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빚진 감도 있고 해서 이 책 감상을 쓰려고 그동안 수없이 컴을 켰다 말고 창 열었다 닫고 했었는데, 오늘도 시도해 봅니다^^


  스토리는 꽤 간단하면서도 흥미롭습니다. 봄이 한창인 4월, 87분서에는 두 가지 사건이 한꺼번에 접수됩니다. 한 가지는 옷이 전부 벗겨지고 양말과 구두만 신겨진 채 공원에 버려진 시체가 발견된 것이고 ㅡ 타살이 분명했죠. 문제는 시체의 신원을 알아낼 수 있을 만한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형사들은 골치를 썩이게 됩니다 ㅡ , 다른 하나는 메이어 메이어의 아버지와 친했다는 친구분의 공장을 시작으로 하여 시내 수십여개의 상점에 이상한 장난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첫 번째 사건은 스티브 카렐라가 맡아 수사하고, 두 번째 사건은 자연스럽게 메이어 메이어의 담당으로 넘어갑니다. 각자의 사건을 따라가면서 형사들은 신비스럽게 젊은 나이에 60대의 노인과 진지한 관계를 맺어왔던 20대의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기도 되고, 자신의 아버지를 새삼스럽게 되새겨보게 되기도 하고, 죽을 위기를 맞기도 하고 (누구일까요?),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긴 동료 때문에 침울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안도감을 느끼며 그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도 4월 30일을 목표로 한 장난 전화는 계속되고, 아이솔라(도시 이름이죠) 어디에선가는 The Deaf Man으로 알려지게 될 인물의 지휘 아래 모종의 사건이 기획되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슬쩍 끼어드는 이들에 대한 묘사가 메이어 메이어의 사건과 겹쳐들면서 더 큰 그림이 드러나고, 사건은 클라이막스로 치닫게 되죠.


  87th Precinct series로 알려진 이 시리즈를 원서로 보기는 처음인데요, 이걸 읽고 나니 맥베인의 스타일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동안 번역서로도 서너 권 정도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번역되지 않았던 (어느 쪽인지는 다시 체크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모르겠습니다) 문체의 특징들이 드러나는군요. 번역서의 경우에도 두드러졌던 날씨 묘사는 원본에서도 같습니다만, 그 외에도 뭐랄까, 이 시리즈를 '대중소설'로 분류할 법한 특징들이 보입니다. 말주변이 없어 이렇게밖에는 표현을 못하겠는데, 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보면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방식을 즐깁니다. 문장도 꽤 반복적이고요. 만약 '단서가 없어 혼란스러웠다'는 말을 하고 싶다면, 그는 표현을 바꿔가며 같은 문장을 두세 번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가끔은 직접적으로 그 끝에 독자에게 호소합니다. "Coplovers,"라 부르면서, '...이런 상황이라면, 혼란스러운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하는 식이죠. 아주 노골적인 예가 하나 있었는데 다시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이런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좀 계면쩍었습니다. 반복하면서 강조하는 스타일은 저도 익숙한 방식인데, 자주 사용되니 왠지 우습기도 했고요.


  서점에서 제가 서너 권의 87분서 시리즈들 중에서도 이걸 골랐던 것은 이게 비교적 옛날에 발표된 책이기 때문이라는 점도 이유가 되었지만, 그것보다는 책 표지에 나온 두 구절이 흥미를 끌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책 앞표지의 'With a new afterword by the author'였고, 다른 하나는 뒷표지에 커다랗게 나온, 'Ed McBain introduces the Deaf Man in THE HECKLER'였습니다.


  감히 말하건대, 87분서 시리즈의 흐름을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맥베인의 후기만으로도 이 책은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사시라는 건 아닙니다^-^). 어디서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어 The Heckler의 기반이 된 '위협 전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여 The Deaf Man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내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거든요. 저는 The Deaf Man을 다른 책에서는 만나보지 못했습니다만, 맥베인의 말에 따르면 원래 이 캐릭터가 The Heckler에 처음 등장할 때는, 87분서 시리즈의 수장 격인 카렐라 형사의 아내를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고안했으니 한 번 비슷한 장애를 가진 캐릭터로 이번에는 완전한 악인을 등장시켜보자, 는 취지에서 계획했던 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리즈가 거듭되고 이 사람이 계속 '출연'하게 되면서, 어느 새 카렐라의 대척점에 선, 맥베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홈즈에게 모리아티 교수가 그렇듯 스티브 카렐라에게' 그런 존재로 정착하였다고 하는군요.


  이런저런 사연도 있고 하여 읽기 시작하여 끝내는 데 거의 4달 가까이 걸렸습니다만, 보람이 있었습니다.^_^ 왠지 87분서 시리즈의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시리즈에 대해 훨씬 더 잘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덧붙임 - 제목인 The Heckler는 장난치는 사람, 놀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바로 문제의 협박성 전화를 끊임없이 걸어대는 사람을 가리킨 보통명사입니다.


  (2004. 01. 12)


Posted by Iphinoe

  서머셋 모옴(동서에서는 '모음'으로 썼더군요. 어느 쪽이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입에 익은 게 이쪽이라..)이 1차 세계 대전 때 첩보원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쓴 소설입니다. 책 뒤의 소개에 따르면 옴니버스 식 단편집이라는데, 각각의 스토리가 독립성 못지않게 연계성 또한 강해서, 그냥 한 편의 장편소설로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한 장이 끝나고 휴지기를 두고, 제목 다시 달고 시작하는 여느 단편소설집의 구조를 택하지 않고 소제목처럼 작게 타이틀 붙인 다음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이어붙이는 식으로 편집한 것도 그런 점 때문인 것 같아요.


  작가의 분신인 듯한 첩보원 ㅡ 여러 나라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작가인데, 전쟁이 터지자 영국 정보부에서 스카우트해 이런저런 첩보 업무를 맡기게 되는 사람입니다 ㅡ 이 지령을 받아 이런저런 장소에서 다양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중심 내용이긴 하지만, 임무의 자세한 내용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그게 핵심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센덴'은 주인공 어센덴이 정보부의 밀명을 받아 이런저런 일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스쳐가는 다양한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열과 마음은 과거에 묶어두고 허물만 남아 현재를 가면 쓰듯 살고 있는 외교관도 나오고, '미국인다운' 에너지와 고집으로 똘똘 뭉친 저돌적인 기업인도 나오고, 사랑과 자신의 안전 사이에서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는 (전쟁통에 많이 있었을 모습이죠)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도 있고, 작게 지나가기는 하지만 아들의 안전을 위해 위험을 매일 감수하는 어머니도 있습니다. 심지어 인간을 관찰하는 것을 직업적 습관으로 삼는 어센덴조차도 쉽게 파악해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죠.


  어센덴은 그들이 엮어가는 이야기에 참여하지만, 일종의 초연함으로 주어진 일들 또한 처리합니다. 서머셋 몸의 작품 중 읽은 것은 예전에 범우사에서 냈던 (것 같은) 단편집 하나밖에 없지만, 냉소적인 아이러니로 종교적 윤리의 허구성을 짐짓 담담하게 그렸던 비(Rain)라는 작품이 인상에 남았었습니다.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정도는 아니지만, 동정심 없이 인간을 관찰하는 시선이라고 할까요, 그런 걸 느꼈었는데, '어센덴'도 그런 점에서는 비슷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게 불편하지는 않은데, 그럼에도 그게 왜 불편하지 않단 말이냐...까지는 아직 대답을 못하겠습니다.^^


  좋은 책이군요.



  (2004. 03. 16)


Posted by Iphinoe

  왜 추리소설을 읽는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지, 답이 잘 안 나오더군요. 전 뭘 좋아하면 왜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터라. 그런데 이 문제는 항상 답이 잘 안 나와요.^^;


  물론 근본은 '재미있으니까'인데, 여가 선용할 작정으로 추리소설을 집어들 때를 보면 아무래도 익숙하다는 게 제게 장점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장르문학은 아무래도 고유의 독해(?) 방식이 있지요. 그 방식을 일단 아니까, 설사 낯선 책을 대할 때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익숙함이 있습니다. 물론 이걸 '추리소설 읽는 이유'로 내미는 건 한참 초점을 벗어난 거죠. 애초에 왜 읽기 시작했나, 이 장르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나가 관건이니까요.


  그런데 묘한 것은, 추리소설의 기본적인 독해 타입과 저는 거리가 멀다는 겁니다. 전 트릭에 신경쓰지 않아요. 읽는 동안은 반전에도 거의 괘념하지 않지요. '추리소설'의 '추리'에 굳이 개의하지 않으며 읽곤 합니다. 작가와 대결하듯 '범인을 맞춰보자!' 하고 책을 읽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저는 그런 방식과 거리가 멉니다. (그러면서 독자와 대결을 즐긴다는 퀸 씨 같은 작가/탐정 작품을 좋아하니, 저도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전 왜 추리소설을 읽는 걸까요.


Posted by Iphinoe

  1. 본격물의 구조를 조롱거리로 삼은 이 작품이 체스터튼이 활동하던 시기에 벌써 나왔다니 놀랍습니다. 추리소설의 황금기는 아직 농하지도 않았을 때인데요.;;


  2. 동서에서 낸 책 뒷표지의 소개 때문에 책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갖고 시작했습니다. '(트렌트가 사건에 뛰어들어 금세 범인을 밝혀낼 것이기에) 재도전을 받고 다시 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이 실제 중심이 되리라'고 생각했거든요. 때문에 트렌트가 범인을 지목하기까지 마음이 급해서 대강대강 눈으로만 읽었습니다. 나중에야 각각의 분량을 추산해보니 그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뼈아프더군요. 재미있기만 한 게 아니라 흥미로운 책이었는데요. 로맨스도 귀여웠거니와, 자신만만하던 탐정이 코가 깨지는 모습은 여러 모로 쾌감을 주지요^^;; 게다가 트렌트는 젊다는 점부터, 실력으로는 노련한 프로페셔널임에도 실제로는 아마추어인 데다 묘하게 경험 부족이라는 티를 풍긴다는 점까지 제가 좋아하는 누구랑 아주 닮았더군요.


  3. 하여 감상을 쓰지 않으렵니다.T.T


  (가려다 다시)4. 책의 스포일러의 반을 밝혀놓는 그런 줄거리 소개는 상당히 짜증스럽습니다. 제발 좀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국일미디어스러운 책표지까지는 아니라도, 동서도 좀 아둔한 짓을 할 때가 심심치 않군요.T.T 책을 흥미있게 소개하려다 보니 다른 방도가 없었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만... 덕분에 책 읽는 재미가 반 넘어 깎여나간 것 같아요.



  (2004. 03. 20)


Posted by Iphinoe

  다 읽는데 걸린 시간은 도합 3시간을 넘지 않는 것 같지만, 중간에 손을 놓았었기에 닷새 정도 걸린 책.


  ...취향이 아니다.


  '형사 메그레'는 아주 좋았었는데.-_-;; 아무래도 '탐정만 아는 심리극'을 읽고 나면 속았다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다음에, 두 사람 간에 오간 심리전에 차분히 집중하면서 읽을 수 있게 되고 나면 마음에 들 지도 모르겠다.




  덧붙임 - '황색의 개'는 읽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판으로 예전에 읽었었는데, 뒷맛이 아주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같은 때는 보고 싶지 않다.



  (2004. 04. 06)


Posted by Iphinoe

  (충실하게 퀸의 팬으로서 썼으니 감안하고 읽으세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동서미스테리북스 출간본으로 읽었습니다.)



  내용 보기

  '꼬리 아홉 고양이'는 여태까지 봤던 그 어떤 퀸의 소설과도 같지 않다. 우선 연쇄 살인은 엘러리 퀸과 같은 고전기 탐정들의 방식으로는 탐정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상당 부분 제한한다. 연쇄 살인에서 중요한 것은 패턴과 물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용의자 사이를 돌아다니며 피해자의 주변 인물들을 들쑤셔놓고 원한 관계를 추적하고 그것들과 증거와의 연관성을 탐구하는 그런 수사가 이루어질 여지가 거의 없는 것이다. 퀸 부자가 이 사건이 위장된 연쇄살인 사건은 아닌가를 놓고 토론하고, 엘러리가 사건을 도와주겠다고 찾아오는 희생자들의 동생을 선뜻 받아들이는 대신 거리를 두는 것은 두 사람이 고전기 추리소설의 '정통적인' 방법으로 이 사건이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ABC 살인사건'을 연상시킨 내용이었다). 그러나 '꼬리 아홉 고양이'의 아홉 살인 사건은 연막탄 이상의 것이었고, 결국 범인의 윤곽은 우연히 어떤 사실 하나가 노출되면서 드러나게 된다 (= 엘러리의 추리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이 분량 긴 소설의 대부분은 추리와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들이 담당한다.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아우르고 짜임새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연쇄살인이라는 얼굴 없는 무작위적 범행이 뉴욕 시 전체에 몰고 오는 공포와 불안이다. 폭동과 공황 상태에 대한 묘사는 과장일 수도 있지만 이 사건이 사람들의 마음 속을 어느 정도로 헤집어놓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다. 엘러리 역시 그 무게를 알기에 스스로 결심한 바를 어기고 사건을 맡는다. 퀸 경감이 이 연쇄살인의 특별전담반을 맡고, 시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퀸에게 특별수사관의 일을 부탁하는 것은 퀸으로 하여금 일을 회피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한 작가 퀸의 전략이다.;)


  평소의 모습답게 희생자들에서 패턴을 찾아냈지만, 그 패턴이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없어하는 엘러리는 범인을 잡아 사건을 종결짓고도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남아 있다는 것 때문에 고심한다. 이는 엘러리가 어쩔 수 없이 아마추어 탐정이라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통상적으로 경찰은 범인을 잡아 사건을 종결지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검찰은 공소유지를 해 재판을 만들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러나 퀸은 (다른 작품들에서) 스스로 말했듯 진실을 찾아 범인을 쫓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하는 것이다. 물론 범인을 쫓는 사람은 누구나 크건 작건 이 기질을 가지고 있지만, 범인을 잡는 일로 밥을 먹고 살지 않는 사람들은 이 기질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 (물론 홈즈 같은 괴물도 있긴 하다.)


  추리소설이 근대적이라고 느껴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추리소설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폭력적 균열이다. 탐정은 결국 소설 마지막에 범인을 잡아 일탈을 제거하며 흐트러졌던 세계에 질서를 되돌린다. (인식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증거들을 주워모아 의미를 부여하고 체계를 세운다는 점도 근대적이다.) 그런데 이 사건과 그 전 사건 둘 다에서 엘러리는 스스로는 질서를 부여했다고 생각했으나 곧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절망만을 보여주지는 않았으나 그다지 희망적이지도 않다. 엘러리는 다시 지난한 자기 신뢰 회복의 과정을 겪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범인이 체포되고 나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일종의 묘한 흥분과 들뜬 분위기,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딘가 모르게 주변 사람들과 격리되어 앉아 있는 퀸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 인간은 또 기절한다.) 그 전 사건에서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재기 불가능할 타격을 입었던 모습을 보았던 터라, '꼬리 아홉 고양이' 내내 다루어지지는 않지만 저변에 흐르는 퀸의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이 사건 해결로 홍수에 둑 터진 것처럼 거대한 흐름으로 터져나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또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야 말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퀸의 절망은 어떤 것이었을까. 물론 두 사건에서 퀸이 패착을 범한 부분은 조금씩 다르고, '꼬리 아홉 고양이'에서 치러진 희생은 퀸으로서는 손쓸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범인으로 기소된 사람의 매 사건에 대한 알리바이를 다시 검토했어야 할 퀸의 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셀리그먼 박사의 말도 진실이고, 퀸의 자책 또한 진실이다.


