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게 벨트 아래를 치는 것처럼 느껴지긴 합니다만, 마침 제가 두 이야기를 양쪽 매체로 다 접했고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끊임없이 떠오르게 하는 데다 둘 사이에 밀접한 연관도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하렵니다.
  스포일러는 없으나, 어느 쪽이건 '블랙 다알리아'를 접하지 않으신 분께는 쉽지 않은 읽기가 될 것 같습니다.)



  누르세요


  제임스 엘로이의 작품으로 먼저 읽은 'L.A. 컨피덴셜'에서도 그랬지만 '블랙 다알리아'에 대해서도, 제일 먼저 두드러지게 다가오는 특색은 플롯의 복잡다단함이고, 그 다음은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물적 증거, 추론, 우연이 모두 설득력 있게, 빈틈없이 맞물려 있더라는 점입니다. 추리소설에서 이 세 요소가 고르게 섞여 무리없이 배치되기가 쉬운 일이 아니므로, 그 어려운 작업을 멋지게 해낸 작가와 그 결과물에 압도당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10년에 걸친 대역사를 그린 'L.A. 컨피덴셜'이 아무래도 스케일이 더 크고, 나중 작품인 만큼 더 정교합니다만, '블랙 다알리아'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에 훨씬 단단하게 기초해 있을뿐더러 실제 피살자와 그 주변에 있던 인물들도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에, 작가가 해야 했던 작업이 그것과 비교해 딱히 더 간단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블랙 다알리아'는 1947년 L.A.에서 실제 일어났던 살인사건을 토대로 플롯을 이끌어 갑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 버키는 전직 권투 선수로 징집을 피해 경찰이 되어 그저 그런 순찰경관으로 일하던 중에, 또다른 권투 선수 출신 경찰인 리와의 자선 경기 행사를 통해 경찰의 꽃이라는 영장국으로 전보될 기회를 얻습니다. 리는 1939년에 무장은행강도 사건을 해결한 일로 스타가 된 경사로 야심과 그걸 이룰 실행력을 모두 가진 우수한 경찰이지만, 당시 주모자로 체포되어 감옥행을 선고받은 자의 애인과 사귀기 시작하는 바람에 경력이 약간 주춤한 상태로 묘사되지요. 둘은 업무와 사생활 양면에서 모두 좋은 파트너 사이가 되고, 문제의 여인인 케이는 삼각형의 마지막 꼭지점으로 두 사람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다른 범죄자를 추적하던 중에 마주친 블랙 다알리아 사건은 세 사람 모두의 삶을 소유하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블랙 다알리아 사건이란 1947년 한 여인이 L.A.의 거리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인데, 이 여자는 배우 지망생으로 몇 년 동안 할리우드 주변을 맴돌아 왔으나 경력은 보잘것이 없어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하루살이를 해오던 사람입니다. 발견된 시체는 허리가 잘렸고 자궁을 비롯한 주요 장기들이 적출되었으며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는 입이 양 귀까지 찢어져 있었지요. 그 기괴함과 참혹함 때문에 이 사건은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고, 경찰과 검찰의 높으신 분들은 그들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이 사건 수사를 극적으로 꾸며가려 합니다. 블랙 다알리아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이 여자를 누가 죽였는지 밝혀내는 것이 물론 소설의 기둥줄기이지만, 이 사건 하나만 해도 관련자들의 개인사와 사건 안의 사건으로 인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개인사에서 드리우는 그림자까지 진상을 밝히는 것을 방해합니다.


