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는 위키피디아.



Kate Fansler mysteries:


-- In The Last Analysis (1964)
-- The James Joyce Murder (1967)
-- Poetic Justice (1970)
-- The Theban Mysteries (1971)
-- The Question of Max (1976)
-- Death in a Tenured Position (1981, Nero Award winner)
-- Sweet Death, Kind Death (1984)
-- No Word From Winifred (1986)
-- A Trap for Fools (1989)
-- The Players Come Again (1990)
-- An Imperfect Spy (1995)
-- The Collected Stories (1997) - most are for Kate Fansler, but not all.
-- The Puzzled Heart (1998)
-- Honest Doubt (2000)
-- The Edge of Doom (2002)


Posted by Iphinoe

  아만다 크로스의 단편집이 있길래 몇 달 전에 사두었다가 오늘 소개글과 첫 번째 단편을 읽었다. 작품은 크로스의 스타일 그대로였고, 소개글을 통해 들은 작가의 목소리는, 글쎄 살아 있었다면 한 번쯤 만나 보고는 싶지만 막상 만나면 다쳐서 올지도 모르는 유형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 팬슬러 시리즈는 케이트 팬슬러의 개성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썼었는데, 그 때는 그게 얼마나 정확한 말인지 몰랐었다. 오늘 보니 크로스 본인이 아예 이렇게 썼구나. "...I thought these stories might be of interest to some readers who had found themselves attracted to Kate Fansler and the life she leads and has led."





  방금 말야, 위 영문에서 딱 한 글자 오타를 냈다. 탈자가 있었다. 그게 빠지니 문장이 이렇게 되더라: "...I thought these stories might be of interest to some readers who had found themselves attracted to Kate Fansler and the lie she leads and has led."뭐 꼭 문법적으로 맞는 표현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렇더라는 거다.^^


Posted by Iphinoe

  'In the Last Analysis(1964)'는 Amanda Cross의 데뷔작으로, 그의 탐정인 Kate Fansler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완역본이 출간된 적은 없고, 고려원에서 93년 출판된 '세계 여성작가 서스펜스 걸작선'을 통해 작품 일부를 접할 수 있습니다.


  Amanda Cross의 본명은 Carolyn G. Heilbrun으로, 콜롬비아 대학에 오래 몸담은 영문학 교수입니다. 추리소설을 쓰기 위해 선택한 필명이 아만다 크로스였고요. 1960년대만 하더라도 아카데믹한 환경에 종사하는 사람이 추리소설을 쓴다는 것이 안 좋게 비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필명을 통해 익명으로 남으려 했다고 하더군요. 작가가 누구인지는 한 팬이 저작권 등록에 대한 기록을 추적하면서 알려졌다고 합니다. 교수직으로부터는 93년에 은퇴했고, 2003년에 사망했습니다. 아만다 크로스의 장편은 모두 14편으로, 전부 케이트 팬슬러가 아마추어 탐정으로 등장하는 추리소설입니다.


  작품 세계는 작가가 익숙한 환경들에 주력하는 것 같습니다. 케이트 팬슬러의 캐릭터부터 뉴욕의 한 대학 영문학 교수라는 점에서 작가와 유사하고, 영문학에 대한 또는 그와 관련된 언급이 무시로 등장하며, 그가 민감하게 느끼고 평생 정치적으로 발언해 온 페미니즘의 이슈가 작품 구석구석에 깃들어 있습니다.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Death in a Tenured Position'은 아예 그 주제에 천착한 작품이고, 다른 작품들에도 여성주의적 고찰의 흔적은 곳곳에 배어 있지요.


  데뷔작인 'In the Last Analysis'는 60년대만 해도 비교적 낯선 소재였던 정신분석/정신치료를 가져왔습니다. 뉴욕의 한 대학 교수인 케이트 팬슬러는 자기 학생인 재닛 해리슨이 믿을 만한 정신과의를 추천해 달라 부탁해 왔을 때 절친한 벗이고 명성 있는 정신과의인 이마뉴엘 바우어를 소개해 줍니다. 그리고 7주 뒤 재닛 해리슨은 바우어의 진료실 소파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죠. 바우어는 자연스럽게 용의자로 떠오르고, 모종의 책임감을 느낀 케이트는 이 사건을 해결하는 일에 뛰어듭니다. 그는 전부터 알고 지내 왔고 개인적인 일로 자신에게 빚을 지기도 한 지방검사실의 리드 암허스트를 통해 경찰 쪽의 동향을 얻고, 사건 조사를 위해 조수로 고용한 제리가 물어오는 정보를 그 스스로 알아낸 사실과 더해 사건을 풀어나갑니다. 아마추어 탐정으로 움직이는 만큼 사건의 수사는 법정에 내놓을 수 있는 증거보다는 손에 들어온 것들을 엮어내는 케이트의 직관력과 상상력에 의존하여 풀려가는데요, 기회와 수단의 요소가 모두 바우어 의사에게 불리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이 문제가 커 보이지만, 나중에는 이야기의 중심이 기회&수단으로부터 동기로 옮겨가면서 주변 인물이었던 사람 하나가 서서히 중요한 존재로 부각됩니다.


