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the Fockers (2004)


1편의 유머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속편도 좋아할 것이다. 그 면에서는 전편을 능가하지는 못해도 특별히 떨어지지도 않았다.

몰랐던 까메오가 하나 있었는데, 마지막에 그 덕분에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너무 심하게 웃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쳤는지도..;; 하지만 그가 입만 열어도 웃긴데 어쩌란 말인가-0- 그 헐렁한 말투로 주례라니..

사실 갈 만한 여유가 없었지만, 당분간 못 볼 사람;-)이 보고 싶다고 하여 같이 갔는데 덕분에 마음풀고 잠시나마 즐거웠다. The Interpreter도 보고 싶기는 한데 여유가 없을 듯하고, 5월 중 개봉이라는 Kinsey도 작년부터 기다리고 있었기는 한데 틈이 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나저나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는 이번 달에 DVD 출시된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여전히 개봉 계획은 안 잡힌 걸까.

만성적으로 긴장이 계속되면 나중에는 멍해진다는데, 가끔은 지금 내가 그런 상태인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괜찮겠지.



(2005. 04. 27)

Posted by Iphinoe

  언제나 즐겁게^^; 보는 영화다. 미국 대통령을 주인공 삼은 영화가 한때 몇 년 사이 꽤 나왔었는데, 이 영화는 명백한 악역 하나만을 빼놓고는 딱히 나쁜 사람도 없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딱히 피해본 사람도 없고, 긴박한 상황을 만드느라(그리고 영웅을 만드느라) 국제관계를 왜곡하거나 타자를 바보로 만드는 일도 거의 없는 시나리오였다. 주요 쟁점이 미 국내 문제였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이 봤을 때는 정치적인 성향이 꽤 강한 영화로 생각했을지 모르나,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였다. (물론 공화당 입장을 충실히 반영한 영화였다면 상관이 있었을 것이다;-)


  내용 소개라면... 당선된 지 3년차, 이제 슬슬 재선을 준비해야 하는 백악관은 60퍼센트가 넘는 대통령 지지율을 바탕으로 범죄율 감소를 위한 법안을 추진해 재선 가도를 일찌감치 탄탄하게 닦아놓으려 한다. 그 와중에 환경 단체에선 그들이 추진 중인 화석 연료 감소 법안을 위해 전문 로비스트를 고용하고, 아내를 잃고 딸을 혼자 길러오던(?) 대통령은 이 로비스트를 보고 한눈에 반해 용기있게 데이트를 추진한다. 그러나 둘의 연애 행각(^^)이 매스컴의 초점이 되면서 보수적인 여론 때문에 지지율이 위협받자, 안전해 보였던 법안의 통과 가능성도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시나리오가 매우 치밀하게 쓰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참모진만 봐도, 맡은 직책이나 책임의 범위가 명백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캐릭터상으로는 하나하나가 별도의 개성을 부여받고 나름의 뒷배경까지 구축되어 있다. 매우 귀여운 대통령(마이클 더글러스가 귀여워 보인 건 이 영화에서뿐이다)과 더 귀여운 대통령 따님,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답게 나사 하나 풀어놓은 듯 허둥대면서도 똑똑하고 예리한 로비스트, 진중하고 신뢰감을 주는 비서실장, 젊고 신념이 강한 참모 1(Michael J. Fox), 아는 거 많고 시니컬한 참모 2(안경 쓴 David Paymer), 역시 냉소적이지만 자기 업무에 충실한 대변인.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긴 해도 환경단체 쪽 사람들도 설득력 있게 그려져 있다. 이 때 했던 작업이 그대로 웨스트윙으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은데, 덕분에 지금 다시 보니 의도하지 않은 유머를 낳았다(이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언급).


  영화는 의도적으로 정당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기자들도 항상 '의회 다수당' '소수당'의 호칭을 사용하고, 대통령의 정적이 되는 상원 의원은 그냥 '보수당' 소속으로 불린다. 하지만 정책 성향으로 보아 현 행정부와 백악관은 영락없이 민주당이고, 반대편은 당연히 공화당이다. 로맨스 영화스러운 번역 제목을 달고 나왔고, 실제로도 로맨스가 핵심이긴 해도, 그 로맨스를 둘러싼 모든 요소는 워싱턴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 곳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심지어 연인들 간의 갈등도 거기서 발생한다. 이상주의자인 백악관 참모진의 모습이나 권력지향적인 반대쪽의 모습이나 얼마나 현실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타협을 통해 무언가 결과를 도출하려 하는 건 좋았다. 제목이 The American President인 건 제작진의 자신감의 표출이었나 싶은 생각도 해봤다. 매끈하게 잘 만든 영화다.


(여기서부터는 웨스트윙 보신 분만 아실 얘기)


  시나리오 작가 Aaron Sorkin이 웨스트 윙의 제작자인 그 Aaron Sorkin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니 웨스트 윙의 프리퀼을 보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유사점이 많아, 로맨스를 다루지 않는 나머지 부분에서 계속 키득키득 웃으면서 봤다. 학자 출신의 대통령은 영화에선 역사학자였고 드라마에선 경제학과 교수였지만, 두 사람의 유머 코드는 매우 비슷하다. 얘기하고 싶지 않은 주제는 살살 돌려 비껴가면서 화제를 자기가 원하는 식으로 이끌어가는 방식도 비슷하다. 하필 웨스트윙의 대통령 역을 맡은 Martin Sheen이 이 영화에선 백악관의 2인자 비서실장으로 나와서, 초반부에 Sheen이 대사칠 때마다 대통령의 발언인 것 같아 심히 헷갈렸다. Sheen의 연기 스타일이 나중에 대통령을 연기할 때도 그대로기 때문에...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며 그가 사적으로도 매우 의지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비슷하다. 강한 신념으로 타협을 싫어하고 일을 밀어붙이는 스타일인 루이스(Michael J. Fox가 연기한)은 Josh하고 비슷해 보였고(Josh는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지 않지만, 그걸 빼면 하는 일의 범위도 똑같다), 불쑥 나타나 질문에 대답하고 사라지는 백과사전형 캐릭터 레온은 그 박식함 못지않게 냉소적인 태도까지도 Toby하고 완전 닮았다. Toby는 레온처럼 사위를 못 살피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찌나 웃기던지^-^


  클린턴이 모델이라는 Primary Colors도 재미있게 봤었지만, 일상성에 더 강한 이 영화가 평소에 부담없이 보기에는 더 잘 맞지 싶다. 그리고 Michael J. Fox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사실 이 영화는 처음 그 때문에 봤었다.



  (2005. 08. 19)
Posted by Iphinoe

...하는데. 천상 집돌이라 방 밖으로 나서기가 정말 힘들다. 야외 활동하고는 정말 거리가 먼 사람이기도 하고.
모처럼 햇살이 좋은 날씨라 지금 못 누리면 다신 못 볼 것 같긴 한데, 사실 초점은 그게 아니라 할 일 하러 가라는 의미다.
스트레스 매니지먼트 훈련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거 해주는 데 어디 없나...



상황이 아무래도 언어를 하나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영어 하나 (그것도 이 수준으로) 배우는 데 20년을 소비하고 나니 다른 거 시작할 엄두가 안 난다. 대학 입학 전후로 중국어를 배우긴 했었지만, 익히는 속도보다 잊어버리는 속도가 더 빨랐던고로 나중엔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었다.

그래도 알량하게 그거 조금 배웠다고, 며칠 전 홍콩 수녀를 만났는데 '나 중국인이에요'는 들리더라. (근데 왜 그분은 그 말을 중국어로 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천천히 말해준 것 같긴 하지만. 아, 만다린이었다.



바깥 날씨는 저렇게 아름다운데 내 심사는 지겹게 황량하다. 그래서 잔인한 4월인가 보다...
Posted by Iphinoe

V for Vendetta (2005)

afterwards 2007. 4. 10. 05:25

-. 맨 처음에 V가 늘어놓는 V로 시작되는 단어들. 뜻은 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극장에서 웃다가 허리 끊어지는 줄 알았다. 처음부터 V가 수다쟁이인 게 귀엽(? 넌 왜 아무데나 나오냐)고 재밌었다.



-. 휴고 위빙 씨의 최면적인 목소리, 쵝오-_-d



-. 나로서는 이 영화를 도무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이야기가 너무 전형적인 데다 이상한 쪽으로 비틀려 있어서.. 영화가 강렬한 건 스토리의 힘이라기보다는 연출과 배우들의 힘인 것 같다. 스토리와 (나아가서는) 주제마저 스타일에 봉사했달까. 느낌이 그렇다.

(그렇게 보지 않으려면 이 영화를 철저하게 Evey 개인에 대한 영화로 보는 방법도 있지만, 마지막 장면에 영화에 등장했던 이런저런 사람들이 다 나와주는 걸 보면 그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지.)



-. 각본이 "stylish"를 중심으로 짜여졌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건 모순이지만, (스포일러)영국에 출범한 전체주의 정권이 그 출생부터 원죄가 있었다는 식의 설정은 별로였다. 인체에 바이러스를 실험하고 10만에 이르는 자국민을 살해했다는 이유가 단지 개인의 권력욕이라면((스포일러 끝) 의장은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그냥 괴물일 뿐이니까.



-. 게다가 나는 그런 자가 정권을 잡았던 나라 사람이다. 주제의식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에서 그런 설정을 한 게 편히 보일 리가 없다. 차라리 '나 아니면 안 돼'하는 식의, 박정희 식으로 미친 인간이라고 묘사되었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그 점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며칠이 지나서까지 앙금처럼 찜찜하게 남는 건 아무래도 역시 내가 바로 그 농담같은 독재국가 이야기가 현실이었던 나라 사람이어서일 것이다.



-. 불평 시작했으니 하나만 더. 고문의 테마와 그게 다루어진 방식도 별로였다.



-. 나탈리 포트만은 아주 예쁘고, 휴고 위빙의 목소리는 녹아내리는 듯해서 즐겁(?)게 보긴 했다. 영화에 수놓아진 순간 순간의 감정과 생각들은 모두 진실해 보였다. 다만 그 전체를 버무려 놓으니 거대한 농담으로 다가왔을 뿐.



-. Guy Fawkes의 가면은 처음 포스터에서 봤을 때는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영화 내내 보니 그런 느낌은 사라졌다.^^ V가 말이 많았던 덕이다.



-. 정리해서 글로 쓰고 싶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글이 안 나와서 그냥 포기.



(2006. 04. 08)
Posted by Iphinoe

X-men 3 (2006)

afterwards 2007. 4. 10. 05:14

  논박할 수준이 안되는 상대는 비웃어주는 거라고 진모씨가 그랬던가-_- 난 그럴 능력이 안 되니 혼자 열받다 뚜껑 열어주고 잊어버리는 수밖에.   하지만 너무 억울하다. (스포일러)깔끔하게 스핀오프를 만들 만한 캐릭터만 남긴 제작진의 능력에 찬사라도 보내줘야 할까.(스포일러 끝)



 (2006. 06. 28)
Posted by Iphinoe

  오늘 Trevor와 크라이첵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누었다.


  그는 크라이첵을 '자기 이익을 쫓아 움직이는 남자'로 보고 있었지만, greedy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썼다가 바로 취소했다.)


  그리고 나서 그가 생각해낸 단어가 저거였다.


  "I think he's angry, yes."


  'angry at what?'이라고 물어보진 않았지만^-^ (난 꽤 착하다 ;-)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린 함께 웃었다. 그 단어가 너무도 적절해서다.



  (2003. 0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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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이첵은 언제쯤 권력협회의 눈에 들어 발탁(?)되었을까? FBI에 들어오기 전일까 후일까? 연수원 시절일까 아예 그 이전일까?


  마지막 가정을 따라가 본다면, 크라이첵의 FBI 입사(?) 자체가 권력협회의 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멀더 하나 감시하자고 그런 수고를 할 사람들이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겠지) 보면, 당시 권력협회는 크라이첵을 자신들의 수하이자 앞잡이보다는 더 많은 쓸모를 지닌 인물로 보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훗날 제프리 스펜더에게 맡기려고 했던 역할 (뒤에서 선을 대줘서 고위직까지 승진시키는 것. 어쩌면 블레빈스도 그런 경우였을지 모른다) 이 원래 크라이첵을 위해 예정되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연수원 시절에 발탁된 것과 FBI에 들어온 뒤에 발탁된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크라이첵이 FBI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게 자기 의사였느냐 권력협회의 뜻이었느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 (스토리상으로는 아니지만.)


  멀더나 스컬리에 비해 한참 green FBI로 보이는 것도 그렇고, 여러 모로 sleepless의 그는 멀더보다 한참 연배가 떨어지는 후배로 그려진다. 그러니까 FBI 이전에 달리 쌓을 만한 경력이 없었을 거라는 얘기고, 이건 내가 생각한 가정과도 맞아떨어진다. 도겟처럼 경찰이나 해병대 경력이 있었다면 아무리 파기하려고 애쓴다 해도 어딘가는 자료가 있어야 마땅하니까. (CGB 스펜더의 기록도 찾아내는 마당에 론건맨이 크라이첵의 기록이 있기만 하다면 못 찾아냈을 리 없다.)


  Yes, he must have become angry at some point....



  (2003. 03. 16)


Posted by Iphinoe

JOSH EXLEY:  I tell you, when I saw that baseball game being played this laughter just... it just rose up out of me. You know, the sound the ball makes when it hits the bat?
  어느날 우연히 야구 경기를 보게 되었어요.
  사람들 웃음소리가 내 가슴을 강하게 때렸죠. 그리고 공이 방망이에 부딪히는 소리... 마치 음악 소리같았죠. 그리고 잔디 냄새, 가죽 글러브 냄새... 내 인생 처음으로 멍청한 짓을 했고 그 순간 사랑에 빠졌어요. 멍청한 짓이 그렇게 신난다는 건 처음 알았죠.