  동윤 님 말씀처럼, 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모르겠다. 통상적인 추리소설도 아니고, 하드보일드는 더더군다나 아니며, 책의 앞과 뒤에서 대구를 이루는 퀸의 바닥을 치는 절망은 배경지식 없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이런 도전을 했다는 점에 정말 두 사람(한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다. 당대에는 퀸의 팬층이 두터웠다는 증거로 생각하련다.(^^)



  (2004. 05. 29)


Posted by Iphinoe

  (문덕사, 1992)



  책 서문에는 폴레트의 글이 붙어 있습니다. 그 짧은 머리말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바늘 구멍>이 나온 직후인 1976년에 쓰여졌으며, 나의 잘 안 팔린 소설들 가운데선 가장 낫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전 폴레트의 다른 작품으로는 '바늘 구멍'밖에 보지 못했지만, '종이돈'이 잘 짜여진 소설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동의합니다.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내용은 런던의 정,재계와 한 석간 신문사를 중심으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다룹니다.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일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발표가 기다리고 있고, 그 발표를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있고, 어떻게든 괜찮은 기사를 뽑아내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으려는 신문이 있습니다.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은 서로 부지런히 정보를 얻어내고 교환하며 일을 저지르고, 삶을 정리하려는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 고리가 되고요. 마지막에는 그 모든 정보가 신문사로 모여들지만, 변화된 상황에 따라 그 정보는 제자리를 잃어버리고 맴돕니다. 얼핏 보기에는 좌충우돌하던 모든 요소들이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것들은 또다른 변수가 되겠죠. 소설은 그런 미래를 열어놓고 끝납니다.


  권선징악적이지 않은 결말이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재미를 줄이고, 센세이셔널하지 않은 묘사가 그 자리를 메우는 소설입니다. 등장 인물이 많고,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입니다. 하루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내린 각 개인의 판단이 모두 어우러져 하나의 큰 그림을 형성하는 그런 유기적인 전개가 복잡하게 그려지지는 않지만, 모두가 맞물려 돌아가며 큰 얼개를 짜나가는 것만큼은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이를테면, 대규모 노상 강도는 한 등장 인물의 행동으로 계획에 없는 사상자가 생기면서 경찰에게 노출되었고, 덕분에 한 기업가는 당장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 둘이 손잡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아 평판이 중요한 기업인에게는 이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현재의 사건은 곧 미래의 복선이 되고, 그건 다시 결말을 열어놓습니다. 흥미로운 구조였어요.


  인물 하나 하나는 시간과 공을 들여 창조되었고, 그런 만큼 그들 각자가 지니는 배경과 상황, 행동의 배경에 뜬금없는 면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계된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이 날을 기점으로 크게 전환하게 되고, 정,재계 판도에 변화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날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그저 그런 하루였을 뿐입니다. 그런 점이 좋았어요. 요약만으로는 진부해 보이는 스토리지만 서술 과정이 유기적으로 짜여져 있어서 실제로는 설득력 있게 전개됩니다.


  인간은 관계를 맺고 산다,는 진부한 명제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진작 절판된 책인 것 같아 아쉽지만 추천해봅니다.



  (2004. 08. 02)


Posted by Iphinoe

  빌려놓은 채 해를 넘기게 될 것 같아, 근친 한 분께서 입원하셔서 수발을 들게 된 김에 들고 갔던 책입니다. 도무지 작정하고 달려들지 않으면 안 읽게 될 것 같아서요. 어려운 단어도 많고 말투는 배경이 대학 아니랄까봐 얼마나 까다로운지... 사실 읽으면서 많이 킬킬거리기도 했습니다. 하버드 영문학과가 배경이고, 나오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교수기도 하여, 다들 어찌나 현학적으로 sarcastic하던지(이 단어에 적당한 우리말을 못 찾겠군요) 도무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이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로, 하버드 영문학과에 아직(이겠지요?) 여자 교수가 하나도 없을 시절입니다. 여자 교수에게 tenureship(종신고용계약쯤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을 주는 조건으로 장학금 제의가 들어오는 게 사건의 발단이지요. 우리 나라는 대개 교수 등급을 조교수-부교수-정교수로 나누는 걸로 알고 있는데, 몇 년 단위로 계약을 맺어 교수를 고용/재임용하는 미국 시스템에서 tenured professor는 이변이 없는 한 그 대학에 정년퇴임할 때까지 눌러앉게 하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정교수 중에서도 그동안의 학문적 기여를 인정받아 안정된 위치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면 될까요.


  아직 여성 운동이 공공연하게 배척당하는 시기이고, 특출나게 보수적(이라고 책에서 묘사됩니다)인 하버드 내에서 이런 조치는 당연히 하버드 영문학과 교수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합니다. 그들은 고르고 골라서 미국 내 알려진 영문학과 여성 교수들 중에서도 여성 운동과 전혀 관련이 없고 그런 문화를 배척하는 사람과 접촉해서는 tenureship을 주고 들어앉히지만, 동료로서 인정하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은근한 따돌림의 분위기 속에서 당혹스러워하던 신임 교수는 곧 자기 평판을 위협하는 스캔들과 만나게 되고, 뉴욕의 한 대학 영문과 교수로서, 과거 이 신임 교수와 같이 대학원 생활을 했던 주인공 케이트 팬슬러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여기 개입하게 되지요. 줄거리 소개가 너무 들쭉날쭉이군요.


  케이트 팬슬러는 이 소설(팬슬러 장편으로 읽어본 게 처음입니다)의 매력을 거의 혼자 끌고 나가는 것 같습니다. 머리도 좋고 유능하고 돈 걱정 없고 오지랖 넓은, 약간은 구식 세계 - 물론 1950-60년대에 대학을 다닌 연배의 사람인 만큼 이 '구식'을 미스 마플 같은 '구식'으로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만 - 에 머물러 있지만 자신의 편견에 대해 그것이 편견임을 인정하고 다른 편견들과 함께 대화할 만큼 열려 있는 사람으로 나오거든요. 편안한 수다를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코를 들이밀기도 하고, 빨리 돌아가는 두뇌 탓에 늘 화제가 널뛰기를 해서 다른 사람들을 애먹이지만 주위 사람들을 물들이는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인물입니다.


  주인공 케이트가 순간순간 머릿속에 떠올리는 생각들을 그대로 서술해주기 때문에, 소설은 저처럼 원서로 읽느라 진땀을 빼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불친절하게도 대화 중간에 다른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와 읽는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문화적 배경 없이는 이해할 수 없을 코멘트들이 아주 가볍게 스쳐지나간다거나 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덫을 놓습니다. 일부러 사전을 옆에 두지 않고 읽었는데, 만약 그랬더라면 모르는 단어 찾다가 시간이 다 갔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제가 놓친 소소한 재미들도 많았겠지요.


  추리소설로서는 사실 크게 '추리'할 만한 요소는 없습니다. 다 읽고 나서야 하는 말이지만 약간은 꽉 차 있는, 수다스럽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계에 던져졌다 나온 기분입니다. 주어진 배경이 배경인 만큼 양성 평등 문제와 사회적 계층의 문제, 편견과 갈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현실과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만, '하버드'라는 '무대'가 얼마나 이상하고 특수한 조그만 우주인지가 끊임없이 강조되다 보니, 약간은 초공간 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도 들거든요. 좋은 수다를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으로서는 약간 김빠지는 결말만 빼면 대체적으로 만족스럽습니다. 만족스럽다고 말하기에는 제 영어 실력이 너무 부족해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지만요.


  총평 : 꽤 재미있었습니다. 유쾌한 소설입니다만, 편견과 닫힌 생각이 얼마나 사람을 말려죽일 수 있는가,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가,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무신경하게 남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가 등등에 대해서는 노골적일 만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부분도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는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영문학 하는 사람답게 문장을 끊어 쓰면서 중간중간 장식해주어, 영어공부 하는 입장에서는 재미있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더군요. 현학적으로 sarcastic했다는 건 꼭 강조하고 싶군요. 특히 프롤로그를 장식하는 세 통의 편지 - 하버드 영문학과에 여자 tenured professor를 받게 생겼다는 개탄조의 내용 - 는 거의 배꼽을 잡고 웃다 넘어갈 지경입니다.


  덧붙임 : 만약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나온다면, 번역하실 분이 그 오묘한 느낌을 살리느라 꽤 애먹으실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가사 크리스티나 셜록 홈즈도 원서로 보면서 번역으로는 채 다 살리지 못하는 영어 특유의 재담을 자주 발견했었는데. 전 아무래도 언어유희에 약한 것 같습니다. 우리말로도 그런 언어유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작품이 있을까요? 문학 쪽에 약한지라 추천 부탁드립니다.




  추가분 : 1. 등장 인물들이 얼마나 '고상하게' 말하는지 직접 보시길 :
  "What did you think of her family? I've just met a brother, an experience not to be repeated."
  "Thought wasn't something I bothered wasting on her family, and I honestly don't think Janet did either."


  2. 스포일러
  결국 자살로 사건이 종결되는 게 조금 맥빠지긴 하지만, 그 사실이 되려 이 책이 집중했던 '사회적 살인'이라는 테마를 처절하게 부각시켜준 점을 고려하면 적절한 선택이긴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 전반에 걸쳐 묘사되는 여성 차별 문제가 단순한 시선 교란 트릭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여부를 궁금해하면서, 주인공이 '동기'에 매달리는 과정을 함께 따라갔던 저로서는 맥이 탁 풀려버리긴 했지만요. 사실 전, 처음부터 부각된 하버드의 여성 문제가 misdirection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아래 전남편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아닐까 점찍었었거든요.



  (2004. 12. 19)


Posted by Iphinoe


  '스카페타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지요. 원작은 'Postmortem'이라는 제목으로 1991년에, 한국어 번역본은 '검시관'이라는 제목으로 장원에서 1993년에, '법의관'(유소영 역)이라는 제목으로 노블하우스에서 2004년 출간되었습니다. 읽다 보면 아시겠지만 아랫글은 노블하우스 판을 읽고 쓰는 글이에요. 번역본 서지정보의 출처는 알라딘입니다.


  아래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보기

  ‘법의관’의 핵심을 꼬집어 말하라면, 저는 연쇄살인에 대한 소설이라는 점을 들겠습니다. 연쇄살인 수사는 그야말로 증거와 프로파일링의 게임이죠. 법의학자를 주인공 삼는 소설에서 그보다 더 이상적인 선택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법의관’을 바라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점들이 보이는데, 대표적으로 이 소설이 연쇄살인을 다루는 방식, 수사에서 우연이 작용하는 정도, 수사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관계자들이 되는 주변 인물(앰버지나 볼츠, 태너, 턴불 같은)들의 움직임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법의관’은 연쇄살인이 시작된 지점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습니다. 스카페타가 마리노의 호출을 받고 새벽에 일어나는 장면에서 이미 살인은 세 번이나 저질러졌었고, 이제 막 네 번째 살인이 일어났죠. 소설에서 법의학적 측면들이 실제로 탐구되는 것 역시 주로 이 마지막 두 번의 살인에 대해서입니다. 저는 이 점이 ‘법의관’이 연쇄살인을 다루고는 있지만, 상당히 교묘하게 연쇄살인이라는 걸 비껴가며 다루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리노는 1권의 반 이상 스토리를 까먹어 가며 네 번째 피살자 로라 피터슨의 주변 인물(남편)이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집착하고(이 점은 일만을 놓고 봤을 때 ‘법의관’에서 마리노와 스카페타의 가장 큰 갈등 요인이었지요), 다섯 번째의 살인에서는 피살자가 거물급 기자의 동생이라는 점 때문에 특히 피살자의 주변 인물이 부각됩니다. 연쇄살인이 소재지만, 교묘하게 그걸 등장 인물들의 주변 사람들과 연계시키고 있는 거지요(그런 의미에서, 책의 도입부에 이미 세 번의 살인이 일어난 상태라는 점은, 다섯 번의 살인에 대해 다 그 작업을 한다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에 그렇게 시작한 게 아닌가 합니다.) 중간에 볼츠가 용의자 선상에 오르게 되는 것도 그런 ‘얼굴 없는 익명의 범인을 추적해야 하는 사건에서 막연함을 걷어내고 구체성을 부여하려는 시도’의 일환이겠지요.


  연쇄살인을 둘러싼 감정의 드라마는 피해자 주변 인물들 사이에서 발생하거나, 수사진에서 발생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피해자 주변 인물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은 매번 거의 반복적이고, 수사진이 보여줄 수 있는 감정에는 한계가 있죠. 수사진이 사건 밖의 그들의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 쪽으로 팔 수도 있겠지만, 이건 자칫 잘못하면 사건과 별개로 진행되어 사건에는 해가 되기 쉽습니다. 두 ‘감정선’이 사건 흐름 속에서 유리되어 스토리라인이 둘이 되니까요. ‘법의관’은 그런 문제를 교묘하게 사건 자체를 관계자들 안으로 끌어들여옴으로써 해결하려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1권 중반의 법의관실 컴퓨터 해킹 문제, 2권 초반의 남는 증거 문제 모두 수사진 안에 긴장을 유발하게 되잖아요. 볼츠 검사가 용의자 선상에 오르는 것도 플롯 상으로는 그런 서스펜스를 극대화시킵니다. 일종의 절충안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말에서 범인이 스카페타 박사 살해를 시도하다 죽는 결말이 한편으로는 좀 지나치다고 느끼면서도(심한 주인공주의랄까요) 일관성 있다고 생각하는 건 그 점 때문입니다.


  구성적 측면에서, ‘법의관’에서 범인으로 인도하는 모든 증거들은 소설 전체에 걸쳐 상당히 정교하게 심어져 있습니다. 범인이 특이한 체취를 가진 인물이라는 점, 범인이 911 전화를 받으면서 피해자들을 처음 점찍었을 거라는 점에 대한 근거는 로라 피터슨의 남편의 진술 속에 이미 다 들어 있지요. 지나가는 말처럼. 그렇게 복선이 잘 짜여져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작위적인 느낌이 전혀 없어요.


  모든 증거의 발견은 어찌 보면 일종의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지나치게 적재적소에 증거가 놓여 있는 건 픽션에서는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기 힘들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법의관’에서는 워낙 물흐르듯 사건이 진행되어, 어색하다거나 끼워맞췄다거나 하는 느낌이 별로 없이 전개가 매끄러웠습니다. 용의자 범위를 단숨에 좁혀주며 함정수사의 단초를 제공하였고 동시에 가장 작위적이라 할 수 있을, ‘타고난 희귀병’이라는 설정도 그렇게 처음부터 탄탄한 복선을 깔아둔 위에 제시되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지닐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 위에 범인이 어떤 식으로 희생자들을 골랐는가에 대한 스카페타의 비약적인 논리 전개(운이 좋아 맞은 것이지 그 생각에 어떤 필연적으로 합당한 근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므로)가 함께 맞아떨어지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사건 관계자들의 움직임. 이 점은 첫 번째 요소를 설명할 때 거의 함께 말한 것 같은데, 볼츠라던가 앰버지 등등 일선의 수사진은 아니지만 수사를 뒤에서 보조하고 감독해야 할 입장에 있는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수사에 암적인 존재들이 되었더군요. 앰버지는 스카페타와 법의국의 평판을 깎아내리려는 일념에 연쇄살인 수사를 사보타지하고, 앞으로 있을 재판(결과적으로는 없게 됐지만)에 흠집을 내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볼츠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수사를 방해하지는 않지만 경찰의 용의자 선상에 오르면서 잠시나마 연쇄살인범으로서의 가능성이 점쳐지지요. 간단하게는 사건 수사를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이고, 주인공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도 나름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데, 이들 모두 결국 사건을 주인공 주변으로 끌어오는 결과를 낳는 데 기여한다고 봅니다.