  발표된 이듬해 에드가 상의 Best First Mystery 부문 후보작입니다만, 빼어나긴 해도 사실 이 소설이 만장일치로 추리소설 독자들의 감탄을 살 만하다 싶은 구석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사건은 센세이셔널하지만 그 자체로 매혹적이지는 않으며, 플롯이 특별하다거나 범인이 특별하다거나 하진 않아요. 확실히 의외기는 하지만. 묵직한 사회적 함의가 있다거나 하지도 않지요. 이 이야기를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느냐 아니냐의 여부는 등장인물의 성격, 작가의 문체나 개인적 성향 등의 개성이 취향에 맞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제 제한된 지식 내에서 감히 말한다면, 아만다 크로스가 추리소설계에 한 기여는 상당 부분 케이트 팬슬러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그리고 추리소설계에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아 온 여성주의 이슈에 대한 주목이라는 점에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는 확실히 'Death in a Tenured Position'이 가장 탁월하지요. 그러므로 이 소설은 팬슬러에 대한 워밍업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안 좋은 평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데요, 잘 써진 좋은 소설이고 전 엄청 좋았어요.^^)


  이 책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는 좀 다른 방향으로 나가게 되는데, 그건 전적으로 고려원의 '세계 여성작가 서스펜스 걸작선' 때문입니다. 전 팬슬러의 첫 번째 활약상을 이 발췌본으로 먼저 읽고 그 다음에 원작을 구해 읽었는데, 덕분에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 이런 화제를 간단히 부르려고 '정보전달의 문제'라 이름붙였습다만, 아마도 이 이슈가 학문적으로 연구되는 분야들에서는 - 기호학이나 문학이론 같은 - 정의가 명확한 전문용어가 있겠지요.


  고려원의 발췌본은 짤막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1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을 15장부터 다루고 있습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앞뒤로 붙어 있어요. 쓸데없이 낭비할 시간이 있던고로 15장부터 일대일 대조를 해봤는데, 주로 대화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후반부 스토리에 호흡을 주기 위해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반응을 번역자가 덧칠해 넣은 것을 제외하면 내용 추가는 따로 없었습니다. 약간의 윤색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대로 번역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상황이 이러하니, 고려원의 발췌본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에 이르면 등장인물들은 이미 사건을 중반 정도 겪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바쁜 사람들이라 자기들이 이미 아는 정보를 구구절절히 다시 설명하지 않아요. 특히 케이트의 정신없는 화법은 다른 등장인물들에게도 따라가기 힘든 수준이라, 이따금 다른 캐릭터들이 불평을 토로할 정도지요.


  따라서 이 발췌본의 미스테리이자 독자들이 풀어야 할 수수께끼는 범인이 누구인가 (어차피 독자들이 푼다는 것은 불가능한) 보다, 사건 그 자체가 무엇인가입니다. 좋은 예가 하나 있군요. 정신과 의사 이마뉴엘 바우어가 경찰 눈에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낙점된 것은 피살자 재닛 해리슨이 바우어 가족이 사는 집에 있는 이마뉴엘의 진료실에서, 그것도 소파에 누운 채 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살해 도구는 바우어 가의 부엌에서 가져온 칼이었지요. 동기만 분명했다면 이마뉴엘은 그 즉시 체포되었을 거라고, 담당자는 아니지만 케이트 때문에 사건에 관여하게 된 지방검사 리드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피살 장소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그런데 고려원 발췌본을 보면 이 정보가 얼마나 지나서야 나올까요? 3분의 1은 지나서입니다.


  소설에서의 정보 처리, 정보 전달 과정은 꽤 흥미로운 주제인데요, 추리소설에서는 당연한 이유로^^ 이 부분이 더 흥미로워지는 경우가 상당한 것 같습니다. (노파심에 덧붙이면, 이는 흔히 서술트릭이라 불리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저는 이 주제에 비교적 꾸준히 관심이 있는 편인데, 한 편의 소설에서 앞 4분의 3 좀 넘는 분량이 통째로 잘려나가자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볼 수 있었던 것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아만다 크로스가 쓴 대로의 수사담은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서부터 시작해, 정석적으로 수사의 과정을 밟아갑니다. 케이트가 사건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자신의 알리바이를 조사하기 위해 사건 다음날 찾아온 경찰의 방문을 통해서라는 정도가 신선한 양념이랄까요. 그러나 발췌본에서는 독자들이 케이트의 수사를 따라감과 동시에 놓친 정보들을 따라잡아야 하고, 이것이 색다른 묘미를 제공해줍니다. 그 와중에 다분히 번역자의 의도라 느껴지는 대로 리드 암허스트를 사건 담당 검사로 착각한다던지 하는 옆길새기는 있습니다만 - 제 경험입니다 - 흥미진진한 독서였습니다.