  이렇듯 네다섯 사건이 한데 엮여들어 정치적 계산과 개인적 감정의 회오리가 그물을 짜는 그런 복잡한 플롯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두 시간 분량의 영화 시나리오로 각색할 수 있을까요? 영화를 위해 'L.A. 컨피덴셜'을 각색했던 브라이언 헬글랜드는, 소설에서 일단 세 사람이 나오지 않는 장면은 모두 들어낸 뒤 나머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다시 짰다고 하지요. 실제로 소설과 영화는 전개는 물론이고 결말조차 같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L.A. 컨피덴셜'의 시나리오가 훌륭한 각색이라고 말하는 것은, 시나리오로서 좋은 시나리오였을 뿐만 아니라, 소설의 많은 것을, 심지어 플롯까지 바꾸고도 유명 작품인 원작의 핵심을 훼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가장 큰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L.A. 컨피덴셜'의 본질이었던 두 가지 요소는 - 제 생각에 - 책에서 영화로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바로 책의 주제였던 '정의'의 문제와, 10년의 스토리를 아우르는 인물화의 근간을 이루는 몰락이라는 테마입니다. 둘은 워낙이 밀접히 연결되어 있지만, 플롯의 복잡함 때문에 길을 잃기 쉬운 'L.A. 컨피덴셜' 같은 소설을 각색하면서 그 둘 중 어느 하나도 희생시키지 않고 살려냈다는 건 탁월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블랙 다알리아'와 'L.A. 컨피덴셜'의 가장 큰 차이는 인물화의 방식을 통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양쪽의 주인공들은 다 죄를 지은 사람들입니다. 책임져야 할 게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그러나 자신들이 지은 죄, 그 과거의 무게에 끊임없이 지배당하는 'L.A. 컨피덴셜'의 주인공들과 달리, '블랙 다알리아'의 주인공들은 그걸 극복하거나 속죄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걸 그냥 삶의 불가피한 측면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소설 속의 많은 '어른/고참'들처럼 그 과거를 자신의 본질로 인정하고 확 타락해 버리거나 그 과거와 화해할 수는 없지만, 덮어두고 살 수는 있다는 거죠. 버키가 경찰로 남아 있기 위해 소꿉동무였던 일본인 친구들을 밀고한 일을 후회한다는 단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애석해 하고 부끄러워는 하지만요. 리와 케이가 그에게 비밀로 했던 그 둘의 어두운 과거를 알게 되고도, 버키의 일차적인 반응은 윤리적인 것에 대해서보다는 그들이 자신에 대해 지킨 비밀이 있었다는 것, 즉 셋이 이룩했노라고 자신이 믿어왔던 특별한 유대 관계가 환상에 지나지 않았었노라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요. 그건 그들이 사는 세상이, 도입부에 묘사되었던 군인들의 폭동(=마땅히 질서 유지에 봉사해야 할 자들이 그걸 뒤엎는 데 앞장서는 모습)처럼, 마땅히 그래야 할 바대로 돌아가는 대신 뒤틀리고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게 소설의 입장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리 다르지 않은 시대상을 다루면서도 두 소설의 주제는 달라집니다. 정의와 속죄가 주제였던 'L.A. 컨피덴셜'과 달리, '블랙 다알리아'는 현실과 그 현실 속에서도 견디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동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설사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환상에 지나지 않으며 더 크게는 본인이 그 사실을 안다 하여도, 버키는 엘리자베스 쇼트 사건을 마무리짓고 그와 얽혀버린 자신의 과거를 매듭지음으로써 케이와 (그리고 리와) 나누었던 그 동화 속 같았던 시기로 돌아갈 길을 연다는 것을 압니다. 결국 버키가 쇼트 사건의 해결에 그토록 매달렸던 것은 쇼트를 위해서도 어떤 대의를 위해서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죠. (이 점은 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리가 쇼트 사건을 위해 다른 건을 포기하는 내용이 괜히 들어간 것이 아니겠지요. 모든 진상을 알고 난 뒤의 버키의 고민도 '나'가 위주가 된 것입니다.) 'L.A. 컨피덴셜'의 결말에 비해 '블랙 다알리아'의 결말이 한 챕터의 끝이라는, 종결의 느낌이 더 강한 것도 그런 태도의 다름에서 오는 차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슬쩍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주인공들의 과거사를 바꾸고도 두 버전의 'L.A. 컨피덴셜'이 캐릭터를 묘사하는 데에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이러저러한 변화는 많습니다. 책과 영화에서 변함없이 같은 모습으로 남은 주인공은 버드 화이트뿐입니다. (셋 중 가장 프로타고니스트이기 때문이겠지요.) 에드 엑슬리의 경우는 가족사가 완전히 달라지고 더 중요하게는 경찰 일에 투신하게 된 배경이 달라졌으며, 잭 빈센즈는 조연으로 위치가 완전히 규정되면서 과거사가 아예 들어내져 버렸지요. 그러나 그들의 고민은 그대로 남습니다. 추상적이고 절대적 선인 '정의'를 회색 현실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가의 문제 말입니다. 화이트에게 정의의 구현은 비교적 단순한 문제입니다. 착한 놈과 나쁜 놈이 있고 나쁜 놈은 잡아다 응징하면 되는 것이지요. 반면 스스로 정치적 동물인 엑슬리는 옳고 그름이 그렇게 칼로 자르듯 분명하지 않은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절대적 정의를 추구하고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게 엑슬리의 딜레마입니다만. 빈센즈는 조금 다릅니다. 그는 자신이 그 누구도 심판할 수 없는 타락한 인간임을 알고 있지요. 그럼에도 그들 모두는, 그 길에서 벗어나 있건 아니건 간에 바른 길은 존재하고 그 길을 가는 게 옳다는 걸 압니다. 거기에 비추어 볼 때, 소설과 영화의 결말은 구체적인 사실은 다르되 나타난 모습은 같았습니다. (스포일러에드는 타협했고, 화이트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은퇴했으며, 빈센즈는 죽어버렸죠.) 길을 가려던 자들의 뜻은 좌절되었고, 길에 남아 있는 사람은 양심에 짐을 진 타락한 인간입니다. ‘L.A. 컨피덴셜’은 어느 모로 보나 해피엔딩이라고는 할 수 없는 몰락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영화는 이와 연결지어 주제도 살렸습니다. 영화 초반에 스미스 반장이 엑슬리에게 던진 '용의자가 범인임을 알면서 증거가 없어 놓아주어야 한다면 증거를 심겠는가? 등 뒤에서 쏠 수 있겠는가?' 등등의 질문은 원래 소설에선 엑슬리의 아버지가 한 질문이었고, 소설에선 두 사람의 입장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잠시 지나가는 배경이었을 뿐 엑슬리의 인생에 그렇게까지 중요한 질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질문을 영화의 핵심 대사로 가져오면서 소설에선 복잡다난한 플롯 속에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던 '회색빛 현실 속의 정의'이라는 주제를 살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소설도 같은 지점에서 시작하긴 하지만, 중간에 이야기의 무게 중심이 화이트와 엑슬리의 대립 그리고 빈센즈의 영락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이 갈등이 다시 전면으로 부각되는 것은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입니다. 그러나 각색된 시나리오는 클라이막스의 장면을 통해 둘의 문답에 전혀 다른 무게를 부여하면서, 2시간 반짜리 영화의 통일성과 응집력을 지키고 주제도 부각시키는 길을 택했습니다. 해서 영화는 결말을 바꾸고, 범인의 정체를 비틀고, 주인공들의 과거를 바꾸거나 아예 없애버리는 과격한 변화를 하고도 원작의 정수를 지켰다는 찬사를 받았던 겁니다. 물론 제 생각에 그렇다는 것입니다만.


