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기는 재미있었는데 동시에 봐야 할 게 너무 많아 힘들었다.
한글 자막에서 오가는 대화체가 도시 마음에 들지 않아서리..-_-;;


극장에서 봤다면 비주얼이 꽤 압도적이었을 것 같다. 보러 갈까 말까 저울질하다가 시간 낼 마음을 먹기가 힘들어서 가지 않았던 많은 영화들 중의 하나였는데, 극장에서 봤다면 한 이틀쯤은 영화에 젖어 있었을 것 같군. 이 영화가 따온 수많은 족적들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머리보다는 가슴이 먼저 반응했을 듯. :)


영화 내용을 미리 몰랐다면 더 재미있었겠다.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영화들은 전혀 모르고 가서 얻어맞는 편이 훨씬 낫다. 대신 보는 데 한 두 배는 더 정신이 없었겠지. (아이덴티티.-_-)


초현실적인 우주 정말 압권이었다. '우리 세상은 평평해, 그 끝은 지옥이야'가 생각나더군. 어쩌려고 바다를 만들었는지.. 누구처럼 그 끝에 가보고 싶다는 사람이라도 생기면...^-^;;


협박당하고, 이용당하고, 협조하고, 그들을 도와 '고문'에 일익을 담당했고, 그 와중 나름 잔머리를 굴려 빠져나갈 구멍들을 찾았고,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너무 겁이 많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에 결정적인 존재가 될 수 없었던 (나름대로 결정적인가?) 박사. 원래 이런 사람들에게 눈이 돌아가긴 하지만 하여간에 아주 흥미롭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뚝뚝 끊어지는 어조, 불안한 머리와 눈 움직임 등 학대받은 사람들의 증세를 보이기에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역시 그런 과거가 있었다. =) 하긴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본 사람이기에 대항할 엄두조차 못 내었을지도 모른다. 원래 앞뒤 모르는 사람이 용감하다. :P


저들이 자기들이 어디서 왔는지 전혀 기억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점이 슬프다. 머독은 자기 나름껏 머리를 굴려 낙원을 만들어냈지만 어쨌거나 그건 끝나게 되어 있다.


머독도 죽을까?


허점이 많은 영화이긴 한데, 그래서 더 재미있다. 설명해주지 않은 부분들이 더 많은 이야기와 더 강렬한 감정들을 내포하고 있으니까.




주연배우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기사 윌리엄'에 나왔다는데 나야 본 적이 없으니. 키퍼 서덜랜드는 언제나 어디서나 그랬듯이 좋았다. :) 이 사람에 대해서 뭔가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연기가 좋아서 그런가 그 이야기 때문에 박혔던 이미지가 점점 씻기고 있고. 상당히 마초적인 남자 연기에 어울릴-_-;; 인상이라 유약하고 비겁하고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는 남자 역을 어떻게 할까 내내 신경쓰면서 봤는데, 역시 놀라웠다.


윌리엄 허트. 목소리 좋은 줄 몰랐다*_* 하긴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흥분해도 일단 어조를 깔고 얘기한다. "from where?"하고 물을 때, "...and every time I try to rearrange these pieces it still doesn't make any sense!" 할 때... wOw.


제니퍼 코넬리. 말이 필요없다.




막간의 스포일러

오프닝 신이 "First came the darkness, then came the strangers."와 함께 시작해서 나는 당연히 무대가 '지구'인 줄 알았다. 하여 Inspector가 공중으로 뿌리쳐지면서 빙글빙글 도는 시야로 보게 된 그 공간의 전체 모습은 상당히 충격적이고 인상적이었다. 하긴 나는 별에 관한 스펙터클은 무조건 좋아한다. 예전에 과학관에서 본 '빅뱅'도 그 사이에 흐른 시간이 몇 년인데 아직도 잊지 않고 있으니. 이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당연히 그들이 지구에서 납치되어 갔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들 자신들은 자기들이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고, 사실 우리도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


머독이야, 심어진 기억일망정 이제 '세상'이 자기 환상대로 충족됐으니 행복하다 치고, 그 박사는 행복할까? 왠지 나는 그가 자살했을 것 같다.


IMDb trivia에 따르면 대부분의 팬들이 오프닝 신에서 사람 모습이 나올 때까지 나레이션을 끈 채로 보는 것을 좋아한다던데, 이해할 것 같다. 나도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 그럴 것 같아.


그래픽 그 자체보다도, 등장 인물들의 연기가 너무나도 좋아서 영화가 잘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스포일러 닫기




p.s. 딴소리 하나. ...그러니까 결국 외계인들이 다크 시티에서 기르기;; 위해 납치해간 인간들은 전부 다 영어권 사람들이었던 것이었던 것인가?? :D



(2004. 03. 21)


Posted by Iphinoe

트로이 Troy (2004)

afterwards 2007. 4. 14. 20:24

  (어쨌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릴 필요까진 없겠죠;;)






  2002년부터 기다렸던 영화였으나, 시놉시스 보고 한 번 실망, 포스터들 보고 다시 한 번 실망, 예고편 보고 조금 기대, 스틸컷들 보고 다시 조금 더 기대, 개봉 후 솔솔 나도는 스포일러들을 접하고 다시 한 번 실망하여 아무 기대도 걸지 않은 상태에서 보러 갔다.


  총평. 다른 무엇보다도 내게는 러닝타임이 너무 길었다. 영화가 캐릭터들의 감정에다 무게를 잔뜩 실어 내게 꾹꾹 눌러담아 오는 데다, 그게 비극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바로 헥토르가 죽는다는 것.


  (이쯤에서 내 편견을 밝혀두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트로이 전쟁에 가담했던 수많은 영웅들 중에서 나는 헥토르에게 가장 끌린다. 게다가 이 지난했던 전쟁사에 대해서는 신화를 통해 얻은 백그라운드 지식이 조금 있고, 트로이 전쟁을 다룬 소설만 세 개를 읽었기 때문에 전혀 객관적인 관객이 아니다. 따라서 왜곡된 부분에 대한 내 시각이 전적으로 트로이에 동정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건 미리 말씀드려야 공정할 것 같다.^^)


  화면은 멋있었다. 난공불락의 요새로 헬라스 전역에 악명을 떨쳤던 트로이의 성벽이 재현된 모습만큼은 손색이 전혀 없었다. 무역으로 부를 쌓았던 트로이의 고급스러움이 그리스인들의 투박하고 간소한 살림살이와 대조되어 다가왔다. 그리스인들의 함대가 바다를 꽉 메우고 트로이로 다가오는 위협적인 장면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지중해다운 건조한 여름의 분위기가 좋았다.