  저는 스카페타라는 주인공의 개성(여성이고 법의학자이며 수사관이라는 점, 사적으로는 혼자 살고 아이도 없으며 상당히 폐쇄적인 성격이고 이성적인 완벽주의자인 데다 스스로를 황폐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좋아하고, 그 개성이 당연히 시리즈의 전면으로 부각되어야 한다는 점에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인 ‘법의관’이 법의학자로서의 스카페타와 한 개인으로서의 스카페타를 모두 그려내는 데 있어 그 두 가지를 한데 섞는 방법을 택했다는 건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연쇄살인이라는 건 무작위적이고 얼굴 없는 범죄라는 게 그 큰 특징인데, 그걸 정공법으로 다루지 못하고 약간 안이한 선택을 한 건 아닌가 싶거든요. 특히 스카페타의 집으로 범인이 스카페타를 습격(?)해 들어오는 결말이 너무 센세이셔널해졌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겠습니다. 그 후로 시리즈가 걷기로 선택한 길을 7권까지 따라가봤을 때 아직 그 숙제가 완전히 풀린 것 같지는 않군요.





  (2005. 01. 06)


Posted by Iphinoe

  이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는 점은 1인칭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서술자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 어떤 장치를 통해 그런 효과가 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부 요인은 특히 초반부에서 그가 독자에게 정보를 다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 ㅡ 의식적이건 아니건 간에 ㅡ 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으로, '나'는 피살자와 '내'가 맺고 있던 관계에 대한 서술을 3장에 이르기까지 암시적으로만 내버려둔다. 그건 1인칭 시점이 독자와의 대화일 수도 있긴 하지만, 때로는 그냥 독백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그 모호한 성격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닌가 싶다. 독자에게 말을 거는 '나'의 경우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부분이라 해도, 독백하는 '나'라면 자신에게 명백한 이야기는 대개 안 하고 넘어가기 쉬우니까. (2005. 01. 12)


  이 장치는 '무죄추정'의 서스펜스를 대부분 담당한다. 숨기는 게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게 의식적으로 하는 기만인지 아닌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읽는 입장에서 자신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소설이 진행되어 갈수록 그 불신의 존재가 점점 중요한 의미를 띄어가기 때문에 무시할 수도 없다.


  독백인지 대화인지, 그 형식의 문제는 굳이 명시되지 않은 채로 끝나지만(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증발Pleading Guilty'은 이 점에서 다르다. 거기선 '나'가 이 이야기를 어떤 형식으로 하고 있는지 밝혀주고 시작한다. 윗사람들에게 보내는 보고서로 시작하거든), 다 읽고 나면 다행히도 그런 불신을 심어놓은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해소가 된다. 그의 이야기가 계속 나를 잡아당기는 건 그런 차원에서다.


Posted by Iphinoe

  미스틱 리버 (Mystic River)



  영화를 먼저 보고(리뷰는 여기) 책을 읽었습니다. 둘이 비슷한 듯하면서도 많이 다르네요. 결말이 암시하는 바가 달라진 것(저만 그렇게 느낀 것인지도 모르지만요)은 물론이고, 책에서는 중요하게 나왔던 계급 격차에 대한 언급, 소설 무대이면서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던 마을에 대한 묘사가 많이 줄었더군요. 소설을 여는 사건인 데이브의 납치부터가 책에서는 계급 문제가 작용했던 것으로 묘사되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세 주인공의 변화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의 그 불행한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가는 데이브의 모습이 영화에서보다는 책에서 일정 부분은 약화되었고 일정 부분은 강화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읽은 순서대로 말하다보니 앞뒤가 바뀌었네요.) 책이기 때문에 긴 분량을 투자해 묘사해줄 수 있었던 데이브의 심리가 영화에서는 짧게 그려졌고, 반면에 영화에서는 그 사건 이후의 데이브의 성장기, 특히 고교 시절 야구 스타였다는 이야기를 아예 들어내버림으로써 데이브의 현재를 과거의 악몽과 직접 묶어버렸습니다.


  데이브가 납치될 때 현장에 같이 있었던 두 사람 중의 하나인 숀에 대한 묘사는, 책에서 나오는 계급 묘사가 거의 없어지면서 같이 약화된 것 같습니다. 책에서의 숀의 캐릭터에는 '상대적으로 혜택받고 자란 인물'이라는 점이 큰 비중을 차지하거든요. 영화에서는 그대신 아내와 숀이 별거하게 된 과정도 같이 없애버리고는, '운명적 비극'이라는 테마의 비중을 더 높였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책에서는 숀과 아내가 왜 떨어져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아내가 어디 있는지 숀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영화에서는 숀은 왜 아내가 자기에게서 달아나는지도 모르는 것 같고, 현재 아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거든요. 숀은 옛 친구들 그리고 기억 뒤편으로 밀려났던 과거의 사건과 자기를 다시 만나게 해준 이 임무를 통해 그 혼란을 정리합니다. 이 점은 책과 영화가 똑같네요.


  현재 시점에서, 살해된 아이의 아버지이며 과거에는 악명높은 범죄자였지만 지금은 손을 털고 깨끗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나오는 지미의 과거는 주인공답게 거의 손댄 구석이 없지만, 결말을 통해 가장 많이 다르게 나타난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책의 결말은 종결의 느낌이 강한 반면 영화의 결말은 연속성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이 차이는 특히 지미의 태도를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하는데, 사건의 진상에 대한 지미의 반응이 책과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지미는 지쳐보이거든요 (역시, 제게만 그렇게 보이는지는 몰라도^^). 책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죠.


  영화를 보고 전 '미스틱 리버'의 핵심이 '죄책감'이라고 결론내렸었는데, 책은 상당히 달랐습니다. 책의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위에 서술하려고 애쓴 둘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큰 전개과정은 책이나 영화나 사실 거의 똑같았기 때문에, 결말의 차이가 제겐 상당한 충격이었거든요. 이 문제는 영화의 아우라에서 벗어나 책을 볼 수 있게 된 뒤에나 무언가 생각이 가능할 듯합니다.



 : (2005. 01. 31)


Posted by Iphinoe

  (결정적인 스포일러는 없습니다만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를 미리 해버렸는지도 모르겠네요. 다들 금방 짐작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굳이 숨기지 않았습니다.)




  옥스퍼드의 4증인 (An Instance of the Fingerpost)



  제가 좋아하는 네 가지 요소, 혹은 그 중 세 가지 요소(배합은 책마다 다르지만)를 포함하는 일련의 책들이 그 동안 제법 출판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미스테리'라고 불리더군요. 우리 나라 독자들이 좋아하는 유형의 소설이라면서요? 저도 좋아하는고로 이 부류에 들어갈 만한 새로운 책을 접하게 될 때마다 기쁘긴 합니다만, 그 동안 접했던 책들이 현저히 질이 떨어지거나 자신이 다루는 대상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결여되어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실망을 많이 하고는 어느 순간 기대를 접었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정말 좋았습니다. 강추!!입니다. 이 제목은 구판 제목이고, 지금 시중에 도는 책은 제목이 '핑거포스트'라고 알고 있습니다.



  17세기 왕정복고 시대의 영국에서 일어난 한 살인사건과 그 숨겨진 진상을 네 명의 증인이 각각 자기가 바라본 대로 서술하는 구성인데,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사법살인'이 주는 서스펜스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사법살인을 지휘하고 뒤에서 덫을 놓은 사람은 이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어보였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물리적으로 상당한 거리를 갖고 있었던 전혀 뜻밖의 인물입니다. 진실은 표면에 드러나 있지 않았지만, 그에 관계했던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완전한 지식을 손에 쥐지 못하지요. 뒤에서 진두지휘한 자조차도 말입니다. 몇십 년이 지난 뒤에야 '진상'을 알게 되는 한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증언이 없었다면 결코 나머지 퍼즐을 끼워맞추지 못했을 겁니다. 네 사람의 증언은 각기 전 사람들의 증언을 뒤엎으면서 진행됩니다. 머리가 좀 아프고, 지루할 수도 있지만, 덕분에 소소한 서스펜스도 놓치지 않습니다.



  두 번째의 매력이라면,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현재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너무도 교묘히 결부되어 있어서 사건에 정말로 긴박성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구성하는 네 명의 증인 중 첫번째 인물인 콜라의 증언은 서막을 열고 기본을 제공하며, 외부에서 들어와 앞뒤 사정을 잘 모르는 입장인 이방인의 모험소설에 가깝습니다. 콜라는 스스로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존재로 묘사하죠. 이 사람의 증언만을 통해 볼 때 드러난 것은 그 자체로 명백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증인인 잭 프레스콧의 증언은 이 사건이 과거에 있었던 다른 사건과 결부되어 있었다는 걸 알게 해 줍니다. 그의 증언은 완전한 본격추리물로서, 어찌나 정통적이었던지 그의 증언을 뒤에서 뒤집게 될 세 번째의 증언이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 대충 가늠이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제가 예측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물론 있지만요. 그 다음 증인인 월리스의 이야기는 스릴러의 요소가 조금 더 섞여 있고, 그 나름의 '진상'과 '반전'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네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롭습니다. 월리스는 물적 증거보다는 사람들의 증언과 정황적 증거를 토대로 비약적 추리를 통해 사건의 얼개를 끼워맞춰 나가는데, 나중에 그것들이 네 번째 증인인 우드의 증언을 통해 어떻게 반박되어 가는지를 보는 게 아주 재미있거든요. 우드의 증언은 앞서의 세 증언을 정리하면서 진상을 밝혀줍니다. 그리고 그들이 수사했던 '그 당시의 사건'과 그들 전 세대에 있었던 '과거의 사건'이 어떻게 맞물려돌아가 사법살인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는가, 그 과정에서 무엇이 은폐되었는가가 드러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의 매력은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입니다. 당대 영국을 운영했던 정치인과 귀족들은 물론이고, 리처드 보일에 존 로크에 크리스토퍼 렌까지, 그리고 전 전혀 몰랐지만 수학자나 암호학자라면 월리스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지도 모르는 노릇이죠. 전 개인적으로 보일과 로크에서 가장 재미를 보았는데, 보일은 워낙 유명한 화학자기 때문이고, 로크는 제가 예전에 수업시간에 담당해서 조원들과 함께 발제를 준비하기도 했던 인물이랍니다. 물론 서양정치사상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저희는 로크의 '통치론'을 나누어 읽었고, 그 사람의 생애에 대해서도 조사했었습니다. 주로 명예혁명과 관련해서였지만요.



  과거의 일, 특히 남의 나라에 있었던 일에 대해 수박 겉핥기 식으로 배울 때, 우리가 잘 잊어버리는 것은 '쉽게 일반화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원칙이 아닌가 합니다. 역사책은 아주 자주 특정 세기의 '특징'을 몇 줄로 요약해주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 문제를 갖고 수없이 다른 입장을 가졌을 테니까요. 크롬웰의 사후에 일어났던 왕정 복고에 대해 전 '물리적 마찰이 없었다'고 들은 기억만 갖고 있었지만, 그 말이 갈등의 존재까지 없애주는 건 아니라는 거죠. 역사적 기술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대해서도 함부로 판단하는 대신 끊임없이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걸 이런 책들이 환기시켜 주었달까요.



  (2005. 01. 31)


Posted by Iphinoe

  1956년작입니다. 데뷔작 '로마 모자의 비밀'이 1929년에 나왔고, 마지막 장편이 1971년(A Fine and Private Place)에 나온 것 같;;으니 후기작에 속하는 것일까요. 두찬 님께서 클럽에 올려주신 리스트에 의존하자면 퀸이 직접 쓴 작품입니다.


  전 사실 이 책이 단편집인 줄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제목의 'case'에 제멋대로 's'를 붙여버리고는 혼자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퀸 노경감님의 단독 수사집이라! 멋있는 컨셉이 아닙니까? 아버지와의 공조수사를 빙자한 엘러리의 수사담도 재미있지만, 두 사람의 콤비플레이를 보여주려면 아무래도 '범인'인 아버지가 '비범인'인 아들의 그늘에 가리게 되니까요. 엘러리가 조연으로 나오건, 아예 나오지 않건, 아버지 퀸의 독자적인 수사담도 재밌겠다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장편인 걸 알고 나서 조금 기운이 빠지긴 했습니다만, 그건 순전히 원서를 읽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안타깝다는 정도였지, 기대가 줄어든 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여러 사건을 보는 게 한 사건을 보는 것보다 더 재미있을 수는 있겠지만, 제 생각에 퀸의 진가는 아무래도 단편보다는 장편에서 빛나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이 책은 '센터 가의 경감 퀸의 수사담'이 아니라, '은퇴한 센터 가의 경감 퀸의 수사담'입니다. 제 기대가 결정적인 부분에서 배반당한 것이지요. 부하들을 떼거지로 몰고 다니는 당당한 간부급 경찰 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이제 퇴물이 되어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정년퇴직자 퀸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불만이냐고 물으신다면, 불만입니다!!! 불만이고말고요. 리처드 퀸은 더 이상 경찰이 아니고, 전직 경감인 섬처럼 탐정 개업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는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입장에서 뛰어다니게 됩니다. 아마추어지만 적어도 뉴욕 경찰과 최소한의 공조 관계라도 맺고 있었던 엘러리와는 달리 그는 철저하게 무관의 시민이거든요. 게다가 이 소설에서 나레이터가 있다면, 그건 퀸이라기보다는 사건의 관계자이며 퀸과 핑크빛 모드를 연출하게 되는 다른 주인공입니다. 퀸은 자기 목소리를 가질 때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소설 진행 시간 동안 그 여자의 눈으로 '보여지게' 됩니다. 즉, 제가 못마땅한 것은, 한마디로 이 소설은 리처드 퀸이라는 캐릭터에게 그가 가졌던 무게와 그동안 수행해준 역할만큼의 대접을 못해주고 있다는 거죠. 명색이 '퀸 경감의 단독 수사'를 전면으로 내세운 소설이 말입니다.^^


  수사 대상이 되는 사건은 상당히 냉혹한 범죄입니다. 태어난 지 이제 겨우 세 달 된 아기가 피살자거든요. 이 아기는 아이를 기를 입장이 되지 못하는 어머니가 낳아, 불법 입양 주선을 전문으로 하는 악덕 변호사의 손을 거쳐 한 부잣집에 입양이 됩니다. 바로 이 아이가 죽은 것이지요. 정황이 애매하기 때문에 사고사인가 살인인가가 논란이 되고, 시신을 처음 발견한 간호사는 살인을 주장하지만, 간호사가 봤던 증거가 범행 현장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경찰은 여자가 환상을 봤다고 단정하고, 검시재판도 사고사로 결정을 내립니다. 그러나 리처드 퀸은 간호사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두 사람은 함께 범인을 쫓습니다..