  '블랙 다알리아'는 다릅니다. 캐릭터들은 훨씬 도피적이고, 깨끗한 양심보다는 마음의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이지요. 리가 블랙 다알리아 사건에 집착한 것은 다른 그 어떤 이유보다도 여동생의 실종에 대해 자신이 느껴온 채무의식을 변제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버키가 사건을 추적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리의 그림자를 어떻게든 처리해서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았던 케이와의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사건의 진상,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묘사는 본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내면 변화가 더 중요하니까요. 그런 이유로 인하여, 소설을 읽다 보면 다루는 사건이 오직 하나뿐인데도 쇼트라는 피해자 자신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쇼트의 주변에 대한 수사가 광범위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자칫 속기 쉬운 부분입니다만.


  그런데 영화 '블랙 다알리아'는 캐릭터에 집중하면서도 소설의 플롯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것도 2시간여밖에 안 되는 상영 시간 내에, 버키가 사건 진상을 알아내어 가는 그 복잡한 과정을 최대한 우겨넣으려고 애썼지요. 그게 반드시 문제라는 건 아닙니다만, 그 와중에 희생된 것이 다름아닌 등장 인물들의 심리 변화 과정에 대한 묘사였기 때문에, 전체적인 이야기의 힘이 약해지는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등장 인물 내면의 변화 양상이 본질인 이야기에서 심리묘사가 상당 부분 들려나간 데다 때론 버키의 나레이션조차 그 부분을 채워주지 못했으니, 세 사람의 이야기는 사건수사에 잡아먹혀 버린 꼴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영화 전체의 설득력 부족으로 이어진 거죠. 예로 들고 싶은 대목이 특히 두 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초반부에 세 사람이 친해지는 과정을 축약해 그리면서 버키와 케이 사이에 감정이 자라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둘 사이에 균열이 나게 되는 지점에 대한 묘사입니다.


