 그 자체가 무엇인가입니다. 좋은 예가 하나 있군요. 정신과 의사 이마뉴엘 바우어가 경찰 눈에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낙점된 것은 피살자 재닛 해리슨이 바우어 가족이 사는 집에 있는 이마뉴엘의 진료실에서, 그것도 소파에 누운 채 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살해 도구는 바우어 가의 부엌에서 가져온 칼이었지요. 동기만 분명했다면 이마뉴엘은 그 즉시 체포되었을 거라고, 담당자는 아니지만 케이트 때문에 사건에 관여하게 된 지방검사 리드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피살 장소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그런데 고려원 발췌본을 보면 이 정보가 얼마나 지나서야 나올까요? 3분의 1은 지나서입니다.


  소설에서의 정보 처리, 정보 전달 과정은 꽤 흥미로운 주제인데요, 추리소설에서는 당연한 이유로^^ 이 부분이 더 흥미로워지는 경우가 상당한 것 같습니다. (노파심에 덧붙이면, 이는 흔히 서술트릭이라 불리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저는 이 주제에 비교적 꾸준히 관심이 있는 편인데, 한 편의 소설에서 앞 4분의 3 좀 넘는 분량이 통째로 잘려나가자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볼 수 있었던 것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아만다 크로스가 쓴 대로의 수사담은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서부터 시작해, 정석적으로 수사의 과정을 밟아갑니다. 케이트가 사건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자신의 알리바이를 조사하기 위해 사건 다음날 찾아온 경찰의 방문을 통해서라는 정도가 신선한 양념이랄까요. 그러나 발췌본에서는 독자들이 케이트의 수사를 따라감과 동시에 놓친 정보들을 따라잡아야 하고, 이것이 색다른 묘미를 제공해줍니다. 그 와중에 다분히 번역자의 의도라 느껴지는 대로 리드 암허스트를 사건 담당 검사로 착각한다던지 하는 옆길새기는 있습니다만 - 제 경험입니다 - 흥미진진한 독서였습니다.


  물론 이건 고려원 '세계 여성작가 서스펜스 걸작선'의 번역이 반드시 고맙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니, 실은 좋았어요. 미사여구를 좀 덧붙이긴 했어도 따로 각색하지 않고 원본의 후반부만 가져다 놓은 것이다 보니, 한 가지 이야기(문자 그대로)를 두 가지 방식으로 읽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해주었으니까요. 한쪽은 우리말 번역이라는 점을 감안하고도 말입니다. 그러나 이 판본이 발췌본이라는 점을 책 그 어디에도 명시하지 않은 점은 - 그리고 좀 찾아본 결과 이 작품 말고도 적어도 한 편은 더 발췌본인 것 같더군요 - 심각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허락을 받았는지도 의심스럽고요. 아, 그리고, 프롤로그 부분의 번역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In the Last Analysis'는 묘사나 진술의 비중이 뒤로 갈수록 줄어, 마지막 몇 장은 맨 처음의 한두 문장을 제외하고는 전부가 등장인물이 주고받는 대사로만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습니다. 케이트의 추리는 바로 이런 대화들에 기반합니다. 케이트의 검경찰 측 정보원인 리드 암허스트도 담당자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 뿐이며, 케이트의 수사 보조를 해주는 제리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돌아다니는 것으로 정보를 얻거든요. 대화의 비중이 이렇게나 높기 때문에, 제가 위에서 이야기하는 '정보 전달의 문제'가 부각될 수 있는 것이지요. 서술은 매우 직접적인 정보 전달 방법이지만, 등장 인물들의 대화를 통한 정보 전달에는 간접적인 속성이 있으니까요. 물론 이렇게 전해지는 정보들 간의 개연성은 케이트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되는 것이다 보니, 때론 듣기만 해서는 비약이라 느껴질 수도 있는 추론들도 케이트가 확신하면 당당히 한 자리를 얻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뭉뚱그려 결론삼아 말하자면, 작가와의 대결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아만다 크로스의 스타일은 그다지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팬슬러 시리즈는 케이트 팬슬러라는 개인의 개성을 좋아하고, 그와 연결되어 작가의 이야기하는 방식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작품입니다. (i.e., 저요.)


Posted by Iphinoe

  1타는 이 글이고, acrobat 님께서 그에 해주신 말씀과 관련해서 몇 가지 첨언합니다.




  제 글이 약간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써진 것 같아요. 원래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1. '네덜란드 구두의 비밀'의 문체가 번역본으로 볼 때보다 원본이 아주 살짝 더 얄미운 느낌이더라,
  2. 그게 퀸을 귀엽게 만드는 유머의 원천 중의 하나이고 또 (우연이 아니게도) 내게 먹히는 종류의 매력이다
  3. 고전기 영미권 작가들이 구사하는 유머에 번역하면서 전달이 잘 안 되는 것들이 종종 있는데, 퀸이 구사하는
  유머는 그와 달리 비교적 잘 살아남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더라

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건 어감의 문제라 나 자신은 퀸의 문체가 아주 약간 더 잘난척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100% 확신하기는 역시 어렵다,는 쓰려다 만 말이고요.