  리처드 퀸도 경찰직을 떠난 상태인 데다, 파트너 역할을 맡는 이 여자는 철저하게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본격물이라기보다는 모험담에 가깝습니다. 약간은 하드보일드적인 성격과 크리스티의 가벼운 모험물 같은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퀸은 발로 뛰는 편이고, 퀸의 파트너는 퀸을 보조하면서 동시에 보호를 받는 존재가 됩니다. 퀸은 수사의 방향을 잡느라 고전하지만, 단서가 놓여 있는 곳까지는 제대로 찾아갑니다. 그러나 마지막의 추리는 퀸이 아니라 무려 퀸의 파트너의 몫이 됩니다. 퀸은 대부분의 액션을 담당하지만, 처절하리만치 실질적으로 한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뼈아픈 실책까지 저지르게 되지요.


  그러나 로맨스는 결실을 맺습니다. 제일 큰 스포일러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범인 이름을 대지는 않았으니...;; 퀸의 마지막 대사는 "엘러리가 이 일을 알면 뭐라고 할까?"인데(엘러리는 이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내내 유럽에 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저도 그게 제일 궁금하군요. 그 다음 장편은 1958년작 'The Finishing Stroke'인데, 이 책은 언제나 구해볼 수 있게 될까요..




  p.s. 퀸을 그린 방식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느라 정작 책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못한 것 같네요.=)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려면 범인의 정체를 밝히고 시작해야 하니... 그런 건 다음에 마음이 난다면 생각해보고 싶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어느 세월에 가능할지.



  (2005. 02. 12)
Posted by Iphinoe

  감상, 또는 리뷰의 형식을 띄는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늘 같은 고민을 되풀이하게 되는군요.


  누구 읽으라고 글을 쓰는 것인가, 책 외적인 정보(작가에 대해서나 시리즈물의 경우 시리즈 전체에 대해서)를 배경 지식 삼아 첨부해야 할 것인가, 실은 아는 것도 없는데! 그런 생각들이지요.


  글을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인지, 보편적으로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 기대되는지에 대해 확신이 없어서일 겁니다. 제가 쓰는 글이 일단 제 미니홈피나 화요추리클럽에 올라가는 것이라고 할 때,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하면 작가나 전반적인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제쳐놓아도 필요할 때면 언제나 당연한 듯 끌어올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잘 아시고 많이 읽으신 작가니까 설명을 굳이 단다는 게 우습지요.

  그렇지만 (이를테면) 퀸만 되어도 그렇게 당연하지 않을 때가 종종 생기고, 지금 열흘 남짓 감상 좀 써보려고 고민 중인 스콧 터로우쯤 되면 뭔가 간단치가 않아요. 물론 웹을 뒤지고 영어의 바다 사이를 헤쳐가며 공부를 해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반 위에서 글을 쓰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시간과 여유는 늘 부족하고 안다는 건 끝이 없으니 제가 아는 정도라면 누구나 다 알 만한 것이잖아요. 아예 이 작가는 나 아니면 모른다!라면 마음편히(?) 길을 연다는 차원에서 아는 것만이라도 적겠지만, 그렇다고 화요추리클럽 같은 공간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최고예요! 꼭 읽어보세요~'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게다가 책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걸 읽은 사람이 드물어서 내용 언급을 자제해야 한다면 문제가 더 까다로워지죠. 특히 저처럼 소설의 주제나 소재 못지않게 작가가 그것을 그려내는 방식,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심는 장치 같은 걸 문제삼아 감상을 쓰는 경우는 경계를 지키기가 종종 너무 어렵습니다. 그리고 결말이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경우, 이에 대한 언급을 피하면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가끔은 정말 핵심은 고이 모셔두고 주변만 두들기고 다니는 느낌이에요. 그러니 아예 작정하고 경고를 달고 쓰거나,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은 적당히 삼키고 '이러저러한 작품 세계를 펼쳐온(다고 하는) 작가의 한 작품'이라는 차원에서 소개하듯 다루는 수밖에요. 하지만 전자는 어차피 그 책을 읽은 사람이 별로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으며, 후자는 제가 답답해져요.


  거칠게나마 요약하자면 소개글을 쓸 것인가, 아니면 리뷰를 쓸 것인가의 문제가 되는군요. 가뜩이나 제 글쓰는 방식에도 근본적인 교정이 필요한데 이런 걸 덧붙여 고민하고 있는 게 한심할 따름입니다만... 한 달간 힘들여 읽은 책에 대해 글이 쓰고 싶습니다ㅡ.ㅜ



  (2006. 07. 26)


* [옮기면서 덧붙입니다] 마지막에 언급한 책은 'The Burden of Proof'입니다. 결국 그 글 리뷰는 이 글을 쓰고도 상당한 시간이 흘러 2007년 2월에야 비로소 썼습니다-_-; 여기도 올라와 있지요. 사실 그 글을 쓰지 못했던 건 다른 이유가 더 컸지만, 위의 문제로 고민한 시간이 워낙 길었던 터라 시기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어요. 아직도 결론이 없습니다.


Posted by Iphinoe

  요새는 절대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산다. 이러다 언제 큰코 다치지..

  어쨌든 최근 병원에 출퇴근하면서 추리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다음은 그 결과물들 첫번째. 할란 코벤의 작품을 연달아 읽게 돼서, 감상도 몰아서 쓴다.



  현재 우리 나라에 출간된 코벤의 작품은 모두 세 편이다. 밀약, 단 한 번의 시선, 마지막 기회. 모두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고, 재미있게도 모두 2권짜리로 출판되었다('단 한 번의 시선'을 제외하면 솔직히 분권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설마 코벤도 20대 여성들의 핸드백을 겨냥한 기획이었나?). 번역자도 모두 다르다. 읽은 순서는 (그냥 집었다) 밀약, 단 한 번의 시선, 마지막 기회였다.


  병원에서 읽을 책으로 코벤을 택한 것은 우선 온라인 서점에 나와 있는 세 편에 대한 소개가 모두 입맛 당기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고, 속도감이 대단하다는 평을 들었던 터라 짧은 시간 내에 집중하고 손에서 뗄 수 있어야 하는 상황에 적합하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다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선택한 게 아니었긴 하지만, 읽고 보니 그런 상황에서 코벤은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코벤의 소설은 현대 미국 스릴러의 선 굵은 전개를 그대로 갖추고 있다. 빠르고, 거침없이 흘러가며, 액션 위주고, 읽고 나면 그대로 내려놓으면 그만이다. 읽을 때 즐겁게 읽고 아무 생각 없이 덮으면 된다. 여흥으로서는 그만이고, 병원 들락거리면서 읽기에 매우 알맞아 그 존재에 감사하기는 했지만, 다른 때 읽었다면 매우 불만족스러웠을 책들이었다.


  최초의 불만은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서 나왔다. 주인공이건 아니건 관계없이, 나는 코벤이 자기 작품의 캐릭터들을 제대로 살려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모두 포함해서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스테레오타입들이고, 나조차 더 혼란스럽게 만들 부연을 해보자면 생생한 고유의 개인으로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들이었다. 밀약의 주인공이 아내와 초등학교 때부터 평생의 사랑을 키워온 얘기는 비현실적이건 아니건 얼마든지 진짜같이 쓸 수 있지만, 코벤의 이야기에서 벡 박사의 사랑은 그냥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당위 기제로서 놓여 있을 뿐이었다. 우린 이렇게나 서로 사랑했어! 믿기지 않아도 사실이야! 하고 주인공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 봤자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 문제는 매우 미묘하고 나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성격의 것이라서, 언제나 불만이라기보다는 찝찝한 기분을 남기는 정도였는데, 그것이 결정적으로 불만이 되는 지점은 매 권 말미에 선사되는 반전의 내용이 폭로되면서였다. 이 세 권에서 코벤이 짜내는 반전의 패턴이란 매번 똑같은데, 기존 캐릭터 중의 하나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독자들 앞에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전은 매번 충격으로만 그려질 뿐, 그 정서적 함의가 전혀 전달되지 않아 한 편 한 편 읽어던질 때마다 캐릭터들이 제대로 취급받지 못했다는(그리고 내 경우는 독자인 나도) 이상한 기분이 증폭됐던 것이다. 아래 다시 쓰겠지만, '마지막 기회'의 경우는 특히 코벤이 반전의 의외성에만 노림수를 두지 않고 무게를 제대로 두어 썼다면 훨씬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아쉬움을 남긴다는 건 아쉬워할 만큼은 좋았던 작품이라는 뜻이니까, 다른 작품들이 번역되어 나온다면 읽어보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이 다음부터는 한 수 접고 바라보게 될 것 같은 기분이다.



나머지는 각 권에 대한 내용입니다.

1. 밀약 (원작 2001)


  '멘톨'에서 출간한 이 책은 교열이 엉망이다. 맞춤법이 교정되지 않은 것은 기본이고, 문장 어색한 것도 전혀 손보지 않은 채 그대로 있으며, 따옴표의 탈자가 심각하고, 등장 인물들이 대화를 주고받을 때 영어 식의 문단나누기를 그대로 옮겨놓아서 누가 말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잦았다. 이 책을 원작으로 영화가 나왔던 것도 아닌데 왜 출간을 서둘러야 했는지(다른 이유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물어보고 싶다.

  '밀약'은 초등학교 때부터 불타는 연애 끝에 결혼하고 6개월 만에 아내를 잃은 벡 박사가 8년 뒤 아내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아내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휘둘리게 되는 이야기다. '밀약'과 '단 한 번의 시선'까지 읽을 때,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만능천사, 암흑가의 보스 역이 두 권에 걸쳐 모두 등장하는 게 사뭇 인상적이었다. 그런 기능적인 인물의 존재는 코벤이 감정의 힘에 이끌려 움직이는 주인공을 그리면서도 정작 캐릭터들은 매우 기능적인 존재로 보았다는 내 의심을 뒷받침해 주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다. 반전까지는 괜찮았으나 그 뒤의 결말이 대충 마무리지은 느낌이었고, 에필로그 때문에 위에 장황하게 쓴 불만이 첫 또아리를 틀었다.



2. 단 한 번의 시선 (원작 2004)


  '비채'에서 모중석 스릴러 클럽 시리즈의 일부로 출간했다. 코벤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듯한데, 세 작품 중에서도 제일 나았다.

  몇몇 등장인물이 '밀약'과 겹치는 것을 보고 코벤이 나름대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마지막 기회'까지 보고 나면,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예의상 얼굴을 내미는 정도의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핵심은 한 갈래의 이야기 - 15년 전의 사진 한 장이 담고 있는 과거는 무엇인가? - 지만, 주인공은 여럿이다. 흥미진진하게 끌어 가고,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물론 반전도 기다리고 있다. 내 아쉬움이라면 역시 캐릭터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는 것 같으면서도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지 못하는 심리 묘사다. 프롤로그를 장식했던 인물이 본편에서는 꼭 필요한 만큼만 등장해서 필요한 역할만 해주고 빠지는 게 꽤 재미있었다.



3. 마지막 기회 (원작 2003)


  삐그덕거리면서도 결혼 생활을 그럭저럭 꾸려 가던 중 '나'는 집 안에서 습격을 받아 중태에 빠진다. 병원에서 깨어나 보니 아내는 죽었고 딸은 사라졌다. 하지만 사건 정황이 뭔가 아귀가 맞지 않고, 유괴범들은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어오지만 나는 기회를 날려버린다..

  '마지막 기회'는 실망스러웠다고 생각하는 '밀약'보다는 '단 한 번의 시선' 쪽에 가까운 작품이지만, 구성면에서는 '밀약'과 더 비슷하다. 단선적인 캐릭터, 단 한 가지의 목표만을 위해 움직이는 주인공, 사방에서 그를 노리는 악역들, 결말에서의 반전 폭로, 배신감 주는 에필로그.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기회'는 반전을 충격적으로 만드려고 너무 애쓰지 않았다면 더 정서적인 울림이 큰 작품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부성애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인 만큼 반전과 그에 이어진 결말에서도 그 부분을 제대로 다루었어야 하는 건데, 아무래도 코벤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라는 걸 너무 안이하게 취급한다. 결말에 대한 불만은 '마지막 기회'에 대한 것이 제일 크다.


다시 접습니다



  각 권에 대해 막연하게 쓴 건 아무래도 내가 느낀 아쉬움이 반전을 보고 형성된 것이라 그 내용을 다루지 않으려면 달리 방법이 없어서였다. 이 문제는 정말 해결점이 안보인다.



  (2006. 08. 18)
Posted by Iphinoe

  이 글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졌다고도 할 수 있고 잘 안 알려졌다고도 할 수 있는 법정소설 작가 스콧 터로Scott Turow에 대한 글로, 추리소설과는 관계없는 작은^^ 동호회에 소개하는 의미로 올렸던 글입니다. 2007년 1월 27일 엔트리로 되어 있군요.

  이 글과 아랫글인 The Burden of Proof 리뷰는 어떤 의미에서는 연결되어 있다고도 해도 좋을 글입니다. The Burden of Proof를 읽은 건 2006년 여름이었는데, 읽자마자 감상을 무척이나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잘 써지지가 않아서, 어영부영하다 6개월 이상을 끌었습니다. 그 지경이 되면 보통 대충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들을 1, 2, 하고 나열해 가며 할 수 있는 한 끄집어낸 뒤 던져버리는데, 이건 한 편의 '글'로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던고로 쓰지 못하는 채로 질질 끌었습니다. 그러다 위에 말씀드린 동호회에 추천하고 싶은 것들을 소개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게 계기가 되어서, 가볍게 쓰기 시작한 터로에 대한 글이 지금 이 장문의 글로 첫 결실(?)을 맺고, 내친 김에 The Burden of Proof에 대해서까지 쓰게 된 거지요.

  역시 활자의 압박이 클 것 같아 접습니다. 이 태그 쓰는 데 재미들렸는지도 모르겠네요.

  펼칩니다

  스콧 터로우Scott Turow는 87년에 데뷔하여 지금까지 두 권의 논픽션과 8편의 장편 소설을 출간한 작가입니다. 가장 최근작인 Limitations(2006)를 제외하면 시계처럼 정확하게 3년에 한 권씩 소설을 냈지요. 우리나라에는 논픽션 두 권을 합쳐 모두 다섯 권이 번역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이라면 우리나라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아마도 '열정 속으로, 하버드 로스쿨One L(2004)'일 것입니다. 이 책은 '법과 대학의 신화'라는 제목으로 1996년에도 출간되었지요. 다른 제목으로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비 리그와 조기유학의 붐을 타고 어느 정도 입소문을 얻은 것으로 압니다. 애초에 2004년 출간은 그런 시류에 부합하려는 의도가 컸을 겁니다. 국제변호사가 꿈이라는 아는 애 집에 갔더니, 참으로 빈약했던 그 녀석 책장에도 이 책이 꽂혀 있더군요. 저자가 하버드 로스쿨 출신이고, 자신의 경험을 에세이 식으로 적었기 때문에, 이 책은 '닥터스' 류와는 다르게 논픽션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네, 스콧 터로우는 변호사입니다. 시카고에서 검사보로도 일한 적이 있고, 지금도 로펌 체인에서 파트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추리소설 작가로 명성을 얻은 이후로는 주로 무료변론에 주력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2003년에 나온 'Ultimate Punishment(우리나라에는 '극단의 형벌'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는 자신이 경험했던 사형수 변론, 그리고 일리노이 주 사형 위원회 소속으로 2년 동안 사형제의 실효성 여부를 검토하는 작업에 참여했던 경험을 토대로 사형 제도애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낸 책입니다.

