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윙 4시즌을 본격적으로 보았고, 2-3시즌은 드문드문 보고, 5-6시즌은 에피소드 가이드로 채우고 7시즌은 존 스펜서가 출연했던 때까지만 보고 1시즌을 매우 느리게 보고 있는 나로서는 모든 시즌을 다 뒤섞어 캐릭터에 대한 인상을 형성했던 것 같다.


  여기 희생자가 된 게 아무래도 샘 시본이지 싶은 것이, 나는 이 친구가 퇴장하던 시즌부터 제대로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0-; 따라서 나는 윌 베일리에 대해 상당히 빠르게 애정을 형성했고 (워낙이 아무때나 유머를 던져대는 geek스러운 똑똑한 캐릭터에 약하지 - 누구 떠오르시남요^ㅇ^), 그 캐릭터가 6시즌에서 맡은 역할에 많이 아쉬워했다. 반대로 샘 시본은 내게는 떠날 예정이었던 사람으로서 그 이전 시즌까지도 다소는 그렇게 돌아보게 된 감이 있다. 물론 나도 변명거리는 있다. 샘의 퇴장은 굉장히 길게 그려졌었다!! 그리고 웨스트윙은 이 시즌 저 시즌을 섞어서 섭렵한 탓에 내가 스포일러에 굉장히 관대했고, 따라서 세트 뒷이야기들도 이것저것 주워들었었다. 그 와중에 롭 로우가 떠나고 싶어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 그 정보가 이 드라마에서의 샘 캐릭터의 원래 비중과 퇴장 사유에 대해서까지 완벽한 정리를 한 탓에 1-3시즌의 샘 시본까지 그 아우라 아래에서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난 오랫동안 내가 샘 시본에 대해서는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캐릭터 프로필을 이것저것 찾아보다 샘에 대해 내가 사전에 주워들은 정보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샘이 이상주의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우 정치적인 사람이라는 얘기였다. 후자를 먼저 들었는데 공교롭게도 파일럿의 샘의 첫 대사가 후자에 가까웠던 터라 나는 후자를 앞서 기억했다. 그래서 내가 편견을 갖고 시본을 보고 있나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입장이고 (그리고 아마도 그게 사실일 것이다) 해서 샘에 대해서는 별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편이었다. 게다가 1시즌 전반부의 샘은 매우 열성적인 이상주의자였으니까, 샘의 그런 면모를 사랑하는 팬들의 존재에 대해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했다.


  사실 저렇게 말하면 반쯤 거짓말이다. 판단하지 않았냐 하면 실제로는 판단을 했으니까. 전에도 얘기했듯이 드라마 뒷사정에 대해 알게 되면 그게 픽션적 진실하고 뒤섞이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게 잘하는 짓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일단 알게 되면 피해갈 수가 없는 것이다. 두 층위의 현실이 분리가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해서 나는 1-3시즌에서 노골적으로 수없이 변주되는 '샘 이상주의자'의 캐릭터플레이를 반쯤은 유리되어 뜨악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샘 시본이 싫다는 건 아니고 몰입이 되지 않았다는 정도인데, 주로 뜨악함은 샘의 그 이상주의가 너무도 고상하게 그려질 때 나왔다.


  요새 1시즌 14에피 Take the Sabbath Day를 하고 있다. 이 에피는 사형제도와 권력분립의 주제를 엮어서 다룬다. 연방대법원에서 연방법원을 통해 올라온 사형수의 상고 요청을 기각하자, 이 사형수의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들 중의 하나가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샘에게 금요일 밤에 급히 연락을 취해서는 대통령을 설득해 달라고 요청한다. 연방 죄수의 최종 사면권은 대통령이 쥐고 있으므로, 대통령은 사형이 예정된 48시간 안에 이를 중지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샘은 주말에 휴가를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 친구를 잠깐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토비에게 뒷일을 부탁하려 한다. 그런데 그 친구가 토비의 소재를 자꾸 캐묻자, 샘은 토비가 다음날 아침에 어디 있을 것인가를 말해버린다.


  나중에 토비가 샘에게 이 일을 추궁하는데, 샘은 이 이슈를 문제의 중대함과 옳고 그름을 논박함으로써 피해가려고 한다. 이게 내가 싫어하는 전형적인 패턴인데, 변명을 윤리적인 문제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아주 간단히 말해서 목적이 옳으니 방법이 옳진 않아도 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런 자기 확신의 면모가 샘 시본의 캐릭터에서 간간이 보인다. 로리를 대하는 데서도 전형적으로 나타나지("You are trying to reform her(Josh)/me(Laurie)"). 윤리적인 문제와 방법상의 윤리의 문제는 같은 게 아닌데 드라마에서는 이런 샘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구석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언급으로 보아 알 수 있듯 난 그런 거 싫어한다.^^ (어쩌면 비슷한 방식의 화법을 구사해서인지도.)


  여기서 샘은 앞서 말한 대로 사과를 피해가다 결국 '어쩐지 그 순간에는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고 실토하는데, 그 말에 토비는 "Okay." 하고 화제를 거기서 접는다. 분위기는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안하겠다는 톤이었다.


  물론 이건 내 편견이 먼저 베이스를 깔아놓고 그 위에서 맘에 드는 사실을 취사선택한 경향이 없지 않다. 애초에 샘 시본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유보적인 감정이었기 때문에 이 캐릭터를 묘사하는 드라마의 방식에서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을 찾아내고는 유레카를 외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리되지 않는 얘기를 정리해서 쓰려니 머리에 쥐가 나네ㅇ_ㅇ;; 원래 하려던 이야기는, 가장 주인공스럽고 관객의 애정을 담보할 인물로 제시되었던 샘의 캐릭터가 드라마에서 빠진 것이 다른 캐릭터들에 끼친 영향에 대한 거였는데. 하긴 TWW 이야기는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한데 늘 잘 안 나오는 쪽이었다.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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