  압권은 역시 목마라고 할 수 있겠다. 스틸컷을 봤을 때는 사이즈가 너무 작고 지나치게 투박해 보여서 실망할 것이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었는데, 의외로 보기 좋았다. 근처에 사람들이 서 있을 때 사이즈의 대비도 놀라웠고, 목마에서 그리스 군인들이 뚜껑을 열고는 줄을 내려 아래로 내려올 때 그림이 되었다.


  전쟁신은 그 동안 많이 봐왔던 전쟁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로서는 자꾸 '반지의 제왕 : 두 개의 탑' 장면이 연상되어서 왠지 우습기도 했고. 아킬레스가 선보인 비껴 찌르기 전술은 위력적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우선 눈에 보기가 좋았더라.^^ 그리고 아폴로 병사대가 들고 다니는 달 모양의 방패도 인상적이었다.


  음악... 음악은 정말 할 말이 없다. epic movie마다 오케스트라가 등장해 웅장한 듯 쓸데없이 감상적인 음악을 날리는 건 이제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웬만하면 엔딩 크레딧을 다 보고 일어났으련만 음악이 싫어서 기다리지 않고 먼저 나와버렸다. 제일 압권은 아킬레스와 헥토르의 싸움 그리고 나중에 트로이가 함락당할 때 흐르는 노래. 음악이 많은 경우 관객들의 감정선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너무 감정을 들이부으려고 하면 듣는 사람이 튕겨나지 않는가 말이다.


  스토리에 대해서는, 캐릭터에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점만 빼고는 각색을 효과적으로 했다. 신들을 정성으로 섬기고 그들의 권능을 믿는 트로이인들과 오직 인간의 힘을 믿는 아킬레스의 초인적인 능력을 끊임없이 상기시킨 것은, 내심 트로이 편인 내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었으나 스토리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양쪽에서 싸움을 직접 담당하는 두 축인 아킬레스와 헥토르 모두가 이 전쟁이 신의 능력과는 무관한 인간들의 싸움임을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대신들의 의상부터가 신정국가 냄새를 솔솔 풍기는 트로이를 무대로 설정한 것은,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들에게는 꽤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경험자가 아니다 보니 확언은 못하겠다;;


  그리스 쪽에서는 아가멤논의 탐욕을 끊임없이 부각시켜 ㅡ 원래는 아가멤논만 탐욕스러웠던 것이 아니므로. 워낙이 느슨한 연합체제인 그리스가 10년이나 전쟁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ㅡ 아킬레스와 대척점에 놓으려고 한 것 같은데, 아킬레스가 의외로 아무 생각이 없는 캐릭터가 되어버려서 대립에 날이 서기보다는 아가멤논이 괴물처럼 되어버렸다. 오디세우스는 작지 않은 비중임에도 예상 외로 기능적인 역할만이 부여되었다. 그의 생각이나 고민을 카메라가 따라가는 일은 단 한 번도 없고, 그는 영화 내내 언제나 그가 쓰여야 할 곳에 나타나 필요한 일들(아킬레우스 설득, 아가멤논 설득, 이런저런 제안)을 해주고 나면 다시 카메라 시야 밖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영화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모두 오디세우스가 담당한 것이 시사하듯, 이 상황에 대해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할 수 있고 그것에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캐릭터가 오디세우스다 보니, 스토리 밖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인물이었던 셈이다.


  아킬레스가 아무 생각이 없다고 말한 것은 아킬레스의 캐릭터에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미 없는 전쟁에 나가 피를 흘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말하면서도 '후대에 명성을 길이 떨치게 될 것'이라는 유혹에는 마음을 빼앗기고,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면서도 무언가 지킬 신념이 있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아킬레스의 허무주의는 그의 폭력성과 나란히 잘 어울려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허무주의와 명성이라는 단어에 현혹되고 마는 모습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아무리 영웅 중심으로 돌아가는 '인간적인' 전쟁 스토리라 해도, 후대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 그 무엇보다 강한 '인간적인' 욕망이라 해도, 아킬레스의 초인적인 능력은 그에게 늘 조금씩은 신성한 위치를 부여한다. (이 부분은 그리스 신화를 접한 내 편견의 영향일 지도 모른다.) 아킬레스와의 대결에서 죽게 될 것임을 잘 아는 헥토르가 가족들과의 작별에 긴 시간을 들이는 모습은 이 영화가 아킬레스에게 부여하고 싶어하는 이미지와 반신(半神)의 영웅 아킬레스라는 기존 이미지가 묘하게 맞물려 괴리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예다. 헥토르의 양심이 아무리 죽을 것을 알면서 싸우러 나가고 싶어한다 하더라도, 프리아모스 왕이 군대를 이끄는 장이자 자신의 후계자인 아들에게 그걸 (알면서도) 허락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아무리 '정당한 싸움임을 믿을 때 가장 잘 싸운다' 하더라도.


  일관성 없기로는 파리스 캐릭터도 뒤지지 않는다. 다만 파리스는 캐릭터 자체가 애초부터 일관성 없는 인물로 설정되었다고 본다 해도 크게 무리가 없기 때문에, 마지막에 뜬금없이 아킬레스를 죽이는 것만 빼면 불만이 크지는 않다. 어차피 아가멤논까지 트로이에서 죽여버린 마당에 아킬레스를 반드시 파리스가 죽여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파리스의 화살이 아킬레스의 발뒤꿈치에 박히는 장면은 아무 의미가 없는데도 신화가 전하는 바와 똑같이 연출해서 되려 실소를 유발했다. (신화에 따르면 불사신인 아킬레스의 유일한 약점이 발뒤꿈치라는데, 신의 개입을 애초부터 부정하고 시작한 영화에서 그런 '고증'을 지킨다는 것부터가 웃기는 일이다.^^) 트로이의 검을 (아무 자격도 능력도 없이 그저 나이든 아버지를 부축해 도망가기에 바쁜, 파리스로서는 이름조차 몰랐던) 아이네이아스에게 물려주는 장면도 황당하기 그지없었으나 그건 나름의 서비스 연출이라 생각하고 관대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브리세이스-아킬레스 스토리라인은 예상보다는 덜 기분나빴다. 아마도 폴릭세나의 성격을 브리세이스에게 섞어주어 프리아모스 왕의 인척으로 만든 뒤, 꽤 오랜 기간 동안 전투에 나서는 걸 거부한 아킬레스의 행보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epic movie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로맨스를 추가한 것 같은데, 나쁘지 않았다. 중간에 아킬레스가 죽어버려서 관객들의 집중력을 흩어놓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므로, 트로이 함락 때까지는 그를 살려둬야 한다는 난제 또한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꽤 좋은 각색이었다. 전형적인 감이 없지는 않지만, epic movie에서 그 정도의 전형성까지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리이므로.