  물론 이건 고려원 '세계 여성작가 서스펜스 걸작선'의 번역이 반드시 고맙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니, 실은 좋았어요. 미사여구를 좀 덧붙이긴 했어도 따로 각색하지 않고 원본의 후반부만 가져다 놓은 것이다 보니, 한 가지 이야기(문자 그대로)를 두 가지 방식으로 읽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해주었으니까요. 한쪽은 우리말 번역이라는 점을 감안하고도 말입니다. 그러나 이 판본이 발췌본이라는 점을 책 그 어디에도 명시하지 않은 점은 - 그리고 좀 찾아본 결과 이 작품 말고도 적어도 한 편은 더 발췌본인 것 같더군요 - 심각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허락을 받았는지도 의심스럽고요. 아, 그리고, 프롤로그 부분의 번역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In the Last Analysis'는 묘사나 진술의 비중이 뒤로 갈수록 줄어, 마지막 몇 장은 맨 처음의 한두 문장을 제외하고는 전부가 등장인물이 주고받는 대사로만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습니다. 케이트의 추리는 바로 이런 대화들에 기반합니다. 케이트의 검경찰 측 정보원인 리드 암허스트도 담당자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 뿐이며, 케이트의 수사 보조를 해주는 제리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돌아다니는 것으로 정보를 얻거든요. 대화의 비중이 이렇게나 높기 때문에, 제가 위에서 이야기하는 '정보 전달의 문제'가 부각될 수 있는 것이지요. 서술은 매우 직접적인 정보 전달 방법이지만, 등장 인물들의 대화를 통한 정보 전달에는 간접적인 속성이 있으니까요. 물론 이렇게 전해지는 정보들 간의 개연성은 케이트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되는 것이다 보니, 때론 듣기만 해서는 비약이라 느껴질 수도 있는 추론들도 케이트가 확신하면 당당히 한 자리를 얻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뭉뚱그려 결론삼아 말하자면, 작가와의 대결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아만다 크로스의 스타일은 그다지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팬슬러 시리즈는 케이트 팬슬러라는 개인의 개성을 좋아하고, 그와 연결되어 작가의 이야기하는 방식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작품입니다. (i.e., 저요.)


Posted by Iphinoe

  빌려놓은 채 해를 넘기게 될 것 같아, 근친 한 분께서 입원하셔서 수발을 들게 된 김에 들고 갔던 책입니다. 도무지 작정하고 달려들지 않으면 안 읽게 될 것 같아서요. 어려운 단어도 많고 말투는 배경이 대학 아니랄까봐 얼마나 까다로운지... 사실 읽으면서 많이 킬킬거리기도 했습니다. 하버드 영문학과가 배경이고, 나오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교수기도 하여, 다들 어찌나 현학적으로 sarcastic하던지(이 단어에 적당한 우리말을 못 찾겠군요) 도무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이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로, 하버드 영문학과에 아직(이겠지요?) 여자 교수가 하나도 없을 시절입니다. 여자 교수에게 tenureship(종신고용계약쯤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을 주는 조건으로 장학금 제의가 들어오는 게 사건의 발단이지요. 우리 나라는 대개 교수 등급을 조교수-부교수-정교수로 나누는 걸로 알고 있는데, 몇 년 단위로 계약을 맺어 교수를 고용/재임용하는 미국 시스템에서 tenured professor는 이변이 없는 한 그 대학에 정년퇴임할 때까지 눌러앉게 하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정교수 중에서도 그동안의 학문적 기여를 인정받아 안정된 위치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면 될까요.


  아직 여성 운동이 공공연하게 배척당하는 시기이고, 특출나게 보수적(이라고 책에서 묘사됩니다)인 하버드 내에서 이런 조치는 당연히 하버드 영문학과 교수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합니다. 그들은 고르고 골라서 미국 내 알려진 영문학과 여성 교수들 중에서도 여성 운동과 전혀 관련이 없고 그런 문화를 배척하는 사람과 접촉해서는 tenureship을 주고 들어앉히지만, 동료로서 인정하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은근한 따돌림의 분위기 속에서 당혹스러워하던 신임 교수는 곧 자기 평판을 위협하는 스캔들과 만나게 되고, 뉴욕의 한 대학 영문과 교수로서, 과거 이 신임 교수와 같이 대학원 생활을 했던 주인공 케이트 팬슬러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여기 개입하게 되지요. 줄거리 소개가 너무 들쭉날쭉이군요.


  케이트 팬슬러는 이 소설(팬슬러 장편으로 읽어본 게 처음입니다)의 매력을 거의 혼자 끌고 나가는 것 같습니다. 머리도 좋고 유능하고 돈 걱정 없고 오지랖 넓은, 약간은 구식 세계 - 물론 1950-60년대에 대학을 다닌 연배의 사람인 만큼 이 '구식'을 미스 마플 같은 '구식'으로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만 - 에 머물러 있지만 자신의 편견에 대해 그것이 편견임을 인정하고 다른 편견들과 함께 대화할 만큼 열려 있는 사람으로 나오거든요. 편안한 수다를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코를 들이밀기도 하고, 빨리 돌아가는 두뇌 탓에 늘 화제가 널뛰기를 해서 다른 사람들을 애먹이지만 주위 사람들을 물들이는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인물입니다.


  주인공 케이트가 순간순간 머릿속에 떠올리는 생각들을 그대로 서술해주기 때문에, 소설은 저처럼 원서로 읽느라 진땀을 빼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불친절하게도 대화 중간에 다른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와 읽는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문화적 배경 없이는 이해할 수 없을 코멘트들이 아주 가볍게 스쳐지나간다거나 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덫을 놓습니다. 일부러 사전을 옆에 두지 않고 읽었는데, 만약 그랬더라면 모르는 단어 찾다가 시간이 다 갔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제가 놓친 소소한 재미들도 많았겠지요.