YOUNG ARTHUR DALES:  (smiling) Yeah.


JOSH EXLEY:  It was like music to me. You know, the smell of the grass, 11 men-- first unnecessary thing I ever done in my life and I fell in love. I didn't know the unnecessary could feel so good. You know, the game was meaningless but it seemed to mean everything to me. It was useless, but perfect.
  사실 야구라는 게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사는거지만 내겐 인생 그 자체죠. 멍청하고 쓸데없는 짓이죠. 하지만 아름다와요.


YOUNG ARTHUR DALES:  Yeah, like, uh... like a rose.
  마치... 장미처럼...


JOSH EXLEY:  Yeah, yeah, yeah, like a rose. See? You get it, Arthur. You're a fan.
  내 말을 알아듣는군요. 야구 팬 맞죠?


YOUNG ARTHUR DALES:  Uh-huh.


JOSH EXLEY:  Tell you, from that moment on I just couldn't fix myself to go home.
  야구를 접한 바로 그 순간부터 도저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어요.



뱀발

  결국 그까짓 드라마 하나에 그렇게 매달리느냐'라는 말을 한두 번 들은 게 아닌데, 두 사람의 이 대화를 보거나 읽을 때마다 위의 말이 떠오른다. 이 에피소드를 좋아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단연코 이 대사도 들어간다.


  (난 DD 팬은 아니라 DD에 대해서 아는 건 없다는 걸 전제하고) DD가 6시즌부터 지친 기색을 드러내며 엑스 파일을 떠날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지만, 결국 이 드라마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이 에피소드를 볼 때마다 언제나 느낀다.


Posted by Iphinoe

  ...Jump the Shark에서의 론건맨의 어이없는 죽음 (그리고 그 에피 자체가 그것만을 위해 쓰였다는 점), William에서의 스펜더 캐릭터의 추락이 내게 불러온 격한 분노 그 자체에 대해서는 다음에 정리해 보기로 하고, 오늘은 막 떠오른 생각인 '나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제프리 스펜더 캐릭터가 망가진 것에 왜 분개했는가'를 시도해 보겠다.


  일단 다른 분들께 그동안 말했던 내용을 다시 반복하면, 난 스펜더를 좋아는 안 할 망정 동정하고 안타깝게 생각했다. 이번에 스펜더 캐릭터의 망가짐에 쇼크먹고 그가 나타났던 예전 에피들을 돌려보다가 다시 확인한 사실인데, 내가 처음 이 캐릭터가 참 안됐다고 생각했던 것은 6시즌 The Red and the Black에서였다. 여기서 스펜더는 멀더의 권유로 퇴행 최면을 받은 스컬리를 일부러 X-files 사무실로까지 찾아와, 자신이 열한 살 때 찍은 퇴행 최면 테잎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용당하지 말라고 말한다.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말야...... 그 비디오를 보여주다니.)


  여기서 나는, 자신에게 치부이자 숨기고 싶은 (그리고 사실 출세에 지장받고 싶지 않다면 당연히 숨겨야 되는) 비밀인 그 테잎을 스컬리를 생각해 들고 와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스펜더가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구나...하고 느꼈다. 그 전편 Patient X에서는 "인사고과나 걱정하며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는(April Fool 님 표현)" 모습밖에 보지 못해서 그닥 인상이 좋지 않았는데, 이 행동에 나는 스펜더가 정말로 보통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본질적으로는 선한 사람이고, 욕심도 있고 남을 생각해 주는 마음도 있는 그런 지극히 평범한 사람 말이다.


  그리고 스펜더에 대한 내 동정심을 자극한 부분은, 그 테잎을 틀어주는 모습에서였다.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애써 냉담하게 보이려 하며 play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그리고는 화면이 나오자 방 한켠으로 가서 반쯤 뒤돌아서서 서류를 만지작거리다가, 화면 속 꼬마(자신)의 진술이 클라이막스에 이르자 불편한 표정으로 다가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화면을 꺼버린다.


  정말 안쓰러워 보였다. 그래서인지 그 뒤에서 스펜더가 계속 멀더에게 딴지놓고 태클걸고 그의 일을 방해하고 스키너에게마저 방자하게 굴며 (요건 사실 참아주기 힘들었지만^^) 다닐 때에도 파울리만큼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하긴 파울리의 경우는 다른 이유들도 이만저만 많은 게 아니지만.)

  One Son에서 진실을 (자기 몫만큼의, 그가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결정짓기 위해 필요했던 만큼의 진실. 하긴 그는 그 이상 더 알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알고 난 스펜더의 행동과 그에 뒤이은 담배맨의 '처벌' (물론 정말로 그 순간 제프리가 총에 맞아 죽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은 나를 상당히 가슴아프게 했다. 그는 결국 철저하게 이용당했고, 숨겨둔 진실을 몰랐기에 서서는 안될 편에 서 있었다. (연줄을 이용해 승진하려 한 건 여기서는 논외의 문제다.) 그리고 진실을 알고 나자 그는 신디케이트 손에서 놀아났던 것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을 느꼈고, 일어난 일에 책임을 지려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돌려놓으려 했다 (그는 M&S에게 X-files를 돌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목숨을 잃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나는 그가 담배맨의 손에 죽음을 당했다고는 한 순간도 생각하지 않았다. 1013 스타일이 그랬고 - 파울리의 석연찮은 회생, 담배맨의 수차례에 걸친 화려한 부활을 보라. 그는 파이널에서도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 , 기실 컨소시엄으로서는 스펜더를 죽일 필요도 없었다. 그를 자신들의 꼭두각시로, 그들 손끝에서 춤추는 인형으로 삼았을 때조차도 그들은 스펜더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의 목적이었던 야망을 잃었고, 그것을 뒷받침해줄 기반도 잃었다 (설사 FBI 내에 그대로 남아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았다 해도 그가 더 이상 관리자급의 관료로 승진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사태에 책임을 지고자 했다. 그것이 FBI 내에서의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모르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건 이번에서야 One Son을 다시 보며 발견한 사실인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께로 가면서 스펜더는 멀더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도 그 잠시 동안 거의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얼마나 불쌍한가 말이다. 그는 자신이 수행한 역할도 거의 없는 일에 - M&S는 어떻든 그 학살을 결코 막지 못했을 것이다 -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벌을 받고자 했다. 이미 자기 방식대로 자기 자신을 처벌하고 있는 거다. 그 순간 멀더의 표정이... 부드럽긴 해도 스펜더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쓰지 않는 듯 무관심해 보여서 더 가슴아팠다. 그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유달리 냉담한 태도를 보인다. 크라이첵에 대한 멀더의 태도를 보라... 비록 그가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이긴 하지만, 결국 그걸 지시한 담배맨을 대하는 태도보다도 더 냉랭하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전에 해온 생각이고.. (물론 closure에서 내 동정심은 더해졌지만 그 이야기는 생략하고) 지금 막 든 생각은, 그러니까 유달리 스펜더에 대해 내가 그가 받을 만한 정도 이상의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스펜더가 너무나 평범한 보통 사람 (이게 맞는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이었기 때문에 역시 너무나 평범한 보통 사람인 나로서는 그의 캐릭터가 망가지는 것이 용납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동일시했다는 건 아니다. 공감? 그것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점이 작용한 것만은 확실하다.


  보통 사람 (음모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 어찌보면 유일하게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친구다^^) 일 뿐 결코 악한은 아니었던 스펜더의 캐릭터를 완전히 망가뜨린 1013의 행위에는 정말 화가 치밀어오른다. 조연이라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라고 아무렇게나 손 안에서 가지고 놀아도 된단 말인가? 팬들은 뭐냐! 스펜더 팬은 글쎄.. (안전하게 표현해서) 거의 없는 줄 알긴 하지만 싫다. 이 안을 DD가 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카터도 아닌 DD가 그랬다는 말에 정말로 얼떨떨해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DD에 대해 다른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만들어진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입장이 아니라 연기하는 입장이다 보니, 작가나 제작자와는 또 다른 자세로 접근할 것 같아서다.) 배신감을 느끼기에는 DD의 멀더를 너무나 좋아한다. 오, 데이빗, 아무리 흥미롭다지만-_- 대체 왜 그런 거야... 왜 그 불쌍한 사람에게 그 잔인한 짓을......



  (2002년 12월 18일)



  이 글에는 뱀발이 달려 있다

  이 일기 중간에다가도 덧붙였던 건데, William과 Jump the Shark를 보면서 제일 격분했던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조심스럽게 조금씩 쌓아올린, 캐릭터들에 대한 팬들의 애정을 1013이 너무나 가볍게 보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이게 소설도 아니고 비주얼이 함께 가는 드라마인데, 아가사 크리스티가 그랬던 것처럼 '나 손뗀 뒤 다른 사람들이 쓰는 것이 싫어서' 캐릭터를 함께 데리고 갈 필요도 없는 일 아닌가. 이런 생각 때문에, William을 보고 난 후, '제대로' 보기 위해 스포일러마저 기피했던 그 동안의 신조를 버리고 파이널을 미리 봐버리기로 결심했었다.

Posted by Iphinoe

1. 버그가 있는데 내가 스킨 설정을 건드린 게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게 원인인지 모르겠다. 고치는 방법이야 더 미지수.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 'click(메뉴열기)' 누르면 버그의 정체 확인가능)

말 나온 김에, 이 스킨은 목록에서 글 개수를 보여주지 말라고 설정해도 그게 안먹힌다;;



2. 접는 태그를 쓰고는 있는데, 말하자면 '펼칩니다'의 메시지만 넣을 수 있고 '접습니다'를 넣을 수가 없다. 글 끝에도 '접습니다'를 넣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방법을 모르겠다.;; 태그는 임시방편으로 그때그때 필요한 것만 배워 써온 터라 무식한 소치로...



3. 카테고리가 더 필요할 테지만 당분간은 신경 안 쓸 거다.
Posted by Iphinoe

 보통은 매뉴얼은 읽고 작업을 시작하는 매뉴얼파입니다만 (안 그러면 고장낼까봐서지요) 지금은 그럴 만한 심적인 여유가 없는 고로 버벅거리며 가겠습니다. 어느 날 폭파되면 뭔가 잘못 눌러 날렸거나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거나일 겁니다. 가져올 만한 글을 다 가져올 때까지는 당분간 새 글과 예전 글이 멋대로 섞여 도는 모드가 될 것 같습니다. 차분히 설정을 둘러볼 여유가 없는 것과 같은 이유로, 새 글은 주로 잡담일 것이고 예전 글은 그 반대일 겁니다. 옛 글일 경우에는 원래 언제 인터넷에 올랐던 글인지 명시하겠습니다.

 찾아오시는 모든 분을 환영합니다. 모든 글은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의 조건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퍼가시거나 링크를 거실 경우에는 미리 허락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트랙백은 굳이 그럴 필요 없겠지요.) 제 이름은 '이피노에'라고 읽습니다만, 이 이름으로 저를 알았던 사람들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이피'로 정착이 되더군요. 이것 말고도 여기저기서 매우 다양하게 불려온 터라, 익숙하신 이름으로 아무 거나 부르시면 됩니다. 복수사용이 불가능해 하나를 정한 것뿐이니까요 :) 이것도 아직은 잠정적입니다. 오시는 분들이 일으키실 혼동은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정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널리(쿨럭) 광고할 것도 아니고요.

 그럼, 베타버전 시작합니다. 아마도 영원히 베타버전이지 않을까 싶군요.
Posted by Iphinoe

  이 글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졌다고도 할 수 있고 잘 안 알려졌다고도 할 수 있는 법정소설 작가 스콧 터로Scott Turow에 대한 글로, 추리소설과는 관계없는 작은^^ 동호회에 소개하는 의미로 올렸던 글입니다. 2007년 1월 27일 엔트리로 되어 있군요.

  이 글과 아랫글인 The Burden of Proof 리뷰는 어떤 의미에서는 연결되어 있다고도 해도 좋을 글입니다. The Burden of Proof를 읽은 건 2006년 여름이었는데, 읽자마자 감상을 무척이나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잘 써지지가 않아서, 어영부영하다 6개월 이상을 끌었습니다. 그 지경이 되면 보통 대충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들을 1, 2, 하고 나열해 가며 할 수 있는 한 끄집어낸 뒤 던져버리는데, 이건 한 편의 '글'로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던고로 쓰지 못하는 채로 질질 끌었습니다. 그러다 위에 말씀드린 동호회에 추천하고 싶은 것들을 소개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게 계기가 되어서, 가볍게 쓰기 시작한 터로에 대한 글이 지금 이 장문의 글로 첫 결실(?)을 맺고, 내친 김에 The Burden of Proof에 대해서까지 쓰게 된 거지요.

  역시 활자의 압박이 클 것 같아 접습니다. 이 태그 쓰는 데 재미들렸는지도 모르겠네요.

  펼칩니다

  스콧 터로우Scott Turow는 87년에 데뷔하여 지금까지 두 권의 논픽션과 8편의 장편 소설을 출간한 작가입니다. 가장 최근작인 Limitations(2006)를 제외하면 시계처럼 정확하게 3년에 한 권씩 소설을 냈지요. 우리나라에는 논픽션 두 권을 합쳐 모두 다섯 권이 번역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이라면 우리나라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아마도 '열정 속으로, 하버드 로스쿨One L(2004)'일 것입니다. 이 책은 '법과 대학의 신화'라는 제목으로 1996년에도 출간되었지요. 다른 제목으로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비 리그와 조기유학의 붐을 타고 어느 정도 입소문을 얻은 것으로 압니다. 애초에 2004년 출간은 그런 시류에 부합하려는 의도가 컸을 겁니다. 국제변호사가 꿈이라는 아는 애 집에 갔더니, 참으로 빈약했던 그 녀석 책장에도 이 책이 꽂혀 있더군요. 저자가 하버드 로스쿨 출신이고, 자신의 경험을 에세이 식으로 적었기 때문에, 이 책은 '닥터스' 류와는 다르게 논픽션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네, 스콧 터로우는 변호사입니다. 시카고에서 검사보로도 일한 적이 있고, 지금도 로펌 체인에서 파트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추리소설 작가로 명성을 얻은 이후로는 주로 무료변론에 주력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2003년에 나온 'Ultimate Punishment(우리나라에는 '극단의 형벌'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는 자신이 경험했던 사형수 변론, 그리고 일리노이 주 사형 위원회 소속으로 2년 동안 사형제의 실효성 여부를 검토하는 작업에 참여했던 경험을 토대로 사형 제도애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낸 책입니다.