  그러나 아킬레스의 야수와도 같은 잔인함, 광폭함, 방향도 없고 목적도 없는, 한 마디로 도구에 불과한 폭력이 조금의 변명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정당화되고 어느 정도는 미화까지 될 수 있다는 건 상당한 놀라움이었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원래 신화보다도 더 남자들의 이야기라는 냄새를 풍기는데, 그건 상당 부분 아킬레스 캐릭터를 다룬 영화의 방식에 기인한다. 그 때문에 이 영화의 moral은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은 이 영화를 휴머니즘적인 시각에서 만들었다고 말하는데, 감독이 말하는 휴머니즘이 무엇인지 아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그 휴머니즘만큼은 전혀 아닌 것 같다.


  헥토르가 안드로마케와 아들을 살려 트로이 밖으로 탈출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안배하는 모습, 아킬레스와의 결전 직전 날 아들이 잠든 요람을 묵묵히 내려다보는 모습은 꽤 슬펐다. 겨우 두 살박이였던 헥토르의 후계자 역시 보복을 두려워한 그리스군에 의해 성벽 밖으로 집어던져졌다는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드로마케는 노예로 끌려갔다 (누가 데려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에서 파리스/브리세이스/안드로마케/그 아들의 안위에 대해 가타부타 언급이 없는 것은, 트로이를 완전히 꽉 막힌 나라^^로 만든 각본가가 트로이에 대해 지킨 모종의 예의는 아니었나 싶은 느낌이다. 물론 내 편견이겠지.




  덧붙임 - 이 영화에서 여자는 철저히 타자화되어 있다. 테티스부터 안드로마케, 헬레나까지, (어느 정도는 걸맞지 않게 이 전쟁의 히로인이 되어 버린) 브리세이스도. 너무 당연하게 불만이어서 언급하는 걸 까먹어버렸다.;;


  덧붙임 II - 프리아모스 왕이 전쟁의 상황을 보기 위해 나와 앉는 모습을 보고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헐리우드 식 캐릭터 절약의 극치다. 프리아모스 옆의 의자에는 두 여인네들, 그러니까 안드로마케와 헬레네가 앉아 있다. 프리아모스의 며느리들이다. 그런데 전쟁 당시 사실 프리아모스는 부인이 멀쩡하게 살아 있었고, 딸들도 적어도 둘이나 있었다. 대단한 주인공주의다. ;-)



  (2004. 05. 27)

  각색에 대해

  전쟁의 경과를 볼 때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역시 아킬레우스의 죽음과 사랑과 관련된 것입니다. 덕분에 브리세이스의 캐릭터가 커졌지요. 폴릭세나 스토리라인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아킬레스의 죽음을 트로이 함락 뒤로 밀어버리면서, 브리세이스를 프리아모스 왕의 조카인 아폴로 신전의 사제로 만들어 폴릭세나가 지녔던 성격을 일정 부분 부여했습니다. 신전 사제로 설정한 것은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대화를 좀 더 나누게 하기 위함이었겠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짧은 시간 내에 기승전결을 갖춘 스토리를 보여줘야 하는 영화의 한계 내에서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각색이 잘 되었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아킬레우스와 브리세이스의 신들에 대한 대화는 뜬금없고 헥토르와의 싸움 그리고 그의 죽음을 둘러싼 두 남녀의 갈등은 터무니없이 간략합니다.


  그러나 영화 전체적으로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신들이 사라져버렸을 뿐만 아니라, 아킬레우스가 노골적으로 신에 대한 믿음을 경멸한다는 것입니다. 아킬레우스만큼 노골적이지 않을 뿐 사실 이건 그리스 군대에 공통된 현상이죠. 그리스 군대들은 전쟁을 치르는 동안 내내 신의 존재를 아예 입에 담지도 않습니다.반면 트로이인들 중에서 신에 대한 믿음에 반하는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헥토르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경건하기 짝이 없지요. 심지어 작전조차도 점복술에 의거하여 결정됩니다. 이건 이 영화가 내세우는 노골적인 탈신화 전략이라는 생각입니다. 브리세이스에게 아킬레우스가 신들은 인간들을 질투한다고 말하는 게 그 중 핵심이지요.


  그런데 감독이 왜 이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싶어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트로이 전쟁을 다룬 영화에 신들이 나오지 않는 게 설사 설명이 필요한 일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의 변명이 필요할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차피 요즘 사람들은 신들을 믿지도 않는 걸요. 인간들만 등장시켜서 이야기를 잘 꾸려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영화 내에서 구구절절이 변명을 늘어놓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휴머니즘 자체를 주제로서 전면에 내세우고자 했다면 이야기는 더 모순적입니다. 이 영화는 캐릭터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하나도 보여주지 못해요. 아가멤논은 야망의 화신일 따름이고, 명예를 내세운 오디세우스의 유혹에 홀려 (아킬레우스를 결정적으로 흔든 한 마디는 헥토르가 전사로서 유명하다는 한 마디였지요) 전쟁에 참여하는 아킬레우스 역시 집착의 화신에 불과합니다. 헥토르와 아킬레우스가 각각 보이는 자신들의 가족에 대한 애정의 묘사를 통해 '인간적'임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그건 그리스 신들도 늘상 보이는 면모죠. 적어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휴머니즘, 같은 인간에 대해 느끼는 연민 따위는 이 영화에서는 전혀 전면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피아 구분은 어디까지나 분명하죠.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라 할 수 있을 사랑이나, 때로는 사람을 어리석게 만드는 열정 같은 것조차도 (그리스 신들은 이 부분도 넘치게 지니고 있죠) 파리스와 헬레나, 브리세이스와 아킬레우스라는 두 연인이 그다지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못한 데다 혈육에 대한 애정조차도 지나치게 과도하게 그려져서 오히려 어정쩡해진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돋보이는 것은 자신의 아내와 아들에 대한 헥토르의 단순하고 진솔한 사랑인데, 그건 원래부터 신화 속에 있었던 요소일뿐더러 이 영화가 특별히 그걸 더 잘 그려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겠습니다.