  추리소설로서는 사실 크게 '추리'할 만한 요소는 없습니다. 다 읽고 나서야 하는 말이지만 약간은 꽉 차 있는, 수다스럽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계에 던져졌다 나온 기분입니다. 주어진 배경이 배경인 만큼 양성 평등 문제와 사회적 계층의 문제, 편견과 갈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현실과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만, '하버드'라는 '무대'가 얼마나 이상하고 특수한 조그만 우주인지가 끊임없이 강조되다 보니, 약간은 초공간 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도 들거든요. 좋은 수다를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으로서는 약간 김빠지는 결말만 빼면 대체적으로 만족스럽습니다. 만족스럽다고 말하기에는 제 영어 실력이 너무 부족해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지만요.


  총평 : 꽤 재미있었습니다. 유쾌한 소설입니다만, 편견과 닫힌 생각이 얼마나 사람을 말려죽일 수 있는가,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가,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무신경하게 남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가 등등에 대해서는 노골적일 만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부분도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는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영문학 하는 사람답게 문장을 끊어 쓰면서 중간중간 장식해주어, 영어공부 하는 입장에서는 재미있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더군요. 현학적으로 sarcastic했다는 건 꼭 강조하고 싶군요. 특히 프롤로그를 장식하는 세 통의 편지 - 하버드 영문학과에 여자 tenured professor를 받게 생겼다는 개탄조의 내용 - 는 거의 배꼽을 잡고 웃다 넘어갈 지경입니다.


  덧붙임 : 만약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나온다면, 번역하실 분이 그 오묘한 느낌을 살리느라 꽤 애먹으실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가사 크리스티나 셜록 홈즈도 원서로 보면서 번역으로는 채 다 살리지 못하는 영어 특유의 재담을 자주 발견했었는데. 전 아무래도 언어유희에 약한 것 같습니다. 우리말로도 그런 언어유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작품이 있을까요? 문학 쪽에 약한지라 추천 부탁드립니다.




  추가분 : 1. 등장 인물들이 얼마나 '고상하게' 말하는지 직접 보시길 :
  "What did you think of her family? I've just met a brother, an experience not to be repeated."
  "Thought wasn't something I bothered wasting on her family, and I honestly don't think Janet did either."


  2. 스포일러
  결국 자살로 사건이 종결되는 게 조금 맥빠지긴 하지만, 그 사실이 되려 이 책이 집중했던 '사회적 살인'이라는 테마를 처절하게 부각시켜준 점을 고려하면 적절한 선택이긴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 전반에 걸쳐 묘사되는 여성 차별 문제가 단순한 시선 교란 트릭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여부를 궁금해하면서, 주인공이 '동기'에 매달리는 과정을 함께 따라갔던 저로서는 맥이 탁 풀려버리긴 했지만요. 사실 전, 처음부터 부각된 하버드의 여성 문제가 misdirection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아래 전남편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아닐까 점찍었었거든요.



  (2004. 12. 19)


Posted by Iphinoe

벌써 1년 반이 지나갔군요. 시간 흐르는 게 가끔은 놀랍습니다.


2005년 여름 한겨레21에서는 부록으로 추리소설 특집을 만들었습니다. 특집의 일부로 설문을 실었는데, 국내 여러 추리동호회를 통해 자료를 수집해서, 몇 분의 설문은 그대로 실리고 나머지는 통계에 사용됐지요. 답과 함께 짤막한 설명을 붙여달라고 했었는데, 그게 마음같이 잘 안 되어 설명을 모조리 빼버렸었기에 당연하지만 제 리스트는 통계 데이터로만 들어갔습니다.


저는 목록을 만드는 데 별 관심이 없어서, 사실 그 때가 추리소설과 관련하여 목록을 작성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특히 개인적인 취향 리스트는 전혀 관심 밖이라, 타인들의 취향에 맞춰 추천을 하는 일은 있어도 제 자신의 취향에 맞춰 우선순위를 매겨본 적은 없었어요. (물론 이 설문이 개인의 취향만을 물어본 것은 아닙니다. 그것만 물어봤다면 답이 달라지는 것들이 있었을 거예요.)


오랜만에 당시 설문에 답한 것을 다시 보니, 역시 평소 생각해본 적이 없던 것이라 그 당시 제 관심사에 많이 좌우됐다는 게 보이는군요. 물론 우선 순위 목록이라는 게 그런 경향이 있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그런 걸 평소에 자주 생각해본 사람은 자신의 취향이라도 두루 돌아보고 대표성을 지닌 것을 고르게 되니까요.


어쨌든 뒤늦게나마 목록을 올립니다. 왜 여기 안 올려두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설명을 달아 올려야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뭐, 한 번 시도해 보죠.^^ 그러나 설명보다는 해명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길어서 접습니다

1. 가장 사랑하는 추리소설 1~5 :

1 - 장미의 이름 The Name of the Rose (움베르토 에코)
2 - 재앙의 거리 Calamity Town (엘러리 퀸)
3 - 오리엔트 특급살인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아가사 크리스티)
4 - 핑거포스트, 1663 An Instance of the Fingerpost (이언 피어스)
5 - 말타의 매 The Maltese Falcon (더쉘 해미트)

이 항목에 답변한 건 저를 아시는 분들은 대충 짐작하셨을 목록입니다. 4번이 의외일 수도 있겠군요. 사실 제가 보기에도 이질적이긴 합니다. 이 항목은 비교적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대표성을 띄는 작가거나 작품이어야 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골랐었는데, 4번은 거기 염치없이^^ 끼었거든요. 나머지는 작품 또는 적어도 작가가 추리소설사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였는데, 4번만 아니니까요.

