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작입니다. 데뷔작 '로마 모자의 비밀'이 1929년에 나왔고, 마지막 장편이 1971년(A Fine and Private Place)에 나온 것 같;;으니 후기작에 속하는 것일까요. 두찬 님께서 클럽에 올려주신 리스트에 의존하자면 퀸이 직접 쓴 작품입니다.


  전 사실 이 책이 단편집인 줄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제목의 'case'에 제멋대로 's'를 붙여버리고는 혼자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퀸 노경감님의 단독 수사집이라! 멋있는 컨셉이 아닙니까? 아버지와의 공조수사를 빙자한 엘러리의 수사담도 재미있지만, 두 사람의 콤비플레이를 보여주려면 아무래도 '범인'인 아버지가 '비범인'인 아들의 그늘에 가리게 되니까요. 엘러리가 조연으로 나오건, 아예 나오지 않건, 아버지 퀸의 독자적인 수사담도 재밌겠다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장편인 걸 알고 나서 조금 기운이 빠지긴 했습니다만, 그건 순전히 원서를 읽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안타깝다는 정도였지, 기대가 줄어든 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여러 사건을 보는 게 한 사건을 보는 것보다 더 재미있을 수는 있겠지만, 제 생각에 퀸의 진가는 아무래도 단편보다는 장편에서 빛나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이 책은 '센터 가의 경감 퀸의 수사담'이 아니라, '은퇴한 센터 가의 경감 퀸의 수사담'입니다. 제 기대가 결정적인 부분에서 배반당한 것이지요. 부하들을 떼거지로 몰고 다니는 당당한 간부급 경찰 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이제 퇴물이 되어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정년퇴직자 퀸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불만이냐고 물으신다면, 불만입니다!!! 불만이고말고요. 리처드 퀸은 더 이상 경찰이 아니고, 전직 경감인 섬처럼 탐정 개업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는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입장에서 뛰어다니게 됩니다. 아마추어지만 적어도 뉴욕 경찰과 최소한의 공조 관계라도 맺고 있었던 엘러리와는 달리 그는 철저하게 무관의 시민이거든요. 게다가 이 소설에서 나레이터가 있다면, 그건 퀸이라기보다는 사건의 관계자이며 퀸과 핑크빛 모드를 연출하게 되는 다른 주인공입니다. 퀸은 자기 목소리를 가질 때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소설 진행 시간 동안 그 여자의 눈으로 '보여지게' 됩니다. 즉, 제가 못마땅한 것은, 한마디로 이 소설은 리처드 퀸이라는 캐릭터에게 그가 가졌던 무게와 그동안 수행해준 역할만큼의 대접을 못해주고 있다는 거죠. 명색이 '퀸 경감의 단독 수사'를 전면으로 내세운 소설이 말입니다.^^


  수사 대상이 되는 사건은 상당히 냉혹한 범죄입니다. 태어난 지 이제 겨우 세 달 된 아기가 피살자거든요. 이 아기는 아이를 기를 입장이 되지 못하는 어머니가 낳아, 불법 입양 주선을 전문으로 하는 악덕 변호사의 손을 거쳐 한 부잣집에 입양이 됩니다. 바로 이 아이가 죽은 것이지요. 정황이 애매하기 때문에 사고사인가 살인인가가 논란이 되고, 시신을 처음 발견한 간호사는 살인을 주장하지만, 간호사가 봤던 증거가 범행 현장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경찰은 여자가 환상을 봤다고 단정하고, 검시재판도 사고사로 결정을 내립니다. 그러나 리처드 퀸은 간호사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두 사람은 함께 범인을 쫓습니다..


  리처드 퀸도 경찰직을 떠난 상태인 데다, 파트너 역할을 맡는 이 여자는 철저하게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본격물이라기보다는 모험담에 가깝습니다. 약간은 하드보일드적인 성격과 크리스티의 가벼운 모험물 같은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퀸은 발로 뛰는 편이고, 퀸의 파트너는 퀸을 보조하면서 동시에 보호를 받는 존재가 됩니다. 퀸은 수사의 방향을 잡느라 고전하지만, 단서가 놓여 있는 곳까지는 제대로 찾아갑니다. 그러나 마지막의 추리는 퀸이 아니라 무려 퀸의 파트너의 몫이 됩니다. 퀸은 대부분의 액션을 담당하지만, 처절하리만치 실질적으로 한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뼈아픈 실책까지 저지르게 되지요.


  그러나 로맨스는 결실을 맺습니다. 제일 큰 스포일러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범인 이름을 대지는 않았으니...;; 퀸의 마지막 대사는 "엘러리가 이 일을 알면 뭐라고 할까?"인데(엘러리는 이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내내 유럽에 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저도 그게 제일 궁금하군요. 그 다음 장편은 1958년작 'The Finishing Stroke'인데, 이 책은 언제나 구해볼 수 있게 될까요..




  p.s. 퀸을 그린 방식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느라 정작 책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못한 것 같네요.=)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려면 범인의 정체를 밝히고 시작해야 하니... 그런 건 다음에 마음이 난다면 생각해보고 싶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어느 세월에 가능할지.



  (2005. 02. 12)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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