  아킬레우스를 영웅으로 만드느라 끝까지 살려놓았다는 건 중간에 관객들을 김빼지 않기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고 참기로 하겠는데, (이상하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아가멤논이 죽어버렸다는 건 저를 가장 경악시킨 패착입니다. 아시다시피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에서 죽지 않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굳이 집어넣은 것은 의도적인 각색이겠지요. (위에서는 트로이인들 중 몇몇의 생사여부를 확실하게 묘사하지 않은 것이 각본가의 의도적인 행보인 양 썼지만 사실 별로 그렇게 믿고 있지는 않습니다. 파리스가 죽는 장면 같은 건 원래는 찍었다가 나중에 분량이 너무 길어지면서 삭제했다 해도 그리 놀랍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나 여기서 아가멤논의 죽음은 그야말로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브리세이스가 복수를 했다는 게 중요합니까? 관대하게 봐준다 해도 신의 뜻만을 믿고 있던 사제가 마지막에 드디어 인간의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했다, 정도의 의미나 찾아낼 수 있는데 그것도 억지일 따름입니다. 권선징악을 억지로 관철시키고 싶었나본데 그것도 억지고요. 브리세이스가 아가멤논을 증오의 눈빛으로 노려보는 장면을 보고 '이런, 아가멤논이 여기서 죽는다면 볼만하겠군. 엄청난 오산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소매 속에서 칼이 나오더니 단번에 급소를 찌르더군요. 피가 분수처럼 솟지 않는 게 신기했습니다.-_-;;


  결국 이 영화는 그 많은 돈을 들여 스토리면에서는 참으로 사람을 허무하게 만들어준 셈입니다. 화면과, 배우들의 거창한 연기에는 나름 만족합니다만 그 점은 참 아쉽습니다. 신화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한 이야기 속에 담겨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왔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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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phinoe

비본 삼국지 잡담

afterwards 2007. 4. 14. 20:02

  비본(秘本) 삼국지는 읽을 때마다 늘 팬픽션이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 물론 내가 이걸 처음 읽었을 때는 팬픽션이라는 게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지만.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진순신의 진술 방식이 무척이나 간결하면서도 압축적이기 때문이다. 연의에서 힘을 주어 다루어왔을 극적인 부분들은 간단히 짚어주기만 하거나 아예 무시하고 넘어간다. 장판파에서 조운이 아두를 구출하는 극적인 장면이나, 서주에서 유비 삼형제가 모두 흩어졌을 때 관우가 적인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어 벌어진 강렬한 감정의 드라마(진국이다) 등등이 생략된 대표적인 장면들이고, 최소한의 사실 진술만이 이루어지는 예는 패장이 사로잡혀 자신의 거취를 결정해야 하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연의 삼국지는 곧잘 의(義)를 지키려는 패장의 꼿꼿한 태도와 그런 태도를 아끼면서도 존중하는 승장의 마음을 한꺼번에 묶어서 극적으로 묘사하곤 한다. 그러나 비본 삼국지는 그런 부분에서 머물러 지체하는 법이 거의 없다.


  그건, 어떻게 보면 연의를 읽어 이미 아는 사람들이 충분히 스스로 채울 수 있을 부분이다. 진순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데 있는 것이고, 진순신은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충분하고도 남을 시간을 들이면서, 연의가 이미 그동안 다루어왔던 부분에서는 최소한의 언급만으로 바로 다음 장면으로 건너뛰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연의를 읽어 이미 익숙한 사람들, 특히 삼국지 전체의 전개를 대강이나마 파악하고 있는 독자들이 진순신의 타겟이 아니었나 싶다.


  진순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공개된 역사의 이면이다. 황건적의 난으로부터 시작하여 삼국지 중후반부의 세 세력인 조조, 유비, 손권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의 이름을 얻게 되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는 1, 2권(번역본은 모두 다섯 권으로 출판되었다. 원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이야기의 맥락상 유사할 것으로 본다)의 주인공들은 무장들도 아니고, 그들 곁에서 그들을 보좌하는 모사들도 아니다. 난세 속에서 나름대로의 세력을 확립하고 종교적인 이상을 실천하고자 하는 종교인들이다.


  한 대 육구병이 도가의 가르침을 종교로서 전환할 수 있는 터전을 닦은 이래, 후한 말까지 크게 두 가지의 도교 계열 종파가 있었다. 하나가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 태평도 교단이고, 다른 하나는 오두미도였다. 한편 후한 대에 서역을 통해 수입된 불교 또한 서역인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한인 사회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황건적의 난으로 한 왕실의 몰락이 본격화된 상황 속에서, 오두미도 교단의 핵심 간부가 앞으로 닥쳐올 난세 속에서 백성들에게 구원이 되고 위안이 될 길을 찾기 위해 세상을 주유하면서 정보를 얻고 안목을 기르고 외래 종교인 불교와의 접촉을 통해 그들의 세계관에서 필요한 가르침을 추구하는 것이 2권까지의 주요 행보다.


  그러나(혹은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비본 삼국지는 '계략'에 집중한다. 그건 어쩌면 바둑 같다. 계산된 한 수 뒤에 숨어 있는 상대의 본심을 파악하고,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헤아려 복잡한 심리전을 펼치는 것이다. 이 경쟁에서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동정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도구인 것이다. 그런 점은 3권 이후로 접어들면서 본격화된다. 2권 중후반부에 이루어지는 조조와 오두미도의 교모(敎母) 간의 계약은 3권에서 조조와 유비가 맺는 계약과 중첩되면서, 우리가 아는 역사적 사실들의 뒤편에는 사실 다른 수많은 비밀스런 협정과 합의들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계약의 성격은 작게는 이 소설의 내용과 성격을 규정하는 흥미로운 창작품이다.