당시는 '핑거포스트'를 읽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당시 몇 년 간 읽은 작품 중에 개인적으로 주의를 많이 환기시킨 작품이었어요. 물론 지금도 좋아하는 작품입니다만 '사랑하는'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사실 당시에는, 그리고 지금도 '좋아하는'과 '사랑하는'을 구별하면서도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 굳이 구분하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특집이 가이드로서 기획되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비교적 '고전'으로 꼽히는 작가와 작품 중에서 골랐던 것이지요. 그러니 사실 '가장 사랑하는'이라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장미의 이름'은 우리 나라에서의 유명세도 유명세거니와 제게 많은 영향을 미친 작품이고, 언제 어디서부터 펼치건 일단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되는 작품이라 당연히 넣었습니다. 전 주변의 팬을 통해 소개받고 좋아하게 된 취향과, 우연한 기회를 통해 저 스스로 좋아하게 된 취향을 구분짓는 편인데, '장미의 이름'은 후자에 속하는 경우라 애착이 좀 더 가기도 하고요.

'재앙의 거리'와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이들 작가의 작품 중 좋아하는 게 참 많다,는 전제 하에 소개할 만한 작품, 대표성을 띄는 작품 이 두 가지를 고려하여 뽑은 것입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아래 '미스터리 초보에게 추천하는 작품'에 넣은 것으로도 그 대표성에 대한 제 평가를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크리스티의 특징을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퍼즐풀이의 대표적인 작품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넣었습니다. 크리스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변칙적이라 초보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일부러 포와로가 등장한 작품 중에서 골랐다는 것도 인정해야겠습니다. 크리스티의 탐정들 중 가장 좋아합니다.

'재앙의 거리'는 퀸의 여러 가지 매력들을 개중 가장 많이 한꺼번에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골랐습니다. 아무래도 퀸의 1기와 3기 작품들은 다르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재앙의 거리'는 무대가 뉴욕을 벗어나긴 하지만 1기와 3기의 매력을 비교적 아우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이유로 '중간지대'를 고려해보기도 했었습니다만 그건 추리 외적 요소가 너무 길게 등장해서 마음을 접었을 겁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이유라면, 여기서 '엘러리 스미스'가 스스로를 한 방 먹이는 장면은 읽을 때 커다랗게 웃어젖혔었고 지금도 매번 너무나 유쾌하게 생각하는 대목입니다. 사실 퀸은 시공사에서 낸 스무 권+ 꼬리 아홉 고양이 모두를 비교적 고르게 좋아하고, 크리스티는 작품따라 기복은 있지만 '그 한 권'을 짚기 힘들 만큼 좋은 작품이 많은 작가라, 이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고르기가 쉽지 않아요. 퀸이 크리스티보다 앞선 건 역시 제 선호도를 반영합니다.^^ 4번 항목 '가장 사랑하는 탐정'에 퀸을 적은 것으로 설명이 되겠지요.

'핑거포스트'를 '말타의 매'보다 앞서 적은 건 지금 뒤돌아볼 때 제일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입니다만, '핑거포스트'는 서생...으로서의 제게 몇 번이고 다시 돌아볼 수 있는 무언가를 주었던지라 앞선 자리에 놓았던 것 같군요. '말타의 매'는 언제 읽어도 제게는 그 날카로움과 차가운 문체로 기억되는 작품입니다. 스페이드의 캐릭터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데, 전 캐릭터에 많이 좌우되는 성향이 있어서 그런 면에서도 뒤로 밀린 것 같군요. 그러나 사실 다시 읽으라면 '말타의 매'일 것 같습니다. 문체의 문제와 관련해서 제게 서늘한 깨달음을 준 작품이기도 하고요. (같은 언급을 스티븐 킹이 한 걸 읽었을 때 꽤 놀랐습니다.)

변명을 해야 할 부분이라면 홈즈가 없다는 것인데요, 홈즈는 단편 위주라서 장편과 같은 비중으로 생각하기가 아무래도 힘들어서, 홈즈와 크리스티 중에서 경중을 고르다 빠졌던 것 같습니다. 석원 님처럼 '홈즈 전집' 이렇게 답변할 수 있는 배포는 없었거든요.^^

설명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사랑해 마지않는'보다는 대충 다 좋아하니 그 중에서 '들어가야 할 만한' 작품을 고른 의미가 더 큽니다. 그것도 세진 님께서 장르별로 고르셨던 것 같은 일관성조차 지니지 못했었죠. 여러 모로 답하기 난감한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언제 어떻게 대답해도 미진함이 남을 것 같아요. 그래서 목록 작성하는 걸 싫어합니다.;;

지금 다시 고른다면? 역시 4번을 제외하고는 아마 비슷하게 갈 것 같습니다. 못내 사랑하는 작품이라는 걸 딱히 꼽기가 어렵더군요. 사족이 이렇게 길어지는 걸 보시면 제가 한겨레21에 보내는 답에 설명을 다 쳐버린 걸 이해하시겠지요.^^



2. 명성에 비해 실망스러웠던 작품 : 검은 탑 The Black Tower (P.D. 제임스)

사실 이건 몇 줄이라도 설명을 적어볼까 마지막까지 고민했었습니다. 만연체 문장으로 소설을 별 사건 없는 고르게 조용한 분위기로 끌고 나가다가 갑자기 마지막에 지리멸렬한 액션이 나오고는 거기서 갑자기 뚝 끊어지는 느낌이어서... 아직도 작품의 유명세를 이해할 수 없는 책의 하나입니다. 똑같이 만연체가 머리를 부담스럽게 하지만 '여자에게 맞지 않는 직업'이 훨씬 나았어요.