  전 'One L'을 읽어보지 못해서 이 논픽션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지만, '극단의 형벌'은 사형 제도에 관한 고찰로 매우 좋은 책입니다. 우리나라의 사형 제도에 대한 논란은 당위성에 대한 공박으로만 흐르는 측면이 있는데요(사회적 비용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존치론 측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논거지요), 이 책은 사형 제도의 사회적 비용이라던지, 현실적인 한계와 위험 등등을 미국 현실에 확고하게 발을 딛고 서술합니다. 너무나 미국에만 적용되는 이야기여서, 되려 한국의 경우에 비추어 볼 수 있는 측면이 확연해질 정도지요. 터로는 자신이 검사와 변호사로서 사형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를 묘사하면서, 두 건의 무료 변론에서 사형수에 대한 변호를 맡고 변론을 치러낸 과정을 통계를 곁들여서 개인적 경험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도록 서술하고, 거기에 일리노이 주에서 주지사의 결단으로 공공의 비용을 들여 2년 동안 사형제의 장단점 조사를 목적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에서 어떤 작업을 어떻게 했는지 보고하는 방법을 통해 사형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도 사형제 폐지론자와 존치론자 사이를 왔다갔다한 경험이 있다고 하고, 그걸 진솔하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우리나라에 출간될 때 소개글에서는 작가가 사형 제도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고들 했고 온라인 서점 독자 리뷰를 봐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이 책을 쓸 때 터로는 폐지론자로 자기 입장을 자리매김했던 것 같습니다. 일리노이 주 사형 위원회의 최종 권고안도 그런 내용이고요.



  논픽션 이야기를 먼저 한 것은 이 작가 개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조금 소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작가 자신이 법을 다루는 직업에 몸담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터로는 존 그리샴과 흔히 비교되곤 한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둘 다 미국에서는 베스트셀러 작가에 속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선 그리샴의 유명세가 워낙 엄청나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교조적이고 대중적인 그리샴보다 터로우가 그리는 인물들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터로우는 법정소설 작가로 불립니다. 그 맥락에서도 존 그리샴과 비슷하지요. 추리소설에는 여러 장르가 있습니다만, 법정소설은 변호사나 검사, 판사 등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소설들을 가리켜 부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법을 '다룬다'는 건 주로 해석의 문제를 말합니다. 형사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겠지요.) 반드시 법정이 무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법의 여러 측면들을 소설의 뿌리로 삼는 그리샴과는 달리, 터로우는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주인공일 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전혀 별개일 때가 많습니다.

  여기서 터로우가 출간한 소설의 목록을 소개합니다. 번역본이 있는 경우는 번역본 제목을 달았습니다. 아직 절판 안 된 건 따로 설명을 붙였고요.

  1987 Presumed Innocent ('무죄추정' '의혹')
  1990 Burden of Proof
  1993 Pleading Guilty ('증발')
  1996 The Laws of Our Fathers
  1999 Personal Injuries
  2002 Reversible Errors ('사형판결', 2005. 아직 유통중입니다)
  2005 Ordinary Heroes
  2006 Limitations

  그의 모든 소설은 시카고 근교로 설정된 가상의 킨들 카운티Kindle County를 무대로, 다양한 법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위에 썼듯이 현재까지 8권이 출간되었고, 저는 국내에 번역된 3권과 90년에 나온 Burden of Proof를 읽었습니다.



  데뷔작인 '무죄추정'은 개성 강한 작품입니다. 호불호를 떠나 읽으면 잊히지 않는 작품이고, 스타일과 소재 모두가 센세이셔널해서 다 읽을 때까지 읽는 사람을 붙들고 놓지 않는 그런 소설입니다. 변호사 자격증을 딴 후 검사로서만 경력을 쌓아온 30대의 젊은 지방검사보가 자기가 수사하던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기소되게 된다는 초반부 내용은 설정만 들어도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나요? 후반부는 재판에 할애되어 있습니다만, 전후반부 모두 사건이 흘러가는 양상보다 그걸 주인공인 '나'가 어떻게 소화하는가가 소설의 핵심으로 다뤄집니다. 어떤 분^^께서 제게 하신 말씀대로, 문장 하나하나마다 에고가 넘쳐나는 소설이에요. 이 작품은 1인칭을 굉장히 영리하게 활용합니다. 1인칭 시점은 주인공이 독자에게 말을 거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독백이기도 하지요. '무죄추정'은 한 사람의 진술 안에 그 두 가지를 교묘하게 섞으면서 무려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를 독자들이 신뢰할 수 없게 만듭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도 만들어졌습니다. 이것도 꽤 잘 만든 스릴러입니다. 해리슨 포드 주연으로 어느 정도 유명했기 때문에, 보신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다음 작품인 'Burden of Proof'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좀 보입니다. '무죄추정'에서 후반부의 핵심 인물 중 하나로 주인공의 변호를 맡았던, 킨들 카운티의 잘나가는 변호사가 주인공입니다. '무죄추정'에서는 형사전문변호사로 등장해서 속을 알 수 없는 인물로 그려졌었지요. 여기서는 그의 가정사와 개인사가 큰 줄기를 이루고, 그의 변호사 생활 동안 줄곧 가장 중요한 - 여러 의미로 - 고객이었던 의뢰인이 기소의 위협을 받는 데 따른 변호사로서의 업무가 엮여듭니다. 이 의뢰인은 주인공의 매부이기도 해서, 두 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유지해 주지요. 출장에서 돌아와 아내가 아무 예고없이 자살한 것을 발견한 주인공의 모습으로부터 소설이 시작하기 때문에, 초반부는 아내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 없어 방황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아내가 자살한 연유를 추적하는 내용이 중요하게 그려집니다만, 갈수록 매부 회사 쪽의 비중이 늘어납니다.
  이 소설의 문체는 3인칭으로 시점을 바꾸었습니다. 여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아마도 터로가 가장 아끼고 자신과 동일시하는 인물이 아닌가 합니다. 읽다 보면 작가와 등장 인물의 거리가 매우 좁다는 게 느껴지지요. 그리고 이 인물은 킨들 카운티 시리즈를 통틀어 꾸준히 재등장하면서 자신의 자취를 작품 어딘가에는 꼭 남겨놓는 캐릭터거든요. '무죄추정'의 주인공과는 달리 독자들이 공감하기도 쉬운 인물이고요. 작가가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늘 꿈꾸는 일탈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걸 데뷔작에 이어 여기서도 보여주는데요, 이 주인공은 그 일탈조차도 꼭 자기처럼 지극히 온건하고 차분한 방식으로 겪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은 감상적인 결말인데요, 이 이야기는 있다 아래서 다시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매우 온화한 사람이라 - 아내의 죽음으로 나름의 중년의 방황을 겪습니다만 - '무죄추정'이 주었던 밀도있는 분위기는 조금 떨어집니다.

  그 다음 작품인 '증발'은 저를 결정적으로 터로의 독자로 여기게 만든 작품입니다. '무죄추정'도 정말 좋은 작품이지만 소재가 워낙 센세이셔널하고 주인공이 처한 위치가 너무 특수해서, 한 작품으로서야 더할 나위 없지만 작가의 경향을 짚어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감이 있어요. 더군다나, 두 작품 사이에 낀 'Burden of Proof'를 읽고 난 뒤로는, '증발'이 거둔 성과가 아니었다면 터로가 소포모어 징크스를 극복하고 안정감 있는 타율을 보여주는 작가의 길로 접어들기는 조금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증발'은 소송변호사지만 거대기업인 항공사의 일을 주로 받아 관리해온 로펌 소속의 민사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여태까지 두 작품을 통해 그려온 킨들 카운티의 한 구석으로부터 조금 벗어난 다른 무대지요. 소속 변호사 하나가 자신들이 관리하고 있는 기금에서 거금을 횡령하고는 모습을 감추자, 로펌의 운영위원들은 파트너의 위치에 있지만 최근 몇 년간 별볼일 없이 처신해온 주인공을 불러들여 그를 추적하는 일을 맡깁니다. 이 기금에 워낙 많은 것이 얽혀 있는 터라 되도록이면 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일을 조용히 처리하려는 것이지요. 주인공은 그 일을 해나가면서 자신이 이 일에 개인적인 감정을 투영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몇십 년간 차분히 쌓여와 이제 자신을 엄청난 무게로 내리누르는 인생의 공허를, 그 허무를 해결하는 문제를 이 일과 동일시하게 된 겁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 길을 걸으면서 인간적으로 신뢰했던 사람들의 이면을 보게 되고, 어떤 선택을 합니다.
  이 작품의 결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매우 기억에 남습니다. 충격적이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어떤 의미로는 기대하는 감정도 남지요. 터로는 일탈의 감정을 여기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룹니다. 그 때문에 각각 매우 다른 이 세 소설에 어떤 일관성이 부여되는 듯합니다. 그리고 '증발'은 그걸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을 차원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The Laws of Our Fathers'는 터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Burden of Proof'에 등장했던 인물들 중의 하나가, 여전히 법을 다루는 직종에는 있지만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위치에서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이것도 터로가 그리는 킨들 카운티의 특징 중 하나인데요, 법 주변에서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위치를 옮겨 가며 그 주변에서 맴도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현실에서의 시간과 소설 속에서의 시간이 같이 흐르면서, 그 동안 검사가 판사가 되고, 형사법정에서 일하던 사람이 민사법정으로 가기도 하고, 임기가 찬 판사는 퇴직하고 스캔들로 옷을 벗기도 하고 감옥에 가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중추가 되는 인물은 'Burden of Proof'의 주인공 스턴입니다.
  이 작품은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다만 기대와 더불어 우려가 되기는 합니다. 터로는 여성 캐릭터를 그다지 잘 그려내는 편은 아니거든요. (솔직히 이건 모든 남성 작가를 대할 때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들어가는 부분이라 잘 그려주면 다행이지만 못 그린다고 제게 있어 평가가 깎이는 법은 없습니다.) 주인공이나 그 주변 인물을 형상화할 때 특수한 상황 속에서 그리면서 그 안에서 보편적인 모습을 끄집어내는 데 능한 사람인데 여성 캐릭터를 다룰 때는 이게 무척 약합니다. 이래저래 여성 캐릭터가 많은 'Burden of Proof'도 그런데, 이 작품은 여자가 주인공입니다. 남성의 시선이 들어간 여자 주인공을 보는 것만큼 불편한 일도 별로 없거든요. 하지만 기대를 걸고는 있습니다. 출간된 지 10년이 지난 작품에 대해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잘 해주었길 빌어요.

  2002년에 나온 'Reversible Errors'는 '극단의 형벌'의 출간 시기를 보면 아시겠지만 - 그리고 이 책 내에도 언급이 나옵니다 - 터로가 일리노이 주 사형 위원회 일을 하고 있던 비슷한 시기에 쓴 작품입니다. 위원회가 구성될 무렵 이미 집필에 들어간 상태였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세트로 묶여다니는 비운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만, 사실 'Reversible Errors'는 사형 제도에 대한 소설은 아닙니다. 사형수가 플롯 전개에 핵심 인물이긴 하지만 그가 주인공이라 보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번역판 제목 대신 원제를 적었습니다.) 'Reversible Errors'는 사형을 눈앞에 둔 사람 때문에 과거의 사건을 재고해보게 된 상황을 바탕으로 당시 이 일에 관련되었던 사람들, 현재 그 일에 관련된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병치해 그리면서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거나 화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추리의 요소가 섞여 있긴 하지만 장르 문학으로서의 요소가 매우 약하고, 터로도 인정한 바대로 주가 되는 건 사랑 이야기입니다.
  분위기가 좋은 소설이긴 한데 결말이 너무 치우쳐 끝나서 그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한 커플은 잘 되고, 다른 한 커플은 갈라서는데, 그 이유가 마치 타인을 믿어주느냐 아니냐의 문제라는 식으로 흘러서 아쉬웠어요. 신뢰와 용서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쌓아온 개인적인 관계의 시간과 그 무게가 뒤에서 작용한 것인데 말이지요. 이것 역시 다시 언급하게 되겠지만 터로의 감상주의가 오버한 부분이라, 읽는 사람 따라 감동받을 수도 있는 부분이었지만 제게는 지나친 나머지 저를 튕겨내는 그런 요소였습니다.