  그 모든 것이 반드시 사실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사실이어야 할 필요도 없고. 진순신은 역사적으로 드러난 결과를 가지고 관련 인물들의 동기를 훨씬 복잡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했을 뿐이다. 이 소설의 어느 장에서건 일역을 담당하는 주요 인물들의 동기는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런 '창작'이 가능했던 것에는 이 모든 사건이 몇 세기 전에 일어나서 작가가 이미 그 결말을 알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사실로 보기에는, 결과를 보고 끼워맞춘 느낌이 너무 강하다. 물론, 그건 이미 주어져 있는 텍스트를 가지고 장난을 쳤기 때문일 수도 있고, 연의/정사가 일부러 혹은 정보의 부족으로 눈감았던 사실들을 새로이 발굴하여 기존의 이야기에 맞게 자리를 찾아 주려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나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충분히 재미있으니까.^^ 그러나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을까?'라는 질문은 항상 사람들의 원초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2004. 09. 08)

Posted by Iphinoe

  파괴된 사나이 (알프레드 베스터, 김선형 옮김, 시공사, 2003)



  에스퍼는 제게는 언제나 흥미로운 존재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건 흥미진진하면서도 도덕적으로 모호하여, 결과적으로 강렬한 감정의 텃밭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마음이 읽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때, 에스퍼가 느낄 순간순간의 충동과 유혹과 그만큼 강렬할 도덕적 갈등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 감정들의 기폭제죠. 엑스맨에서 개인적으로 진 그레이의 능력이 제일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나 저의 이런 모든 상상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이 설령 읽히고 있다 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파괴된 사나이'는 그 점에서 제 환상의 전제를 완전히 부수고 시작하는 사회를 만들었더군요. 이 사회에서 에스퍼의 존재는 공식화되어 있습니다. 잠재적 에스퍼들은 길드의 테스트를 거쳐 선택되어, 교육받고, 능력을 길러, 스스로의 능력에 따라 1, 2, 3급으로 나누어져 구분됩니다. 이 길드는 엄격하게 윤리적인 규약을 가지고 회원들을 통제하고, 그들이 기존 사회의 관습과 규칙에서 일탈하는 존재가 되지 않도록 행동의 제약을 가합니다. 에스퍼가 이미 사회 전반에 퍼져 있기 때문에, 설령 에스퍼라 해도 모두의 눈을 피해 불법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이윤을 도모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 거의 반드시 적발되게 마련이라는군요. 범죄의 의도에서부터, 범죄 후 남는 감정까지 언제 어디서 그 어떤 에스퍼에게 들킬 지 모르기 때문에, 이 미래 사회는 강력범죄율이 현저히 낮은 사회로 그려집니다 (강력범죄가 아예 발생하지 않는다면, 수사 훈련을 제대로 받은 경찰 인력이 있을 리 없을 텐데, 수사진이 존재하는 걸로 보아 아주 없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에스퍼들의 범죄는 법적인 처벌을 떠나서 길드에서의 축출이라는 처벌을 통해 이중으로 단속됩니다. 그들이 속하고 자라온 에스퍼 사회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수한 무언가 때문에 ㅡ 또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있으면 필연적으로 추방자를 짓눌러오는 고립감 때문에 ㅡ 회원들은 길드에서의 추방이라는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런 제재 장치를 통해 에스퍼와 보통 사람들은 큰 차별 장치 없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남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살인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배경이 이러한 미래 사회에서의 살인 사건이라면, 이 '어떻게'는 '어떻게 이 살인자는 살인을 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의도를 감출 수 있었으며 살인 후에는 자신의 범죄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은폐할 수 있었을까'로 해석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의 플롯은 두 가지 의미에서 다른 길을 걷더군요. 도서 미스테리인 이 소설이 범죄를 저지르기로 마음먹은 자가 어떻게 알리바이를 준비하고 자기 주변에 보호막을 구축해 가는가를 단계별로 따라가며 묘사하는 데다, 수사 과정 또한 좀더 고전적인 '어떻게'에 속하는 주제, 즉 '흉기는 무엇이었는가'와 '왜', 즉 '동기를 성립시킬 수 있는가'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작가 베스터는 에스퍼들이 사회의 주요 구성원인 사회에서의 범죄 수사와 재판이 사람들 뇌 속의 정보나 열심히 헤집어보는 내용으로 끝나게 하지 않기 위해 두 가지 장애물을 두었습니다. (물론 제 생각에 그렇다는 것이지요마는.^^) 하나는 에스퍼가 타인의 머릿속에서 읽어낸 내용은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경/검찰에서 모든 증거에 대한 분석을 검토해 기소 가능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라는 점입니다. 이 기계는 정황 증거나 심적 증거, 소위 말하는 '육감'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범죄의 구성 요소인 동기, 기회, 수단 이 세 가지 모두가 물적 증거로 뒷받침이 되어야만 사건이 기소 가능하다고 인정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수사를 지휘하는 파웰 경감(이던가요...책이 지금 옆에 없습니다;;)은 에스퍼의 능력으로 용의자의 머릿속을 헤집어보고 그가 범인임을 확신하고 있지만 그걸 뒷받침하는 증거를 모으는 과정에서 난관을 겪게 되고, 그게 수사 과정에서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점들을 읽고 있는 순간에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4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삼키듯이 단번에 질주한 경험은 오랜만이었어요. 결말이 오기 전까지는 상쾌하고 기분좋은 전율만이 함께했습니다. 추적자와 사냥감은 서로의 존재와 능력을 넉넉히 알고 있고, 대결은 핑퐁처럼 경쾌하게 진행됩니다. 결말이 기대했던 것보다는 진부하여 심심했습니다만 그 정도만으로도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가지 남는 궁금증은, 만약 이 소설이 범죄 의도, 범죄 장면, 살인자를 모두 명백히 보여주고 추리의 전개를 보여주는 도서 미스테리가 아니었다면 소설 마지막에 탐정이 제시하는 '해설' 스토리를 과연 제가 전적으로 믿을 수 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설명되지 않은 많은 결정적 부분들에 대한 해답(이를테면 동기)이 모두 에스퍼의 심리 분석을 통해 나오거든요. 물적 증거로서 정황적 뒷받침을 해주기는 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연결고리는 에스퍼들이 끼워맞춥니다. 그건 결국 심적 증거로서, 마치 포와로가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 중 이 사람만이 살인자의 심성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살인자의 머릿속에서 이러저러한 사실을 '읽어냈다'는데, 독자로서는 반박할 수도 없을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베스터는 범죄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하면서, 책을 주의깊게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품게 될 두 가지 의문을 놓아두었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저도 그 두 가지 단서를 모두 착실히 포착하고 그 이후의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었는데요, 그 두 가지는 모두 책 마지막 부분에서 중요한 단서로 부각됩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제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고 따라서 작가의 의도를 따라갈 수 있었다는 사실에 즐거워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왠지 속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 이 두 가지가 모두 위에 말씀드린 '심적 증거'와 연결되어 있다 보니, 베스터가 저 단서들을 일부러 잘 보라고 던져놓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수사가 이미 독자들이 의심을 품고 있던 방향으로 진행되어 결과로 나오면, 독자는 '당연했어!'라 생각하게 되는 게 아무래도 순리일 테니까요. 하여 조금은 뒷맛이 씁니다. 궁금하기도 하고요.



