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티비의 '엑스파일: 나는 믿고 싶다' 단관행사 때 한 가지 눈에 띄었던 점은 스키너 부국장이 등장하는 순간 환호가 제일 컸다는 것입니다. 뒤통수만 보였는데도요. 심지어 스컬리와 멀더가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도 그렇지는 않았어요.


  물론 스컬리와 멀더는 정도차는 있지만 외양이 눈에 띄게 변한 채로 등장했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환호가 나올 수는 없었겠지요. 또 스키너 부국장은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번 영화에 재등장한 유일한 기존캐릭터였으니, 그런 열광적인 환성이 당연한 것이긴 했습니다. 그러니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접어도 되는 일이었겠지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어떤 면에서는 이 드라마를 그동안 부침없이 꾸준히 좋아해 오면서 종종 했던 생각의 연장선상이기도 합니다.


  바로 스키너는 이 드라마 시리즈에서 유보 없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캐릭터들 중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방점은 유보 없이에 찍혀 있는 거죠, 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다른 캐릭터들은, 심지어는 메인인 멀더와 스컬리까지도 좋아한다는 말이 그렇게 당연한 듯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 판단으로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엑스파일에서 스키너와 동급은 론건맨뿐입니다. 펜드렐이라던가 척 같은 좀더 마이너한 캐릭터들을 드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들은 드라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같지 않잖아요.


  멀더나 스컬리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말을 한 사람에 대한 가늠자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의 성향, 취향, 기타 등등에 대한 판단의 지표가 될 수 있죠. hidden agenda 혹은 subcontext 없는 호오가 존재하기 힘든 거예요 (→ 우리말로는 도무지 표현이 생각이 나지 않고, 영어 표현은 아무래도 사전적 정의를 멋대로 전용해다 쓰는 것 같긴 한데 도저히 적절한 단어를 못찾겠네요). 조연들도 상당수가 그렇습니다. 담배 피는 남자CSM을 좋아한다 말하는 것은 (무리없는 발언이고 결코 소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정치적 선언'이 됩니다. 상황과 개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발언을, 선택을 변호해야 하는 거죠. 제가 직접 체험한 건 삐약이 눈물 정도밖에 안 되겠지만, 팬덤에 지치지 않는 논쟁거리를 제공한 멀더리스트와 스컬리스트의 입장 차이 같은 현상이 한 예가 될 수 있겠군요. 물론 그 토론에는 다른 요소도 그 못지않게 작용합니다만.


  거기서 예외적인 캐릭터가 스키너와 론건맨입니다. 론건맨은 정말 보편적으로 사랑받고 거기에 아무도 이견이 없는 캐릭터들이죠. 스키너 역시 우리편과 적을 포괄하는 접촉 범위에 ― Memonto Mori를 보면 2시즌에 결별한 것처럼 나옴에도 불구하고 스키너는 CSM과 원하면 언제든 접선할 수 있습니다 ― 5시즌 초반까지도 필요하면 언제든 모호하게 그려지는 allegiance에도 불구하고 팬덤에서의 호감도는 종종 제 예상을 상회합니다.


  전 그 요인이 크게 두 가지에 기반하는 것이 아닌가 짐작하는데, 우선은 스키너에 대한 묘사가 경제적이었다는 데 원인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3시즌 Avatar, 4시즌 Zero Sum처럼 스키너에 온전히 바쳐진 에피들이 있다는 사실은 역으로 스키너가 외부적으로 '보여지는' 면이 많은 캐릭터였다는 뜻이죠. (Musings of CSM은 기능이 좀 다른 에피소드라 같은 맥락에서 평가해선 안된다고 보고요.) 캐릭터의 부정적인 면을 묘사하는 데 있어 집착적일 만큼 집요하게 파고드는 게 엑스파일의 특징이고, 그 과정에서 그걸 절대 매력적이지 않게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긴 하지만, 스키너나 론건맨 같이 약간은 기능적인 입장에서 출발한 캐릭터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예리한 메스를 들이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도겟과 레이어스가 M&S의 대체 캐릭터로 등장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함에도, 다른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 부분이 커요. 설득력이 있었는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적어도 도겟에게는 파고들 여지를 주려고 노력했지만 레이어스와는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었지요.


  두 번째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게 실은 더 흥미롭고 불명확한 문제인데, 스키너가 이 시리즈에서 일종의 '좋은 가부장' 역할을 담당..아니 전담한 캐릭터다 보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겁니다. 엑스파일의 대체가족 구도는 여러 분석에서 이미 논한 바가 있는 내용이라 굳이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그 속에서 스키너의 '좋은 상사/관리자/아버지/가부장'으로서의 역할이 어떻게 형성되고 작용하는지는, 뭐 그를 제외하고는 FBI에서 합리적이고 선이 분명하면서도 포용적인 간부급 인물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것을 상기한다면 그걸로 이미 Q.E.D.(증명종료)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얘기는 조금은 개인적이고 약간은 꺼려지는 이야기인데... 저는 사실 이 부분이 조금은 껄끄럽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껄끄럽다고 말하기조차도 껄끄러운데, 우야든둥 저도 스키너를 매우 좋아하고 이런 윗사람이 현실 속에 존재하기가 쉽지 않으며 있어주기만 한다면 그저 감사해야 할 존재라는 걸 알지요. 그리고 그런 걸 다 떠나서 드라마에서 묘사된 스키너라는 개인에 대한 애정도 당연히 크고요. 그럼에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 문제가 엑스파일이라는 드라마 자체에 대한 제 태도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쓰기는 거창하게 썼는데, 간단히 말해서 저는 이 드라마에서 가족주의에 반하는 시각을 보는 것이 좋았어요. 이건 개인적인 선호의 문제라, 제가 그렇다고 엑스파일이 그런 방향으로만 가야 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멀더와 스컬리의 관계가 명백하게 흘러가기 시작한 5시즌 이후로는 적어도 두 사람이 함께하는 것이 두 사람에게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했고, 아마 그랬기 때문에 I WANT TO BELIEVE에서 침대를 함께 쓰는 두 사람의 모습에도 그다지 저항감이 없었을 겁니다. 카터가 잘 그려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혹감도 별로 없었어요. 그러나, 혹은 그럼에도, 이 시리즈가 내가 알던 그 모습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은 셈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약간은 미묘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같지요. 그리고 선량한 가부장으로서의 스키너의 존재가 이 새로운 구도 속에 일종의 확인 도장을 찍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엑스필들의 극장판 2 단체관람 때 스키너의 등장에 쏟아진 환호 속에 느꼈던 당혹스런 이질감의 정체와 그 근원을 파악해 보려는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부디 너무 돌은 던지지 말아주세요^^;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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