  터로는 일상의 무게를 벗어나는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을 잘 그립니다. 그 정체를 '무죄추정'에서 '희망'이라는 말로 표현하지요. 무언가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무언가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 그리고 그런 실낱같이 가벼운 무게에 기대는 사람들의 황폐한 심사를 그리는 데 있어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습니다. '무죄추정'에서 최종판결이 내려지면 자기가 집어넣은 죄수들이 드글드글한 감옥으로 가야 할 지도 모르는 주인공이 밤마다 잠못이루고 집을 서성거리는 대목이라던지, 'Burden of Proof'에서 아내의 자살이라는 선택이 남편인 자신에 대한 비난이라고 느끼는 주인공이 스스로를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에 대한 묘사 - 그 역시 밤마다 집구석을 배회하면서 머릿속을 구체화할 수도 없는 생각들로 가득 채웁니다 - 는 정말 탁월합니다. '사형판결'에서도 주인공은 너무 많은 책임감을 짊어지고 그 무게에 짓눌린 인물이죠. 지금까지 읽어본 바로는 이게 가장 빛을 발하는 작품이 '증발'이었기에, 저는 개인적으로 '증발'을 터로의 작품들 중 맨 위에 놓습니다.
  이 재주는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합니다. 일단 감상주의로 흐를 함의가 너무 커요. 살짝만 너무 나가도 감정이 흘러넘쳐서 질펀해지고, 결과적으로 혼자 취해 마구 우는 술친구를 옆에서 말짱한 정신으로 보고 있는 기분이 되지요. 그래서 저는 터로가 1인칭 시점을 쓸 때를 더 좋아하는데, 3인칭으로 쓰면 과도한 감상주의가 작가가 절제를 못한 결과가 되는 반면, 1인칭으로 쓰면 감정이 마구 흘러넘쳐도 일견 '나'의 개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도 제가 좋아하는 '무죄추정'과 '증발'은 1인칭 시점이고, 좀 넘친다고 생각한 'Burden of Proof'와 'Reversible Errors'는 3인칭 시점입니다. 현재까지의 출간작을 반 읽은 시점에서 이렇게 딱딱 둘로 나뉜 결과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다른 작품이 빨리 읽고 싶어져요.

  터로를 '좋아하는 작가'라고는 못하겠습니다. 그러기엔 살짝 낯간지럽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중 어떤 것들을 아주 많이 좋아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장점이 곧 단점이 되는 그 경계가 분명한 작가이기도 해서, 다른 작품을 계속 찾아보게 만드는 동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작품은 어떻게 썼나 궁금해 하게 만들거든요. 그리고 킨들 카운티라는 배경에 충실히 남아 있어 주어서, 법원을 중심으로 각자의 작은 원을 그리는 주변 인물들이 긴 시간에 걸쳐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이렇게 긴 글이 될지 몰랐는데 지금 좀 놀라고 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소개글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마지막으로 터로의 공식사이트를 소개합니다. URL이 (당연하게도) http://www.scottturow.com 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출간된 '극단의 형벌' 본문에 이 사이트의 여러 페이지가 각주로 들어가 있는데요, t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지 번역본에서는 t를 다 하나씩 빼버렸더랍니다-0- 읽다가 엄청 웃었습니다.

Posted by Iphinoe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해놓았으니 바로 들어가도 되겠군요.^^ 응집력 있게 몰아친 데뷔작 '무죄추정'에 비해, 'The Burden of Proof'는 터로의 장점과 단점 - 이라기보다는 그 한계 - 을 모두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무죄추정'을 읽으신 분이면 누구나 기억하고 계실, 변호사 알레한드로 "샌디" 스턴입니다. 스턴은 전편 '무죄추정'에서 주인공을 변호하는 형사전문변호사로 나왔었습니다. '무죄추정'에 등장하는 인간 군상들은 모두 흥미롭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스턴은 끝까지 자기 자신을 거의 내비치지 않기 때문에 독자의 호기심을 가장 자극하는 인물입니다. 특히 소송의 종결부에서 주인공과 스턴이 나누는 대화는 이 책에서 가장 호기심 끄는 플롯 중 하나가 새털같이 가볍게 암시되듯 다루어지며 묵직한 빛을 발하는 대목이었지요.


'The Burden of Proof'는 스턴에서부터 시작해서 스턴으로 끝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편에서 스스로를 너무 드러내지 않아 신비스럽기까지 한 존재로 등장했던 스턴의 개인사와 가족사는 엄청난 깊이로 다루어집니다. 스턴의 대척점에 서 있는 캐릭터 또한 스턴의 가족의 일부이죠. 스턴의 하나뿐인 피붙이, 여동생의 남편이니까요. '무죄추정'에서 제시되었던 스턴의 개인사 중 일부는 여기서 모습을 바꾸어 나옵니다. 소문이 잘못 전해졌거나 전편의 주인공 '나'가 잘못 알고 있었거나겠지요.=) 'The Burden of Proof'는 전편의 이야기로부터 3년 후에서 시작합니다. (소설이 출판되는 시간 간격과 같이 가더군요.) 스턴은 당시 재판이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바람에 그 이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몸이지만, 자기가 변호사 일을 해올 초기부터 맡았던 매부 회사의 일들은 여전히 자신이 직접 처리하고 있습니다. 50대 후반으로 접어들어, 세 자식들은 모두 독립시켰고, 아내와는 몇 년 전 불화도 좀 있었지만 지금은 예전 패턴으로 돌아가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요.


매부 회사의 일로 시카고에 출장을 다녀온 그는 집에 들어서다가 아내가 밀폐된 차고에서 차 시동을 걸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발견합니다. 경찰이 다녀가고, 유서가 발견되어 자살로 처리되지만 유서는 달랑 한 문장뿐입니다. 'Can you forgive me?' 스턴은 아내가 자살할 만한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왜 자살했는지도 전혀 짐작가는 바가 없습니다. 갑자기 닥친 이 시련은 스턴의 생활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터로는 인간의 황량한 심사를 그리는 데 능합니다. 여기서도 갑작스레 아내를 보낸 스턴은 정상적인 생활로 쉽사리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그건 오랜 세월 함께해 온 동반자를 잃은 상실감과는 조금 다른 감정입니다. 아내의 죽음, 그것도 자살이라는 방식의 죽음과 화해할 수 없어 무언가 말이 되는 설명을 갈구하게 되는 거니까요. 그는 아내의 선택이 자기 자신에 대한 비난이라고 느끼고 죄의식을 가지며, 죄책감을 갖게 하는 상황에 대해 다시 막연한 분노를 느낍니다. 스턴이 자기 집을 유령처럼 배회하며 조그만 것이라도 단서가 될 만한 걸 찾아 이 방 저 방 헤매는 대목은 길게 나오지도 않는데 정말 탁월합니다. 아내가 그에게는 그 어떠한 암시도 내비치지 않은 채 그런 결정을 내리고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스턴이 답을 찾아 헤매는 과정은 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두 가지 플롯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의 뼈대는 매부 회사 쪽에서 옵니다. 이건 소설이 시작되기 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일이고, 소설의 문을 여는 스턴의 시카고 출장도 이 일의 일부였습니다. 스턴의 매부인 딕슨은 맨손으로 시작해 굴지의 기업을 일구어낸 자수성가형 기업가로, 그런 사람이라면 흔히 상상할 수 있을 만한 자신만만한 태도에 주위 사람들을 손에 쥐고 자기 뜻대로 휘두르는 타입의 인물입니다. 그와 스턴은 둘 다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디딜 무렵 군대에서 만난 사이로, 스턴은 매부를 결코 좋아한 적이 없지만 변호사로 자립할 초기부터 그로부터 큰 도움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기에 직업적인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그와는 상관없이 스턴과 그의 여동생은 매우 가까우며 서로를 깊이 아끼는 관계로, 아내가 죽기 전부터도 매일 꼬박꼬박 전화를 주고받고 안부를 교환하는 사이로 그려집니다. 딕슨은 자신의 가족이 없기에, 스턴의 가족들과 가깝게 지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스턴의 아이들까지 고용하는 형식을 취해 가면서 자신의 곁에 두기도 하지만, 그 관계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나오지요. 이 소설의 도입부에서, 딕슨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대배심(정식 재판으로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심의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따로 판사와 배심원을 두고 비공개로 치러집니다. 심문은 검사가 진행하고, 소환된 사람들의 변호사는 입회가 허락되지 않습니다)의 소환장이 딕슨의 회사 사람들과 기록을 상대로 날아오고 있는데, 그들이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거든요. 스턴은 딕슨과 딕슨의 회사를 대리해 킨들 카운티의 검사를 상대하고 있습니다만, 위협은 시간이 갈수록 커집니다.


두 중점 플롯 사이사이에는, 변화에 맞닥뜨리고 적응해 가는 스턴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유부남'에서 '홀아비'로 위치가 바뀌면서 동년배의 여성들의 성적인 암시가 증가하는 것에 당혹스러워한다던가, 스스로도 매력적인 여성을 보면 눈길이 가는 것에 당황스러워한다던가 하는 모습들이지요. 책에서 하는 말대로 스턴은 '그런 쪽으로는 오랜동안 스스로를 차단하고 살아온'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는 물론이고 스스로의 변화도 자신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자기 인생을 돌아보게도 되고요. 새로운 인간 관계를 맺기도 하고, 오래 알아오던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실은 이게 책의 중심 내용입니다. 위의 두 플롯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추진력을 제공하지만, 핵심은 결국 그게 스턴이라는 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가 하는 것이거든요. 30년을 같이 살았지만 서로의 사이에 존중이라는 이름의 거리를 두고 있었던 스턴과 아내 클라라라던가, 대배심이 노리는 바가 구체화되어갈수록 부침을 거듭하는 스턴과 딕슨의 관계라던가, 스턴이 마주치는 여러 여인들과 맺는 관계라던가, 여기서는 언급한 적이 없지만 스턴의 세 아이들과 스턴이 가져왔고 가져가게 될 관계까지도, 모두 스턴에게 부딪쳐 와 그를 뒤흔들고 바꿔놓고 이전과는 같고도 다른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 절정은 맨 마지막에 스턴이 모든 것을 정리하면서 읊는 기도문인데요,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다시 하겠습니다.


내용 소개를 엄청 많이 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 요약을 한 거지만, 실제로 중요한 건 에피소드들이거든요. 제가 쏟아놓은 내용들은 소설 초반부에 거진 다 나오는 것들이고, 특히 소설의 핵심 미스터리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는 일부러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미스터리가 있냐고요? 두 플롯은 각자 수수께끼를 적어도 하나씩은 품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발전되어 가는 걸 보는 건 꽤 흥미진진합니다. 특히 딕슨의 회사와 관련된 수수께끼가 그렇지요.


터로는 이 소설을 3인칭으로 썼지만, 주인공 스턴을 누구보다 자신에 가까운 인물로 보고 애정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딱히 구체적으로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작가와 등장 인물간의 관계가 매우 가깝다는 게 읽다 보면 자연스레 느껴집니다. 그리고 사실 독자들이 감정이입하기에도 무리가 없는 매우 현실적이고 차분한 인물이에요. '무죄추정'에서나 여기서나 매우 침착하고 온건하고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아내의 자살로 일련의 방황을 하지만 그것조차도 지극히 스턴다운 방식으로 조용히 겪지요. 그 때문에, 얼핏 보고 스턴이 이 소설을 통해 한 바퀴 크게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말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책 초반부의 스턴은 후반부의 스턴과 아주 같다고도 다르다고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 변화는 딕슨을 통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요.


딕슨은 여러 면에서 스턴과 대척점에 서 있는 캐릭터입니다. 이민자 출신으로 변호사답게^^ 타협적이고 주위와 조화를 이루어 사는 데 큰 비중을 두는 스턴과 달리 딕슨은 자기 식대로 거침없이 세상을 헤쳐 나가며 그 앞에 놓인 것은 무조건 장애물로 보고 돌파구를 찾아내는 사람입니다. 자기 방식대로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탐닉하고, 인생의 즐거움은 넘칠 만큼 누리고자 하고, 뭘 하든 호쾌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지요. 그런 딕슨에 대해서도 터로는 애정어린 시선을 유지합니다. 그건 터로가 스턴을 자기 자신을 투영해서 본 만큼 딕슨에 대해서는 자신(과 대개의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바를 감히 할 수 있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주는 캐릭터로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소설에 스턴의 시선을 통해 언급이 나오기 때문에 제가 추측한 게 절대로 아닙니다.)


이 애정어린 시선은,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여러 캐릭터들이 만나 충돌하고 엉켜 흘러가는 이 소설을 마음 편히 읽을 수 있게 해주는 토대입니다. 만악의 근원이 되는 딕슨조차도 작가가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인간의 약점이나 과오에도 냉철한 시선을 들이댈 마음은 없어 보입니다. 그 시선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소설 읽기는 꽤 괜찮은 경험이 될 겁니다. 적어도 마지막까지는요. 이건 제 이야기입니다. 그런 따뜻한 시선의 존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겁게 보았습니다만, 마지막에 가서 삐끗하는 바람에 감동(말하자면)의 범위가 좁아져 버렸거든요.


터로는 위에 말했듯이 사람들의 황폐한 심사를 그리는 데 발군의 재주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게 겉으로 드러나게 된 이유는 캐릭터마다 많이 다르지만, 여태까지 접한 터로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어느 순간 자신의 인생에 커다란 공허가 생겨 있는 것을 느끼고 있거나 느끼게 된 사람들입니다. 스턴의 경우는 그 공동이 자기 곁에 있어주었던 아내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삶을 버리면서 생겨납니다. 이 공허는 처음에는 스턴의 내면을 위협하는 정도이지만, 그 정체가 구체화될수록 스턴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한순간에 휩쓸어가버릴 수 있는 거대한 파도가 됩니다. 그 모든 혼란을 정리하는 기능을 하는 게 마지막에 나오는 스턴의 기도인데, 이 기도가 결정적으로 저를 닭살돋게 만들었습니다.=) 터로의 주인공들이 겪는 황량한 심사는 대개 원인은 분명할지언정 그 구체적인 모습은 잡아내기 쉽지 않은 그런 감정들입니다. 그래서 그게 더 큰 울림을 지닐 수 있는 것이지마는, 이 경우 조금만 과도하게 그려주면 캐릭터들이 겪어나가는 감정이 독자를 튕겨내 이질감 느끼게 하기가 쉽습니다. 이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The Burden of Proof'에서 터로는 이 경계를 몇 번이고 아슬아슬하게 넘습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확 넘어버리는 대목이 그 기도인 것이죠. 사실 이 부분을 읽다가 전 큰 소리로 웃었는데,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였습니다.-_-; 그 기도만 없었어도 이렇게 뒤섞인 감상을 쓸 이유가 아주 많이 줄어들었을 텐데 말이지요. 다행히(?)도, 이 다음 작품인 '증발'은 문제의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면서도 (제 판단에) 경계를 넘어가지 않아, 지금까지 읽은 것 중 가장 좋아하는 터로의 작품으로 꼽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책을 읽으실 분이 있다면 이미 터로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신 분이겠지요. (아니면 몇 분들^^처럼 관심의 범위가 넓은 전문가시라거나.^^) 따라서 딱히 추천의 말씀을 드릴 만한 것은 없습니다. 읽어보실 분은 나중에 감상을 써주시면 정말정말 고맙겠습니다.^_^ 참, 이 책을 읽으시면 전편 주인공의 뒷이야기를 조금 얻어들을 수 있습니다.