  영화는 소설과 다른 매체죠. 소설에선 한 마디 진술로 그칠 내용도, 영화에서는 직접 보여주어야 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케이가 리를 뺀 두 사람만의 '우리 관계'를 언급하는 지점을 잠시 생각해 보면, 소설에선 '나'인 버키가 그 전에 자신이 어느 새 케이를 사랑하게 되었음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세 사람이 함께 누렸던 '좋았던 시절'에 대한 묘사가 압축적으로 지나가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영화를 보자면, 영화도 같은 방식으로 그 좋았던 시절을 묘사합니다. 버키의 나레이션과 함께 잇따른 짤막한 스케치 몇 개로 그려내지요. 그러나 그 중에 버키와 케이 사이의 감정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습니다. 신년 파티 때 리가 함께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질투로 보이는 감정을 막연하게 느끼는 것만 잠깐 나오잖아요. 그건 버키와 케이에 대한 복선이 아니라 리에 대한 복선이죠. 심지어 버키의 나레이션에도 두 사람 사이의 로맨틱한 감정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각관계의 가능성이 충만함에도 불구하고 케이가 리에게 '우리 관계는 어쩌지?' 하고 묻는 대목이 묘하게 뜬금없어지는 겁니다. 전 소설을 읽고 영화를 봤으니 영화의 묘사가 개연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소설에서 본 걸로 빈 부분을 알아서 채워넣는 게 정상일 텐데, 영화를 보는 도중에도 그 부분이 그냥 '비었다'고 느껴졌거든요. 버키-케이 관계에서의 감정선을 제대로 그려주는 것은 소설을 고려할 때 더욱 필수적이었습니다. 리의 운명이 소설과 영화에서 다르게 풀려가니까요. 소설에서 리는 갑자기 그냥 증발해 버리기 때문에, 버키와 케이가 서로의 감정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지지부진하게 관계를 끌어나가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버키가 쇼트 사건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게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선 그런 과정 없이 리의 죽음이 바로 확인되어 버리죠. 버키가 수사를 밀어붙이는 동기가 흐려지는 대목입니다.


  그걸 설명하기 위해 나오는 것이 바로 삼자대면 씬, 그러니까 버키, 케이, 매들린이 맞닥뜨리는 장면이지요. 여기서 케이는 버키가 죽은 엘리자베스에게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당신도 리처럼 붕괴할 것이고 자기까지 거기 끌려들어가진 않겠다고 선언하고 떠납니다. 이 대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은 영화와 소설이 좀 다른데요, 소설에서 문제의 대화가 나오는 시점은 일단 시기적으로 훨씬 뒤이고, 더군다나 리의 실종의 진상이 드러난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도 아니었어요. 반면 영화에서의 당시의 정황은, 리가 살해당한 진짜 이유를 버키가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와 더불어 케이가 숨겨온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버키의 대응은 집을 뛰쳐나와 '엘리자베스 쇼트를 꼭 닮은' 매들린에게 가는 것이었지요.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에 케이가 찾아와 둘이 같이 밤을 보낸 모습을 보고, 그것이 위의 대화로 이어집니다. 이 각색에 문제가 있다고 보느냐 아니냐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는데, 제 경우는 이 대화가 버키가 사건에 매달리고 있는 동기를 약화시킨다고 보는 쪽입니다. 소설에서도 버키는 충분히 쇼트 사건에 사로잡혀 있습니다만(영어로 haunted라고 하는 그 뜻이 제일 맞을 것 같아요) 그 본질적인 이유는 쇼트 사건이 풀리면 꼬인 자기 삶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감정 때문이거든요. 그리고 그가 향하고 갈망하는 건 바로 케이와 리와 함께 누렸던 동화같은 관계를 다시 찾는 것이고요. 그런데 문제의 대화는 버키가 엘리자베스 쇼트 본인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함의를 담아내어, 희생자가 여자라는 점을 짚고 넘어감과 동시에 버키가 사건 수사를 통해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의 문제 - 즉 본질적인 방향 설정의 문제를 흐릿하게 만듭니다. 물론 영화와 소설은 같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고, 한 사람의 동기가 꼭 초지일관할 필요도 없죠. 영화에서도 결말이 문제를 다시 리에 대한 것으로, 그 셋이 맺어온 관계의 복구에 대한 것으로 돌려놓는데, 그 역시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문제는 그 사이에 있는 건 쇼트 사건의 진상에 대한 묘사뿐이라는 겁니다. 곁들여진 숱한 나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버키의 상념은 빠져 있습니다.