3. 최고의 작가 : ...그런 게 있을까요

그런 건 정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있어 최고의 작가'를 고르라고 해도 못 고르는 걸요.



4. 가장 사랑하는 탐정 : 엘러리 퀸

두둥.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아니, 한 탐정을 지목하기는 굉장히 쉬웠습니다. 퀸을 제일 아끼거든요. 거기에는 의문의 여지도 없고, 탐정에 대한 제 애정도에 있어 워낙 독보적인 존재라 제일 간단하게 답을 적어넣었어요. 그러나 그걸 설명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일단 제가 그 이유를 잘 몰라요.-_-

전 물론 퀸의 개삽질-_-, 간단한 사건을 엄청 복잡한 것으로 만들어놓는 그 복잡하고 현란한 수사와 현학적인 머리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런 면이라면 더 발군의 존재가 있지요. 모스 경감이라고요. 애처럼 뻐기기 좋아하고, 그러면서도 많이도 좌절하고, 그런 면모에 걸맞는 장난기 넘치는 화법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인간적이고 정에 약한 면모도 귀엽습니다. 그러나 그런 효과는 홈즈에게서 더 극대화되어 드러나고, 나이에 걸맞게 좀더 성숙하긴 합니다만 포와로도 퀸 못지않지요. 심지어 전 많은 분들이 작가 퀸의 단점으로 지적하시는 의미없는 연애담도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스크루볼 코미디 보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런 연애담은 퀸이 아니라도 잘 쓰는 작가는 많습니다. 그럼 그걸 다 합쳐놓은 결과일까요? 그러나 '그걸 다 합쳐놓은 결과'라는 말은 '난 그냥 퀸이 제일 좋아요'나 똑같이 무의미한 설명 같습니다.

두어 가지 떠오르는 건 있습니다. 물론 이건 지금 떠오르는 거니까 내일이면 번복될지도 모릅니다.^^ 하나는 리처드 퀸의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 퀸'과 '탐정 퀸'을 어느 정도로 분리시켜 생각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동윤 님과 이 설문 이야기하면서 '퀸이 귀여워요' 이런 식으로밖에는 설명이 안나온다고 했었는데^^, 퀸이 귀여울 때가 많긴 한데 그 중 상당 부분은 아버지와 같이 있을 때죠. 퀸이 툴툴거리는 대상도 대부분은 아버지고, 삽질하다 괴로움을 호소하는 존재도 대개는 아버지입니다. 후기에 들어 니키를 (굳이 필요한 것 같지도 않은) 비서라고 붙여준 이유가, 퀸이 뉴욕을 벗어나 돌아다니게 되면서 퀸과 투닥거릴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었거든요. 라이츠빌 시리즈로 대표되는 3기를 국명 시리즈로 대표되는 1기보다 높게 평가하시는 분들 틈에서 '그래도 1기도 좋아요'하고 박박 우기는 이유 중의 하나도, 1기에는 리처드 퀸이 있어주기 때문입니다. 퀸 경감의 캐릭터를 좋아해서라기보다 엘러리가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빚어지는 효과를 좋아한다고 봐야겠죠.

그리고 '작가 퀸'과 '탐정 퀸'의 문제는... 이건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제가 '작가 퀸'의 장점을 '탐정 퀸'에 투사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요. 1인칭 작품이 아니다 보니 두 존재를 분리시켜 생각해야 하기는 하는데 '작가 퀸'이 '탐정 퀸'이 겪은 일을 3인칭으로 쓴다, 가 이 시리즈의 기본적인 모토이니(아무리 뒤로 가면서 이 전제가 망가진다 하여도), 제 혼란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릅니다. (사실 이 뒤에는 '작가 퀸'을 창조한 두 사람이 또 따로 있기 때문에, 생각하다 보면 점점 복잡해집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퀸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유쾌한 정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건은 진지하게 바라보고 다루지만 유머가 늘 잘 살아 있고, 가장 무거운 축에 속하는 '열흘 간의 불가사의'조차도 후반부 바로 전까지는 아무리 상황을 이리저리 꼬아 심각한 장면을 연출한다 하여도 모든 에피소드가 웃음을 선사하는 데 있어 실패하는 법이 없죠. 굉장한 장점입니다.



5. 가장 인상적인 악당 : 모리어티 교수

이건 좀 힘들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범인'이라면 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적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악당'이라면 실제로 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모리어티 교수밖에는 적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어요. 그게 당시 생각입니다만, 지금 생각해도 다른 답변이 나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른 분들 답변을 보고 하는 말입니다만 뤼팽을 꼽으신 동윤 님 선택이 인상적이긴 했는데, 전 뤼팽이 보통 사람과는 좀 다른 윤리의식을 가진 모험가에 가깝다고 생각(물론 악당은 악당입니다만)하는 편이라...