  저도 EQ의 유머는 단편에서 좀 더 노골적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도입부에서 불필요한 인용이나 쓸데없이 복잡한 미사여구를 기용해 머리를 어지럽히고 시선을 교란하는^^; 때가 많죠. 그것도 역시나 퀸의 매력 중의 하나고요. 그게 매력이 될 수 있는 근원은 acrobat 님 말씀대로 퀸이 미숙한 젊은이(=도전하는 자)의 심성을 지닌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과,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 기저에 깔린 감성이 자기비하적인 색채를 은연중에 간직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겠지요. 퀸이 시리즈의 흐름에 따라 설정상 나이를 먹을 만큼은 먹으면서도 나이를 먹는 것 같지 않는 것은 전자의 요소가 후자와 면밀히 결부되어 시리즈 전반에 흐르고 있는 덕분일 겁니다. 지금 생각나는 예는 시그마 시리즈 중 가장 나중 작품인 '일곱 건의 살인 사건'인데, '로마 모자의 비밀'에서부터 시작해 엘러리가 몇 살인지를 따져 보면 그 나이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그게 잘 드러나지 않죠. 캐릭터 본인은 나름 애쓰지만 작가로서의 묘사를 보면 이 인간 (정신)연령이 본래 몇 살인지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


  실은 원 글을 쓰면서 cocky 또는 cockiness 요 단어를 너무나도 쓰고 싶었는데, 요새 양쪽 언어를 분리해서 쓰려고 노력하는 중이라 자제했습니다. 제게 있어 어감상=_=;; 엘러리 퀸 개인이 주는 느낌을 이 이상 잘 설명해 주는 단어가 없더군요. 얄밉다는 단어도 글 쓰고 나서야 생각났고, 실은 제게 있어서는 꼭 정확하진 않아요. 이렇게 되면 심란해집니다.


  그리고 이건 여기까지 acrobat 님께 동의하면 자동적으로 그 다음도 동의하는 게 될 것 같아서 덧붙이는데, 저도 엘러리의 논점일탈하는 인용이나 꼭 애들이 어깨를 으쓱하고 뽐내는 것 같은 수준의 유머(실은 둘은 같은 맥락이죠)를 다 좋아하고, 그 근간에 있는 은근한 자기비하와 그에 공존하는 자신감까지 좋아하긴 하는데, 그 이유를 찾으라면 제 경우는 가벼운 수다가 주는 편안함을 살갑게 여기고 있다는 게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퀸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스스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있고 그게 시리즈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잖아요. 자기비하도 같은 맥락이고, 내놓고 뻐기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거죠. 그래서 아무리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아무리 심각해진다 하여도 기본적으로는 유쾌한 정서를 지니고 있고요.


  물론 저도 퀸의 정서에 아주 많이 공감합니다. 기본적으로는.-.ㅡ;;



  그리고 퀸이 홈즈의 정통적 계승자라는 말은 그 자체로 설명이 더 필요한 발언인 것 같은데요. 얼마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명제일까요? 추리소설사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하니 그 이상은 말하기 어렵지만, 퀸 경감에 대한 애정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서.^^ 저도 퀸 경감을 좋아하는 건 사실인데, 퀸 경감 본인을 좋아한다기보다는 퀸 부자가 함께 있을 때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 이상 깊게 들어가 뭔가를 건지지는 못했는데, 어쨌든 그래서 얄팍하다거나 가볍다는 지적도 때로 받아온 퀸의 1기 작품들에 대한 애정을 꿋꿋히 피력하고 있는 것이지요. 더할 나위 없는 오락이 되어주니까요.


Posted by Iphinoe

  클릭
  글을 다른 데서 써서 완성되면 여기 올리자,고 생각했더니 쓸데없이 시간이 들어서 포기. 글의 성격인즉슨 잡담인데 쓸데없이 말이 복잡해지는 것도 싫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앞부분은 다른 데서 쓰기 시작했고, 중간에 여기로 가져와서 말 나오는 대로 올립니다. 아마 그 경계가 어디인지까지 표가 확 날 거예요.

(닫으시려면)




  엘러리 퀸의 1931년작인 '네덜란드 구두의 비밀The Dutch Shoe Mystery'는 퀸의 주무대 뉴욕에 있다는 네덜란드 기념 병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다룬다. 시간차 트릭과 밀실 트릭을 변형 혼합하여 수수께끼로 제시하는 작품이고, 다 펼쳐놓고 보면 물적 증거 몇 가지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사건을 풀어간다. (이 정도면 스포일러는 피해갔나=_=) 몇 년 전에 헌책방에서 영문판 페이퍼백이 돌아다니는 걸 보고 사두었는데,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병원 내부 묘사가 너무 심란해지는 부분은 더러 건너뛰기도 했-0-고 사전은 최소한으로만 찾았으나, 그 외에는 비교적 충실하게 읽었다.



  엘러리 퀸의 작품에서 많은 경우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현학을 장난스레 써먹는 그 유머 감각 ― 차라리 '기교'라 부르고 싶은 ― 이다. 으스대고 있는 게 맞긴 한데 말투는 농담 따먹자는 식이어서, 내놓고 잘난척을 하면서도 그걸 귀여운 수준으로 만든다. 독자를 향해 눈을 찡긋해 보이는 것처럼. 이 재주 부리는 말투는 등장인물 엘러리 퀸만 그런 게 아니고 작가 엘러리 퀸으로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다시 말하면 글의 문체가 그렇다는 것이고, 퀸의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 원문의 맛을 보고 싶었던 것은 상당 부분 이 사탄같은 말솜씨 때문이었다.


  퀸만 그런 게 아니고, 고전기라고 불리는 시대의 작품들에는 대체적으로 유머가 많이 배어 있다. 코넌 도일와 아가사 크리스티 역시 유머를 살려 글을 썼다. 이들의 유머 중에는 영어라는 언어의 특성에 기대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원어로 읽을 때에야 비로소 잡아낼 수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존재한다. 영어는 관계사와 같은 수식어를 통해 한 문장에 여러 개의 정보를 담는 게 가능한데, 그 정보들 사이에는 별다른 관계가 없을 때도 많다. 영어로 쓰인 글에서 이를 이용해 유머를 구사하는 걸 종종 보는데, 그런 유머는 상당 부분 어감의 문제이다 보니 문장 구조가 다른 우리말로 옮겨오면 덜 명백해지는 경우가 생긴다.