(2007년 2월 9일)




윗글의 기도에 대한 제 언급은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느라 할 수 있는 한 돌려서 쓴 거였습니다. 저한테는 무척 미진했지요. 그래서 결국은 이 뒤에 스포일러를 잔뜩 얹은 버전을 더 써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완성했습니다. 내용과 반전의 폭로에 개의치 않으실 분들은 아래를 눌러 마저 읽으시면 됩니다. 몇 분이나 계실까마는요. 네, 거의 윗글만큼이나 깁니다..


스포일러라 접습니다

위에서 저는 터로가 감상적이며 그게 문제의 기도 같은 장면에서 결정적으로 약점으로 부각된다고 썼습니다. 이 글은 그 대목에 붙는 부연입니다. 위의 말은 사실입니다만, 그 말고도 터로가 오버한다는 느낌을 주는 부분들은 종종 나온다는 걸 우선 언급해야겠습니다. 그럼에도 기도가 문제가 되는 건 그 모두가 합쳐진 결과라는 데 있기도 하고, 미스터리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결말을 흐리기 위해 둔 무리수에 얹혀진 장식이라, 잘못된 방향으로 너무 힘을 주었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과도하게 감상적이라는 증거 중 하나는 작가가 딕슨에게 주는 면죄부입니다. 이 면죄부는 플롯을 꼬아 반전을 만들기 위해 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난봉꾼이며 악덕 기업가고 타인을 자기 멋대로 조종하는 걸 좋아하고 법을 농락하는 걸 재미로 아는, 딕슨이라는 개차반같은 인간-_-;;에게도 양심이 있었고 선한 면이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거든요.

터로의 아내 클라라의 자살과 딕슨 회사에 날아오는 대배심 소환장이라는 두 소재를 중심으로 돌던 플롯은 딕슨 회사 쪽 플롯의 가장 큰 수수께끼, 과연 제보자가 누구인가? 이 문제가 터뜨려지면서 하나로 묶입니다. 이게 소설 군데군데 단서를 흩뜨리면서 꽤 잘 꼬여 있어요. 반전을 모두 폭로하고라도 밝히고 싶은 대목입니다.^^

소설 전반부는 클라라가 자살한 이유를 제시합니다. 클라라는 병원에서 매독과 관련된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건 혼외정사가 있었다는 의미지요. 클라라의 생활 패턴으로 보아 스턴은 상대가 자기도 아는 사람일 거라 생각하고 그게 누군지 꾸준히 찾습니다. 우선은 클라라를 치료한 의사를 찾는 데서 시작하는데, 스턴은 의사인 자기 아들이 어머니와 가깝다는 데 생각이 미쳐 클라라가 그 문제를 아들과 상의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주치의는 스턴 부부 옆집에 사는 다른 의사였고, 그와 이야기해보고 스턴은 클라라가 몇 년 전서부터 자기 모르게 매독 치료를 받아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매독은 여기 나오는 바에 따르면 완치가 불가능하며 단지 증상을 억제하는 것만 가능한 질병이라는군요. 그리고 남자들의 경우는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 없이 보균만 하는 경우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한편 딕슨의 회사 쪽은, 검사가 적재적소에 소환장을 보내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내부 제보자가 있을 것이라는 쪽으로 스턴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추측이 모아집니다. 스턴은 소환된 서류들을 검토해보면서 딕슨이 주식 시장에서 회사에서 알게 된 정보를 불법적으로 이용해 개인적인 돈놀이를 했던 사실을 알게 되고, 검사의 추적이 그쪽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심증을 굳힙니다. 딕슨의 회사는 오래 전부터 정부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왔고, 딕슨의 공격적인 태도가 여러 사람의 앙심을 샀기에, 기회는 이때다 하는 식으로 달려들고 있는 양상입니다. 문제는 그 구좌를 관리하고 있던 사람이 스턴의 막내사위였다는 것이지요. 존(그 친구 이름입니다) 역시 결국 대배심 소환장을 받습니다. 스턴은 딕슨과 딕슨의 회사 모두를 대리하고 있고, 존의 증언은 양쪽 모두에 해가 될 수 있기에, 스턴은 막내사위의 변호사가 되어주지 못합니다. 스턴은 이 일로 마음고생을 좀 합니다. 막내를 많이 아끼거든요.

그런데 막판에 밝혀진 제보자의 정체는 모두를(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제보자의 정체를 오래도록 모르고 있었던 - 제보자는 다른 기관에 제보를 했고 일선 검사는 기소만 맡았으니까요 - 담당 검사가 그걸 알고 격분한 모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읽는 사람들 이야기지 등장 인물 모두가 알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깜짝 놀라게 합니다. 스턴의 의사 아들, 피터과 존이 합작해서 벌인 일이었거든요.

진상은 이렇습니다. (으하하, 무슨 탐정같은 말투가=_=) 피터는 오래 전부터 딕슨이 스턴 가족을 좌지우지하려고 애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머니가 딕슨과 딱 한 번 외도한 결과로 매독에 걸려 고통받은 사실을 알고부터는 더더군다나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존은 썩 잘하는 일도 재주도 없는 사람으로 빨리 돈을 벌고픈 마음에 딕슨의 구좌에서 딕슨의 돈으로 돈놀이를 하다 딕슨의 돈을 까먹고 빚을 졌던 겁니다. 딕슨은 그걸로 존의 약점을 잡아 가지고 놀았고, 동생 부부와 친했던 피터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걸 딕슨을 벌할 기회로 포착했습니다. 존이 한 일을 딕슨이 한 일로 둔갑시켜 FBI에 제보한 거죠. 피터는 당연히 그 일을 어머니 클라라에게 말했고, 클라라는 매독이 통제가 안 되고 재발한 사실에다 옳지 못한 음모(?)와 가족간 불화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감정이 겹쳐 자살하게 된 겁니다. 딕슨은 당연히 일의 전모를 알고 있었지만, 클라라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당하고 있었던 거지요. 딕슨은 결국 스턴에게 검사와 유죄 인정 거래를 하라고 주문합니다. 재판을 거치지 않고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형량 합의를 하자는 건데, 스턴이나 딕슨이나 그 경우 실형 이하로 합의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스턴은 양심상 그걸 반대하지만, 딕슨은 스턴이 자기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자기 손으로 할 만큼 냉철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고, 자기 뜻을 밀어붙입니다. 스턴도 자기가 결국은 합의를 받아들이게 될 거라는 걸 압니다.

그러나 스턴이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딕슨은 심장마비로 사망합니다. 정부가 노린 건 딕슨 개인이었는데, 당사자가 죽었으니 수사고 기소고 아무 의미가 없어진 거죠. 그 일은 정부의 거대한 서류더미 속에서 잠잘 운명이 된 것입니다. 스턴의 일도 거기서 끝납니다.

한마디로 터로가 너무 물렀던 거죠. 딕슨을 감옥에 넣고 싶지도 않았고, 스턴에게 자기 선을 넘는 타협을 행하는 결말을 주고 싶지도 않았던 겁니다. 물론 이건 터로가 소설 내내 유지해온 따뜻한 시선에 걸맞는 결말이긴 합니다만, 너무 안이합니다. 숨을 열심히 불어넣어 풍선을 큼지막하게 부풀려 놓고는, 요란하게 터뜨리는 게 아니라 풍선 입구를 쥐고 있던 손을 놓아 바람을 피시식 빼버린 거예요. 거기다 딕슨의 영혼을 위한 스턴의 아름다운=_=(적어도 터로가 엄청 힘주어 쓴 건 알겠더군요) 기도까지 덧붙이니, 반전을 위해 차근차근 쌓아올렸던 그 많은 복선들의 정교함과, 길게 묘사될 기회를 얻진 못하지만 유죄 인정 거래를 놓고 하는 대립의 무거움 모두가 낭비된 느낌이 들어 버립니다. 특히, 스턴이 딕슨의 주문을 이행하면 도덕적인 굴복이 되지만, 그렇다고 안 하면 자기 아이들에게 해가 될 것을 안할 수도 없어 갈등하다 하는 쪽으로 정리가 되는 부분은 그 무게가 가볍지 않습니다. 워낙이 이 소설이 스턴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 며칠 전에 스턴은 변호사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가는 것도 불사하는 어떤 결단을 했었거든요. (그 때 스턴이 감옥 구경을 면한 건 오로지 담당 검사가 마침 제보자의 이름을 상사로부터 듣고 크게 동요해 스턴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읽는 분들이 놀라실^^까봐 덧붙입니다.)

이야기를 그 정도로 밀어붙여 놓고, 그 누구도 다치지 않게 딕슨의 죽음으로 끝을 내고 싶었다면 적어도 작가가 직접 딕슨의 죽음을 추모하는 건 자제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 공간은 독자들에게 주었어야 맞다고 봅니다. 그게 아쉬웠던 겁니다.

특히 반전을 그럴싸하게 만들어 주는 단서들이 군데군데 그렇게 유기적으로 뿌려져 있는 소설에서는요. 관계자가 대부분 스턴의 가족들이다 보니, 여기서는 사실과 사실 사이를 연결해주는 게 가족들 사이의 친밀도입니다. 피터가 존이 딕슨에게 빚을 지고 그로부터 정신적인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건 피터가 존 내외와 가깝기 때문이고, 클라라의 외도의 전말을 알 수 있었던 건 어머니와 가깝기 때문이죠. FBI에 거짓을 제보한다는 생각을 해내는 사람이 피터인 것은 존에겐 그럴 만한 머리가 없기 때문인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존이 애초에 딕슨의 그늘에 매여 있었던 것이고 딕슨의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다 원금을 까먹고 차액까지 생긴 겁니다. 전제가 되고 반전에 다리를 놓아주는 그런 정보들은, 스턴이 아내의 죽음으로 방황하느라 자기 주변을 돌아보고 고찰하는 와중에 꾸준히 독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주인공의 주변사이니 당연하게 묘사가 되는 거죠.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나면 범죄가 되는 그런 일을 꾸밀 수 있는 피터의 냉정하면서도 격정적인 성품도 스턴이 피터와 자신과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다 그려집니다. 심지어 클라라가 자살한 날 제일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사람이 피터입니다. (어머니가 왜 자살했는지 짐작이 가지 않겠어요.)

그렇게 잘 써놓고, 그걸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는 딕슨이 죽어서 모든 게 해결되었다는 식으로 쓰면 허무한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딕슨이 죽어서 모든 게 해결되었다는 결말 자체는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아까 말했듯이 모든 이야기가 워낙 인간에 대해 연민을 품고 그려지기 때문에, 작위적이긴 해도 사실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이 그것뿐인 마당에 그 길을 간다고 해서 비난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철저하게 제 입장에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너무 나가는 바람에(= 기도를 넣는 바람에) 산통을 깼다는 거죠.

그래서 소리내어 웃는 도리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닫습니다


Posted by Iphinoe

  문제를 간단하게 보고 간명하게 정리해낼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부러움을 느낀다. 그건 능력 이전에 기질의 문제인 것 같다. 문제의 핵심을 간파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결론으로 그렇게 단호하게 질러갈 수 있는 걸 보면 부러울 뿐이다.

  그러나 그런 목격담은 나를 스치고 지나갈 뿐, 나를 변화하게 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오래 자취를 찾아오던 분의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들었다기보다는 새 소식이 없다는 걸 확인한 건데, 꽤 큰 대가를 치르신 것 같다. 어디나 그렇듯이 학계는 발 들여놓기가 쉽지 않은 곳인데, 이분은 자기 신념으로 사표를 던졌었다. 그게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2년 전의 책에서, 그 뒤로 여전히 아무 데도 적을 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가장 최근 소식이지만, 그게 가장 최근 소식이라는 건 다시 말해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 성 싶지 않다는 뜻이 된다.

