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XF를 볼 때도 스토리 진행의 측면에서 만듦새에 감탄해 본 적은 많지 않은데 - 순수하게 이야기 자체에 감탄한 적이야 매우 많지만 - POI는 어허허, 오늘 이야기 진행하는 거에 감동했다. 이렇게 쭉쭉 뽑아나가는 드라마라니;; 그러면서도 말이 되고 긴장감 유지하고 심지어 작품성까지 일관되게 지켜가고 있어. 엄청나다. 다들 장인들인가. 이렇게 날롬 봐버리기가 미안할 정도다. 아니 기계의 비호 아래 irrelevant numbers 구출이라는 premise로 시작한 드라마가 3시즌만에 그 전제를 깨버렸어;; 어쩌겠다는 거야 이거… 근데 입이 벌어지고 감탄만 나와. 그냥 닥치고 멋있어.



옆길로 잠깐 새서. 아무래도 배우가 배우다 보니 숙부님에게 다들 감탄하는 모양인데, 나는 한 시즌짜리 소모품(;;)이었으나 콜리어 역의 배우가 정말 잘 해주었다고 생각이 든다. 사실 제일 얼척없기 쉽고, 가뜩이나 소화하기 어려운 대사들만 한 시즌 내내 잔뜩 받았는데, 엄청 말이 되게 소화해주었다. 우리네 세상에 데시마보다도 존재하기가 어려운 게 자경단이고 - 마지막에 그럴듯한 설명이 따라붙긴 했지만 - , 자경단의 구호, 이념은 너무 순진하게 직설적인 데다 이 드라마의 기본 시선이 도서관팀에게 맞춰져 있는 터라, 자경단 쪽의 입장은 straightforward하게 풀어내기 어려울 정도인데 그걸 그만큼이나 설득력 있게 만들고, 특히 도서관팀과 데시마팀과 맞설 만한 하나의 축으로까지 올려줄 수 있었던 것은 7-80% 이상이 콜리어 역 배우의 연기 덕이었다고 본다. 이를테면… 음… 이런 데 끌어다 쓰기 미안하긴 하지만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의 패틴슨(이름 맞나)이 이 역에 붙었다고 상상해 보면, 웃음만 나올 것이다. 특히, 이건 제작자들이 연기 톤을 제대로 잡은 거기도 하지만, 콘트롤처럼 강강강 일변도의 캐릭터가 아니라 핀치, 쇼와 상대할 때 인간임이 엿보이게 연기한 것이 매우 마음에 드는 선택이었다. 목표 외에 다른 건 보지 않는 미친 사람이 맞긴 한데, 웃을 때는 정말 사심없이 웃어서, 그 점이 매우 좋았다. 이를테면 금고 털러 왔을 때 핀치가 퍼스코를 해치지 말라고 협박조로 말을 꺼내자 "please," 하면서 '너나 나나 당신이 개미새끼 한 마리 해치지 못할 사람이라는 걸 알지 않냐. 당신은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다'고 미소로 말할 때, 그때 정말 hidden agenda 없이 웃어 놀랐었다. 그 타이밍엔 '넌 절대 누굴 해치지 못해 ㅋㅋ' 이런 뉘앙스로 웃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게 아니라 그냥 웃는다. 핀치의 그런 면은 존중하고 좋게 본다는 듯이. 물론 그래놓고 1분도 안 지나서 다른 데로 끌고가서 가둬놓고 괴롭힐 것 같이 나오지만. ;) 특히 오늘 에피소드의 기본 세팅인 kangaroo court가 정말 매우 무리였는데, 작가들이 배우 믿고 질러버린 거 아닌가 싶다.^^ 사실 오늘 에피는 플롯만 요약해서 써놓고 보면 '어쩌라고' 소리가 나올 줄거리다. 이게 이렇게까지 설득력 있게 구현이 된 게 놀라운 거지. 그리고 설정이 품은 가능성을 (이렇게 일찍) 극한까지 밀고 가는 작가들의 미친 짓거리도=_=;;



10년만 전이었어도 이런 역은 닉 리가 정말 잘했을 텐데. 그리고 마스크는 너무 성마른 이미지여서 적절치가 않겠지만 크리스 오웬스도 시키면 잘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게 캐릭터의 효용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생각날 정도로 정말 좋았다. 나는 여기서 처음 보는 배우인데 앞으로 매우 기대된다. 미드는 스릴러나 서스펜스 계열이 많으니까 앞으로 좋은 역으로 여기저기서 볼 수 있을 듯.



그리고 The Practice랑 Ghost Whisperer 이후 오랜만에 보는 캠린 만하임. 만세다. 시리즈가 캐릭터에게 불친절하면 아무래도 배우의 연기에 많은 걸 의존하게 되는데, POI는 가끔 오늘의 POI 캐스팅에서는 헛발질을 할 때가 있어도 조연 캐스팅에 있어서는 실수가 없다. 루트를 보라!^^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기계와의 접촉을 배제한다는 원래의 대전제도 루트가 본격적으로 기계와 소통하고 활동하면서 진작 깨진 상태다. 그리고 이제는 핀치도 그런 상황에 이의가 없는 것 같고. 그렇다면 실은 핀치도 기계와 직접 접촉하려 할 만도 한데, 아무래도 핀치는 자신이 기계와 직접 의사소통하기 시작하면 빚어질 효과를 우려하는 것 같다. 자신도 기계를 오용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 자기로부터도 기계를 보호하려 했던 그 정신이 아직 어디 가지 않았달까. 정작 기계는 핀치를 보호하려 안달하는데.



플롯은 얼척없는 에피소드가 떡밥은 정말 많이 풀었다. 핀치의 부상이라던가, 핀치와 리스가 떨어진다던가 - 핀치가 육체적으로 얼마나 약점이 많은지 아는 리스로서는 어지간해서는 핀치와 떨어지려 하지 않았을 텐데. 게다가 베어가 당연하게 리스와 떨어져서 핀치와 함께 간다 - , 쇼와 루트 간의 노골화된 동지애라던가… 보통 이 정도의 내용은 시리즈 피날레에나 나오는 거 아니었나?! 쌍제이, 무서운 사람…….



다만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핀치는 기본적으로 목숨은 버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동안 임해왔던 것 같고, 가능하면 오래 일을 계속할 수 있게 이 세상에 붙어 있기를 바라지만 딱히 죽을 자리를 고르는 성품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 그동안 자기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그다지 긴장하거나 안타까워한 적이 없었다 - , 무슨 생각으로 도서관을 버리고 거리로 숨어드는 길을 택했는지 궁금하다. 아 물론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닌 줄은 알아. 그러나 세상에 별 미련이 없는 사람인 것도 맞으니까. 다 뿔뿔히 흩어지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당분간은 번호 구하는 일은 하지 못할 것인데,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살아 있는 이유가 이것으로 날아간 셈이라서. 실은 그가 죽으면 리스나 쇼 선까지는 굳이 위협당할 필요가 없다. 그리어도 (루트도 있는데) 핀치만을 콕 집어 위협적인 존재라 점찍고 계속 저지하려 했고.





ps - 이 드라마, 캐릭터 죽일 땐 정말 가차없다. 유언을 하고 죽을 수 있었던 캐릭터가 정말 손에 꼽는다. 지금 생각나는 것으로는 - 마크 스노우 정도?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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