  엘러리 퀸이 주로 구사하는 유머는 위에 썼듯 성격이 좀 다른 것이어서 번역된 뒤에도 살아남는 종류의 유머 감각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The Dutch Shoe Mystery'를 읽어 보니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전부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뻐기는 태도가 전체적으로 톤다운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등장인물) 퀸의 발언보다 (작가) 퀸의 서술을 통해 드러나는 잰체하는 유머가 콕 꼬집어 말할 수 없을 만큼 은근히 조금씩 톤이 낮추어져 있었다. 이 작품이 겨우 퀸의 세 번째 소설이기 때문에 그런 유머가 더 노골적이진 않나 생각하는데, 나야 진즉에 넘어간 상태라 그런 유머 감각에(도?) 낄낄거려 가며 매우 즐겁게 보았다.



  퀸을 왜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늘 말해 왔었는데, 이 독서를 통해 모종의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딱히 그 덕분이라기보다는, 오랜 동안 이 문제에 대해 알게 모르게 생각을 해왔고 그 덕분에 형성된 모종의 느낌이 이 시기에 이르러 구체화될 기회를 잡았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이번에 새삼 깨달은 것은 내가 확실히 EQ의 유머감각에 약하다는 것이다. 즐거움을 준다,는 그 이상에 매우 몹시 충실하다. 물론 이건 내 성향하고 퀸이 구사하는 유머하고 맞는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지만, 퀸이 정말 잘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이 정도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어려서 접한 탓이 큰 듯.




  가외의 생각들.


  1. 이 역시 새로운 건 아닌데, 퀸이 경찰의 초동수사를 참 잘 그려낸다는 생각을 새삼 했다. 상세하고 사실적이다. 내내 농을 하고 있다는 스타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현실감 있게 느껴질 수 있도록 잡아주는 게 바로 이 부분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네덜란드 구두의 비밀'은 넉넉잡아 반 이상의 분량이 초동수사를 묘사하는 데 할애되어 있는데, 이건 국명 시리즈의 전반적인 공통점이고, 더 후기작들까지도 이어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관계자이면서도 수사의 당사자는 아닌 엘러리 퀸의 동선을 따라다님으로써 경찰이 사건 현장에서 으레 하게 되어 있는 반복적인 활동들에 지면을 지나치게 할애하는 위험은 방지한다. 이것의 대표적인 예는 '프랑스 파우더의 비밀'. 작가 퀸은 탐정 퀸을 적절한 순간에 시체가 발견된 현장에서 빼내어 범죄 현장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올려보낸다. 경찰이 '헤집어놓기' 전에 둘러볼 수 있도록, 적절한 핑계를 달아서.


  2. 의외로 영어가 어렵지 않았다. 물론 단어 수준은 내가 사전 없이 읽을 수 있는 정도를 상회하지만, 문장구조가 까다롭다거나 하는 그런 어려움은 없었다. 내용을 다 알고 읽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하신다면 ― 당연히 그것도 있겠지요. =) 그러나 단편, 특히 도입부에서 자주 부리는 고도의 기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쩌면 이렇게 느끼는 건 문맥일탈 맥락없는 인용이 장편에선 좀 드물어서인지도-_-


  사족. 이건 퀸 씨와는 전혀 관계없는 얘기. 어찌된 게 요새는 우리말로 글을 써도 문장 구조나 단어 선택이 매우 영어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괴롭다. 이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을 듯한데, 왜냐면 해당 경우에 우리글에서의 모범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내 지식이 형편없이 빈약하기 때문.


Posted by Iphinoe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게 벨트 아래를 치는 것처럼 느껴지긴 합니다만, 마침 제가 두 이야기를 양쪽 매체로 다 접했고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끊임없이 떠오르게 하는 데다 둘 사이에 밀접한 연관도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하렵니다.
  스포일러는 없으나, 어느 쪽이건 '블랙 다알리아'를 접하지 않으신 분께는 쉽지 않은 읽기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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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엘로이의 작품으로 먼저 읽은 'L.A. 컨피덴셜'에서도 그랬지만 '블랙 다알리아'에 대해서도, 제일 먼저 두드러지게 다가오는 특색은 플롯의 복잡다단함이고, 그 다음은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물적 증거, 추론, 우연이 모두 설득력 있게, 빈틈없이 맞물려 있더라는 점입니다. 추리소설에서 이 세 요소가 고르게 섞여 무리없이 배치되기가 쉬운 일이 아니므로, 그 어려운 작업을 멋지게 해낸 작가와 그 결과물에 압도당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10년에 걸친 대역사를 그린 'L.A. 컨피덴셜'이 아무래도 스케일이 더 크고, 나중 작품인 만큼 더 정교합니다만, '블랙 다알리아'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에 훨씬 단단하게 기초해 있을뿐더러 실제 피살자와 그 주변에 있던 인물들도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에, 작가가 해야 했던 작업이 그것과 비교해 딱히 더 간단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블랙 다알리아'는 1947년 L.A.에서 실제 일어났던 살인사건을 토대로 플롯을 이끌어 갑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 버키는 전직 권투 선수로 징집을 피해 경찰이 되어 그저 그런 순찰경관으로 일하던 중에, 또다른 권투 선수 출신 경찰인 리와의 자선 경기 행사를 통해 경찰의 꽃이라는 영장국으로 전보될 기회를 얻습니다. 리는 1939년에 무장은행강도 사건을 해결한 일로 스타가 된 경사로 야심과 그걸 이룰 실행력을 모두 가진 우수한 경찰이지만, 당시 주모자로 체포되어 감옥행을 선고받은 자의 애인과 사귀기 시작하는 바람에 경력이 약간 주춤한 상태로 묘사되지요. 둘은 업무와 사생활 양면에서 모두 좋은 파트너 사이가 되고, 문제의 여인인 케이는 삼각형의 마지막 꼭지점으로 두 사람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다른 범죄자를 추적하던 중에 마주친 블랙 다알리아 사건은 세 사람 모두의 삶을 소유하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블랙 다알리아 사건이란 1947년 한 여인이 L.A.의 거리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인데, 이 여자는 배우 지망생으로 몇 년 동안 할리우드 주변을 맴돌아 왔으나 경력은 보잘것이 없어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하루살이를 해오던 사람입니다. 발견된 시체는 허리가 잘렸고 자궁을 비롯한 주요 장기들이 적출되었으며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는 입이 양 귀까지 찢어져 있었지요. 그 기괴함과 참혹함 때문에 이 사건은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고, 경찰과 검찰의 높으신 분들은 그들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이 사건 수사를 극적으로 꾸며가려 합니다. 블랙 다알리아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이 여자를 누가 죽였는지 밝혀내는 것이 물론 소설의 기둥줄기이지만, 이 사건 하나만 해도 관련자들의 개인사와 사건 안의 사건으로 인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개인사에서 드리우는 그림자까지 진상을 밝히는 것을 방해합니다.