  학교에 적을 두지 못하는 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나는 거의 알지 못한다. 우리 나라에서 흔히 보게 되는 모습과 같은지 다른지도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내 느낌으로 그분은 보장된 자리를 박차고 나간 거였다. 그럴 수 있는 단호함도 타고난 성격의 발로라는 생각을 자주 하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불가능한 정도로 강한 신념이기에 무언가 복잡하게 뒤섞인 심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정말 근황을 알고 싶다면 알 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이분을 알 만한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닫고 내 스스로의 개념없음에 이마를 탁 쳤다. 하지만 가는 길 도중에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어쨌든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내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를 아실 날이 오기를. 그리고 그게 의미가 있는 감사가 되기를. 너무나도 감사드리고 있으니 그 힘이 조금이나마 전해졌다면 좋은 일이 있으리라 믿고 싶었는데 좋은 일은커녕 악재가 터졌으니 내가 무언가를 더 기원한다는 건 핀트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것 같지. 그러니 다만 그렇게만 빌 뿐이다.
Posted by Iphinoe

8시즌 푸념

our town 2007. 4. 6. 17:20

  제법 오랜 동안 팬픽 소스를 떠올리면 죄다 8시즌이라, 좋아하지도 않는 플롯에 왜 변명을 해주고 싶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에서야 그게 제 나름대로 8시즌 전개와 화해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노력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깨닫고 보면 무지 단순하고, 팬심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용납이 되는 것 같진 않아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건 8시즌의 앞 시즌 부정하는 내용 전개입니다. 이건 두 가지 측면이 있어요. 하나는 8시즌 전개가 7시즌 속에 깔려 있던 내용을 완전히 뒤엎으며 진행된다는 건데, 이건 무슨 의도로 깔아놓았는지 이해할 수 없거니와 멀더의 귀환과 맞물려서 제대로 매듭도 안 지어준 채 그냥 흐지부지되었다는 점에서 정말 맥락없고 쓸모없는 플롯이었습니다. 게다가 7시즌에서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으로 보였던 멀더-스컬리의 감정 관계가 8시즌 넘어가선 멀더도 없는 판에 송두리째 부정되었다는 점이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그러나 이건 현실적으로 제작 환경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문제긴 합니다. 8시즌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폭스사와 DD의 협상에 달려 있었고 그게 어떻게 끝날지도 모르는 채 7시즌 피날레를 찍었다니 제작진(특히 작가진)의 혼란이야 따로 말할 필요도 없었겠죠. 플롯이 우왕좌왕하는 게 당연합니다. 8시즌 전체는 아무리 돈을 부어넣고 물량 공세로 찍었다 한들 날림공사라는 냄새를 강하게 풍겨요.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일 겁니다. '뇌의 이상으로 죽어가고 있던 멀더'의 스토리라인이 폼만 잔뜩 잡다 중간에 휘발된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스컬리 캐릭터를 망쳐버린 건 정말 용서가 안돼요. 그것도 새로 들어온 도겟을 띄워주느라 스컬리를 망쳐버렸다는 것. 믿는 자 멀더-회의하는 자 스컬리 역할분담을 도겟을 들여와서 한 칸씩 옆으로 옮기는 기계적인 재배치는 물론 멍청하고 한심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 (일단 M&S 궁합이 너무 좋았고 서로에 대해 정의된 입장이었기 때문에 멀더가 빠지면 스컬리도 위치가 흐려지니까요. 이건 그 누구한테도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멀더가 없기 때문에 스컬리가 의식적으로 멀더의 시각으로 사건을 다루려 한다'는 식의 설명은 - 8시즌 중반에 나오죠 -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7년을 지나오는 동안 스컬리와 멀더가 고수하는 입장의 차이는 정말 그래서라기보다는 편의적인 것, 즉 사건 수사에 있어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정도로 변해 있었으니까요.


  따라서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사건에 대한 스컬리의 태도라기보다는 도겟에 대한 스컬리의 태도입니다. 둘 다 불편하지만 후자의 경우 반감이 더 커요. 제작진이 작정하고 띄워주는 게, 그리고 그 와중에서 스컬리의 캐릭터가 희생되는 게 보이잖아요. 그게 절정에 달한 게 로드러너였기 때문에 그 에피만 생각하면 지금도 헛웃음이 나면서 분노게이지 수직상승이라는 모순되는 반응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겁니다. 좋아해달라고 쓴 신이 도겟에 대한 호감을 늘이는 쪽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이 드라마에 염증을 일으키는 쪽으로 작동한 거죠. 그런 부작용을 모를 제작진이 아니었다고 보기에 왜 그런 이상한 만듦새를 보였는지 이해 불능입니다.


  왜 싫어했는지를 자꾸 되풀이해 말하는 것은 '아 나 정말 8시즌 싫어'를 강조하려는 게 아니고, 실은 일종의 심리치료입니다-0- 8시즌이 남긴 상흔을 씻어내고 완전소중 팬의 모드로 돌아가려면 어떻게든 이 상처를 극복해야 하는 거예요. 극복하고 싶거든요. 좋아한다구요. 8시즌과 좋은 관계에 있지까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떻게든 화해는 해야 '추억'하는 입장에서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작업이 쉽지가 않군요.




  (2006년 12월 20일)


Posted by Iphinoe

2002년에 수룡님 홈페이지에서 했었던 이벤트 응모글이었습니다.^^ 이 글은 2003년 1월에 손을 본 두 번째 버전입니다.

글 접는 태그를 시험해보려고 하는데 잘 안 되는군요. 이번엔 되려나...



길어서 접습니다


제 7시즌 최고의 에피는 연작 에피소드, sein und zeit와 closure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closure입니다. sein und zeit은 그 자체로는 별로...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에피소드로 기억합니다만..^^ 제가 이 에피소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멀더가 사만다를 *감*정*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Redux II 에서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만다를 보았던 게 우리가 사만다를 직접적으로 접했던 에피소드의 마지막이었고, 사실상 사만다를 다루었던 에피소드로서도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맞나요..?? ;;;)


사실 그 사만다 진짜이길 많이 바랬었습니다. 드라마 내러티브상으로도 괜찮은 설정이라고 보았고, 멀더가 사만다를 찾아다니면서 끊임없이 마주쳤던, 사만다가 이용당하고 고통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사실이 아니길 바랬다는 점에서요.


사실 사만다는 멀쩡히 보통 인생을 살아왔던 겁니다!! DNA 뺏긴 다음엔 말이죠.. (사만다 클론은 있었으니.^^)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는데, sein und zeit의 처음 한 20분 정도를 보아 나가면서, 열 좀 받았었습니다.


Paper Hearts의 재탕이잖아!!!!!!!!!!!!!!!!


원판의 그 복잡한 영어를 거의 반도 못 알아듣는 저의 머리로도 상황이 파악이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혼란한 산타 마을의 상황을 보며, 스컬리, 스키너, 무릎꿇고 손을 머리 위로 올린 용의자 위로 카메라가 떠오르며 끝없이 펼쳐질 것만 같은 둔덕들.. 무덤들을 보여주며 sein und zeit가 끝났었죠.


그리고 두근반 세근반 하면서 일 주일을 기다렸습니다.



closure에서 제가 처음 좋아하는 장면, 처음 시작 부분의 멀더 나레이션입니다.


서정적이고, 고아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영어로 보았으니 나레이션은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그 분위기와 그 아래로 펼쳐지는, 무덤을 하나하나 파헤쳐가며 시신을 수습하는 무거운 얼굴들, 밤이 되어 산 사람들은 물러간 공간에서 하나하나 떠올라 빛을 받으며 어디론가 향하는 아이들, 제가 감상적인가요? 아름답더군요.


그리고 다음으로 기억하는 장면은 사만다의 일기장을 발견한 멀더가 식당에서 스컬리와 함께 그 일기를 읽어내려가던 장면.



일기의 내용도 사람을 울렸지만 (네. 감상적입니다ㅡ.ㅜ) 그 순간 멀더의 복잡하고 슬픈 표정, 스컬리의 함께 슬퍼하고 위로해 주고자 하는 얼굴... (무슨 말이라도 해 주고 싶은데 할 말을 찾지 못한 표정으로 보였었죠)


모두 어우러지면서, 멀더의 슬픔이 진하게 다가왔고, 그만큼 비극성이 부각된... ^^ 그런 장면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은... 멀더가 소년의 영혼을 따라 빛의 언덕 (마땅히 부를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붙였습니다^^) 으로 인도되어 사만다를 만나는 장면...


정말 듀코브니 연기 잘하더군요. (식당에서에 이어 두번째로 감동먹음)

사만다의 밝은 미소, 그리고 반가워하고 안도하며 마음을 놓는 멀더의 표정...


사만다가 달려와 멀더를 끌어안고, 멀더가 손을 들어 사만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모습이 저로 하여금 절로 미소를 짓게 했답니다.


물론 이 부분에는 결정적으로, 모비의 음악이 작용했죠. 그 음악이 없었다면 그러한 감동을 받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 자리에 딱 들어맞더군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지막 장면.

스컬리의 괜찮느냐는 물음에 멀더가 "I'm fine."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I'm free.." 라고 했던 장면...


그 "I'm FREE" 에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Paper Hearts의 재탕에 가까운 내용, 멀더답지 않은 뉴에이지적 나레이션, 결국 사만다는 죽은 지 오래다는 사람 허무하게 만드는 결론) 기분이 되었습니다.


Redux II에서도 멀더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내러티브 속에 놓여 있는 사만다를 만납니다.


그러나 멀더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죠... 사만다가 두려워하고 겁내는 것을 알고 떠나보내긴 하지만, 마음 속으로 사만다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는 게 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Biogenesis에서도 스컬리의 돌연한 (사실 말도 안 되는) 물음에 '사만다'라는 (역시 말도 안 되는) 대답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겠죠..


하늘을 올려다보며 "I'm free"라 한 멀더를 보는 순간 저는 이제 더 이상 엑스 파일에 사만다는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물론 8시즌의 향방을 둘러싼 스포일러를 모르지 않았지만요)


멀더는 드디어 사만다를 놓아보낸 겁니다. 그 어둡고 암울한 기억, 자신을 저주처럼 사로잡고 있던 주문을 벗었던 겁니다..


물론 고통스러운 결말입니다만, 멀더를 위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I'm free"라 말하는 멀더의 기뻐하는 것이 아닌, 정말 '자유가 됨'을 드러내는 그 마지막 얼굴은 압권이었습니다.


(표현이 엉망이군요...-_-)




자... 그럼 미진한 감은 있지만 거기서 내버려 두고.. (더 잘 쓰기에는 능력이 딸리므로)


최악의 에피로 넘어가 보면,


제게 있어 최악의 에피는 둘입니다. 우열을 도저히 정할 수 없어 둘 다 쓰기로 했습니다.


둘 다 8시즌인데요, 하나는 roadrunner(종말의 신도들)이고, 다른 하나는 vienen(외계 바이러스)입니다.



'종말의 신도들'이 싫은 이유는 단연코, 스컬리입니다.ㅡ_ㅡ;;


그 에피 내에서의 스컬리에 대한 묘사가 저를 열받게 한 데다 그 전의 3주 동안 스컬리의 캐릭터화가 이그러지는 것에 내내 열받아오던 것이 절정에 달하면서 폭발했고 마지막으로, 저런 심란한 에피소드를 다른 사람도 아닌 빈스 질리간이 썼다는 데 있습니다.


스컬리는 분노할 수는 있어도, 비합리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에 대해서는 그렇습니다.


도겟에 대해 스컬리가 분노했던 것은 절대적으로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그러나 도겟에 대해 비합리적으로 대하는 것은 스컬리답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8시즌 초반에서 내내 스컬리는 변명에 급급한 것처럼 그려지게 되죠ㅡ_ㅡ++


그런데 이 '종말의 신도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제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스컬리를 열심히 부각시켰습니다.


총을 넘겨준다는 어이없는 설정, '나에게 아이가 있단 말야!'라는 어처구니없는 대사 (아이가 있다는 걸 상기시킨 것만으로도 너무 열이 받았거든요^^) 어디서 구원자처럼 나타난 도겟은 또 전형적인 수퍼히어로처럼 스컬리를 번쩍 들어 안고 걸어갑니다. 거기다 쓸데없이 달라붙는 스컬리 옷차림, 그리고 마지막의 사과까지, 완전히 역겨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엑스 파일이라는 드라마 자체의 방향에 대해서 회의하게 만들더군요.



우선 스컬리가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스컬리는 파트너를 무시하고 현장으로 혼자 달려갈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싫어하는 파트너여도, 반드시 같이 갈 겁니다. 더군다나 바로 앞의 에피소드 '박쥐인간'에서 서로 도움 받아가며 사건을 해결했는데 갑자기 그 다음에 마음이 바뀌어서 도겟에겐 사건에 대해서 알리지도 않고 혼자 간다고요?


그건 절대 스컬리가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ㅡ_ㅡ;; (말하다가 또 열받는..)


그리고 총을 넘겨주는 것, 여러 분들이 말씀하셨듯이 법집행관으로서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말도 안 되죠.


그리고 "내겐 아이가 있단 말야!!" 하고 비명을 지를 때 전 그 비명 때문에도 충분히 열받았지만 (아이...-_-++)


그 때 스컬리의 옷차림이 너무 돋보이는 바람에 기겁했습니다. 도대체 1013,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완전히 노골적인 '희생양'의 모습을 드러내는 스컬리..


그리고 대조적으로 너무나 쿨하고 멋있게 나타나 사건을 수습하며 돌아다니는 도겟..


쳇.


이게 1013의 8시즌 전략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아...... 한숨밖에 안 나오더군요.


그리고 마지막에서 스컬리의 사과.


그 상황이라면 사과하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 스컬리를 사과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아넣은 작가한테 하도 화가 나서 TV를 끄고서도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답니다.


아직도 roadrunner는 제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에피소드입니다.




roadrunner는 단독 에피소드니까 그나마 지워버릴 수라도 있죠. 엑스 파일 전체적인 이야기 진행에 크게 영향을 안 미치니까요.


그러나 이 '외계 바이러스', vienen은 제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조차 없는 에피소드입니다.


멀더가 FBI를 이 에피소드를 통해 떠났으니까요.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저를 화나게 합니다!!


8시즌을 마지막으로 듀코브니가 엑스 파일을 완전히 떠나며, 그렇기 때문에 멀더도 엑스 파일을, 나아가 FBI를 떠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8시즌의 마지막에 멀더가 엑스 파일을 떠날 줄 알았습니다.


마지막에 음모론 에피소드가 나오면서, 음모론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새롭게 깨달은 멀더가, '자신이 남아있는 것이 스컬리와 아기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이게 제가 들은 스포일러 내용 그대로입니다^^) 엑스 파일을 떠나는 것으로, 스컬리와 아기의 인생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실 거대한 음모의 소용돌이에서가 아니고서는 멀더가 스스로 엑스 파일을 접고 물러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멀더가 어떤 사람입니까.ㅡ_ㅡ;;


그런데 멀더는 너무도 어이없게 가버렸습니다.ㅠ.ㅠ



스포일러를 접하지 않았던지라, 이 에피소드가 멀더가 떠나는 에피소드인 줄 몰랐습니다.


vienen 내용 자체는 그럭저럭 봐줄 만했고, 특히 기름 대신 흑유라는 설정은 멋있어서 멀더와 도겟 사이에 정형화된 티격태격이 오갈 때를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고 있었지요.


