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즌 푸념

our town 2007. 4. 6. 17:20

  제법 오랜 동안 팬픽 소스를 떠올리면 죄다 8시즌이라, 좋아하지도 않는 플롯에 왜 변명을 해주고 싶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에서야 그게 제 나름대로 8시즌 전개와 화해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노력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깨닫고 보면 무지 단순하고, 팬심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용납이 되는 것 같진 않아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건 8시즌의 앞 시즌 부정하는 내용 전개입니다. 이건 두 가지 측면이 있어요. 하나는 8시즌 전개가 7시즌 속에 깔려 있던 내용을 완전히 뒤엎으며 진행된다는 건데, 이건 무슨 의도로 깔아놓았는지 이해할 수 없거니와 멀더의 귀환과 맞물려서 제대로 매듭도 안 지어준 채 그냥 흐지부지되었다는 점에서 정말 맥락없고 쓸모없는 플롯이었습니다. 게다가 7시즌에서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으로 보였던 멀더-스컬리의 감정 관계가 8시즌 넘어가선 멀더도 없는 판에 송두리째 부정되었다는 점이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그러나 이건 현실적으로 제작 환경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문제긴 합니다. 8시즌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폭스사와 DD의 협상에 달려 있었고 그게 어떻게 끝날지도 모르는 채 7시즌 피날레를 찍었다니 제작진(특히 작가진)의 혼란이야 따로 말할 필요도 없었겠죠. 플롯이 우왕좌왕하는 게 당연합니다. 8시즌 전체는 아무리 돈을 부어넣고 물량 공세로 찍었다 한들 날림공사라는 냄새를 강하게 풍겨요.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일 겁니다. '뇌의 이상으로 죽어가고 있던 멀더'의 스토리라인이 폼만 잔뜩 잡다 중간에 휘발된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스컬리 캐릭터를 망쳐버린 건 정말 용서가 안돼요. 그것도 새로 들어온 도겟을 띄워주느라 스컬리를 망쳐버렸다는 것. 믿는 자 멀더-회의하는 자 스컬리 역할분담을 도겟을 들여와서 한 칸씩 옆으로 옮기는 기계적인 재배치는 물론 멍청하고 한심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 (일단 M&S 궁합이 너무 좋았고 서로에 대해 정의된 입장이었기 때문에 멀더가 빠지면 스컬리도 위치가 흐려지니까요. 이건 그 누구한테도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멀더가 없기 때문에 스컬리가 의식적으로 멀더의 시각으로 사건을 다루려 한다'는 식의 설명은 - 8시즌 중반에 나오죠 -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7년을 지나오는 동안 스컬리와 멀더가 고수하는 입장의 차이는 정말 그래서라기보다는 편의적인 것, 즉 사건 수사에 있어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정도로 변해 있었으니까요.


  따라서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사건에 대한 스컬리의 태도라기보다는 도겟에 대한 스컬리의 태도입니다. 둘 다 불편하지만 후자의 경우 반감이 더 커요. 제작진이 작정하고 띄워주는 게, 그리고 그 와중에서 스컬리의 캐릭터가 희생되는 게 보이잖아요. 그게 절정에 달한 게 로드러너였기 때문에 그 에피만 생각하면 지금도 헛웃음이 나면서 분노게이지 수직상승이라는 모순되는 반응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겁니다. 좋아해달라고 쓴 신이 도겟에 대한 호감을 늘이는 쪽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이 드라마에 염증을 일으키는 쪽으로 작동한 거죠. 그런 부작용을 모를 제작진이 아니었다고 보기에 왜 그런 이상한 만듦새를 보였는지 이해 불능입니다.


  왜 싫어했는지를 자꾸 되풀이해 말하는 것은 '아 나 정말 8시즌 싫어'를 강조하려는 게 아니고, 실은 일종의 심리치료입니다-0- 8시즌이 남긴 상흔을 씻어내고 완전소중 팬의 모드로 돌아가려면 어떻게든 이 상처를 극복해야 하는 거예요. 극복하고 싶거든요. 좋아한다구요. 8시즌과 좋은 관계에 있지까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떻게든 화해는 해야 '추억'하는 입장에서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작업이 쉽지가 않군요.




  (2006년 12월 20일)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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