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해놓았으니 바로 들어가도 되겠군요.^^ 응집력 있게 몰아친 데뷔작 '무죄추정'에 비해, 'The Burden of Proof'는 터로의 장점과 단점 - 이라기보다는 그 한계 - 을 모두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무죄추정'을 읽으신 분이면 누구나 기억하고 계실, 변호사 알레한드로 "샌디" 스턴입니다. 스턴은 전편 '무죄추정'에서 주인공을 변호하는 형사전문변호사로 나왔었습니다. '무죄추정'에 등장하는 인간 군상들은 모두 흥미롭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스턴은 끝까지 자기 자신을 거의 내비치지 않기 때문에 독자의 호기심을 가장 자극하는 인물입니다. 특히 소송의 종결부에서 주인공과 스턴이 나누는 대화는 이 책에서 가장 호기심 끄는 플롯 중 하나가 새털같이 가볍게 암시되듯 다루어지며 묵직한 빛을 발하는 대목이었지요.
'The Burden of Proof'는 스턴에서부터 시작해서 스턴으로 끝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편에서 스스로를 너무 드러내지 않아 신비스럽기까지 한 존재로 등장했던 스턴의 개인사와 가족사는 엄청난 깊이로 다루어집니다. 스턴의 대척점에 서 있는 캐릭터 또한 스턴의 가족의 일부이죠. 스턴의 하나뿐인 피붙이, 여동생의 남편이니까요. '무죄추정'에서 제시되었던 스턴의 개인사 중 일부는 여기서 모습을 바꾸어 나옵니다. 소문이 잘못 전해졌거나 전편의 주인공 '나'가 잘못 알고 있었거나겠지요.=) 'The Burden of Proof'는 전편의 이야기로부터 3년 후에서 시작합니다. (소설이 출판되는 시간 간격과 같이 가더군요.) 스턴은 당시 재판이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바람에 그 이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몸이지만, 자기가 변호사 일을 해올 초기부터 맡았던 매부 회사의 일들은 여전히 자신이 직접 처리하고 있습니다. 50대 후반으로 접어들어, 세 자식들은 모두 독립시켰고, 아내와는 몇 년 전 불화도 좀 있었지만 지금은 예전 패턴으로 돌아가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요.
매부 회사의 일로 시카고에 출장을 다녀온 그는 집에 들어서다가 아내가 밀폐된 차고에서 차 시동을 걸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발견합니다. 경찰이 다녀가고, 유서가 발견되어 자살로 처리되지만 유서는 달랑 한 문장뿐입니다. 'Can you forgive me?' 스턴은 아내가 자살할 만한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왜 자살했는지도 전혀 짐작가는 바가 없습니다. 갑자기 닥친 이 시련은 스턴의 생활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터로는 인간의 황량한 심사를 그리는 데 능합니다. 여기서도 갑작스레 아내를 보낸 스턴은 정상적인 생활로 쉽사리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그건 오랜 세월 함께해 온 동반자를 잃은 상실감과는 조금 다른 감정입니다. 아내의 죽음, 그것도 자살이라는 방식의 죽음과 화해할 수 없어 무언가 말이 되는 설명을 갈구하게 되는 거니까요. 그는 아내의 선택이 자기 자신에 대한 비난이라고 느끼고 죄의식을 가지며, 죄책감을 갖게 하는 상황에 대해 다시 막연한 분노를 느낍니다. 스턴이 자기 집을 유령처럼 배회하며 조그만 것이라도 단서가 될 만한 걸 찾아 이 방 저 방 헤매는 대목은 길게 나오지도 않는데 정말 탁월합니다. 아내가 그에게는 그 어떠한 암시도 내비치지 않은 채 그런 결정을 내리고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스턴이 답을 찾아 헤매는 과정은 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두 가지 플롯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의 뼈대는 매부 회사 쪽에서 옵니다. 이건 소설이 시작되기 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일이고, 소설의 문을 여는 스턴의 시카고 출장도 이 일의 일부였습니다. 스턴의 매부인 딕슨은 맨손으로 시작해 굴지의 기업을 일구어낸 자수성가형 기업가로, 그런 사람이라면 흔히 상상할 수 있을 만한 자신만만한 태도에 주위 사람들을 손에 쥐고 자기 뜻대로 휘두르는 타입의 인물입니다. 그와 스턴은 둘 다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디딜 무렵 군대에서 만난 사이로, 스턴은 매부를 결코 좋아한 적이 없지만 변호사로 자립할 초기부터 그로부터 큰 도움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기에 직업적인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그와는 상관없이 스턴과 그의 여동생은 매우 가까우며 서로를 깊이 아끼는 관계로, 아내가 죽기 전부터도 매일 꼬박꼬박 전화를 주고받고 안부를 교환하는 사이로 그려집니다. 딕슨은 자신의 가족이 없기에, 스턴의 가족들과 가깝게 지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스턴의 아이들까지 고용하는 형식을 취해 가면서 자신의 곁에 두기도 하지만, 그 관계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나오지요. 이 소설의 도입부에서, 딕슨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대배심(정식 재판으로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심의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따로 판사와 배심원을 두고 비공개로 치러집니다. 심문은 검사가 진행하고, 소환된 사람들의 변호사는 입회가 허락되지 않습니다)의 소환장이 딕슨의 회사 사람들과 기록을 상대로 날아오고 있는데, 그들이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거든요. 스턴은 딕슨과 딕슨의 회사를 대리해 킨들 카운티의 검사를 상대하고 있습니다만, 위협은 시간이 갈수록 커집니다.