  이렇듯 네다섯 사건이 한데 엮여들어 정치적 계산과 개인적 감정의 회오리가 그물을 짜는 그런 복잡한 플롯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두 시간 분량의 영화 시나리오로 각색할 수 있을까요? 영화를 위해 'L.A. 컨피덴셜'을 각색했던 브라이언 헬글랜드는, 소설에서 일단 세 사람이 나오지 않는 장면은 모두 들어낸 뒤 나머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다시 짰다고 하지요. 실제로 소설과 영화는 전개는 물론이고 결말조차 같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L.A. 컨피덴셜'의 시나리오가 훌륭한 각색이라고 말하는 것은, 시나리오로서 좋은 시나리오였을 뿐만 아니라, 소설의 많은 것을, 심지어 플롯까지 바꾸고도 유명 작품인 원작의 핵심을 훼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가장 큰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L.A. 컨피덴셜'의 본질이었던 두 가지 요소는 - 제 생각에 - 책에서 영화로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바로 책의 주제였던 '정의'의 문제와, 10년의 스토리를 아우르는 인물화의 근간을 이루는 몰락이라는 테마입니다. 둘은 워낙이 밀접히 연결되어 있지만, 플롯의 복잡함 때문에 길을 잃기 쉬운 'L.A. 컨피덴셜' 같은 소설을 각색하면서 그 둘 중 어느 하나도 희생시키지 않고 살려냈다는 건 탁월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블랙 다알리아'와 'L.A. 컨피덴셜'의 가장 큰 차이는 인물화의 방식을 통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양쪽의 주인공들은 다 죄를 지은 사람들입니다. 책임져야 할 게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그러나 자신들이 지은 죄, 그 과거의 무게에 끊임없이 지배당하는 'L.A. 컨피덴셜'의 주인공들과 달리, '블랙 다알리아'의 주인공들은 그걸 극복하거나 속죄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걸 그냥 삶의 불가피한 측면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소설 속의 많은 '어른/고참'들처럼 그 과거를 자신의 본질로 인정하고 확 타락해 버리거나 그 과거와 화해할 수는 없지만, 덮어두고 살 수는 있다는 거죠. 버키가 경찰로 남아 있기 위해 소꿉동무였던 일본인 친구들을 밀고한 일을 후회한다는 단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애석해 하고 부끄러워는 하지만요. 리와 케이가 그에게 비밀로 했던 그 둘의 어두운 과거를 알게 되고도, 버키의 일차적인 반응은 윤리적인 것에 대해서보다는 그들이 자신에 대해 지킨 비밀이 있었다는 것, 즉 셋이 이룩했노라고 자신이 믿어왔던 특별한 유대 관계가 환상에 지나지 않았었노라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요. 그건 그들이 사는 세상이, 도입부에 묘사되었던 군인들의 폭동(=마땅히 질서 유지에 봉사해야 할 자들이 그걸 뒤엎는 데 앞장서는 모습)처럼, 마땅히 그래야 할 바대로 돌아가는 대신 뒤틀리고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게 소설의 입장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리 다르지 않은 시대상을 다루면서도 두 소설의 주제는 달라집니다. 정의와 속죄가 주제였던 'L.A. 컨피덴셜'과 달리, '블랙 다알리아'는 현실과 그 현실 속에서도 견디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동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설사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환상에 지나지 않으며 더 크게는 본인이 그 사실을 안다 하여도, 버키는 엘리자베스 쇼트 사건을 마무리짓고 그와 얽혀버린 자신의 과거를 매듭지음으로써 케이와 (그리고 리와) 나누었던 그 동화 속 같았던 시기로 돌아갈 길을 연다는 것을 압니다. 결국 버키가 쇼트 사건의 해결에 그토록 매달렸던 것은 쇼트를 위해서도 어떤 대의를 위해서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죠. (이 점은 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리가 쇼트 사건을 위해 다른 건을 포기하는 내용이 괜히 들어간 것이 아니겠지요. 모든 진상을 알고 난 뒤의 버키의 고민도 '나'가 위주가 된 것입니다.) 'L.A. 컨피덴셜'의 결말에 비해 '블랙 다알리아'의 결말이 한 챕터의 끝이라는, 종결의 느낌이 더 강한 것도 그런 태도의 다름에서 오는 차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슬쩍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주인공들의 과거사를 바꾸고도 두 버전의 'L.A. 컨피덴셜'이 캐릭터를 묘사하는 데에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이러저러한 변화는 많습니다. 책과 영화에서 변함없이 같은 모습으로 남은 주인공은 버드 화이트뿐입니다. (셋 중 가장 프로타고니스트이기 때문이겠지요.) 에드 엑슬리의 경우는 가족사가 완전히 달라지고 더 중요하게는 경찰 일에 투신하게 된 배경이 달라졌으며, 잭 빈센즈는 조연으로 위치가 완전히 규정되면서 과거사가 아예 들어내져 버렸지요. 그러나 그들의 고민은 그대로 남습니다. 추상적이고 절대적 선인 '정의'를 회색 현실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가의 문제 말입니다. 화이트에게 정의의 구현은 비교적 단순한 문제입니다. 착한 놈과 나쁜 놈이 있고 나쁜 놈은 잡아다 응징하면 되는 것이지요. 반면 스스로 정치적 동물인 엑슬리는 옳고 그름이 그렇게 칼로 자르듯 분명하지 않은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절대적 정의를 추구하고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게 엑슬리의 딜레마입니다만. 빈센즈는 조금 다릅니다. 그는 자신이 그 누구도 심판할 수 없는 타락한 인간임을 알고 있지요. 그럼에도 그들 모두는, 그 길에서 벗어나 있건 아니건 간에 바른 길은 존재하고 그 길을 가는 게 옳다는 걸 압니다. 거기에 비추어 볼 때, 소설과 영화의 결말은 구체적인 사실은 다르되 나타난 모습은 같았습니다. (스포일러에드는 타협했고, 화이트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은퇴했으며, 빈센즈는 죽어버렸죠.) 길을 가려던 자들의 뜻은 좌절되었고, 길에 남아 있는 사람은 양심에 짐을 진 타락한 인간입니다. ‘L.A. 컨피덴셜’은 어느 모로 보나 해피엔딩이라고는 할 수 없는 몰락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영화는 이와 연결지어 주제도 살렸습니다. 영화 초반에 스미스 반장이 엑슬리에게 던진 '용의자가 범인임을 알면서 증거가 없어 놓아주어야 한다면 증거를 심겠는가? 등 뒤에서 쏠 수 있겠는가?' 등등의 질문은 원래 소설에선 엑슬리의 아버지가 한 질문이었고, 소설에선 두 사람의 입장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잠시 지나가는 배경이었을 뿐 엑슬리의 인생에 그렇게까지 중요한 질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질문을 영화의 핵심 대사로 가져오면서 소설에선 복잡다난한 플롯 속에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던 '회색빛 현실 속의 정의'이라는 주제를 살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소설도 같은 지점에서 시작하긴 하지만, 중간에 이야기의 무게 중심이 화이트와 엑슬리의 대립 그리고 빈센즈의 영락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이 갈등이 다시 전면으로 부각되는 것은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입니다. 그러나 각색된 시나리오는 클라이막스의 장면을 통해 둘의 문답에 전혀 다른 무게를 부여하면서, 2시간 반짜리 영화의 통일성과 응집력을 지키고 주제도 부각시키는 길을 택했습니다. 해서 영화는 결말을 바꾸고, 범인의 정체를 비틀고, 주인공들의 과거를 바꾸거나 아예 없애버리는 과격한 변화를 하고도 원작의 정수를 지켰다는 찬사를 받았던 겁니다. 물론 제 생각에 그렇다는 것입니다만.