  전 'One L'을 읽어보지 못해서 이 논픽션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지만, '극단의 형벌'은 사형 제도에 관한 고찰로 매우 좋은 책입니다. 우리나라의 사형 제도에 대한 논란은 당위성에 대한 공박으로만 흐르는 측면이 있는데요(사회적 비용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존치론 측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논거지요), 이 책은 사형 제도의 사회적 비용이라던지, 현실적인 한계와 위험 등등을 미국 현실에 확고하게 발을 딛고 서술합니다. 너무나 미국에만 적용되는 이야기여서, 되려 한국의 경우에 비추어 볼 수 있는 측면이 확연해질 정도지요. 터로는 자신이 검사와 변호사로서 사형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를 묘사하면서, 두 건의 무료 변론에서 사형수에 대한 변호를 맡고 변론을 치러낸 과정을 통계를 곁들여서 개인적 경험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도록 서술하고, 거기에 일리노이 주에서 주지사의 결단으로 공공의 비용을 들여 2년 동안 사형제의 장단점 조사를 목적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에서 어떤 작업을 어떻게 했는지 보고하는 방법을 통해 사형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도 사형제 폐지론자와 존치론자 사이를 왔다갔다한 경험이 있다고 하고, 그걸 진솔하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우리나라에 출간될 때 소개글에서는 작가가 사형 제도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고들 했고 온라인 서점 독자 리뷰를 봐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이 책을 쓸 때 터로는 폐지론자로 자기 입장을 자리매김했던 것 같습니다. 일리노이 주 사형 위원회의 최종 권고안도 그런 내용이고요.



  논픽션 이야기를 먼저 한 것은 이 작가 개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조금 소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작가 자신이 법을 다루는 직업에 몸담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터로는 존 그리샴과 흔히 비교되곤 한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둘 다 미국에서는 베스트셀러 작가에 속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선 그리샴의 유명세가 워낙 엄청나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교조적이고 대중적인 그리샴보다 터로우가 그리는 인물들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터로우는 법정소설 작가로 불립니다. 그 맥락에서도 존 그리샴과 비슷하지요. 추리소설에는 여러 장르가 있습니다만, 법정소설은 변호사나 검사, 판사 등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소설들을 가리켜 부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법을 '다룬다'는 건 주로 해석의 문제를 말합니다. 형사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겠지요.) 반드시 법정이 무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법의 여러 측면들을 소설의 뿌리로 삼는 그리샴과는 달리, 터로우는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주인공일 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전혀 별개일 때가 많습니다.

  여기서 터로우가 출간한 소설의 목록을 소개합니다. 번역본이 있는 경우는 번역본 제목을 달았습니다. 아직 절판 안 된 건 따로 설명을 붙였고요.

  1987 Presumed Innocent ('무죄추정' '의혹')
  1990 Burden of Proof
  1993 Pleading Guilty ('증발')
  1996 The Laws of Our Fathers
  1999 Personal Injuries
  2002 Reversible Errors ('사형판결', 2005. 아직 유통중입니다)
  2005 Ordinary Heroes
  2006 Limitations

  그의 모든 소설은 시카고 근교로 설정된 가상의 킨들 카운티Kindle County를 무대로, 다양한 법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위에 썼듯이 현재까지 8권이 출간되었고, 저는 국내에 번역된 3권과 90년에 나온 Burden of Proof를 읽었습니다.



  데뷔작인 '무죄추정'은 개성 강한 작품입니다. 호불호를 떠나 읽으면 잊히지 않는 작품이고, 스타일과 소재 모두가 센세이셔널해서 다 읽을 때까지 읽는 사람을 붙들고 놓지 않는 그런 소설입니다. 변호사 자격증을 딴 후 검사로서만 경력을 쌓아온 30대의 젊은 지방검사보가 자기가 수사하던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기소되게 된다는 초반부 내용은 설정만 들어도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나요? 후반부는 재판에 할애되어 있습니다만, 전후반부 모두 사건이 흘러가는 양상보다 그걸 주인공인 '나'가 어떻게 소화하는가가 소설의 핵심으로 다뤄집니다. 어떤 분^^께서 제게 하신 말씀대로, 문장 하나하나마다 에고가 넘쳐나는 소설이에요. 이 작품은 1인칭을 굉장히 영리하게 활용합니다. 1인칭 시점은 주인공이 독자에게 말을 거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독백이기도 하지요. '무죄추정'은 한 사람의 진술 안에 그 두 가지를 교묘하게 섞으면서 무려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를 독자들이 신뢰할 수 없게 만듭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도 만들어졌습니다. 이것도 꽤 잘 만든 스릴러입니다. 해리슨 포드 주연으로 어느 정도 유명했기 때문에, 보신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다음 작품인 'Burden of Proof'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좀 보입니다. '무죄추정'에서 후반부의 핵심 인물 중 하나로 주인공의 변호를 맡았던, 킨들 카운티의 잘나가는 변호사가 주인공입니다. '무죄추정'에서는 형사전문변호사로 등장해서 속을 알 수 없는 인물로 그려졌었지요. 여기서는 그의 가정사와 개인사가 큰 줄기를 이루고, 그의 변호사 생활 동안 줄곧 가장 중요한 - 여러 의미로 - 고객이었던 의뢰인이 기소의 위협을 받는 데 따른 변호사로서의 업무가 엮여듭니다. 이 의뢰인은 주인공의 매부이기도 해서, 두 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유지해 주지요. 출장에서 돌아와 아내가 아무 예고없이 자살한 것을 발견한 주인공의 모습으로부터 소설이 시작하기 때문에, 초반부는 아내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 없어 방황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아내가 자살한 연유를 추적하는 내용이 중요하게 그려집니다만, 갈수록 매부 회사 쪽의 비중이 늘어납니다.
  이 소설의 문체는 3인칭으로 시점을 바꾸었습니다. 여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아마도 터로가 가장 아끼고 자신과 동일시하는 인물이 아닌가 합니다. 읽다 보면 작가와 등장 인물의 거리가 매우 좁다는 게 느껴지지요. 그리고 이 인물은 킨들 카운티 시리즈를 통틀어 꾸준히 재등장하면서 자신의 자취를 작품 어딘가에는 꼭 남겨놓는 캐릭터거든요. '무죄추정'의 주인공과는 달리 독자들이 공감하기도 쉬운 인물이고요. 작가가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늘 꿈꾸는 일탈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걸 데뷔작에 이어 여기서도 보여주는데요, 이 주인공은 그 일탈조차도 꼭 자기처럼 지극히 온건하고 차분한 방식으로 겪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은 감상적인 결말인데요, 이 이야기는 있다 아래서 다시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매우 온화한 사람이라 - 아내의 죽음으로 나름의 중년의 방황을 겪습니다만 - '무죄추정'이 주었던 밀도있는 분위기는 조금 떨어집니다.

  그 다음 작품인 '증발'은 저를 결정적으로 터로의 독자로 여기게 만든 작품입니다. '무죄추정'도 정말 좋은 작품이지만 소재가 워낙 센세이셔널하고 주인공이 처한 위치가 너무 특수해서, 한 작품으로서야 더할 나위 없지만 작가의 경향을 짚어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감이 있어요. 더군다나, 두 작품 사이에 낀 'Burden of Proof'를 읽고 난 뒤로는, '증발'이 거둔 성과가 아니었다면 터로가 소포모어 징크스를 극복하고 안정감 있는 타율을 보여주는 작가의 길로 접어들기는 조금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증발'은 소송변호사지만 거대기업인 항공사의 일을 주로 받아 관리해온 로펌 소속의 민사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여태까지 두 작품을 통해 그려온 킨들 카운티의 한 구석으로부터 조금 벗어난 다른 무대지요. 소속 변호사 하나가 자신들이 관리하고 있는 기금에서 거금을 횡령하고는 모습을 감추자, 로펌의 운영위원들은 파트너의 위치에 있지만 최근 몇 년간 별볼일 없이 처신해온 주인공을 불러들여 그를 추적하는 일을 맡깁니다. 이 기금에 워낙 많은 것이 얽혀 있는 터라 되도록이면 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일을 조용히 처리하려는 것이지요. 주인공은 그 일을 해나가면서 자신이 이 일에 개인적인 감정을 투영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몇십 년간 차분히 쌓여와 이제 자신을 엄청난 무게로 내리누르는 인생의 공허를, 그 허무를 해결하는 문제를 이 일과 동일시하게 된 겁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 길을 걸으면서 인간적으로 신뢰했던 사람들의 이면을 보게 되고, 어떤 선택을 합니다.
  이 작품의 결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매우 기억에 남습니다. 충격적이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어떤 의미로는 기대하는 감정도 남지요. 터로는 일탈의 감정을 여기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룹니다. 그 때문에 각각 매우 다른 이 세 소설에 어떤 일관성이 부여되는 듯합니다. 그리고 '증발'은 그걸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을 차원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The Laws of Our Fathers'는 터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Burden of Proof'에 등장했던 인물들 중의 하나가, 여전히 법을 다루는 직종에는 있지만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위치에서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이것도 터로가 그리는 킨들 카운티의 특징 중 하나인데요, 법 주변에서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위치를 옮겨 가며 그 주변에서 맴도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현실에서의 시간과 소설 속에서의 시간이 같이 흐르면서, 그 동안 검사가 판사가 되고, 형사법정에서 일하던 사람이 민사법정으로 가기도 하고, 임기가 찬 판사는 퇴직하고 스캔들로 옷을 벗기도 하고 감옥에 가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중추가 되는 인물은 'Burden of Proof'의 주인공 스턴입니다.
  이 작품은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다만 기대와 더불어 우려가 되기는 합니다. 터로는 여성 캐릭터를 그다지 잘 그려내는 편은 아니거든요. (솔직히 이건 모든 남성 작가를 대할 때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들어가는 부분이라 잘 그려주면 다행이지만 못 그린다고 제게 있어 평가가 깎이는 법은 없습니다.) 주인공이나 그 주변 인물을 형상화할 때 특수한 상황 속에서 그리면서 그 안에서 보편적인 모습을 끄집어내는 데 능한 사람인데 여성 캐릭터를 다룰 때는 이게 무척 약합니다. 이래저래 여성 캐릭터가 많은 'Burden of Proof'도 그런데, 이 작품은 여자가 주인공입니다. 남성의 시선이 들어간 여자 주인공을 보는 것만큼 불편한 일도 별로 없거든요. 하지만 기대를 걸고는 있습니다. 출간된 지 10년이 지난 작품에 대해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잘 해주었길 빌어요.

  2002년에 나온 'Reversible Errors'는 '극단의 형벌'의 출간 시기를 보면 아시겠지만 - 그리고 이 책 내에도 언급이 나옵니다 - 터로가 일리노이 주 사형 위원회 일을 하고 있던 비슷한 시기에 쓴 작품입니다. 위원회가 구성될 무렵 이미 집필에 들어간 상태였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세트로 묶여다니는 비운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만, 사실 'Reversible Errors'는 사형 제도에 대한 소설은 아닙니다. 사형수가 플롯 전개에 핵심 인물이긴 하지만 그가 주인공이라 보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번역판 제목 대신 원제를 적었습니다.) 'Reversible Errors'는 사형을 눈앞에 둔 사람 때문에 과거의 사건을 재고해보게 된 상황을 바탕으로 당시 이 일에 관련되었던 사람들, 현재 그 일에 관련된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병치해 그리면서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거나 화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추리의 요소가 섞여 있긴 하지만 장르 문학으로서의 요소가 매우 약하고, 터로도 인정한 바대로 주가 되는 건 사랑 이야기입니다.
  분위기가 좋은 소설이긴 한데 결말이 너무 치우쳐 끝나서 그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한 커플은 잘 되고, 다른 한 커플은 갈라서는데, 그 이유가 마치 타인을 믿어주느냐 아니냐의 문제라는 식으로 흘러서 아쉬웠어요. 신뢰와 용서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쌓아온 개인적인 관계의 시간과 그 무게가 뒤에서 작용한 것인데 말이지요. 이것 역시 다시 언급하게 되겠지만 터로의 감상주의가 오버한 부분이라, 읽는 사람 따라 감동받을 수도 있는 부분이었지만 제게는 지나친 나머지 저를 튕겨내는 그런 요소였습니다.



  터로는 일상의 무게를 벗어나는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을 잘 그립니다. 그 정체를 '무죄추정'에서 '희망'이라는 말로 표현하지요. 무언가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무언가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 그리고 그런 실낱같이 가벼운 무게에 기대는 사람들의 황폐한 심사를 그리는 데 있어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습니다. '무죄추정'에서 최종판결이 내려지면 자기가 집어넣은 죄수들이 드글드글한 감옥으로 가야 할 지도 모르는 주인공이 밤마다 잠못이루고 집을 서성거리는 대목이라던지, 'Burden of Proof'에서 아내의 자살이라는 선택이 남편인 자신에 대한 비난이라고 느끼는 주인공이 스스로를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에 대한 묘사 - 그 역시 밤마다 집구석을 배회하면서 머릿속을 구체화할 수도 없는 생각들로 가득 채웁니다 - 는 정말 탁월합니다. '사형판결'에서도 주인공은 너무 많은 책임감을 짊어지고 그 무게에 짓눌린 인물이죠. 지금까지 읽어본 바로는 이게 가장 빛을 발하는 작품이 '증발'이었기에, 저는 개인적으로 '증발'을 터로의 작품들 중 맨 위에 놓습니다.
  이 재주는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합니다. 일단 감상주의로 흐를 함의가 너무 커요. 살짝만 너무 나가도 감정이 흘러넘쳐서 질펀해지고, 결과적으로 혼자 취해 마구 우는 술친구를 옆에서 말짱한 정신으로 보고 있는 기분이 되지요. 그래서 저는 터로가 1인칭 시점을 쓸 때를 더 좋아하는데, 3인칭으로 쓰면 과도한 감상주의가 작가가 절제를 못한 결과가 되는 반면, 1인칭으로 쓰면 감정이 마구 흘러넘쳐도 일견 '나'의 개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도 제가 좋아하는 '무죄추정'과 '증발'은 1인칭 시점이고, 좀 넘친다고 생각한 'Burden of Proof'와 'Reversible Errors'는 3인칭 시점입니다. 현재까지의 출간작을 반 읽은 시점에서 이렇게 딱딱 둘로 나뉜 결과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다른 작품이 빨리 읽고 싶어져요.

  터로를 '좋아하는 작가'라고는 못하겠습니다. 그러기엔 살짝 낯간지럽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중 어떤 것들을 아주 많이 좋아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장점이 곧 단점이 되는 그 경계가 분명한 작가이기도 해서, 다른 작품을 계속 찾아보게 만드는 동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작품은 어떻게 썼나 궁금해 하게 만들거든요. 그리고 킨들 카운티라는 배경에 충실히 남아 있어 주어서, 법원을 중심으로 각자의 작은 원을 그리는 주변 인물들이 긴 시간에 걸쳐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이렇게 긴 글이 될지 몰랐는데 지금 좀 놀라고 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소개글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마지막으로 터로의 공식사이트를 소개합니다. URL이 (당연하게도) http://www.scottturow.com 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출간된 '극단의 형벌' 본문에 이 사이트의 여러 페이지가 각주로 들어가 있는데요, t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지 번역본에서는 t를 다 하나씩 빼버렸더랍니다-0- 읽다가 엄청 웃었습니다.