  (2004. 10. 11)



  * 휴고 상 첫 번째 수상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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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죄책감에 대한 영화다. 영화에 시작은 있지만 종결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죄책감은 시간이 흐르면서 의식 표면 아래로 가라앉지만 그렇다고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보상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짐작컨대 원작도 그랬을 것이고,(원작은 그렇지가 않더군. 이 리뷰는 소설을 읽기 전에 썼다. 소설 리뷰는 여기 있다)) 영화는 그 점을 정확히 짚고 있다.


  지미, 숀, 데이브는 한 마을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 친하게 지냈지만, 어느 날인가 세 사람이 놀던 중 데이브가 납치되어 성적으로 학대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그들은 천행으로 데이브가 돌아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예전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 세 사람은 자연스레 소원해졌고, 20년이 지난 지금은 여전히 아는 사이이긴 하지만 더 이상은 서로를 '친구'라 부르지 않는다. 지미는 한때 범죄에 몸을 담았었지만 지금은 손을 털고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고, 숀은 대학을 나와 경찰이 되어 마을을 떠났으며(내가 받은 인상은 그랬다), 데이브는 그 불행한 사건 이후로 완전히 안으로 움츠러들어 조용하고 소극적인 삶을 살고 있다.


  지미의 큰딸이 살해당하면서, 세 사람의 삶은 다시 한데 얽혀든다. 숀은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되고, 데이브는 살인 사건이 일어난 밤 모종의 사고를 당해 부상을 입었다. 그 부상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기를 거부하면서 데이브는 서서히 용의 선상으로 떠오르고, 숀은 데이브를 보호하길 원하지만 공적으로는 경찰로서의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지미는 사적인 복수를 위해 독립적인 수사망을 짜 살인자를 찾는다.


  이들은 모두 그들이 11살 때 데이브에게 일어났던 사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유년 시절의 폭력은 한 사람에 대해서 행해졌지만, 그 폭력은 세 사람 안에 모두 살고 있었다. 피해자였던 데이브를 한 마을에서 끊임없이 마주쳐야 하는 지미는 물론이거니와, 셋 중에서 그나마 성공한 사람이 되어 그 마을을 떠나 이제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는 숀조차도 그 폭력의 기억을 끊임없이 회상한다는 걸 영화가 직접 보여준다. 케이티의 살해자를 찾기 위한 면담이 진행중인데 뜬금없이 데이브 이야기를 꺼내는 지미의 모습이나, 아직 우린 지하실에 갇혀서 달아나기를 원하는 11살 소년이라고 뇌까리는 숀의 모습. 셋은 그 사건 이후 흩어져 그 뒤로는 서로의 삶을 거의 나누지 않고 살아왔지만, 정작 그들은 항상 서로 속에 있었던 것이다.


  데이브의 죽음은 두 친구에게 새출발을 시작하도록 해주는 '희생'이 아니다(씨네 21에 그렇게 쓴 기자가 누구냐). 그건 그들이 평생 갖고 살아왔던 죄책감, '그 차에 탄 게 데이브가 아니라 나였다면/우리가 그 때 그렇게 멍청하게 서 있지 않고 무언가 했더라면'이라는 죄의식 위에 더 큰 하나를 얹은 거다. 지미의 부인 애나베스는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로 그걸 정당화하지만, 그 전에 이미 죄책감을 평생 지고 살아왔던 지미는 그들의 침묵이 그렇게 덮어두고 지나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데이브를 죽인 것보다 더 큰 죄는 데이브의 '실종'에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아주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숀도 공범이다). 둘은 앞으로 계속 살아나갈 것이고, 어쩌면 겉으로 보기에 꽤 정상적이고 모범적인 가정을 유지하겠지만, 이미 그 삶은 텅 비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더 난감하게도, 20여년 전에 있었던 데이브의 납치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두 사람 모두에게 책임졌어야 할 진짜 '죄'가 있다.


  20여년 전에 있었던 일이 데이브만이 아니라 세 사람의 삶을 모두 갉아먹었듯, 남은 두 사람의 삶은 이제 중첩된 두 사건에 평생 저당잡혀 있게 될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그런 공허함이 느릿느릿 허공을 떠돈다. 암담하고 막막하다.




  * 잡담


  1. 숀이 마을을 떠났다는 인상을 받은 것은, 영화에서 그가 묘사되고 행동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데이브와 악수하면서 '7,8년 만인가?'라 건네는 첫 인사 때문이기도 하고, 대학까지 나왔다는 묘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족' 때문이다. 지미와 데이브는 모두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들도 잘 자라고 있는 듯 보이고. 그러나 숀은 아이를 갓 낳은 상태에서 아내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지가 6개월이 되어간다. 카톨릭 교회가 마을 생활의 자연스런 일부인 것처럼 묘사되는 것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공동체(보스턴의 아일랜드 계 마을이라는데, 지미가 카톨릭인 것으로 보아 그런 것 같다)는 '정상적인' 인간 관계를 맺으려면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야 하는 사회인 것 같았다. 마지막에 조금은 뜬금없이 애나베스가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왕으로서의 아버지' 이야기로 지미를 위로하는 것도 그 맥락 안에 놓여 있을 것이다.
(대개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긴 연설은 감독이 하고자 하는 말일 때가 많아서;;, 그 대목에서 잠시 멈춰서 설마 이 영화의 주제가 저거였단 말인가, 하고 황망해했었다.)


  1. 세 사람을 관통하는 죄의식의 코드는 저뿐이라 따로 떼서 이야기하게 되는데, 지미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해친 자를 직접 응징하는 것도 결국은 죄의식에서 출발한다. 지미가 데이브를 죽이기 직전에 한 얘기에서 나타나듯, '그냥 레이'를 죽여서 수장해버린 근본 요인은 레이가 지미를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 옆에 있을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고(아내에 대한 책임감), 케이티를 유난히 아끼고 살인자를 직접 찾아나서 경찰이 찾기 전에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것도, 어렸을 때 그 아이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1. 위에서 말할 기회는 없었지만, 실은 우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미가 죽여서 영원히 묻어버렸던 레이의 아들이 결국 지미의 딸을 살해하게 됐다는 내용 역시 시사적이었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친척이고 아는 사이인 그런 좁은 마을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런데 보스턴 안에 그런 소위 '토박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 대도시에는 보통 그런 곳이 없다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나?? 그저 내 편견인가?