6. 가장 훌륭한 결말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결말 :

가장 훌륭한 : 열흘간의 불가사의 Ten Days' Wonder (엘러리 퀸)
어처구니없는 : 탐정을 찾아라 Catch Me If You Can (패트리셔 매거)

이건 정말 주관이 개입된 답변입니다.^^ 사실 '훌륭한 결말'이라면 제가 '훌륭한'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설명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겠지요. '열흘간의 불가사의'는 시리즈물에서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늘 놀랍고 감탄을 자아내는 작품이었습니다. 퀸을 쓰는 두 작가의 도전적인 면모는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백과사전적인 위대함이 자주 논의되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아쉽게도 늘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열흘간의 불가사의'는 그런 증거로 제시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일 겁니다. 물론 이건 한정된 제 경험 안에서만 하는 이야기입니다. 영미권의 평론가들이나 그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니까요.

'탐정을 찾아라'는 제 기대를 너무 배반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고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정말 변하지 않을 거예요. 제목이 '범인 찾기'라는 추리소설의 기본 명제를 뒤튼 것이기 때문에, 전 당연히 이 작품이 '범인 찾기'를 비틀어 적용했기를 기대했고, 그래서 탐정 찾는 과정이 추리소설에서 범인 찾듯이, 구체적으로 말하면 고전기 퍼즐풀이에서 범인 찾듯이 나와주길 기대했습니다.

이건 이 작품을 원제로 알고 보았다면 하지 않았을 기대입니다. 'Catch me if you can'은 '탐정을 찾아라'가 함축하고 있(다고 제가 보았던)는 메시지 따위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어쨌든 기대를 해버렸던 저는 서스펜스물인 이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점점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탐정의 존재 때문에 점점 자기 목이 죄어오는 듯한 그 불안감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 잘 그려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요. 이 소설의 주제는 '공포 때문에 스스로 무리수를 두고 만 주인공'인데 - 소설 마지막에 정체를 드러낸 탐정이 직접 그렇게 말하지요 - 그 무리수로 향하는 과정이 그다지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고 그냥 '정말 무리다'는 생각밖에 안들었으니까요.



7. 가장 완벽한 범죄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 (아가사 크리스티)

이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골랐습니다. 좀... 멍청한 질문이라고(죄송) 생각됐던 터라... 쿨럭;; 이 소설의 특성을 생각할 때 너무도 당연한 선택이지요. 흠흠. 세진 님께서 제프리 아처의 '한 푼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를 들어주신 걸 보고 아차 또 있었군 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후자의 경우는 범죄인지 아닌지조차 사기친 당사자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기물이었으니 전자에 만족할래요.



8. 가장 멋진 대사

지노와 나는 모두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모든 악몽의 결론은 바로 이것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그이고 그가 나이며, 밤의 어두운 느낌 속에서는 희망과 공포가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

(의혹 Pleading Guilty, 스콧 터로우)

이건 번역본의 주어진 문장 그대로를 좋아합니다. 원본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다가오는 의미도 조금 다르고 결정적으로 덜 멋있었어요. (쿨럭;;) 전 좀 원본주의자의 면모를(자랑스럽지는 않지만)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몇 안 되는 예외에 속합니다.

그 이상은 따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9. 배신하지 않는 작가(가장 믿을 만한 작가) : 딕 프랜시스, 스콧 터로우

딕 프랜시스는 제게 있어 상업적인 작가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느껴지는 작가입니다. 논란거리가 될 만한 부분도 없고,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것도 아니고, 소재는 특별하지만 그 외에는 정말 재미에 충실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재미만 추구하다 무언가가 희생되는 것도 아니고요. (여기서 할란 코벤이 떠오르는 이유는?) 매 권마다 주인공이 달라지기 때문에 시리즈물로서의 개성을 찾기도 막연하지요. 그래서 언제 읽어도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집게 되는 작가입니다. 그리고 그만큼은 틀림없이 가져다 줍니다.

스콧 터로는... 요새 어쩌다 보니 이 작가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많이도 했습니다만... 그 역시도 비슷한 의미에서 안정감 있는 타율을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추리소설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빼어난 작품은 없지만, 실망을 주거나 아쉬움을 남기는 일도 없습니다. (터로의 작품들에서의 감정의 과잉에 대한 이야기를 한 건 아쉽다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 특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작품 따라 읽는 사람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였어요. 그걸 아쉬운 점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런 작가들이 더 있겠지만, 아직까지 제게는 이 두 사람이 전부입니다. 그런 작가가 더 있다면 정말 환영합니다. 추리소설은 근본적으로 제겐 오락거리인데, 팬의 마음으로 보기 시작하면 가볍게 잡기가 점점 힘들어지거든요. (퀸은 그런 측면에서도 불가사의하며 단연코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팬으로서 바라보면서도 가볍게 집을 수가 있단 말이지요.)