Posted by Iphinoe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해놓았으니 바로 들어가도 되겠군요.^^ 응집력 있게 몰아친 데뷔작 '무죄추정'에 비해, 'The Burden of Proof'는 터로의 장점과 단점 - 이라기보다는 그 한계 - 을 모두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무죄추정'을 읽으신 분이면 누구나 기억하고 계실, 변호사 알레한드로 "샌디" 스턴입니다. 스턴은 전편 '무죄추정'에서 주인공을 변호하는 형사전문변호사로 나왔었습니다. '무죄추정'에 등장하는 인간 군상들은 모두 흥미롭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스턴은 끝까지 자기 자신을 거의 내비치지 않기 때문에 독자의 호기심을 가장 자극하는 인물입니다. 특히 소송의 종결부에서 주인공과 스턴이 나누는 대화는 이 책에서 가장 호기심 끄는 플롯 중 하나가 새털같이 가볍게 암시되듯 다루어지며 묵직한 빛을 발하는 대목이었지요.


'The Burden of Proof'는 스턴에서부터 시작해서 스턴으로 끝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편에서 스스로를 너무 드러내지 않아 신비스럽기까지 한 존재로 등장했던 스턴의 개인사와 가족사는 엄청난 깊이로 다루어집니다. 스턴의 대척점에 서 있는 캐릭터 또한 스턴의 가족의 일부이죠. 스턴의 하나뿐인 피붙이, 여동생의 남편이니까요. '무죄추정'에서 제시되었던 스턴의 개인사 중 일부는 여기서 모습을 바꾸어 나옵니다. 소문이 잘못 전해졌거나 전편의 주인공 '나'가 잘못 알고 있었거나겠지요.=) 'The Burden of Proof'는 전편의 이야기로부터 3년 후에서 시작합니다. (소설이 출판되는 시간 간격과 같이 가더군요.) 스턴은 당시 재판이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바람에 그 이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몸이지만, 자기가 변호사 일을 해올 초기부터 맡았던 매부 회사의 일들은 여전히 자신이 직접 처리하고 있습니다. 50대 후반으로 접어들어, 세 자식들은 모두 독립시켰고, 아내와는 몇 년 전 불화도 좀 있었지만 지금은 예전 패턴으로 돌아가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요.


매부 회사의 일로 시카고에 출장을 다녀온 그는 집에 들어서다가 아내가 밀폐된 차고에서 차 시동을 걸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발견합니다. 경찰이 다녀가고, 유서가 발견되어 자살로 처리되지만 유서는 달랑 한 문장뿐입니다. 'Can you forgive me?' 스턴은 아내가 자살할 만한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왜 자살했는지도 전혀 짐작가는 바가 없습니다. 갑자기 닥친 이 시련은 스턴의 생활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터로는 인간의 황량한 심사를 그리는 데 능합니다. 여기서도 갑작스레 아내를 보낸 스턴은 정상적인 생활로 쉽사리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그건 오랜 세월 함께해 온 동반자를 잃은 상실감과는 조금 다른 감정입니다. 아내의 죽음, 그것도 자살이라는 방식의 죽음과 화해할 수 없어 무언가 말이 되는 설명을 갈구하게 되는 거니까요. 그는 아내의 선택이 자기 자신에 대한 비난이라고 느끼고 죄의식을 가지며, 죄책감을 갖게 하는 상황에 대해 다시 막연한 분노를 느낍니다. 스턴이 자기 집을 유령처럼 배회하며 조그만 것이라도 단서가 될 만한 걸 찾아 이 방 저 방 헤매는 대목은 길게 나오지도 않는데 정말 탁월합니다. 아내가 그에게는 그 어떠한 암시도 내비치지 않은 채 그런 결정을 내리고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스턴이 답을 찾아 헤매는 과정은 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두 가지 플롯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의 뼈대는 매부 회사 쪽에서 옵니다. 이건 소설이 시작되기 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일이고, 소설의 문을 여는 스턴의 시카고 출장도 이 일의 일부였습니다. 스턴의 매부인 딕슨은 맨손으로 시작해 굴지의 기업을 일구어낸 자수성가형 기업가로, 그런 사람이라면 흔히 상상할 수 있을 만한 자신만만한 태도에 주위 사람들을 손에 쥐고 자기 뜻대로 휘두르는 타입의 인물입니다. 그와 스턴은 둘 다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디딜 무렵 군대에서 만난 사이로, 스턴은 매부를 결코 좋아한 적이 없지만 변호사로 자립할 초기부터 그로부터 큰 도움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기에 직업적인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그와는 상관없이 스턴과 그의 여동생은 매우 가까우며 서로를 깊이 아끼는 관계로, 아내가 죽기 전부터도 매일 꼬박꼬박 전화를 주고받고 안부를 교환하는 사이로 그려집니다. 딕슨은 자신의 가족이 없기에, 스턴의 가족들과 가깝게 지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스턴의 아이들까지 고용하는 형식을 취해 가면서 자신의 곁에 두기도 하지만, 그 관계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나오지요. 이 소설의 도입부에서, 딕슨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대배심(정식 재판으로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심의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따로 판사와 배심원을 두고 비공개로 치러집니다. 심문은 검사가 진행하고, 소환된 사람들의 변호사는 입회가 허락되지 않습니다)의 소환장이 딕슨의 회사 사람들과 기록을 상대로 날아오고 있는데, 그들이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거든요. 스턴은 딕슨과 딕슨의 회사를 대리해 킨들 카운티의 검사를 상대하고 있습니다만, 위협은 시간이 갈수록 커집니다.


두 중점 플롯 사이사이에는, 변화에 맞닥뜨리고 적응해 가는 스턴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유부남'에서 '홀아비'로 위치가 바뀌면서 동년배의 여성들의 성적인 암시가 증가하는 것에 당혹스러워한다던가, 스스로도 매력적인 여성을 보면 눈길이 가는 것에 당황스러워한다던가 하는 모습들이지요. 책에서 하는 말대로 스턴은 '그런 쪽으로는 오랜동안 스스로를 차단하고 살아온'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는 물론이고 스스로의 변화도 자신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자기 인생을 돌아보게도 되고요. 새로운 인간 관계를 맺기도 하고, 오래 알아오던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실은 이게 책의 중심 내용입니다. 위의 두 플롯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추진력을 제공하지만, 핵심은 결국 그게 스턴이라는 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가 하는 것이거든요. 30년을 같이 살았지만 서로의 사이에 존중이라는 이름의 거리를 두고 있었던 스턴과 아내 클라라라던가, 대배심이 노리는 바가 구체화되어갈수록 부침을 거듭하는 스턴과 딕슨의 관계라던가, 스턴이 마주치는 여러 여인들과 맺는 관계라던가, 여기서는 언급한 적이 없지만 스턴의 세 아이들과 스턴이 가져왔고 가져가게 될 관계까지도, 모두 스턴에게 부딪쳐 와 그를 뒤흔들고 바꿔놓고 이전과는 같고도 다른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 절정은 맨 마지막에 스턴이 모든 것을 정리하면서 읊는 기도문인데요,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다시 하겠습니다.


내용 소개를 엄청 많이 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 요약을 한 거지만, 실제로 중요한 건 에피소드들이거든요. 제가 쏟아놓은 내용들은 소설 초반부에 거진 다 나오는 것들이고, 특히 소설의 핵심 미스터리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는 일부러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미스터리가 있냐고요? 두 플롯은 각자 수수께끼를 적어도 하나씩은 품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발전되어 가는 걸 보는 건 꽤 흥미진진합니다. 특히 딕슨의 회사와 관련된 수수께끼가 그렇지요.


터로는 이 소설을 3인칭으로 썼지만, 주인공 스턴을 누구보다 자신에 가까운 인물로 보고 애정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딱히 구체적으로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작가와 등장 인물간의 관계가 매우 가깝다는 게 읽다 보면 자연스레 느껴집니다. 그리고 사실 독자들이 감정이입하기에도 무리가 없는 매우 현실적이고 차분한 인물이에요. '무죄추정'에서나 여기서나 매우 침착하고 온건하고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아내의 자살로 일련의 방황을 하지만 그것조차도 지극히 스턴다운 방식으로 조용히 겪지요. 그 때문에, 얼핏 보고 스턴이 이 소설을 통해 한 바퀴 크게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말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책 초반부의 스턴은 후반부의 스턴과 아주 같다고도 다르다고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 변화는 딕슨을 통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요.


딕슨은 여러 면에서 스턴과 대척점에 서 있는 캐릭터입니다. 이민자 출신으로 변호사답게^^ 타협적이고 주위와 조화를 이루어 사는 데 큰 비중을 두는 스턴과 달리 딕슨은 자기 식대로 거침없이 세상을 헤쳐 나가며 그 앞에 놓인 것은 무조건 장애물로 보고 돌파구를 찾아내는 사람입니다. 자기 방식대로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탐닉하고, 인생의 즐거움은 넘칠 만큼 누리고자 하고, 뭘 하든 호쾌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지요. 그런 딕슨에 대해서도 터로는 애정어린 시선을 유지합니다. 그건 터로가 스턴을 자기 자신을 투영해서 본 만큼 딕슨에 대해서는 자신(과 대개의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바를 감히 할 수 있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주는 캐릭터로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소설에 스턴의 시선을 통해 언급이 나오기 때문에 제가 추측한 게 절대로 아닙니다.)


이 애정어린 시선은,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여러 캐릭터들이 만나 충돌하고 엉켜 흘러가는 이 소설을 마음 편히 읽을 수 있게 해주는 토대입니다. 만악의 근원이 되는 딕슨조차도 작가가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인간의 약점이나 과오에도 냉철한 시선을 들이댈 마음은 없어 보입니다. 그 시선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소설 읽기는 꽤 괜찮은 경험이 될 겁니다. 적어도 마지막까지는요. 이건 제 이야기입니다. 그런 따뜻한 시선의 존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겁게 보았습니다만, 마지막에 가서 삐끗하는 바람에 감동(말하자면)의 범위가 좁아져 버렸거든요.


터로는 위에 말했듯이 사람들의 황폐한 심사를 그리는 데 발군의 재주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게 겉으로 드러나게 된 이유는 캐릭터마다 많이 다르지만, 여태까지 접한 터로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어느 순간 자신의 인생에 커다란 공허가 생겨 있는 것을 느끼고 있거나 느끼게 된 사람들입니다. 스턴의 경우는 그 공동이 자기 곁에 있어주었던 아내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삶을 버리면서 생겨납니다. 이 공허는 처음에는 스턴의 내면을 위협하는 정도이지만, 그 정체가 구체화될수록 스턴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한순간에 휩쓸어가버릴 수 있는 거대한 파도가 됩니다. 그 모든 혼란을 정리하는 기능을 하는 게 마지막에 나오는 스턴의 기도인데, 이 기도가 결정적으로 저를 닭살돋게 만들었습니다.=) 터로의 주인공들이 겪는 황량한 심사는 대개 원인은 분명할지언정 그 구체적인 모습은 잡아내기 쉽지 않은 그런 감정들입니다. 그래서 그게 더 큰 울림을 지닐 수 있는 것이지마는, 이 경우 조금만 과도하게 그려주면 캐릭터들이 겪어나가는 감정이 독자를 튕겨내 이질감 느끼게 하기가 쉽습니다. 이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The Burden of Proof'에서 터로는 이 경계를 몇 번이고 아슬아슬하게 넘습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확 넘어버리는 대목이 그 기도인 것이죠. 사실 이 부분을 읽다가 전 큰 소리로 웃었는데,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였습니다.-_-; 그 기도만 없었어도 이렇게 뒤섞인 감상을 쓸 이유가 아주 많이 줄어들었을 텐데 말이지요. 다행히(?)도, 이 다음 작품인 '증발'은 문제의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면서도 (제 판단에) 경계를 넘어가지 않아, 지금까지 읽은 것 중 가장 좋아하는 터로의 작품으로 꼽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책을 읽으실 분이 있다면 이미 터로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신 분이겠지요. (아니면 몇 분들^^처럼 관심의 범위가 넓은 전문가시라거나.^^) 따라서 딱히 추천의 말씀을 드릴 만한 것은 없습니다. 읽어보실 분은 나중에 감상을 써주시면 정말정말 고맙겠습니다.^_^ 참, 이 책을 읽으시면 전편 주인공의 뒷이야기를 조금 얻어들을 수 있습니다.

(2007년 2월 9일)




윗글의 기도에 대한 제 언급은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느라 할 수 있는 한 돌려서 쓴 거였습니다. 저한테는 무척 미진했지요. 그래서 결국은 이 뒤에 스포일러를 잔뜩 얹은 버전을 더 써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완성했습니다. 내용과 반전의 폭로에 개의치 않으실 분들은 아래를 눌러 마저 읽으시면 됩니다. 몇 분이나 계실까마는요. 네, 거의 윗글만큼이나 깁니다..


스포일러라 접습니다

위에서 저는 터로가 감상적이며 그게 문제의 기도 같은 장면에서 결정적으로 약점으로 부각된다고 썼습니다. 이 글은 그 대목에 붙는 부연입니다. 위의 말은 사실입니다만, 그 말고도 터로가 오버한다는 느낌을 주는 부분들은 종종 나온다는 걸 우선 언급해야겠습니다. 그럼에도 기도가 문제가 되는 건 그 모두가 합쳐진 결과라는 데 있기도 하고, 미스터리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결말을 흐리기 위해 둔 무리수에 얹혀진 장식이라, 잘못된 방향으로 너무 힘을 주었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과도하게 감상적이라는 증거 중 하나는 작가가 딕슨에게 주는 면죄부입니다. 이 면죄부는 플롯을 꼬아 반전을 만들기 위해 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난봉꾼이며 악덕 기업가고 타인을 자기 멋대로 조종하는 걸 좋아하고 법을 농락하는 걸 재미로 아는, 딕슨이라는 개차반같은 인간-_-;;에게도 양심이 있었고 선한 면이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거든요.

터로의 아내 클라라의 자살과 딕슨 회사에 날아오는 대배심 소환장이라는 두 소재를 중심으로 돌던 플롯은 딕슨 회사 쪽 플롯의 가장 큰 수수께끼, 과연 제보자가 누구인가? 이 문제가 터뜨려지면서 하나로 묶입니다. 이게 소설 군데군데 단서를 흩뜨리면서 꽤 잘 꼬여 있어요. 반전을 모두 폭로하고라도 밝히고 싶은 대목입니다.^^

소설 전반부는 클라라가 자살한 이유를 제시합니다. 클라라는 병원에서 매독과 관련된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건 혼외정사가 있었다는 의미지요. 클라라의 생활 패턴으로 보아 스턴은 상대가 자기도 아는 사람일 거라 생각하고 그게 누군지 꾸준히 찾습니다. 우선은 클라라를 치료한 의사를 찾는 데서 시작하는데, 스턴은 의사인 자기 아들이 어머니와 가깝다는 데 생각이 미쳐 클라라가 그 문제를 아들과 상의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주치의는 스턴 부부 옆집에 사는 다른 의사였고, 그와 이야기해보고 스턴은 클라라가 몇 년 전서부터 자기 모르게 매독 치료를 받아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매독은 여기 나오는 바에 따르면 완치가 불가능하며 단지 증상을 억제하는 것만 가능한 질병이라는군요. 그리고 남자들의 경우는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 없이 보균만 하는 경우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한편 딕슨의 회사 쪽은, 검사가 적재적소에 소환장을 보내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내부 제보자가 있을 것이라는 쪽으로 스턴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추측이 모아집니다. 스턴은 소환된 서류들을 검토해보면서 딕슨이 주식 시장에서 회사에서 알게 된 정보를 불법적으로 이용해 개인적인 돈놀이를 했던 사실을 알게 되고, 검사의 추적이 그쪽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심증을 굳힙니다. 딕슨의 회사는 오래 전부터 정부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왔고, 딕슨의 공격적인 태도가 여러 사람의 앙심을 샀기에, 기회는 이때다 하는 식으로 달려들고 있는 양상입니다. 문제는 그 구좌를 관리하고 있던 사람이 스턴의 막내사위였다는 것이지요. 존(그 친구 이름입니다) 역시 결국 대배심 소환장을 받습니다. 스턴은 딕슨과 딕슨의 회사 모두를 대리하고 있고, 존의 증언은 양쪽 모두에 해가 될 수 있기에, 스턴은 막내사위의 변호사가 되어주지 못합니다. 스턴은 이 일로 마음고생을 좀 합니다. 막내를 많이 아끼거든요.