  1. 케빈 베이컨은 팀 로빈스와 동갑이고, 둘은 숀 펜보다 두 살이 많다. 팀 로빈스의 역이 역이긴 하지만, 믿어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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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01. 03)



  추가돼야 할 이야기 (2007.04.12)

  영화를 먼저 본 뒤 책을 끝까지 읽고 느낀 당황스러움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무게나 울림이 모두 묵직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무언가 조금씩 어긋난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은 모두 책의 감정선을 따른 연출이었다. 그게 내가 영화를 잘못 보았다는 뜻이 되는지 알고 싶었다. 내가 순서를 잘못 밟아갔나 싶어 주위에 이걸 읽거나 본 분들을 상태로 탐색전을 벌였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셨나,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았다면 달랐을까 생각했다.


  지금은 그냥, 영화는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방식대로 받아들이고 책은 버리는 길을 택했다. 루헤인의 데뷔작인 '살인자들의 섬'을 읽고 나니 포기가 빨랐다.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그 이야기 역시 비슷한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반전을 높이 평가하시는 분들도 많이 뵈었지만 나는 견해가 다르고, 물론 나와 같은 견해를 가진 분들도 계시다.


  감독이나 이 소설의 각색을 담당한 Brian Helgeland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디까지 연출했는지는 모르지만(DVD에 언급이 나오는지 궁금한데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시길) 소설대로라면 좋아할 수 없는 이야기라 그냥 내 식대로 기억하는 데 별 저항감이 없다. 제멋대로긴 하지만 어쩌겠어.



  그리고 왜 처음에 쓰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 각색/각본을 맡은 Brian Helgeland는 이것 말고도 각색 잘 된 영화로 유명한 'LA 컨피덴셜 L. A. Confidential'에서 바로 그 작업을 맡아 했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두 영화로 다 오스카를 받았다. 오스카를 떠나서, 정말 대단한 재능이라 생각한다. 각색도 독립적인 예술이라는 사실을 이 사람의 작업을 보고 처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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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올린 바 있는, 피터 디킨슨Peter Dickinson의 소설 '에바 Eva'가 2008년 피닉스 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는군요. 소식은 디킨슨의 홈페이지에서 접했습니다. 피닉스 상은 1985년 제정된 상으로, 아동문학협회(인 듯한)에서 시상하며, 영어로 쓰인 작품으로 20년 전 출간되었으나 해당 해에 주요 상을 받지 못했던 작품들 중에서 선정한다고 합니다. 아동문학을 좀 더 홍보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군요. 선정은 협회원들과 다른 이들(누군지는..?)이 임명한 위원회에서 하게 되어 있고요. SF 쪽은 따로 주는 것 같긴 한데 확신은 못하겠습니다. 1989년부터는 Honor Book이라고 해서 한두 권씩 더 발표를 하기는 하는군요. 이건 수상작은 아닌 것 같습니다.


Phoenix Award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디킨슨의 다른 작품으로는 'The Seventh Raven'이 2001년 이 상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이걸 보고 드는 생각은, '그래, 역시 애들 용 책이었어...T_T'로군요. 아니 다른 뜻은 아니고, 번역본이 없어 원서로 읽었는데 어쩐지 술술 읽히더라 이 말씀입니다.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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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t the Fockers (2004)


1편의 유머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속편도 좋아할 것이다. 그 면에서는 전편을 능가하지는 못해도 특별히 떨어지지도 않았다.

몰랐던 까메오가 하나 있었는데, 마지막에 그 덕분에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너무 심하게 웃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쳤는지도..;; 하지만 그가 입만 열어도 웃긴데 어쩌란 말인가-0- 그 헐렁한 말투로 주례라니..

사실 갈 만한 여유가 없었지만, 당분간 못 볼 사람;-)이 보고 싶다고 하여 같이 갔는데 덕분에 마음풀고 잠시나마 즐거웠다. The Interpreter도 보고 싶기는 한데 여유가 없을 듯하고, 5월 중 개봉이라는 Kinsey도 작년부터 기다리고 있었기는 한데 틈이 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나저나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는 이번 달에 DVD 출시된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여전히 개봉 계획은 안 잡힌 걸까.

만성적으로 긴장이 계속되면 나중에는 멍해진다는데, 가끔은 지금 내가 그런 상태인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괜찮겠지.



(2005. 04. 27)

Posted by Iphinoe

  언제나 즐겁게^^; 보는 영화다. 미국 대통령을 주인공 삼은 영화가 한때 몇 년 사이 꽤 나왔었는데, 이 영화는 명백한 악역 하나만을 빼놓고는 딱히 나쁜 사람도 없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딱히 피해본 사람도 없고, 긴박한 상황을 만드느라(그리고 영웅을 만드느라) 국제관계를 왜곡하거나 타자를 바보로 만드는 일도 거의 없는 시나리오였다. 주요 쟁점이 미 국내 문제였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이 봤을 때는 정치적인 성향이 꽤 강한 영화로 생각했을지 모르나,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였다. (물론 공화당 입장을 충실히 반영한 영화였다면 상관이 있었을 것이다;-)


  내용 소개라면... 당선된 지 3년차, 이제 슬슬 재선을 준비해야 하는 백악관은 60퍼센트가 넘는 대통령 지지율을 바탕으로 범죄율 감소를 위한 법안을 추진해 재선 가도를 일찌감치 탄탄하게 닦아놓으려 한다. 그 와중에 환경 단체에선 그들이 추진 중인 화석 연료 감소 법안을 위해 전문 로비스트를 고용하고, 아내를 잃고 딸을 혼자 길러오던(?) 대통령은 이 로비스트를 보고 한눈에 반해 용기있게 데이트를 추진한다. 그러나 둘의 연애 행각(^^)이 매스컴의 초점이 되면서 보수적인 여론 때문에 지지율이 위협받자, 안전해 보였던 법안의 통과 가능성도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시나리오가 매우 치밀하게 쓰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참모진만 봐도, 맡은 직책이나 책임의 범위가 명백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캐릭터상으로는 하나하나가 별도의 개성을 부여받고 나름의 뒷배경까지 구축되어 있다. 매우 귀여운 대통령(마이클 더글러스가 귀여워 보인 건 이 영화에서뿐이다)과 더 귀여운 대통령 따님,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답게 나사 하나 풀어놓은 듯 허둥대면서도 똑똑하고 예리한 로비스트, 진중하고 신뢰감을 주는 비서실장, 젊고 신념이 강한 참모 1(Michael J. Fox), 아는 거 많고 시니컬한 참모 2(안경 쓴 David Paymer), 역시 냉소적이지만 자기 업무에 충실한 대변인.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긴 해도 환경단체 쪽 사람들도 설득력 있게 그려져 있다. 이 때 했던 작업이 그대로 웨스트윙으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은데, 덕분에 지금 다시 보니 의도하지 않은 유머를 낳았다(이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언급).