  '블랙 다알리아'는 다릅니다. 캐릭터들은 훨씬 도피적이고, 깨끗한 양심보다는 마음의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이지요. 리가 블랙 다알리아 사건에 집착한 것은 다른 그 어떤 이유보다도 여동생의 실종에 대해 자신이 느껴온 채무의식을 변제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버키가 사건을 추적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리의 그림자를 어떻게든 처리해서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았던 케이와의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사건의 진상,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묘사는 본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내면 변화가 더 중요하니까요. 그런 이유로 인하여, 소설을 읽다 보면 다루는 사건이 오직 하나뿐인데도 쇼트라는 피해자 자신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쇼트의 주변에 대한 수사가 광범위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자칫 속기 쉬운 부분입니다만.


  그런데 영화 '블랙 다알리아'는 캐릭터에 집중하면서도 소설의 플롯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것도 2시간여밖에 안 되는 상영 시간 내에, 버키가 사건 진상을 알아내어 가는 그 복잡한 과정을 최대한 우겨넣으려고 애썼지요. 그게 반드시 문제라는 건 아닙니다만, 그 와중에 희생된 것이 다름아닌 등장 인물들의 심리 변화 과정에 대한 묘사였기 때문에, 전체적인 이야기의 힘이 약해지는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등장 인물 내면의 변화 양상이 본질인 이야기에서 심리묘사가 상당 부분 들려나간 데다 때론 버키의 나레이션조차 그 부분을 채워주지 못했으니, 세 사람의 이야기는 사건수사에 잡아먹혀 버린 꼴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영화 전체의 설득력 부족으로 이어진 거죠. 예로 들고 싶은 대목이 특히 두 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초반부에 세 사람이 친해지는 과정을 축약해 그리면서 버키와 케이 사이에 감정이 자라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둘 사이에 균열이 나게 되는 지점에 대한 묘사입니다.


