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

재앙의 거리 2010. 4. 29. 01:12

  케이블에서 해주는 걸 지나가다 중간서부터 보았다. 한 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보지 못했던 영화인 바 그건 이번에도 그랬다;; 하여간에 그래서 예전에 이 소설의 번역본을 사두었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손전등을 들고 찾아나섰는데 ― 이젠 낮에도 내 책장을 뒤지려면 빛이 추가로 필요하다 ― 역시나 기억을 따라 예상했던 자리에 있었다.


  고려원이 부도났던 무렵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각권 삼천원에 팔던 출판사 책들 중에서 집었었다. 지금 보니 무려 날짜를 적어놓았네. 이런 거 안 한지 오래됐는데... 제값을 치르지 않고 구했던 새책들 중 하나다.



  산 뒤 적어도 한 번은 읽었을 것이지만, 이 소설에서의 대화는 매우 복잡해서 어른들의 대화란 이런 모양인가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대화 뒤의 대화, 발화를 통해 한 겹 아래 깔린 채로 오가는 커뮤니케이션은 왠지 '어른의 대화'로 내게 각인되어 있었다. 이제는 성인이라 해도 항상 이런 intense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니며 특히 이런 걸 잘 쓰는 작가는 많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이상하게도 어려서는 그런 걸 잘 하는 작가들을 자주 접했었다.


  예를 들어놓지 않으면 다음에 내가 감을 잡지 못해 헷갈리니까. 첫 번째 희생자가 호수(또는 강)에서 발견되었을 때 스탈링은 보조로 현장에 불려나간다. 이 때 크로포드는 텃세를 부리는 지역 보안관의 어깨에 한 팔 턱 걸치고 그를 구워삶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총을 찬 유일한 여성인 스털링을 일부러 대화에서 배제하는 수법을 사용한다. 돌아오는 길에 크로포드는 그런 행동에 대해 스탈링에게 해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지만 스털링 역시 알고 있다. 이 때 소설에서의 스털링은 '당신은 널리 잘 알려진 인물이고 경찰들도 그 일거수일투족을 우러러본다'까지만 얘기하고 크로포드는 나머지를 알아듣는다. 영화에서는 스털링이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의 처신으로서는 부적절했다'까지 언급하고 크로포드가 반쯤 사과한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이다.



  그 얘기는 이쯤 됐고, 전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이윤기 씨의 번역이 좋다 ― 더 나은 단어 없냐 ― 싶었던 부분이 있다. 어쩌면 사실적이지는 않았는지도 모르겠으나, 클라리스의 말투의 문제다. FBI 같은 수사조직 내 위계질서는 장난이 아니라고 알고 있고, 아직 정식 요원도 아닌 연수생의 신분인 스탈링과 section chief급인 잭 크로포드 간의 격차는 까마득한 정도가 아니라… 흠, 넘사벽이라는 단어도 실은 부족할 터이다. 그러나 스탈링의 말투는 매우 소탈할 때가 많다. 원문에서도 매우 직설적이고 가끔은 대등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렉터에 대해서는 다름. 별도서술) 번역이 스탈링의 말투에서 '-시-'를 되풀이해 생략하고 종종 '저' 대신 '나'를 넣어 이 점을 그냥 보여주었다.


  렉터와의 관계에서는 이게 조금 다른 것이, 물론 말투가 확 바뀐다는 것은 아니지만 스탈링이 렉터를 어느 정도 두려워하고 있어서다. 스탈링은 크로포드에게는 굳이 맞서려 하지 않았다(아예 안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렉터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꼈고, 두려웠기 때문에 당당해지려 애를 썼다. 그리고 그게 대부분 드러난 편이고. 해서 크로포드도 스탈링을 가르치고 렉터도 스탈링을 가르쳤으나, 스탈링과 렉터와의 관계가 덜 평등했던 것.



  또 다른 얘기. 사실 채널 돌리다 발견하고 계속 앉아 본 것은 이게 버팔로 빌을 Ted Levine이 연기했다는 걸 알고 처음 온 기회였기 때문이었는데, 정말 좋았다. 캐서린 마틴이 납치당하기 전까지는 거의 드러날 일이 없고, 무언가 미스테리어스한 면이 생각보다 중요한 캐릭터라서 묘사하기 어려웠을 것인데 설득력있었다. 이 특유의 분위기가 버팔로 빌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때는 깨어지기 쉬운데, 연기가 살렸다고 생각한다. 캐서린 마틴을 데려다 집 구덩이에 처박은 뒤 혼자 노래 틀어놓고 춤추는 부분은 원래 없었던 걸 배우가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는 데 필요하다고 건의해서 넣은 것으로 들었는데, 일맥상통하는 부분. :)


  렉터의 후일담도 궁금하지 않고 스탈링의 후일담도 궁금하지 않지만 렉터&스탈링의 후일담은 궁금한데, 한니발을 읽어볼까 말까 생각 중이다. 영화도 영화지만 소설 자체에 대해서도 평이 엇갈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긴 요새는 틈이 쉬이 나지 않는다.



  오늘 얘긴 여기서 끗-.








    그나저나 스킨을 바꾸든지 해야겠다. 이 스킨이 무난하긴 한데 위에 박혀 있던 문자를 지우느라 손을 좀 댔더니 오류가 생겨서리. 지난번에 좀 바꿔볼까 하고 건드렸다가 더 덧난 것 같네.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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