  영화는 의도적으로 정당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기자들도 항상 '의회 다수당' '소수당'의 호칭을 사용하고, 대통령의 정적이 되는 상원 의원은 그냥 '보수당' 소속으로 불린다. 하지만 정책 성향으로 보아 현 행정부와 백악관은 영락없이 민주당이고, 반대편은 당연히 공화당이다. 로맨스 영화스러운 번역 제목을 달고 나왔고, 실제로도 로맨스가 핵심이긴 해도, 그 로맨스를 둘러싼 모든 요소는 워싱턴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 곳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심지어 연인들 간의 갈등도 거기서 발생한다. 이상주의자인 백악관 참모진의 모습이나 권력지향적인 반대쪽의 모습이나 얼마나 현실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타협을 통해 무언가 결과를 도출하려 하는 건 좋았다. 제목이 The American President인 건 제작진의 자신감의 표출이었나 싶은 생각도 해봤다. 매끈하게 잘 만든 영화다.


(여기서부터는 웨스트윙 보신 분만 아실 얘기)


  시나리오 작가 Aaron Sorkin이 웨스트 윙의 제작자인 그 Aaron Sorkin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니 웨스트 윙의 프리퀼을 보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유사점이 많아, 로맨스를 다루지 않는 나머지 부분에서 계속 키득키득 웃으면서 봤다. 학자 출신의 대통령은 영화에선 역사학자였고 드라마에선 경제학과 교수였지만, 두 사람의 유머 코드는 매우 비슷하다. 얘기하고 싶지 않은 주제는 살살 돌려 비껴가면서 화제를 자기가 원하는 식으로 이끌어가는 방식도 비슷하다. 하필 웨스트윙의 대통령 역을 맡은 Martin Sheen이 이 영화에선 백악관의 2인자 비서실장으로 나와서, 초반부에 Sheen이 대사칠 때마다 대통령의 발언인 것 같아 심히 헷갈렸다. Sheen의 연기 스타일이 나중에 대통령을 연기할 때도 그대로기 때문에...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며 그가 사적으로도 매우 의지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비슷하다. 강한 신념으로 타협을 싫어하고 일을 밀어붙이는 스타일인 루이스(Michael J. Fox가 연기한)은 Josh하고 비슷해 보였고(Josh는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지 않지만, 그걸 빼면 하는 일의 범위도 똑같다), 불쑥 나타나 질문에 대답하고 사라지는 백과사전형 캐릭터 레온은 그 박식함 못지않게 냉소적인 태도까지도 Toby하고 완전 닮았다. Toby는 레온처럼 사위를 못 살피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찌나 웃기던지^-^


  클린턴이 모델이라는 Primary Colors도 재미있게 봤었지만, 일상성에 더 강한 이 영화가 평소에 부담없이 보기에는 더 잘 맞지 싶다. 그리고 Michael J. Fox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사실 이 영화는 처음 그 때문에 봤었다.



  (2005. 08. 19)
Posted by Iphinoe

V for Vendetta (2005)

afterwards 2007. 4. 10. 05:25

-. 맨 처음에 V가 늘어놓는 V로 시작되는 단어들. 뜻은 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극장에서 웃다가 허리 끊어지는 줄 알았다. 처음부터 V가 수다쟁이인 게 귀엽(? 넌 왜 아무데나 나오냐)고 재밌었다.



-. 휴고 위빙 씨의 최면적인 목소리, 쵝오-_-d



-. 나로서는 이 영화를 도무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이야기가 너무 전형적인 데다 이상한 쪽으로 비틀려 있어서.. 영화가 강렬한 건 스토리의 힘이라기보다는 연출과 배우들의 힘인 것 같다. 스토리와 (나아가서는) 주제마저 스타일에 봉사했달까. 느낌이 그렇다.

(그렇게 보지 않으려면 이 영화를 철저하게 Evey 개인에 대한 영화로 보는 방법도 있지만, 마지막 장면에 영화에 등장했던 이런저런 사람들이 다 나와주는 걸 보면 그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지.)



-. 각본이 "stylish"를 중심으로 짜여졌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건 모순이지만, (스포일러)영국에 출범한 전체주의 정권이 그 출생부터 원죄가 있었다는 식의 설정은 별로였다. 인체에 바이러스를 실험하고 10만에 이르는 자국민을 살해했다는 이유가 단지 개인의 권력욕이라면((스포일러 끝) 의장은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그냥 괴물일 뿐이니까.



-. 게다가 나는 그런 자가 정권을 잡았던 나라 사람이다. 주제의식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에서 그런 설정을 한 게 편히 보일 리가 없다. 차라리 '나 아니면 안 돼'하는 식의, 박정희 식으로 미친 인간이라고 묘사되었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그 점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며칠이 지나서까지 앙금처럼 찜찜하게 남는 건 아무래도 역시 내가 바로 그 농담같은 독재국가 이야기가 현실이었던 나라 사람이어서일 것이다.



-. 불평 시작했으니 하나만 더. 고문의 테마와 그게 다루어진 방식도 별로였다.



-. 나탈리 포트만은 아주 예쁘고, 휴고 위빙의 목소리는 녹아내리는 듯해서 즐겁(?)게 보긴 했다. 영화에 수놓아진 순간 순간의 감정과 생각들은 모두 진실해 보였다. 다만 그 전체를 버무려 놓으니 거대한 농담으로 다가왔을 뿐.



-. Guy Fawkes의 가면은 처음 포스터에서 봤을 때는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영화 내내 보니 그런 느낌은 사라졌다.^^ V가 말이 많았던 덕이다.



-. 정리해서 글로 쓰고 싶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글이 안 나와서 그냥 포기.



(2006. 04. 08)
Posted by Iphinoe

X-men 3 (2006)

afterwards 2007. 4. 10. 05:14

  논박할 수준이 안되는 상대는 비웃어주는 거라고 진모씨가 그랬던가-_- 난 그럴 능력이 안 되니 혼자 열받다 뚜껑 열어주고 잊어버리는 수밖에.   하지만 너무 억울하다. (스포일러)깔끔하게 스핀오프를 만들 만한 캐릭터만 남긴 제작진의 능력에 찬사라도 보내줘야 할까.(스포일러 끝)



 (2006. 06. 28)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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