  영화는 소설과 다른 매체죠. 소설에선 한 마디 진술로 그칠 내용도, 영화에서는 직접 보여주어야 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케이가 리를 뺀 두 사람만의 '우리 관계'를 언급하는 지점을 잠시 생각해 보면, 소설에선 '나'인 버키가 그 전에 자신이 어느 새 케이를 사랑하게 되었음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세 사람이 함께 누렸던 '좋았던 시절'에 대한 묘사가 압축적으로 지나가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영화를 보자면, 영화도 같은 방식으로 그 좋았던 시절을 묘사합니다. 버키의 나레이션과 함께 잇따른 짤막한 스케치 몇 개로 그려내지요. 그러나 그 중에 버키와 케이 사이의 감정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습니다. 신년 파티 때 리가 함께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질투로 보이는 감정을 막연하게 느끼는 것만 잠깐 나오잖아요. 그건 버키와 케이에 대한 복선이 아니라 리에 대한 복선이죠. 심지어 버키의 나레이션에도 두 사람 사이의 로맨틱한 감정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각관계의 가능성이 충만함에도 불구하고 케이가 리에게 '우리 관계는 어쩌지?' 하고 묻는 대목이 묘하게 뜬금없어지는 겁니다. 전 소설을 읽고 영화를 봤으니 영화의 묘사가 개연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소설에서 본 걸로 빈 부분을 알아서 채워넣는 게 정상일 텐데, 영화를 보는 도중에도 그 부분이 그냥 '비었다'고 느껴졌거든요. 버키-케이 관계에서의 감정선을 제대로 그려주는 것은 소설을 고려할 때 더욱 필수적이었습니다. 리의 운명이 소설과 영화에서 다르게 풀려가니까요. 소설에서 리는 갑자기 그냥 증발해 버리기 때문에, 버키와 케이가 서로의 감정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지지부진하게 관계를 끌어나가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버키가 쇼트 사건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게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선 그런 과정 없이 리의 죽음이 바로 확인되어 버리죠. 버키가 수사를 밀어붙이는 동기가 흐려지는 대목입니다.


  그걸 설명하기 위해 나오는 것이 바로 삼자대면 씬, 그러니까 버키, 케이, 매들린이 맞닥뜨리는 장면이지요. 여기서 케이는 버키가 죽은 엘리자베스에게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당신도 리처럼 붕괴할 것이고 자기까지 거기 끌려들어가진 않겠다고 선언하고 떠납니다. 이 대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은 영화와 소설이 좀 다른데요, 소설에서 문제의 대화가 나오는 시점은 일단 시기적으로 훨씬 뒤이고, 더군다나 리의 실종의 진상이 드러난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도 아니었어요. 반면 영화에서의 당시의 정황은, 리가 살해당한 진짜 이유를 버키가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와 더불어 케이가 숨겨온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버키의 대응은 집을 뛰쳐나와 '엘리자베스 쇼트를 꼭 닮은' 매들린에게 가는 것이었지요.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에 케이가 찾아와 둘이 같이 밤을 보낸 모습을 보고, 그것이 위의 대화로 이어집니다. 이 각색에 문제가 있다고 보느냐 아니냐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는데, 제 경우는 이 대화가 버키가 사건에 매달리고 있는 동기를 약화시킨다고 보는 쪽입니다. 소설에서도 버키는 충분히 쇼트 사건에 사로잡혀 있습니다만(영어로 haunted라고 하는 그 뜻이 제일 맞을 것 같아요) 그 본질적인 이유는 쇼트 사건이 풀리면 꼬인 자기 삶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감정 때문이거든요. 그리고 그가 향하고 갈망하는 건 바로 케이와 리와 함께 누렸던 동화같은 관계를 다시 찾는 것이고요. 그런데 문제의 대화는 버키가 엘리자베스 쇼트 본인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함의를 담아내어, 희생자가 여자라는 점을 짚고 넘어감과 동시에 버키가 사건 수사를 통해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의 문제 - 즉 본질적인 방향 설정의 문제를 흐릿하게 만듭니다. 물론 영화와 소설은 같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고, 한 사람의 동기가 꼭 초지일관할 필요도 없죠. 영화에서도 결말이 문제를 다시 리에 대한 것으로, 그 셋이 맺어온 관계의 복구에 대한 것으로 돌려놓는데, 그 역시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문제는 그 사이에 있는 건 쇼트 사건의 진상에 대한 묘사뿐이라는 겁니다. 곁들여진 숱한 나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버키의 상념은 빠져 있습니다.


  해서, 버키의 모험은 플롯을 뒤따라잡느라 그 내적인 여정이 설명이 되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남고 만 느낌입니다. 과격하게 말해 의미 없는 이야기가 된 거지요. 남은 것은 너무도 복잡한 나머지 어지러워 보이는 사건과, 그럼에도 결국은 모놀로그 자백으로밖에는 얻어내지 못한 진상 설명(소설로도 장황하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로 만들어놓으니 진짜 길더군요. 특히, 범인의 정체를 비롯하여 버키가 스스로 알아낸 게 거의 없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요), 그리고 소설에서와는 달리 생생한 실체를 부여받은 엘리자베스 쇼트의 캐릭터뿐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쇼트가 버키, 리, 케이보다 더 강렬하게 남았다면 그건 다 (동어반복 같지만) 그렇게 찍은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 영화가 이미 도입한 나레이션을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제 눈에도 가장 손쉬운 해결책으로 보여서요. 결국 똑같이 버키의 갱생담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거면서, 소설의 핵심 단어&키워드였던 '동화fairytale'가 영화가 반 넘어가서야 처음 나왔다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L.A. 컨피덴셜'과 '블랙 다알리아'는 모두,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등장인물의 성장 또는 변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야기이지만 정작 그 이유는 각각 다릅니다. 'L.A. 컨피덴셜'에선 정의에 대한 숙고가 캐릭터들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건의 진상이 중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드러난 진상이 수사 당사자들과 관련이 있지요. '블랙 다알리아'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사건은 단지 등장 인물에게 인생에서의 한 단계를 마무리짓고 다음 발을 내딛게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정도입니다. 버키를 변화시키는 동력은 쇼트 사건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오지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블랙 다알리아'의 각색이 'L.A. 컨피덴셜'보다 어려웠을지 모르겠다 싶기도 합니다. 일차적으로 독자와 관객들의 시선을 끄는 건 살인 사건인데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으니까요. 극장 개봉판 '블랙 다알리아'의 각색은 그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제대로 하는 데 실패한 것 같습니다.