그런데 막판에 밝혀진 제보자의 정체는 모두를(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제보자의 정체를 오래도록 모르고 있었던 - 제보자는 다른 기관에 제보를 했고 일선 검사는 기소만 맡았으니까요 - 담당 검사가 그걸 알고 격분한 모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읽는 사람들 이야기지 등장 인물 모두가 알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깜짝 놀라게 합니다. 스턴의 의사 아들, 피터과 존이 합작해서 벌인 일이었거든요.

진상은 이렇습니다. (으하하, 무슨 탐정같은 말투가=_=) 피터는 오래 전부터 딕슨이 스턴 가족을 좌지우지하려고 애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머니가 딕슨과 딱 한 번 외도한 결과로 매독에 걸려 고통받은 사실을 알고부터는 더더군다나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존은 썩 잘하는 일도 재주도 없는 사람으로 빨리 돈을 벌고픈 마음에 딕슨의 구좌에서 딕슨의 돈으로 돈놀이를 하다 딕슨의 돈을 까먹고 빚을 졌던 겁니다. 딕슨은 그걸로 존의 약점을 잡아 가지고 놀았고, 동생 부부와 친했던 피터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걸 딕슨을 벌할 기회로 포착했습니다. 존이 한 일을 딕슨이 한 일로 둔갑시켜 FBI에 제보한 거죠. 피터는 당연히 그 일을 어머니 클라라에게 말했고, 클라라는 매독이 통제가 안 되고 재발한 사실에다 옳지 못한 음모(?)와 가족간 불화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감정이 겹쳐 자살하게 된 겁니다. 딕슨은 당연히 일의 전모를 알고 있었지만, 클라라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당하고 있었던 거지요. 딕슨은 결국 스턴에게 검사와 유죄 인정 거래를 하라고 주문합니다. 재판을 거치지 않고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형량 합의를 하자는 건데, 스턴이나 딕슨이나 그 경우 실형 이하로 합의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스턴은 양심상 그걸 반대하지만, 딕슨은 스턴이 자기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자기 손으로 할 만큼 냉철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고, 자기 뜻을 밀어붙입니다. 스턴도 자기가 결국은 합의를 받아들이게 될 거라는 걸 압니다.

그러나 스턴이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딕슨은 심장마비로 사망합니다. 정부가 노린 건 딕슨 개인이었는데, 당사자가 죽었으니 수사고 기소고 아무 의미가 없어진 거죠. 그 일은 정부의 거대한 서류더미 속에서 잠잘 운명이 된 것입니다. 스턴의 일도 거기서 끝납니다.

한마디로 터로가 너무 물렀던 거죠. 딕슨을 감옥에 넣고 싶지도 않았고, 스턴에게 자기 선을 넘는 타협을 행하는 결말을 주고 싶지도 않았던 겁니다. 물론 이건 터로가 소설 내내 유지해온 따뜻한 시선에 걸맞는 결말이긴 합니다만, 너무 안이합니다. 숨을 열심히 불어넣어 풍선을 큼지막하게 부풀려 놓고는, 요란하게 터뜨리는 게 아니라 풍선 입구를 쥐고 있던 손을 놓아 바람을 피시식 빼버린 거예요. 거기다 딕슨의 영혼을 위한 스턴의 아름다운=_=(적어도 터로가 엄청 힘주어 쓴 건 알겠더군요) 기도까지 덧붙이니, 반전을 위해 차근차근 쌓아올렸던 그 많은 복선들의 정교함과, 길게 묘사될 기회를 얻진 못하지만 유죄 인정 거래를 놓고 하는 대립의 무거움 모두가 낭비된 느낌이 들어 버립니다. 특히, 스턴이 딕슨의 주문을 이행하면 도덕적인 굴복이 되지만, 그렇다고 안 하면 자기 아이들에게 해가 될 것을 안할 수도 없어 갈등하다 하는 쪽으로 정리가 되는 부분은 그 무게가 가볍지 않습니다. 워낙이 이 소설이 스턴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 며칠 전에 스턴은 변호사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가는 것도 불사하는 어떤 결단을 했었거든요. (그 때 스턴이 감옥 구경을 면한 건 오로지 담당 검사가 마침 제보자의 이름을 상사로부터 듣고 크게 동요해 스턴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읽는 분들이 놀라실^^까봐 덧붙입니다.)

이야기를 그 정도로 밀어붙여 놓고, 그 누구도 다치지 않게 딕슨의 죽음으로 끝을 내고 싶었다면 적어도 작가가 직접 딕슨의 죽음을 추모하는 건 자제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 공간은 독자들에게 주었어야 맞다고 봅니다. 그게 아쉬웠던 겁니다.

특히 반전을 그럴싸하게 만들어 주는 단서들이 군데군데 그렇게 유기적으로 뿌려져 있는 소설에서는요. 관계자가 대부분 스턴의 가족들이다 보니, 여기서는 사실과 사실 사이를 연결해주는 게 가족들 사이의 친밀도입니다. 피터가 존이 딕슨에게 빚을 지고 그로부터 정신적인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건 피터가 존 내외와 가깝기 때문이고, 클라라의 외도의 전말을 알 수 있었던 건 어머니와 가깝기 때문이죠. FBI에 거짓을 제보한다는 생각을 해내는 사람이 피터인 것은 존에겐 그럴 만한 머리가 없기 때문인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존이 애초에 딕슨의 그늘에 매여 있었던 것이고 딕슨의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다 원금을 까먹고 차액까지 생긴 겁니다. 전제가 되고 반전에 다리를 놓아주는 그런 정보들은, 스턴이 아내의 죽음으로 방황하느라 자기 주변을 돌아보고 고찰하는 와중에 꾸준히 독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주인공의 주변사이니 당연하게 묘사가 되는 거죠.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나면 범죄가 되는 그런 일을 꾸밀 수 있는 피터의 냉정하면서도 격정적인 성품도 스턴이 피터와 자신과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다 그려집니다. 심지어 클라라가 자살한 날 제일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사람이 피터입니다. (어머니가 왜 자살했는지 짐작이 가지 않겠어요.)

그렇게 잘 써놓고, 그걸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는 딕슨이 죽어서 모든 게 해결되었다는 식으로 쓰면 허무한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딕슨이 죽어서 모든 게 해결되었다는 결말 자체는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아까 말했듯이 모든 이야기가 워낙 인간에 대해 연민을 품고 그려지기 때문에, 작위적이긴 해도 사실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이 그것뿐인 마당에 그 길을 간다고 해서 비난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철저하게 제 입장에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너무 나가는 바람에(= 기도를 넣는 바람에) 산통을 깼다는 거죠.

그래서 소리내어 웃는 도리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닫습니다


Posted by Iphinoe

벌써 1년 반이 지나갔군요. 시간 흐르는 게 가끔은 놀랍습니다.


2005년 여름 한겨레21에서는 부록으로 추리소설 특집을 만들었습니다. 특집의 일부로 설문을 실었는데, 국내 여러 추리동호회를 통해 자료를 수집해서, 몇 분의 설문은 그대로 실리고 나머지는 통계에 사용됐지요. 답과 함께 짤막한 설명을 붙여달라고 했었는데, 그게 마음같이 잘 안 되어 설명을 모조리 빼버렸었기에 당연하지만 제 리스트는 통계 데이터로만 들어갔습니다.


저는 목록을 만드는 데 별 관심이 없어서, 사실 그 때가 추리소설과 관련하여 목록을 작성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특히 개인적인 취향 리스트는 전혀 관심 밖이라, 타인들의 취향에 맞춰 추천을 하는 일은 있어도 제 자신의 취향에 맞춰 우선순위를 매겨본 적은 없었어요. (물론 이 설문이 개인의 취향만을 물어본 것은 아닙니다. 그것만 물어봤다면 답이 달라지는 것들이 있었을 거예요.)


오랜만에 당시 설문에 답한 것을 다시 보니, 역시 평소 생각해본 적이 없던 것이라 그 당시 제 관심사에 많이 좌우됐다는 게 보이는군요. 물론 우선 순위 목록이라는 게 그런 경향이 있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그런 걸 평소에 자주 생각해본 사람은 자신의 취향이라도 두루 돌아보고 대표성을 지닌 것을 고르게 되니까요.


어쨌든 뒤늦게나마 목록을 올립니다. 왜 여기 안 올려두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설명을 달아 올려야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뭐, 한 번 시도해 보죠.^^ 그러나 설명보다는 해명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길어서 접습니다

1. 가장 사랑하는 추리소설 1~5 :

1 - 장미의 이름 The Name of the Rose (움베르토 에코)
2 - 재앙의 거리 Calamity Town (엘러리 퀸)
3 - 오리엔트 특급살인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아가사 크리스티)
4 - 핑거포스트, 1663 An Instance of the Fingerpost (이언 피어스)
5 - 말타의 매 The Maltese Falcon (더쉘 해미트)

이 항목에 답변한 건 저를 아시는 분들은 대충 짐작하셨을 목록입니다. 4번이 의외일 수도 있겠군요. 사실 제가 보기에도 이질적이긴 합니다. 이 항목은 비교적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대표성을 띄는 작가거나 작품이어야 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골랐었는데, 4번은 거기 염치없이^^ 끼었거든요. 나머지는 작품 또는 적어도 작가가 추리소설사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였는데, 4번만 아니니까요.

당시는 '핑거포스트'를 읽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당시 몇 년 간 읽은 작품 중에 개인적으로 주의를 많이 환기시킨 작품이었어요. 물론 지금도 좋아하는 작품입니다만 '사랑하는'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사실 당시에는, 그리고 지금도 '좋아하는'과 '사랑하는'을 구별하면서도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 굳이 구분하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특집이 가이드로서 기획되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비교적 '고전'으로 꼽히는 작가와 작품 중에서 골랐던 것이지요. 그러니 사실 '가장 사랑하는'이라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장미의 이름'은 우리 나라에서의 유명세도 유명세거니와 제게 많은 영향을 미친 작품이고, 언제 어디서부터 펼치건 일단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되는 작품이라 당연히 넣었습니다. 전 주변의 팬을 통해 소개받고 좋아하게 된 취향과, 우연한 기회를 통해 저 스스로 좋아하게 된 취향을 구분짓는 편인데, '장미의 이름'은 후자에 속하는 경우라 애착이 좀 더 가기도 하고요.

'재앙의 거리'와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이들 작가의 작품 중 좋아하는 게 참 많다,는 전제 하에 소개할 만한 작품, 대표성을 띄는 작품 이 두 가지를 고려하여 뽑은 것입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아래 '미스터리 초보에게 추천하는 작품'에 넣은 것으로도 그 대표성에 대한 제 평가를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크리스티의 특징을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퍼즐풀이의 대표적인 작품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넣었습니다. 크리스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변칙적이라 초보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일부러 포와로가 등장한 작품 중에서 골랐다는 것도 인정해야겠습니다. 크리스티의 탐정들 중 가장 좋아합니다.

'재앙의 거리'는 퀸의 여러 가지 매력들을 개중 가장 많이 한꺼번에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골랐습니다. 아무래도 퀸의 1기와 3기 작품들은 다르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재앙의 거리'는 무대가 뉴욕을 벗어나긴 하지만 1기와 3기의 매력을 비교적 아우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이유로 '중간지대'를 고려해보기도 했었습니다만 그건 추리 외적 요소가 너무 길게 등장해서 마음을 접었을 겁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이유라면, 여기서 '엘러리 스미스'가 스스로를 한 방 먹이는 장면은 읽을 때 커다랗게 웃어젖혔었고 지금도 매번 너무나 유쾌하게 생각하는 대목입니다. 사실 퀸은 시공사에서 낸 스무 권+ 꼬리 아홉 고양이 모두를 비교적 고르게 좋아하고, 크리스티는 작품따라 기복은 있지만 '그 한 권'을 짚기 힘들 만큼 좋은 작품이 많은 작가라, 이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고르기가 쉽지 않아요. 퀸이 크리스티보다 앞선 건 역시 제 선호도를 반영합니다.^^ 4번 항목 '가장 사랑하는 탐정'에 퀸을 적은 것으로 설명이 되겠지요.

'핑거포스트'를 '말타의 매'보다 앞서 적은 건 지금 뒤돌아볼 때 제일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입니다만, '핑거포스트'는 서생...으로서의 제게 몇 번이고 다시 돌아볼 수 있는 무언가를 주었던지라 앞선 자리에 놓았던 것 같군요. '말타의 매'는 언제 읽어도 제게는 그 날카로움과 차가운 문체로 기억되는 작품입니다. 스페이드의 캐릭터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데, 전 캐릭터에 많이 좌우되는 성향이 있어서 그런 면에서도 뒤로 밀린 것 같군요. 그러나 사실 다시 읽으라면 '말타의 매'일 것 같습니다. 문체의 문제와 관련해서 제게 서늘한 깨달음을 준 작품이기도 하고요. (같은 언급을 스티븐 킹이 한 걸 읽었을 때 꽤 놀랐습니다.)

변명을 해야 할 부분이라면 홈즈가 없다는 것인데요, 홈즈는 단편 위주라서 장편과 같은 비중으로 생각하기가 아무래도 힘들어서, 홈즈와 크리스티 중에서 경중을 고르다 빠졌던 것 같습니다. 석원 님처럼 '홈즈 전집' 이렇게 답변할 수 있는 배포는 없었거든요.^^

설명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사랑해 마지않는'보다는 대충 다 좋아하니 그 중에서 '들어가야 할 만한' 작품을 고른 의미가 더 큽니다. 그것도 세진 님께서 장르별로 고르셨던 것 같은 일관성조차 지니지 못했었죠. 여러 모로 답하기 난감한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언제 어떻게 대답해도 미진함이 남을 것 같아요. 그래서 목록 작성하는 걸 싫어합니다.;;

지금 다시 고른다면? 역시 4번을 제외하고는 아마 비슷하게 갈 것 같습니다. 못내 사랑하는 작품이라는 걸 딱히 꼽기가 어렵더군요. 사족이 이렇게 길어지는 걸 보시면 제가 한겨레21에 보내는 답에 설명을 다 쳐버린 걸 이해하시겠지요.^^



2. 명성에 비해 실망스러웠던 작품 : 검은 탑 The Black Tower (P.D. 제임스)

사실 이건 몇 줄이라도 설명을 적어볼까 마지막까지 고민했었습니다. 만연체 문장으로 소설을 별 사건 없는 고르게 조용한 분위기로 끌고 나가다가 갑자기 마지막에 지리멸렬한 액션이 나오고는 거기서 갑자기 뚝 끊어지는 느낌이어서... 아직도 작품의 유명세를 이해할 수 없는 책의 하나입니다. 똑같이 만연체가 머리를 부담스럽게 하지만 '여자에게 맞지 않는 직업'이 훨씬 나았어요.