사무실에서 도겟이 멀더와 마주칠 때만 해도, 멀더가 그 순간 '해고'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멀더가 자진해서 책임을 뒤집어쓰고 떠나요? 어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ㅡ_ㅡ++


멀더는 그만 일에 엑스 파일을 내놓을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이게 순전히 저 혼자만의 생각입니까?


(하긴.. Kevin Petterson은 vienen 리뷰에서, 멀더는 그 이전 에피에서부터 자신이 더 이상 엑스 파일과 함께할 수 없으리란 걸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썼습니다만 저로서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잘 모르겠어요.)


멀더가 떠나는 이 장면에서, 그것도 너무나 순식간에 이루어진 (말 끝맺자마자 일어서서 손 내밀고, 도겟과 악수하고 바로 나가버렸죠) 과정에서 저는 충격을 흡수할 여지가 없어 덜덜 떨었습니다.


기가 막힌다는 말 아시지요? 정말로, 문자 그대로, 기가 막히더군요.


가슴이 뻐근하고 묵직하게 뭔가 얹혀 있는 듯한 통증이...


얼마나 놀랐으면, 얼마나 뜻밖이었으면 몸이 그런 반응을 보였겠습니까......-_-;;


그 날 저는 순전히 멀더 때문에, 충격을 흡수할 수가 없어 여기저기 인터넷을 들쑤시면서


새벽 다섯 시 가량까지 앉아 있었습니다.


ㅡ_ㅡ;;;


여담이지만, 사실 그렇게 FBI를 떠나고 엑스 파일을 떠난 멀더가 깨끗이 사라졌다면 그 뒤로 화가 더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멀더는 엑스 파일을 떠났을 뿐이지 계속 엑스 파일들을 파헤치고 돌아다니잖습니까..


스컬리의 출산이 임박했기 때문이라고요?


그러니까 멀더는 8시즌 마지막에 엑스 파일을 떠났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맞지 않겠어요?


아아....


떠나기로 결심한 멀더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스컬리를 찾아와 아이를 사이에 두고 스컬리와 키스를 나누는... (이 장면은 모 카페에서 미리 보았음) 그런 장면을 상상했던 저에게 이건 너무도 과도한 배신이었습니다.




지금 읽으니 방방 떠서 쓴 글 같군요. 8시즌에 대해서는 배신감이 참 컸었습니다. 바로 위에 8시즌에 대한 글을 올리게 될 테니 거기 언급이 됐겠지만요. 참, 2003년 1월 버전에는 이 밑에 다른 어조로 쓴 추신이 있었는데 그것도 올려두겠습니다.



길어서 또한번 접습니다


아직도 8시즌은 내게는 악몽이고 잊어버리고픈 끔찍한 기억이다. 흡족한 에피를 찾을 수가 없었고, 도겟 캐릭터 때문에 스컬리가 망가져 가는 걸 내 두 눈으로 지켜봐야 한다는 게 정말 싫었다. 스컬리가 8시즌 전반부 내내 편협하고 꼬장꼬장하고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내세우며 히스테리컬한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가 된 건 오로지 그렇게 함으로써 도겟을 띄워주려는 의도라고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스컬리는 그럴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건 캐릭터에 대한 왜곡이었다고 본다.


거기다 더해, 8시즌에서 7시즌을 모조리 다시 쓰며 만들어낸, '멀더와 스컬리가 나누었던, 그 어느 때보다도 둘이 감정적으로 가까웠고 안정되어 있었던 그 관계 밑에 뇌의 이상으로 인해 죽어가던 멀더가 있었다'는 설정은 그 때는 물론이고 아직도 용서가 안 된다.


within-without 2부작에서 비현실적으로 큰 가족 묘비;; (심각해야 하는 순간인데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와 함께 등장한, '죽어가고 있었고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던 멀더' 설정이 처음 등장했을 때 나는 당연히 그게 권력협회 or 담배맨 쪽이 상습적으로 해온 증거 조작의 일부라 믿었다. 결국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언젠가는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며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리라, 그래서 멀더가 돌아오면 모든 것이 정리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멀더의 모습을 (비록 플래시백이라지만) 오랜만에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the gift를 내가 싫어하는 이유는 거기서 '죽어가는 멀더' 설정을 현실화해 버렸기 때문이다. (도겟의 말이나 병원 기록 가지고는 안 된다)


멀더가 돌아와서 슈퍼 솔저로 재탄생할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부활하는 바람에 흐지부지되었지만, 그 플롯은 아직도 용서가 안 된다.


Posted by Iphinoe

벌써 1년 반이 지나갔군요. 시간 흐르는 게 가끔은 놀랍습니다.


2005년 여름 한겨레21에서는 부록으로 추리소설 특집을 만들었습니다. 특집의 일부로 설문을 실었는데, 국내 여러 추리동호회를 통해 자료를 수집해서, 몇 분의 설문은 그대로 실리고 나머지는 통계에 사용됐지요. 답과 함께 짤막한 설명을 붙여달라고 했었는데, 그게 마음같이 잘 안 되어 설명을 모조리 빼버렸었기에 당연하지만 제 리스트는 통계 데이터로만 들어갔습니다.


저는 목록을 만드는 데 별 관심이 없어서, 사실 그 때가 추리소설과 관련하여 목록을 작성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특히 개인적인 취향 리스트는 전혀 관심 밖이라, 타인들의 취향에 맞춰 추천을 하는 일은 있어도 제 자신의 취향에 맞춰 우선순위를 매겨본 적은 없었어요. (물론 이 설문이 개인의 취향만을 물어본 것은 아닙니다. 그것만 물어봤다면 답이 달라지는 것들이 있었을 거예요.)


오랜만에 당시 설문에 답한 것을 다시 보니, 역시 평소 생각해본 적이 없던 것이라 그 당시 제 관심사에 많이 좌우됐다는 게 보이는군요. 물론 우선 순위 목록이라는 게 그런 경향이 있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그런 걸 평소에 자주 생각해본 사람은 자신의 취향이라도 두루 돌아보고 대표성을 지닌 것을 고르게 되니까요.


어쨌든 뒤늦게나마 목록을 올립니다. 왜 여기 안 올려두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설명을 달아 올려야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뭐, 한 번 시도해 보죠.^^ 그러나 설명보다는 해명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길어서 접습니다

1. 가장 사랑하는 추리소설 1~5 :

1 - 장미의 이름 The Name of the Rose (움베르토 에코)
2 - 재앙의 거리 Calamity Town (엘러리 퀸)
3 - 오리엔트 특급살인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아가사 크리스티)
4 - 핑거포스트, 1663 An Instance of the Fingerpost (이언 피어스)
5 - 말타의 매 The Maltese Falcon (더쉘 해미트)

이 항목에 답변한 건 저를 아시는 분들은 대충 짐작하셨을 목록입니다. 4번이 의외일 수도 있겠군요. 사실 제가 보기에도 이질적이긴 합니다. 이 항목은 비교적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대표성을 띄는 작가거나 작품이어야 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골랐었는데, 4번은 거기 염치없이^^ 끼었거든요. 나머지는 작품 또는 적어도 작가가 추리소설사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였는데, 4번만 아니니까요.

당시는 '핑거포스트'를 읽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당시 몇 년 간 읽은 작품 중에 개인적으로 주의를 많이 환기시킨 작품이었어요. 물론 지금도 좋아하는 작품입니다만 '사랑하는'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사실 당시에는, 그리고 지금도 '좋아하는'과 '사랑하는'을 구별하면서도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 굳이 구분하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특집이 가이드로서 기획되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비교적 '고전'으로 꼽히는 작가와 작품 중에서 골랐던 것이지요. 그러니 사실 '가장 사랑하는'이라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장미의 이름'은 우리 나라에서의 유명세도 유명세거니와 제게 많은 영향을 미친 작품이고, 언제 어디서부터 펼치건 일단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되는 작품이라 당연히 넣었습니다. 전 주변의 팬을 통해 소개받고 좋아하게 된 취향과, 우연한 기회를 통해 저 스스로 좋아하게 된 취향을 구분짓는 편인데, '장미의 이름'은 후자에 속하는 경우라 애착이 좀 더 가기도 하고요.

'재앙의 거리'와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이들 작가의 작품 중 좋아하는 게 참 많다,는 전제 하에 소개할 만한 작품, 대표성을 띄는 작품 이 두 가지를 고려하여 뽑은 것입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아래 '미스터리 초보에게 추천하는 작품'에 넣은 것으로도 그 대표성에 대한 제 평가를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크리스티의 특징을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퍼즐풀이의 대표적인 작품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넣었습니다. 크리스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변칙적이라 초보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일부러 포와로가 등장한 작품 중에서 골랐다는 것도 인정해야겠습니다. 크리스티의 탐정들 중 가장 좋아합니다.

'재앙의 거리'는 퀸의 여러 가지 매력들을 개중 가장 많이 한꺼번에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골랐습니다. 아무래도 퀸의 1기와 3기 작품들은 다르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재앙의 거리'는 무대가 뉴욕을 벗어나긴 하지만 1기와 3기의 매력을 비교적 아우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이유로 '중간지대'를 고려해보기도 했었습니다만 그건 추리 외적 요소가 너무 길게 등장해서 마음을 접었을 겁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이유라면, 여기서 '엘러리 스미스'가 스스로를 한 방 먹이는 장면은 읽을 때 커다랗게 웃어젖혔었고 지금도 매번 너무나 유쾌하게 생각하는 대목입니다. 사실 퀸은 시공사에서 낸 스무 권+ 꼬리 아홉 고양이 모두를 비교적 고르게 좋아하고, 크리스티는 작품따라 기복은 있지만 '그 한 권'을 짚기 힘들 만큼 좋은 작품이 많은 작가라, 이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고르기가 쉽지 않아요. 퀸이 크리스티보다 앞선 건 역시 제 선호도를 반영합니다.^^ 4번 항목 '가장 사랑하는 탐정'에 퀸을 적은 것으로 설명이 되겠지요.

'핑거포스트'를 '말타의 매'보다 앞서 적은 건 지금 뒤돌아볼 때 제일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입니다만, '핑거포스트'는 서생...으로서의 제게 몇 번이고 다시 돌아볼 수 있는 무언가를 주었던지라 앞선 자리에 놓았던 것 같군요. '말타의 매'는 언제 읽어도 제게는 그 날카로움과 차가운 문체로 기억되는 작품입니다. 스페이드의 캐릭터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데, 전 캐릭터에 많이 좌우되는 성향이 있어서 그런 면에서도 뒤로 밀린 것 같군요. 그러나 사실 다시 읽으라면 '말타의 매'일 것 같습니다. 문체의 문제와 관련해서 제게 서늘한 깨달음을 준 작품이기도 하고요. (같은 언급을 스티븐 킹이 한 걸 읽었을 때 꽤 놀랐습니다.)

변명을 해야 할 부분이라면 홈즈가 없다는 것인데요, 홈즈는 단편 위주라서 장편과 같은 비중으로 생각하기가 아무래도 힘들어서, 홈즈와 크리스티 중에서 경중을 고르다 빠졌던 것 같습니다. 석원 님처럼 '홈즈 전집' 이렇게 답변할 수 있는 배포는 없었거든요.^^

설명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사랑해 마지않는'보다는 대충 다 좋아하니 그 중에서 '들어가야 할 만한' 작품을 고른 의미가 더 큽니다. 그것도 세진 님께서 장르별로 고르셨던 것 같은 일관성조차 지니지 못했었죠. 여러 모로 답하기 난감한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언제 어떻게 대답해도 미진함이 남을 것 같아요. 그래서 목록 작성하는 걸 싫어합니다.;;

지금 다시 고른다면? 역시 4번을 제외하고는 아마 비슷하게 갈 것 같습니다. 못내 사랑하는 작품이라는 걸 딱히 꼽기가 어렵더군요. 사족이 이렇게 길어지는 걸 보시면 제가 한겨레21에 보내는 답에 설명을 다 쳐버린 걸 이해하시겠지요.^^



2. 명성에 비해 실망스러웠던 작품 : 검은 탑 The Black Tower (P.D. 제임스)

사실 이건 몇 줄이라도 설명을 적어볼까 마지막까지 고민했었습니다. 만연체 문장으로 소설을 별 사건 없는 고르게 조용한 분위기로 끌고 나가다가 갑자기 마지막에 지리멸렬한 액션이 나오고는 거기서 갑자기 뚝 끊어지는 느낌이어서... 아직도 작품의 유명세를 이해할 수 없는 책의 하나입니다. 똑같이 만연체가 머리를 부담스럽게 하지만 '여자에게 맞지 않는 직업'이 훨씬 나았어요.



3. 최고의 작가 : ...그런 게 있을까요

그런 건 정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있어 최고의 작가'를 고르라고 해도 못 고르는 걸요.



4. 가장 사랑하는 탐정 : 엘러리 퀸

두둥.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아니, 한 탐정을 지목하기는 굉장히 쉬웠습니다. 퀸을 제일 아끼거든요. 거기에는 의문의 여지도 없고, 탐정에 대한 제 애정도에 있어 워낙 독보적인 존재라 제일 간단하게 답을 적어넣었어요. 그러나 그걸 설명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일단 제가 그 이유를 잘 몰라요.-_-

전 물론 퀸의 개삽질-_-, 간단한 사건을 엄청 복잡한 것으로 만들어놓는 그 복잡하고 현란한 수사와 현학적인 머리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런 면이라면 더 발군의 존재가 있지요. 모스 경감이라고요. 애처럼 뻐기기 좋아하고, 그러면서도 많이도 좌절하고, 그런 면모에 걸맞는 장난기 넘치는 화법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인간적이고 정에 약한 면모도 귀엽습니다. 그러나 그런 효과는 홈즈에게서 더 극대화되어 드러나고, 나이에 걸맞게 좀더 성숙하긴 합니다만 포와로도 퀸 못지않지요. 심지어 전 많은 분들이 작가 퀸의 단점으로 지적하시는 의미없는 연애담도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스크루볼 코미디 보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런 연애담은 퀸이 아니라도 잘 쓰는 작가는 많습니다. 그럼 그걸 다 합쳐놓은 결과일까요? 그러나 '그걸 다 합쳐놓은 결과'라는 말은 '난 그냥 퀸이 제일 좋아요'나 똑같이 무의미한 설명 같습니다.