  실은 고려해야 할 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꼬인 플롯에 비해 영화 시간이 너무 짧아요. 쇼트 사건 외에도 동시간대에 진행되는 사건이 둘이나 더 있는데, 영화에서도 그걸 다 그대로 다루더군요. 아니나다를까 소설을 안 보고 영화만 본 제 친구는 그 세 사건이 너무 뒤엉켜 돌아간 나머지 다 한 사건인 줄 알았더랍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긴 하지만 마이너한 정보들이, 보는 사람이 미처 파악할 틈을 다 안 주고 슬쩍 지나가 버립니다. 리가 쇼트 사건 수사를 위해 다른 중요한 사건을 방치했노라는 복선이 그 한 예죠. 결국 이 때문에 수사가 잠정 중단되면서 법망을 빠져나간 용의자가 새 범죄를 저지르고, 그로 인해 버키와 리의 대립이 불거지는 결과를 낳잖아요. 이건 극장에 걸린 한국어 자막이 특정 정보를 빼먹은 탓에 더 커진 면도 있긴 한데요, 리는 쇼트 사건에 집중하려고 그들이 맡고 있던 다른 사건의 용의자가 L.A. 경찰 관할권을 벗어났다고 거짓으로 보고합니다(자막은 이 부분을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희생자 머릿수가 늘었다는 사실에 격분한 버키가 리와 주먹다짐을 하지요. 그 갈등은 리가 맞이한 운명에 대해 버키가 느끼는 죄책감을 더 깊게 만든 주요 원인 중 하나고요. 소설에서는 이 문제로 리와 버키가 말다툼을 벌이고, 버키가 이 거짓 보고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언급이 짬짬이 나옵니다. 그러나 영화에선 리가 거짓 보고를 했노라고 말하자 버키가 놀라 보긴 하지만 아무 말도 않죠. 대화 전체가 3초 정도 나오나요? 곧바로 다른 화제로 넘어가 버립니다.


  영화 '트로이'처럼, '블랙 다알리아'도 극장에 걸린 판이 너무 많이 잘라낸 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촬영 때 사용된 대본을 보고 나면 많은 부분이 납득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이대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제 취향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좋은 이야기이고 잘 만들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게다가 버리기 아까운 장면들도 있었어요. 많이들 언급된, 쇼트의 시체가 처음 발견되는 장면의 카메라워크는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매력적이고 자신감 넘쳐 보이는 멋진 씬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브라이언 드 팔마라는 거장이 손을 댄 작품이니, 그런 면에서도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것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앞으로 다시 시도될 수 있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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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phinoe

지정 문답

재앙의 거리 2007. 10. 13. 17:11

  acrobat 님 블로그에서 받았습니다. 받고 보니 무슨 제목의 문답인지도 모르고 있군요. 이번에도 역시나 난해한 문답인데, 우야든둥 도전해 보겠습니다. 요새 생산성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일상을 살고 있어서 무어라도 쓸 거리가 주어진 게 반갑습니다. (다 쓰고 났으니 하는 말인데 그다지 내실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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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톤을 받는 5명 절대로 5명! (지정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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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정기적으로 들러주신다고 알고 있는 분들이 워낙 안 계셔서 5명은 고사하고 2명도 어렵겠는데요. 그래도 명희님께서 엑스파일, 혹은 밀레니엄, 혹은 둘 다, 혹은 1013 프로덕션의 전체 작품, 이 중 하나라도 해주실 수 있다면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아 이 설레발치는 버릇 좀 고쳐야 하는데... 미리 감사드립니다. (꾸벅)

  그리고 생각해 보니 보내신 분께 되돌리면 안 된다는 법은 없군요. acrobat 님, 역시 엘러리 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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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생각하는『엘러리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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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전 '꼬리 아홉 고양이Cat of Many Tails'와 '재앙의 거리Calamity Town'(아마도;;)를 원서로 구했습니다. 퀸은 재담을 즐기기 때문에, 번역본을 읽으면서 원래는 어떤 표현으로 쓰여진 구절인가 궁금해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지요. 그리고 두 작품은 전반적으로도 그렇거니와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감정의 파고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 원본의 묘사를 보고 싶기도 했어요.