10. 가장 잘된 추리(미스터리) 영화 : 니고시에이터 :D

이건 전적으로, 당시 '스팅'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적어넣은 겁니다. (그래서 웃는 아이콘이 달렸었;;습니다.) 단연코 '스팅'입니다. 하지만 그건 미스터리 영화가 아니라 케이퍼물이군요. 그러고 보니 케이퍼물은 추리물인가요 아닌가요?;;



11. 우리나라에 꼭 소개되어야 할 작품(절판된 작품 포함) : 베크 시리즈, 펜슬러 시리즈, 에드워드 D. 호크의 작품들

이건 추리문학사에서 중요하니 소개되어야 한다!보다, 제가 읽고 싶은 작품들로 골랐습니다. 그러니 더 묻지 마세요.^^ 베크 시리즈는 '웃는 경관'의 모든 게 너무나 인상깊었고, 같은 경찰물들 중에서 리버스 경감 시리즈만큼 사람 힘을 빼는 어두운 분위기도 없고 87분서보다 묵직한 시리즈라 정말 전작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모든 작품이 '웃는 경관'급이라면, 번역되어 나온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겁니다.

펜슬러 시리즈는 제가 늘 고맙게 생각하는, 농담같이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는 작품들입니다. (겨우 두 권 읽었습니다만..) 오해를 살까봐 덧붙이는데, 위의 표현은 '범죄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다'와 결코 동의어가 아닙니다. 'Death in a Tenured Position' 같은 작품은 사회파 추리소설 못지않게 신랄하면서도, 그걸 결코 무겁지만은 않게 짚고 있거든요. 유머의 맛이 잘 살아 있는 작품들이라, 그래서 좋아합니다. 그래서 더 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 유머가 번역하기 매우 힘든 언어적 유희가 많아서, 과연 번역될 날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크리스티나 홈즈도 그런 식의 영어 유머가 많은데 보면 번역할 때 그런 맛이 거의 사라지더라고요.

지금 적으면서 생각하니, 펜슬러 시리즈에 끌리는 이유를 잘 파면 제가 퀸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상당 부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가 좋아하는 점을 여러 모로 공유하는 것 같아요. 퀸도 유머가 잘 살아 있는 작품이고, 그 유머는 시덥잖을망정 특정 대상을 겨냥해 아픈 데 찌르는 그런 빈정거림은 결코 아니거든요. 그리고 둘 다 수다스런 작품이기도 하고요.

에드워드 D. 호크는 poirot 이상준 님을 통해 소개받고 궁금했던 작가였습니다. 큰 의미는 없었어요.



12. 가장 좋아하는 국내추리소설(1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면) : 알라 할림

...국내추리소설을 얼마나 안 읽었는지부터 고백해야겠습니다. '알라 할림'은 괜찮은 작품입니다만 일단 무대부터가 우리나라가 아니지요.; 반칙이었습니다. 반칙이 아니라면 변칙은 되겠군요. 그리고 실은 아주 좋아하는 작품도 아닙니다. 경현 님께서 많이 지적하시는, 주인공을 통해 아는 티를 내는 경향이 좀 있어요.^^ 그러나 그 정도의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라면 분명 읽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받고 있는 대접(완전히 무시됐지요)보다는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소설입니다.



13. 미스터리 초보에게 추천하는 작품 셋(순위 없이) : 도둑맞은 편지, 말타의 매, 오리엔트 특급살인

셋 다 기본입니다. '도둑맞은 편지'는 포의 작품이니 당연히 들어가야 하고, 그 중에서도 추리소설에서 중요한 트릭과 시선의 문제를 촌철살인의 정확함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 '모르그 가의 살인'보다 좋아합니다. '말타의 매'는 하드보일드의 시초이자 그 중에서도 뭐랄까, 돋보이는 맛을 지닌 작품이고요.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설명이 더 필요할 텐데, 일단 고전기에서 한 작품을 골라야 한다는 걸 전제로 깔고, 도일와 크리스티 사이에서 고심을 했었습니다. 퀸은 제 개인적으로야 매우 좋아하지만, 입문자에게 처음으로 추천을 하는 경우라면, 시초이자 완성형인 코넌 도일와 백과사전적으로 트릭과 플롯을 거의 모두 커버한 크리스티 중에서 고르는 게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홈즈 시리즈에서 작품을 뽑지 않은 것은 홈즈의 경우 대표작이라 할 만한 '그 한 작품'을 고르기가 힘들어서도 있고, 단편 위주이다 보니 포가 어느 정도 커버한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합니다. 크리스티도 '그 한 작품' 고르기는 힘들지만, 퍼즐 미스터리의 진수를 골라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둘 경우에는 답이 비교적 명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오리엔트 특급살인'입니다. 그리고 의외의 범인이라는 점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이니까, 기본적인 요소는 다 갖춘 셈이지요.

그렇게 쓰다 보니 '오리엔트 특급살인'이 가장 나중에 들어갔는데, 셋 중에서 읽을 순서를 정하라면 '도둑맞은 편지' - '오리엔트 특급살인' - '말타의 매' 순입니다. 추리문학사적으로도 맞고, 작품 경향상으로도 그게 어울리지요.



14.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그 이유. : 응집력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

사실 그 이유는 아직도 찾는 중입니다. 동윤 님의 답변('욕망'을 다룬다는 점에 주목하신)이 많이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만 그걸로 충분치가 않아서요.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 추리소설의 의미를 설득할 때 가장 맞는 답변이긴 합니다만 제 개인적인 동기까지 설명하진 못하는 것 같아요.



15. 그리고 할 말이 남았다.

없었습니다.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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