두 중점 플롯 사이사이에는, 변화에 맞닥뜨리고 적응해 가는 스턴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유부남'에서 '홀아비'로 위치가 바뀌면서 동년배의 여성들의 성적인 암시가 증가하는 것에 당혹스러워한다던가, 스스로도 매력적인 여성을 보면 눈길이 가는 것에 당황스러워한다던가 하는 모습들이지요. 책에서 하는 말대로 스턴은 '그런 쪽으로는 오랜동안 스스로를 차단하고 살아온'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는 물론이고 스스로의 변화도 자신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자기 인생을 돌아보게도 되고요. 새로운 인간 관계를 맺기도 하고, 오래 알아오던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실은 이게 책의 중심 내용입니다. 위의 두 플롯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추진력을 제공하지만, 핵심은 결국 그게 스턴이라는 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가 하는 것이거든요. 30년을 같이 살았지만 서로의 사이에 존중이라는 이름의 거리를 두고 있었던 스턴과 아내 클라라라던가, 대배심이 노리는 바가 구체화되어갈수록 부침을 거듭하는 스턴과 딕슨의 관계라던가, 스턴이 마주치는 여러 여인들과 맺는 관계라던가, 여기서는 언급한 적이 없지만 스턴의 세 아이들과 스턴이 가져왔고 가져가게 될 관계까지도, 모두 스턴에게 부딪쳐 와 그를 뒤흔들고 바꿔놓고 이전과는 같고도 다른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 절정은 맨 마지막에 스턴이 모든 것을 정리하면서 읊는 기도문인데요,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다시 하겠습니다.
내용 소개를 엄청 많이 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 요약을 한 거지만, 실제로 중요한 건 에피소드들이거든요. 제가 쏟아놓은 내용들은 소설 초반부에 거진 다 나오는 것들이고, 특히 소설의 핵심 미스터리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는 일부러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미스터리가 있냐고요? 두 플롯은 각자 수수께끼를 적어도 하나씩은 품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발전되어 가는 걸 보는 건 꽤 흥미진진합니다. 특히 딕슨의 회사와 관련된 수수께끼가 그렇지요.
터로는 이 소설을 3인칭으로 썼지만, 주인공 스턴을 누구보다 자신에 가까운 인물로 보고 애정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딱히 구체적으로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작가와 등장 인물간의 관계가 매우 가깝다는 게 읽다 보면 자연스레 느껴집니다. 그리고 사실 독자들이 감정이입하기에도 무리가 없는 매우 현실적이고 차분한 인물이에요. '무죄추정'에서나 여기서나 매우 침착하고 온건하고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아내의 자살로 일련의 방황을 하지만 그것조차도 지극히 스턴다운 방식으로 조용히 겪지요. 그 때문에, 얼핏 보고 스턴이 이 소설을 통해 한 바퀴 크게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말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책 초반부의 스턴은 후반부의 스턴과 아주 같다고도 다르다고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 변화는 딕슨을 통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요.