두어 가지 떠오르는 건 있습니다. 물론 이건 지금 떠오르는 거니까 내일이면 번복될지도 모릅니다.^^ 하나는 리처드 퀸의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 퀸'과 '탐정 퀸'을 어느 정도로 분리시켜 생각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동윤 님과 이 설문 이야기하면서 '퀸이 귀여워요' 이런 식으로밖에는 설명이 안나온다고 했었는데^^, 퀸이 귀여울 때가 많긴 한데 그 중 상당 부분은 아버지와 같이 있을 때죠. 퀸이 툴툴거리는 대상도 대부분은 아버지고, 삽질하다 괴로움을 호소하는 존재도 대개는 아버지입니다. 후기에 들어 니키를 (굳이 필요한 것 같지도 않은) 비서라고 붙여준 이유가, 퀸이 뉴욕을 벗어나 돌아다니게 되면서 퀸과 투닥거릴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었거든요. 라이츠빌 시리즈로 대표되는 3기를 국명 시리즈로 대표되는 1기보다 높게 평가하시는 분들 틈에서 '그래도 1기도 좋아요'하고 박박 우기는 이유 중의 하나도, 1기에는 리처드 퀸이 있어주기 때문입니다. 퀸 경감의 캐릭터를 좋아해서라기보다 엘러리가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빚어지는 효과를 좋아한다고 봐야겠죠.

그리고 '작가 퀸'과 '탐정 퀸'의 문제는... 이건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제가 '작가 퀸'의 장점을 '탐정 퀸'에 투사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요. 1인칭 작품이 아니다 보니 두 존재를 분리시켜 생각해야 하기는 하는데 '작가 퀸'이 '탐정 퀸'이 겪은 일을 3인칭으로 쓴다, 가 이 시리즈의 기본적인 모토이니(아무리 뒤로 가면서 이 전제가 망가진다 하여도), 제 혼란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릅니다. (사실 이 뒤에는 '작가 퀸'을 창조한 두 사람이 또 따로 있기 때문에, 생각하다 보면 점점 복잡해집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퀸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유쾌한 정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건은 진지하게 바라보고 다루지만 유머가 늘 잘 살아 있고, 가장 무거운 축에 속하는 '열흘 간의 불가사의'조차도 후반부 바로 전까지는 아무리 상황을 이리저리 꼬아 심각한 장면을 연출한다 하여도 모든 에피소드가 웃음을 선사하는 데 있어 실패하는 법이 없죠. 굉장한 장점입니다.



5. 가장 인상적인 악당 : 모리어티 교수

이건 좀 힘들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범인'이라면 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적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악당'이라면 실제로 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모리어티 교수밖에는 적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어요. 그게 당시 생각입니다만, 지금 생각해도 다른 답변이 나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른 분들 답변을 보고 하는 말입니다만 뤼팽을 꼽으신 동윤 님 선택이 인상적이긴 했는데, 전 뤼팽이 보통 사람과는 좀 다른 윤리의식을 가진 모험가에 가깝다고 생각(물론 악당은 악당입니다만)하는 편이라...



6. 가장 훌륭한 결말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결말 :

가장 훌륭한 : 열흘간의 불가사의 Ten Days' Wonder (엘러리 퀸)
어처구니없는 : 탐정을 찾아라 Catch Me If You Can (패트리셔 매거)

이건 정말 주관이 개입된 답변입니다.^^ 사실 '훌륭한 결말'이라면 제가 '훌륭한'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설명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겠지요. '열흘간의 불가사의'는 시리즈물에서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늘 놀랍고 감탄을 자아내는 작품이었습니다. 퀸을 쓰는 두 작가의 도전적인 면모는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백과사전적인 위대함이 자주 논의되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아쉽게도 늘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열흘간의 불가사의'는 그런 증거로 제시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일 겁니다. 물론 이건 한정된 제 경험 안에서만 하는 이야기입니다. 영미권의 평론가들이나 그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니까요.

'탐정을 찾아라'는 제 기대를 너무 배반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고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정말 변하지 않을 거예요. 제목이 '범인 찾기'라는 추리소설의 기본 명제를 뒤튼 것이기 때문에, 전 당연히 이 작품이 '범인 찾기'를 비틀어 적용했기를 기대했고, 그래서 탐정 찾는 과정이 추리소설에서 범인 찾듯이, 구체적으로 말하면 고전기 퍼즐풀이에서 범인 찾듯이 나와주길 기대했습니다.

이건 이 작품을 원제로 알고 보았다면 하지 않았을 기대입니다. 'Catch me if you can'은 '탐정을 찾아라'가 함축하고 있(다고 제가 보았던)는 메시지 따위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어쨌든 기대를 해버렸던 저는 서스펜스물인 이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점점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탐정의 존재 때문에 점점 자기 목이 죄어오는 듯한 그 불안감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 잘 그려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요. 이 소설의 주제는 '공포 때문에 스스로 무리수를 두고 만 주인공'인데 - 소설 마지막에 정체를 드러낸 탐정이 직접 그렇게 말하지요 - 그 무리수로 향하는 과정이 그다지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고 그냥 '정말 무리다'는 생각밖에 안들었으니까요.



7. 가장 완벽한 범죄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 (아가사 크리스티)

이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골랐습니다. 좀... 멍청한 질문이라고(죄송) 생각됐던 터라... 쿨럭;; 이 소설의 특성을 생각할 때 너무도 당연한 선택이지요. 흠흠. 세진 님께서 제프리 아처의 '한 푼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를 들어주신 걸 보고 아차 또 있었군 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후자의 경우는 범죄인지 아닌지조차 사기친 당사자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기물이었으니 전자에 만족할래요.



8. 가장 멋진 대사

지노와 나는 모두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모든 악몽의 결론은 바로 이것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그이고 그가 나이며, 밤의 어두운 느낌 속에서는 희망과 공포가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

(의혹 Pleading Guilty, 스콧 터로우)

이건 번역본의 주어진 문장 그대로를 좋아합니다. 원본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다가오는 의미도 조금 다르고 결정적으로 덜 멋있었어요. (쿨럭;;) 전 좀 원본주의자의 면모를(자랑스럽지는 않지만)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몇 안 되는 예외에 속합니다.

그 이상은 따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9. 배신하지 않는 작가(가장 믿을 만한 작가) : 딕 프랜시스, 스콧 터로우

딕 프랜시스는 제게 있어 상업적인 작가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느껴지는 작가입니다. 논란거리가 될 만한 부분도 없고,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것도 아니고, 소재는 특별하지만 그 외에는 정말 재미에 충실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재미만 추구하다 무언가가 희생되는 것도 아니고요. (여기서 할란 코벤이 떠오르는 이유는?) 매 권마다 주인공이 달라지기 때문에 시리즈물로서의 개성을 찾기도 막연하지요. 그래서 언제 읽어도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집게 되는 작가입니다. 그리고 그만큼은 틀림없이 가져다 줍니다.

스콧 터로는... 요새 어쩌다 보니 이 작가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많이도 했습니다만... 그 역시도 비슷한 의미에서 안정감 있는 타율을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추리소설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빼어난 작품은 없지만, 실망을 주거나 아쉬움을 남기는 일도 없습니다. (터로의 작품들에서의 감정의 과잉에 대한 이야기를 한 건 아쉽다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 특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작품 따라 읽는 사람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였어요. 그걸 아쉬운 점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런 작가들이 더 있겠지만, 아직까지 제게는 이 두 사람이 전부입니다. 그런 작가가 더 있다면 정말 환영합니다. 추리소설은 근본적으로 제겐 오락거리인데, 팬의 마음으로 보기 시작하면 가볍게 잡기가 점점 힘들어지거든요. (퀸은 그런 측면에서도 불가사의하며 단연코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팬으로서 바라보면서도 가볍게 집을 수가 있단 말이지요.)



10. 가장 잘된 추리(미스터리) 영화 : 니고시에이터 :D

이건 전적으로, 당시 '스팅'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적어넣은 겁니다. (그래서 웃는 아이콘이 달렸었;;습니다.) 단연코 '스팅'입니다. 하지만 그건 미스터리 영화가 아니라 케이퍼물이군요. 그러고 보니 케이퍼물은 추리물인가요 아닌가요?;;



11. 우리나라에 꼭 소개되어야 할 작품(절판된 작품 포함) : 베크 시리즈, 펜슬러 시리즈, 에드워드 D. 호크의 작품들

이건 추리문학사에서 중요하니 소개되어야 한다!보다, 제가 읽고 싶은 작품들로 골랐습니다. 그러니 더 묻지 마세요.^^ 베크 시리즈는 '웃는 경관'의 모든 게 너무나 인상깊었고, 같은 경찰물들 중에서 리버스 경감 시리즈만큼 사람 힘을 빼는 어두운 분위기도 없고 87분서보다 묵직한 시리즈라 정말 전작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모든 작품이 '웃는 경관'급이라면, 번역되어 나온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겁니다.

펜슬러 시리즈는 제가 늘 고맙게 생각하는, 농담같이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는 작품들입니다. (겨우 두 권 읽었습니다만..) 오해를 살까봐 덧붙이는데, 위의 표현은 '범죄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다'와 결코 동의어가 아닙니다. 'Death in a Tenured Position' 같은 작품은 사회파 추리소설 못지않게 신랄하면서도, 그걸 결코 무겁지만은 않게 짚고 있거든요. 유머의 맛이 잘 살아 있는 작품들이라, 그래서 좋아합니다. 그래서 더 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 유머가 번역하기 매우 힘든 언어적 유희가 많아서, 과연 번역될 날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크리스티나 홈즈도 그런 식의 영어 유머가 많은데 보면 번역할 때 그런 맛이 거의 사라지더라고요.

지금 적으면서 생각하니, 펜슬러 시리즈에 끌리는 이유를 잘 파면 제가 퀸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상당 부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가 좋아하는 점을 여러 모로 공유하는 것 같아요. 퀸도 유머가 잘 살아 있는 작품이고, 그 유머는 시덥잖을망정 특정 대상을 겨냥해 아픈 데 찌르는 그런 빈정거림은 결코 아니거든요. 그리고 둘 다 수다스런 작품이기도 하고요.

에드워드 D. 호크는 poirot 이상준 님을 통해 소개받고 궁금했던 작가였습니다. 큰 의미는 없었어요.



12. 가장 좋아하는 국내추리소설(1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면) : 알라 할림

...국내추리소설을 얼마나 안 읽었는지부터 고백해야겠습니다. '알라 할림'은 괜찮은 작품입니다만 일단 무대부터가 우리나라가 아니지요.; 반칙이었습니다. 반칙이 아니라면 변칙은 되겠군요. 그리고 실은 아주 좋아하는 작품도 아닙니다. 경현 님께서 많이 지적하시는, 주인공을 통해 아는 티를 내는 경향이 좀 있어요.^^ 그러나 그 정도의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라면 분명 읽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받고 있는 대접(완전히 무시됐지요)보다는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소설입니다.



13. 미스터리 초보에게 추천하는 작품 셋(순위 없이) : 도둑맞은 편지, 말타의 매, 오리엔트 특급살인

셋 다 기본입니다. '도둑맞은 편지'는 포의 작품이니 당연히 들어가야 하고, 그 중에서도 추리소설에서 중요한 트릭과 시선의 문제를 촌철살인의 정확함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 '모르그 가의 살인'보다 좋아합니다. '말타의 매'는 하드보일드의 시초이자 그 중에서도 뭐랄까, 돋보이는 맛을 지닌 작품이고요.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설명이 더 필요할 텐데, 일단 고전기에서 한 작품을 골라야 한다는 걸 전제로 깔고, 도일와 크리스티 사이에서 고심을 했었습니다. 퀸은 제 개인적으로야 매우 좋아하지만, 입문자에게 처음으로 추천을 하는 경우라면, 시초이자 완성형인 코넌 도일와 백과사전적으로 트릭과 플롯을 거의 모두 커버한 크리스티 중에서 고르는 게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홈즈 시리즈에서 작품을 뽑지 않은 것은 홈즈의 경우 대표작이라 할 만한 '그 한 작품'을 고르기가 힘들어서도 있고, 단편 위주이다 보니 포가 어느 정도 커버한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합니다. 크리스티도 '그 한 작품' 고르기는 힘들지만, 퍼즐 미스터리의 진수를 골라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둘 경우에는 답이 비교적 명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오리엔트 특급살인'입니다. 그리고 의외의 범인이라는 점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이니까, 기본적인 요소는 다 갖춘 셈이지요.

그렇게 쓰다 보니 '오리엔트 특급살인'이 가장 나중에 들어갔는데, 셋 중에서 읽을 순서를 정하라면 '도둑맞은 편지' - '오리엔트 특급살인' - '말타의 매' 순입니다. 추리문학사적으로도 맞고, 작품 경향상으로도 그게 어울리지요.



14.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그 이유. : 응집력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

사실 그 이유는 아직도 찾는 중입니다. 동윤 님의 답변('욕망'을 다룬다는 점에 주목하신)이 많이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만 그걸로 충분치가 않아서요.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 추리소설의 의미를 설득할 때 가장 맞는 답변이긴 합니다만 제 개인적인 동기까지 설명하진 못하는 것 같아요.



15. 그리고 할 말이 남았다.

없었습니다.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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