  원문을 손에 넣기는 했는데 번역본이 손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어서, 아직 둘을 대조해 본다거나 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궁금했던 장면들을 찾아보고 나서 든 생각은 역시나 계속 해오던 1. 퀸이 좋다 2. 왜 그런지 꼬집어 말을 못하겠다, 쯤으로 요약할 수 있겠군요. 설문 목록을 보니 아래에서 더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것들과 같이 구한 'There was an Old Woman'은 '수수께끼의 038 사건'이라는 제목 아래 아동용으로 된 번역으로만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한글본은 그걸로 읽은 적이 있고, 이번에 도입부를 원문으로 조금 읽어본 결과 번역이 (그럴 거라 짐작은 했다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좀더 과하게 창작에 가까운 수준인 것 같더군요. 복잡하고 정신없이 들뜬 분위기로 작품을 몰아가는 퀸 특유의 기술이 유감없이 발휘된 이야기라, 한두 발짝 떼면 모르는 단어에 걸려 넘어지는 언어로 읽기에 부담스럽긴 하지만, 정식으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러나 그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목표는, 더 최근에 구한 'The Glass Village'입니다. 매카시즘이 휩쓸던 당대 분위기를 반영한 작품이라고 들었는데, 퀸 부자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에 의욕이 좀 꺾이긴 했지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합니다. 어떤 식으로 다루었는지, 얼마나 다루었는지, 모두 알고 싶고 작품을 직접 읽어가면서 알고 싶어요. 지금 제 상태로는 언제가 될지 의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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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엘러리 퀸』에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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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 탐정 엘러리 퀸에게 감동받아본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몇십 살을 먹었어도 엘러리 퀸의 근본은 변함없이 경박한 청년이니까요. '일곱 번의 살인 사건Double, Double'의 마지막 장면 같은 경우 와닿는 데가 있기도 했습니다만, 그건 탐정 퀸의 마음에 대해서도 있지만 그걸 드러내는 작가 퀸의 방식에도 영향받은 게 커요. 찾아보면 비슷한 예가 더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쟁이 퀸에 대해서. 전 엘러리 퀸이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미친 티 파티The Adventure of the Mad Tea-Party'나 중편 '신의 등불'은 딱 적당한 예고, 그만큼 좋은 예가 아닐지는 모르지만 '용 조각 문버팀쇠의 비밀The Dragon's Teeth'도 저는 그런 면에서 좋아해요. 별로 대단한 작품은 아닙니다. 지금 보면 낯간지러운 오리엔탈리즘도 들어 있고, 사건의 진상에도 의외의 요소는 전혀 없다고 해야 할 정도고, 엘러리는 자주 그러듯이 간단하게 처결할 수도 있었던 사건을 괜히 혼자 꼬았다 다시 풀죠. 하지만 그 분위기, 특히 마지막 결말 부분의 서술은 정말 좋아요. (설명을 좀 더 해보려다 실패했습니다.) 장편으로는 가장 최근에 읽었다고 할 수 있는 '꼬리 아홉 고양이'의 범인 체포 씬을 들 수 있겠네요.

  별로 '감동'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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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감적 『엘러리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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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이 어렵습니다.

  전 탐정이 미스테리를 풀었다는 사실을 작가들이 어떤 식으로 드러내는지 관심을 갖는 편입니다. 이건 특히 고전기 추리소설을 읽을 때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순간을 (그릴 경우) 어떻게 그리는지에 대해서도요. 관심갖는 것치고 잘 기억하진 못합니다만.

  옆에 조력자 겸 관찰자가 있어 그의 시각에서 1인칭으로 이야기가 진술될 때는, 관찰자의 시각과 존재에 따라 그 순간이 다르게 나타나곤 하지요. 홈즈의 경우는 - 그가 오랜 세월 축적해온 범죄 수법과 전과자들에 대한 지식 덕분에 - 사건에 대해 듣는 순간 그 전모를 알아차리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비교적 친절하게 왓슨을 자신의 추리 과정에 참여시키는 편입니다. 특히나 홈즈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거진 단편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정말 친절한 거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는 순간에도 왓슨이 곁에 있어 그 광경을 진술해 주는 경우가 많고요. 포와로의 경우는 헤이스팅즈가 그다지 눈밝은 관찰자가 아니고 포와로도 결말에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서건 조력자를 끝까지 잘 활용하기 위해서건 마지막에야 모든 것을 알려주기 때문에 읽는 우리도 마지막에 가서야 포와로가 어느 시점에서부터 사건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헤이스팅즈가 떠난 뒤에는 작품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 신나게 쓰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렇게 길어질 문단이 아니었어요;;)

  1인칭 조력자가 없는 경우는 그야말로 작품 따라 천차만별인데요, 퀸은 대부분의 경우 퀸의 마음 속을 그대로 그려주진 않아도 추리의 과정은 비교적 투명하게 서술하고, 어느 시점에서 수수께끼의 답에 대한 확신이 섰는지 알려주는 편이죠. 그리고 우리나라에 출간된 작품들만 놓고 봤을 때 열에 아홉은 진상을 깨닫는 그 순간을 잡아주거나, 아니면 그 정황이라도 그려줍니다. (노파심에서. 전 지금 그 유명한 '독자에의 도전'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퀸의 화려한 실패로 악명높은 '그리스 관의 비밀'은 그 대표적인 예고, 단편에서도 이 점은 비교적 잘 지켜져 온 것 같아요. 항상 극적으로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그 때문에 매번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됩니다.

  질문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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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엘러리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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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관성 있게 풀어 설명할 수가 없으니, 일단 떠오르는 걸 나열해볼까요.

  전 바너비 로스보다 엘러리 퀸을 더 좋아합니다. 따라서 비극 시리즈보다 라이츠빌 시리즈와 국명 시리즈를 더 좋아하지요. 탐정으로서도 드루리 레인보단 엘러리 퀸입니다. 그리고 퀸을 좋아한다고 하기가 무색하게도 퍼즐풀이나 추리대결의 요소보다는 작품 이곳저곳에 깔린 유머와 때로 말장난에 가까울 정도인 문체를 더 좋아합니다.

  결국 관건은 '재미'인 것 같아요. 얘기가 거기서 끝나는 건 아니지만. 전 퀸이 작품 전반을 통해 부리는 재치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것 같다'를 반복하는 것만 봐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건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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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 『엘러리 퀸』이 없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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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 엘러리 퀸이 없었대도 세상은 돌아갔을 겁니다.^_^ 작가이자 편집자고 출판인으로서의 엘러리 퀸이 없었다면 세상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 두 사람의 명성을 실감하기보다는 듣기만 한 축이니까요. 미국에서는 출판인으로서의 엘러리 퀸의 존재가 잘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제 자신이 잘 알지는 못하고, 일본에서는 작가로서의 엘러리 퀸의 영향력도 상당하다고 합니다만 역시 전 모르는 영역이라서요.

  제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줄긴 했겠지요.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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