3. 최고의 작가 : ...그런 게 있을까요

그런 건 정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있어 최고의 작가'를 고르라고 해도 못 고르는 걸요.



4. 가장 사랑하는 탐정 : 엘러리 퀸

두둥.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아니, 한 탐정을 지목하기는 굉장히 쉬웠습니다. 퀸을 제일 아끼거든요. 거기에는 의문의 여지도 없고, 탐정에 대한 제 애정도에 있어 워낙 독보적인 존재라 제일 간단하게 답을 적어넣었어요. 그러나 그걸 설명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일단 제가 그 이유를 잘 몰라요.-_-

전 물론 퀸의 개삽질-_-, 간단한 사건을 엄청 복잡한 것으로 만들어놓는 그 복잡하고 현란한 수사와 현학적인 머리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런 면이라면 더 발군의 존재가 있지요. 모스 경감이라고요. 애처럼 뻐기기 좋아하고, 그러면서도 많이도 좌절하고, 그런 면모에 걸맞는 장난기 넘치는 화법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인간적이고 정에 약한 면모도 귀엽습니다. 그러나 그런 효과는 홈즈에게서 더 극대화되어 드러나고, 나이에 걸맞게 좀더 성숙하긴 합니다만 포와로도 퀸 못지않지요. 심지어 전 많은 분들이 작가 퀸의 단점으로 지적하시는 의미없는 연애담도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스크루볼 코미디 보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런 연애담은 퀸이 아니라도 잘 쓰는 작가는 많습니다. 그럼 그걸 다 합쳐놓은 결과일까요? 그러나 '그걸 다 합쳐놓은 결과'라는 말은 '난 그냥 퀸이 제일 좋아요'나 똑같이 무의미한 설명 같습니다.

두어 가지 떠오르는 건 있습니다. 물론 이건 지금 떠오르는 거니까 내일이면 번복될지도 모릅니다.^^ 하나는 리처드 퀸의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 퀸'과 '탐정 퀸'을 어느 정도로 분리시켜 생각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동윤 님과 이 설문 이야기하면서 '퀸이 귀여워요' 이런 식으로밖에는 설명이 안나온다고 했었는데^^, 퀸이 귀여울 때가 많긴 한데 그 중 상당 부분은 아버지와 같이 있을 때죠. 퀸이 툴툴거리는 대상도 대부분은 아버지고, 삽질하다 괴로움을 호소하는 존재도 대개는 아버지입니다. 후기에 들어 니키를 (굳이 필요한 것 같지도 않은) 비서라고 붙여준 이유가, 퀸이 뉴욕을 벗어나 돌아다니게 되면서 퀸과 투닥거릴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었거든요. 라이츠빌 시리즈로 대표되는 3기를 국명 시리즈로 대표되는 1기보다 높게 평가하시는 분들 틈에서 '그래도 1기도 좋아요'하고 박박 우기는 이유 중의 하나도, 1기에는 리처드 퀸이 있어주기 때문입니다. 퀸 경감의 캐릭터를 좋아해서라기보다 엘러리가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빚어지는 효과를 좋아한다고 봐야겠죠.

그리고 '작가 퀸'과 '탐정 퀸'의 문제는... 이건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제가 '작가 퀸'의 장점을 '탐정 퀸'에 투사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요. 1인칭 작품이 아니다 보니 두 존재를 분리시켜 생각해야 하기는 하는데 '작가 퀸'이 '탐정 퀸'이 겪은 일을 3인칭으로 쓴다, 가 이 시리즈의 기본적인 모토이니(아무리 뒤로 가면서 이 전제가 망가진다 하여도), 제 혼란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릅니다. (사실 이 뒤에는 '작가 퀸'을 창조한 두 사람이 또 따로 있기 때문에, 생각하다 보면 점점 복잡해집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퀸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유쾌한 정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건은 진지하게 바라보고 다루지만 유머가 늘 잘 살아 있고, 가장 무거운 축에 속하는 '열흘 간의 불가사의'조차도 후반부 바로 전까지는 아무리 상황을 이리저리 꼬아 심각한 장면을 연출한다 하여도 모든 에피소드가 웃음을 선사하는 데 있어 실패하는 법이 없죠. 굉장한 장점입니다.



5. 가장 인상적인 악당 : 모리어티 교수

이건 좀 힘들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범인'이라면 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적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악당'이라면 실제로 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모리어티 교수밖에는 적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어요. 그게 당시 생각입니다만, 지금 생각해도 다른 답변이 나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른 분들 답변을 보고 하는 말입니다만 뤼팽을 꼽으신 동윤 님 선택이 인상적이긴 했는데, 전 뤼팽이 보통 사람과는 좀 다른 윤리의식을 가진 모험가에 가깝다고 생각(물론 악당은 악당입니다만)하는 편이라...



6. 가장 훌륭한 결말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결말 :

가장 훌륭한 : 열흘간의 불가사의 Ten Days' Wonder (엘러리 퀸)
어처구니없는 : 탐정을 찾아라 Catch Me If You Can (패트리셔 매거)

이건 정말 주관이 개입된 답변입니다.^^ 사실 '훌륭한 결말'이라면 제가 '훌륭한'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설명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겠지요. '열흘간의 불가사의'는 시리즈물에서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늘 놀랍고 감탄을 자아내는 작품이었습니다. 퀸을 쓰는 두 작가의 도전적인 면모는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백과사전적인 위대함이 자주 논의되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아쉽게도 늘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열흘간의 불가사의'는 그런 증거로 제시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일 겁니다. 물론 이건 한정된 제 경험 안에서만 하는 이야기입니다. 영미권의 평론가들이나 그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니까요.

'탐정을 찾아라'는 제 기대를 너무 배반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고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정말 변하지 않을 거예요. 제목이 '범인 찾기'라는 추리소설의 기본 명제를 뒤튼 것이기 때문에, 전 당연히 이 작품이 '범인 찾기'를 비틀어 적용했기를 기대했고, 그래서 탐정 찾는 과정이 추리소설에서 범인 찾듯이, 구체적으로 말하면 고전기 퍼즐풀이에서 범인 찾듯이 나와주길 기대했습니다.

이건 이 작품을 원제로 알고 보았다면 하지 않았을 기대입니다. 'Catch me if you can'은 '탐정을 찾아라'가 함축하고 있(다고 제가 보았던)는 메시지 따위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어쨌든 기대를 해버렸던 저는 서스펜스물인 이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점점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탐정의 존재 때문에 점점 자기 목이 죄어오는 듯한 그 불안감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 잘 그려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요. 이 소설의 주제는 '공포 때문에 스스로 무리수를 두고 만 주인공'인데 - 소설 마지막에 정체를 드러낸 탐정이 직접 그렇게 말하지요 - 그 무리수로 향하는 과정이 그다지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고 그냥 '정말 무리다'는 생각밖에 안들었으니까요.



7. 가장 완벽한 범죄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 (아가사 크리스티)

이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골랐습니다. 좀... 멍청한 질문이라고(죄송) 생각됐던 터라... 쿨럭;; 이 소설의 특성을 생각할 때 너무도 당연한 선택이지요. 흠흠. 세진 님께서 제프리 아처의 '한 푼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를 들어주신 걸 보고 아차 또 있었군 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후자의 경우는 범죄인지 아닌지조차 사기친 당사자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기물이었으니 전자에 만족할래요.



8. 가장 멋진 대사

지노와 나는 모두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모든 악몽의 결론은 바로 이것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그이고 그가 나이며, 밤의 어두운 느낌 속에서는 희망과 공포가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

(의혹 Pleading Guilty, 스콧 터로우)

이건 번역본의 주어진 문장 그대로를 좋아합니다. 원본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다가오는 의미도 조금 다르고 결정적으로 덜 멋있었어요. (쿨럭;;) 전 좀 원본주의자의 면모를(자랑스럽지는 않지만)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몇 안 되는 예외에 속합니다.

그 이상은 따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9. 배신하지 않는 작가(가장 믿을 만한 작가) : 딕 프랜시스, 스콧 터로우

딕 프랜시스는 제게 있어 상업적인 작가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느껴지는 작가입니다. 논란거리가 될 만한 부분도 없고,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것도 아니고, 소재는 특별하지만 그 외에는 정말 재미에 충실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재미만 추구하다 무언가가 희생되는 것도 아니고요. (여기서 할란 코벤이 떠오르는 이유는?) 매 권마다 주인공이 달라지기 때문에 시리즈물로서의 개성을 찾기도 막연하지요. 그래서 언제 읽어도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집게 되는 작가입니다. 그리고 그만큼은 틀림없이 가져다 줍니다.

스콧 터로는... 요새 어쩌다 보니 이 작가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많이도 했습니다만... 그 역시도 비슷한 의미에서 안정감 있는 타율을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추리소설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빼어난 작품은 없지만, 실망을 주거나 아쉬움을 남기는 일도 없습니다. (터로의 작품들에서의 감정의 과잉에 대한 이야기를 한 건 아쉽다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 특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작품 따라 읽는 사람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였어요. 그걸 아쉬운 점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런 작가들이 더 있겠지만, 아직까지 제게는 이 두 사람이 전부입니다. 그런 작가가 더 있다면 정말 환영합니다. 추리소설은 근본적으로 제겐 오락거리인데, 팬의 마음으로 보기 시작하면 가볍게 잡기가 점점 힘들어지거든요. (퀸은 그런 측면에서도 불가사의하며 단연코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팬으로서 바라보면서도 가볍게 집을 수가 있단 말이지요.)



10. 가장 잘된 추리(미스터리) 영화 : 니고시에이터 :D

이건 전적으로, 당시 '스팅'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적어넣은 겁니다. (그래서 웃는 아이콘이 달렸었;;습니다.) 단연코 '스팅'입니다. 하지만 그건 미스터리 영화가 아니라 케이퍼물이군요. 그러고 보니 케이퍼물은 추리물인가요 아닌가요?;;



11. 우리나라에 꼭 소개되어야 할 작품(절판된 작품 포함) : 베크 시리즈, 펜슬러 시리즈, 에드워드 D. 호크의 작품들

이건 추리문학사에서 중요하니 소개되어야 한다!보다, 제가 읽고 싶은 작품들로 골랐습니다. 그러니 더 묻지 마세요.^^ 베크 시리즈는 '웃는 경관'의 모든 게 너무나 인상깊었고, 같은 경찰물들 중에서 리버스 경감 시리즈만큼 사람 힘을 빼는 어두운 분위기도 없고 87분서보다 묵직한 시리즈라 정말 전작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모든 작품이 '웃는 경관'급이라면, 번역되어 나온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겁니다.

펜슬러 시리즈는 제가 늘 고맙게 생각하는, 농담같이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는 작품들입니다. (겨우 두 권 읽었습니다만..) 오해를 살까봐 덧붙이는데, 위의 표현은 '범죄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다'와 결코 동의어가 아닙니다. 'Death in a Tenured Position' 같은 작품은 사회파 추리소설 못지않게 신랄하면서도, 그걸 결코 무겁지만은 않게 짚고 있거든요. 유머의 맛이 잘 살아 있는 작품들이라, 그래서 좋아합니다. 그래서 더 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 유머가 번역하기 매우 힘든 언어적 유희가 많아서, 과연 번역될 날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크리스티나 홈즈도 그런 식의 영어 유머가 많은데 보면 번역할 때 그런 맛이 거의 사라지더라고요.

지금 적으면서 생각하니, 펜슬러 시리즈에 끌리는 이유를 잘 파면 제가 퀸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상당 부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가 좋아하는 점을 여러 모로 공유하는 것 같아요. 퀸도 유머가 잘 살아 있는 작품이고, 그 유머는 시덥잖을망정 특정 대상을 겨냥해 아픈 데 찌르는 그런 빈정거림은 결코 아니거든요. 그리고 둘 다 수다스런 작품이기도 하고요.

에드워드 D. 호크는 poirot 이상준 님을 통해 소개받고 궁금했던 작가였습니다. 큰 의미는 없었어요.



12. 가장 좋아하는 국내추리소설(1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면) : 알라 할림

...국내추리소설을 얼마나 안 읽었는지부터 고백해야겠습니다. '알라 할림'은 괜찮은 작품입니다만 일단 무대부터가 우리나라가 아니지요.; 반칙이었습니다. 반칙이 아니라면 변칙은 되겠군요. 그리고 실은 아주 좋아하는 작품도 아닙니다. 경현 님께서 많이 지적하시는, 주인공을 통해 아는 티를 내는 경향이 좀 있어요.^^ 그러나 그 정도의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라면 분명 읽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받고 있는 대접(완전히 무시됐지요)보다는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소설입니다.



13. 미스터리 초보에게 추천하는 작품 셋(순위 없이) : 도둑맞은 편지, 말타의 매, 오리엔트 특급살인

셋 다 기본입니다. '도둑맞은 편지'는 포의 작품이니 당연히 들어가야 하고, 그 중에서도 추리소설에서 중요한 트릭과 시선의 문제를 촌철살인의 정확함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 '모르그 가의 살인'보다 좋아합니다. '말타의 매'는 하드보일드의 시초이자 그 중에서도 뭐랄까, 돋보이는 맛을 지닌 작품이고요.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설명이 더 필요할 텐데, 일단 고전기에서 한 작품을 골라야 한다는 걸 전제로 깔고, 도일와 크리스티 사이에서 고심을 했었습니다. 퀸은 제 개인적으로야 매우 좋아하지만, 입문자에게 처음으로 추천을 하는 경우라면, 시초이자 완성형인 코넌 도일와 백과사전적으로 트릭과 플롯을 거의 모두 커버한 크리스티 중에서 고르는 게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홈즈 시리즈에서 작품을 뽑지 않은 것은 홈즈의 경우 대표작이라 할 만한 '그 한 작품'을 고르기가 힘들어서도 있고, 단편 위주이다 보니 포가 어느 정도 커버한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합니다. 크리스티도 '그 한 작품' 고르기는 힘들지만, 퍼즐 미스터리의 진수를 골라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둘 경우에는 답이 비교적 명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오리엔트 특급살인'입니다. 그리고 의외의 범인이라는 점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이니까, 기본적인 요소는 다 갖춘 셈이지요.

그렇게 쓰다 보니 '오리엔트 특급살인'이 가장 나중에 들어갔는데, 셋 중에서 읽을 순서를 정하라면 '도둑맞은 편지' - '오리엔트 특급살인' - '말타의 매' 순입니다. 추리문학사적으로도 맞고, 작품 경향상으로도 그게 어울리지요.



14.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그 이유. : 응집력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

사실 그 이유는 아직도 찾는 중입니다. 동윤 님의 답변('욕망'을 다룬다는 점에 주목하신)이 많이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만 그걸로 충분치가 않아서요.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 추리소설의 의미를 설득할 때 가장 맞는 답변이긴 합니다만 제 개인적인 동기까지 설명하진 못하는 것 같아요.



15. 그리고 할 말이 남았다.

없었습니다.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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