  해서, 버키의 모험은 플롯을 뒤따라잡느라 그 내적인 여정이 설명이 되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남고 만 느낌입니다. 과격하게 말해 의미 없는 이야기가 된 거지요. 남은 것은 너무도 복잡한 나머지 어지러워 보이는 사건과, 그럼에도 결국은 모놀로그 자백으로밖에는 얻어내지 못한 진상 설명(소설로도 장황하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로 만들어놓으니 진짜 길더군요. 특히, 범인의 정체를 비롯하여 버키가 스스로 알아낸 게 거의 없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요), 그리고 소설에서와는 달리 생생한 실체를 부여받은 엘리자베스 쇼트의 캐릭터뿐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쇼트가 버키, 리, 케이보다 더 강렬하게 남았다면 그건 다 (동어반복 같지만) 그렇게 찍은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 영화가 이미 도입한 나레이션을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제 눈에도 가장 손쉬운 해결책으로 보여서요. 결국 똑같이 버키의 갱생담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거면서, 소설의 핵심 단어&키워드였던 '동화fairytale'가 영화가 반 넘어가서야 처음 나왔다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L.A. 컨피덴셜'과 '블랙 다알리아'는 모두,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등장인물의 성장 또는 변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야기이지만 정작 그 이유는 각각 다릅니다. 'L.A. 컨피덴셜'에선 정의에 대한 숙고가 캐릭터들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건의 진상이 중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드러난 진상이 수사 당사자들과 관련이 있지요. '블랙 다알리아'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사건은 단지 등장 인물에게 인생에서의 한 단계를 마무리짓고 다음 발을 내딛게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정도입니다. 버키를 변화시키는 동력은 쇼트 사건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오지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블랙 다알리아'의 각색이 'L.A. 컨피덴셜'보다 어려웠을지 모르겠다 싶기도 합니다. 일차적으로 독자와 관객들의 시선을 끄는 건 살인 사건인데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으니까요. 극장 개봉판 '블랙 다알리아'의 각색은 그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제대로 하는 데 실패한 것 같습니다.


  실은 고려해야 할 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꼬인 플롯에 비해 영화 시간이 너무 짧아요. 쇼트 사건 외에도 동시간대에 진행되는 사건이 둘이나 더 있는데, 영화에서도 그걸 다 그대로 다루더군요. 아니나다를까 소설을 안 보고 영화만 본 제 친구는 그 세 사건이 너무 뒤엉켜 돌아간 나머지 다 한 사건인 줄 알았더랍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긴 하지만 마이너한 정보들이, 보는 사람이 미처 파악할 틈을 다 안 주고 슬쩍 지나가 버립니다. 리가 쇼트 사건 수사를 위해 다른 중요한 사건을 방치했노라는 복선이 그 한 예죠. 결국 이 때문에 수사가 잠정 중단되면서 법망을 빠져나간 용의자가 새 범죄를 저지르고, 그로 인해 버키와 리의 대립이 불거지는 결과를 낳잖아요. 이건 극장에 걸린 한국어 자막이 특정 정보를 빼먹은 탓에 더 커진 면도 있긴 한데요, 리는 쇼트 사건에 집중하려고 그들이 맡고 있던 다른 사건의 용의자가 L.A. 경찰 관할권을 벗어났다고 거짓으로 보고합니다(자막은 이 부분을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희생자 머릿수가 늘었다는 사실에 격분한 버키가 리와 주먹다짐을 하지요. 그 갈등은 리가 맞이한 운명에 대해 버키가 느끼는 죄책감을 더 깊게 만든 주요 원인 중 하나고요. 소설에서는 이 문제로 리와 버키가 말다툼을 벌이고, 버키가 이 거짓 보고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언급이 짬짬이 나옵니다. 그러나 영화에선 리가 거짓 보고를 했노라고 말하자 버키가 놀라 보긴 하지만 아무 말도 않죠. 대화 전체가 3초 정도 나오나요? 곧바로 다른 화제로 넘어가 버립니다.


  영화 '트로이'처럼, '블랙 다알리아'도 극장에 걸린 판이 너무 많이 잘라낸 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촬영 때 사용된 대본을 보고 나면 많은 부분이 납득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이대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제 취향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좋은 이야기이고 잘 만들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게다가 버리기 아까운 장면들도 있었어요. 많이들 언급된, 쇼트의 시체가 처음 발견되는 장면의 카메라워크는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매력적이고 자신감 넘쳐 보이는 멋진 씬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브라이언 드 팔마라는 거장이 손을 댄 작품이니, 그런 면에서도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것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앞으로 다시 시도될 수 있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으니까요.


 닫기

Posted by Iphinoe

사이드바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