딕슨은 여러 면에서 스턴과 대척점에 서 있는 캐릭터입니다. 이민자 출신으로 변호사답게^^ 타협적이고 주위와 조화를 이루어 사는 데 큰 비중을 두는 스턴과 달리 딕슨은 자기 식대로 거침없이 세상을 헤쳐 나가며 그 앞에 놓인 것은 무조건 장애물로 보고 돌파구를 찾아내는 사람입니다. 자기 방식대로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탐닉하고, 인생의 즐거움은 넘칠 만큼 누리고자 하고, 뭘 하든 호쾌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지요. 그런 딕슨에 대해서도 터로는 애정어린 시선을 유지합니다. 그건 터로가 스턴을 자기 자신을 투영해서 본 만큼 딕슨에 대해서는 자신(과 대개의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바를 감히 할 수 있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주는 캐릭터로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소설에 스턴의 시선을 통해 언급이 나오기 때문에 제가 추측한 게 절대로 아닙니다.)
이 애정어린 시선은,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여러 캐릭터들이 만나 충돌하고 엉켜 흘러가는 이 소설을 마음 편히 읽을 수 있게 해주는 토대입니다. 만악의 근원이 되는 딕슨조차도 작가가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인간의 약점이나 과오에도 냉철한 시선을 들이댈 마음은 없어 보입니다. 그 시선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소설 읽기는 꽤 괜찮은 경험이 될 겁니다. 적어도 마지막까지는요. 이건 제 이야기입니다. 그런 따뜻한 시선의 존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겁게 보았습니다만, 마지막에 가서 삐끗하는 바람에 감동(말하자면)의 범위가 좁아져 버렸거든요.
터로는 위에 말했듯이 사람들의 황폐한 심사를 그리는 데 발군의 재주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게 겉으로 드러나게 된 이유는 캐릭터마다 많이 다르지만, 여태까지 접한 터로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어느 순간 자신의 인생에 커다란 공허가 생겨 있는 것을 느끼고 있거나 느끼게 된 사람들입니다. 스턴의 경우는 그 공동이 자기 곁에 있어주었던 아내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삶을 버리면서 생겨납니다. 이 공허는 처음에는 스턴의 내면을 위협하는 정도이지만, 그 정체가 구체화될수록 스턴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한순간에 휩쓸어가버릴 수 있는 거대한 파도가 됩니다. 그 모든 혼란을 정리하는 기능을 하는 게 마지막에 나오는 스턴의 기도인데, 이 기도가 결정적으로 저를 닭살돋게 만들었습니다.=) 터로의 주인공들이 겪는 황량한 심사는 대개 원인은 분명할지언정 그 구체적인 모습은 잡아내기 쉽지 않은 그런 감정들입니다. 그래서 그게 더 큰 울림을 지닐 수 있는 것이지마는, 이 경우 조금만 과도하게 그려주면 캐릭터들이 겪어나가는 감정이 독자를 튕겨내 이질감 느끼게 하기가 쉽습니다. 이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The Burden of Proof'에서 터로는 이 경계를 몇 번이고 아슬아슬하게 넘습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확 넘어버리는 대목이 그 기도인 것이죠. 사실 이 부분을 읽다가 전 큰 소리로 웃었는데,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였습니다.-_-; 그 기도만 없었어도 이렇게 뒤섞인 감상을 쓸 이유가 아주 많이 줄어들었을 텐데 말이지요. 다행히(?)도, 이 다음 작품인 '증발'은 문제의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면서도 (제 판단에) 경계를 넘어가지 않아, 지금까지 읽은 것 중 가장 좋아하는 터로의 작품으로 꼽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책을 읽으실 분이 있다면 이미 터로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신 분이겠지요. (아니면 몇 분들^^처럼 관심의 범위가 넓은 전문가시라거나.^^) 따라서 딱히 추천의 말씀을 드릴 만한 것은 없습니다. 읽어보실 분은 나중에 감상을 써주시면 정말정말 고맙겠습니다.^_^ 참, 이 책을 읽으시면 전편 주인공의 뒷이야기를 조금 얻어들을 수 있습니다.
(2007년 2월 9일)
윗글의 기도에 대한 제 언급은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느라 할 수 있는 한 돌려서 쓴 거였습니다. 저한테는 무척 미진했지요. 그래서 결국은 이 뒤에 스포일러를 잔뜩 얹은 버전을 더 써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완성했습니다. 내용과 반전의 폭로에 개의치 않으실 분들은 아래를 눌러 마저 읽으시면 됩니다. 몇 분이나 계실까마는요. 네, 거의 윗글만큼이나 깁니다..
스포일러라 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