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이번에 이 사람 이름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존 샤이반이었군요.



  The Pine Bluff Variant는 샤이반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에피소드였죠. 엑스파일을 통틀어서도 단독에피소드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각본이 힘이 넘쳤고, 그 각본을 너무나 훌륭하게 연출해냈고, 음악도 호흡이 딱딱 맞아떨어졌고... 전 이 작품을 KBS 본방으로 처음 보았는데, 클라이막스쯤 가서는 멀더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저 인간 저렇게 죽어...? 하고 가슴을 졸이며 보았습죠. 몰입의 힘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엑스파일 코멘터리는 항상 재미있는데, 아마도 이건 제가 촬영 뒷이야기스러운 trivia들에 약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사소하고 별 의미 없는 사실들을 얻어듣는 게 재미있어요. 그리고 엑스파일 제작진 중에도 저같은 사람이 많은지, 보면 사소하고 (귀여운) 장치들이 많더군요. 그리고 샤이반이 작가이다 보니 하나의 각본이 완성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도 좀 들려주고, 제작자이다 보니 보우만의 연출이나 로케이션 헌팅에 대한 이야기들도 재미가 쏠쏠합니다.



  샤이반은 처음부터 스릴러 장르를 해보고 싶었다는군요. 몇 년 전부터 '멀더의 잠복근무'를 자기 메모판에 써붙여 놓고 있었는데, 실제로 할 기회가 주어졌던 건 몇 년이 지나서인 5시즌이었다고 합니다 (샤이반은 3시즌부터 합류했습니다). 샤이반 말로는 5시즌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멀더와 스컬리 간에 불신의 요소가 끼어들면서 두 사람 사이가 벌어졌던 터라 스컬리가 멀더를 믿지 못하는 상태로 흘러가는 이 에피소드의 초반부가 그럴싸하게 다가왔지 않느냐는 거지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글 쓸 때 전체적인 스타일은 '히트' 같은 영화를 많이 참고했다고 하고요. 연방검사로 나오는 캐릭터의 이름이 리머스인데 요게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의 주인공 이름이지요. 아는 작품인데 연결시켜 볼 생각은 못했었습니다-_-a;; 스펠링이 Leamas네요. 저는 Rimus쯤 되지 않나 싶었거든요. 이렇게 써놓으니 누구 이름하고 비슷하네욤.; 그 외에도 몇 작품을 더 언급하고, 다른 캐릭터 이름도 어디서 따왔다고 하던데 제가 까먹었습니다.



  제목인 파인 블러프 변종은 아칸사 주에 있는 지역 이름으로, 60년대 후반까지 이곳에 미국 국립 생화학연구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에피소드에서 문제가 되는 연쇄상구균의 변종이 미국 국내 생산품이라는 플롯 전개가 이곳의 존재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목도 그렇게 붙인 거고요.



  이 에피도 로케이션 헌팅이 좋았던 에피라는데, 극중에 나오는 은행은 실제 은행이었답니다. 촬영 당시에는 문을 닫은 상태였지만 한때는 수억 달러를 취급했던 지점이라고, 있었던 그대로 촬영했다고 하더군요. 금고도 그 당시 은행 금고였다고요. 보우만이 여기서 롱샷을 정말 대단하게 찍었다고 샤이반 칭찬이 늘어지더군요^^. 테러리스트들의 본거지가 되는 곳도 운좋게 적재적소를 찾았는데, 거기서 온실용 불투명 비닐 천막이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그걸 그대로 차용하고, 그 외에도 군데군데 차단과 은폐의 상징처럼 그 비닐을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맨 마지막에 문제의 은행을 폐쇄하는 씬에도 옆에 엄청 큰 불투명 비닐 차단막이 등장하고, 테러리스트들이 은행 강도를 상의하는 (멀더에게 가면이 건네지는) 장면에도 멀더 뒤로 같은 비닐이 벽 대신 붙어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다 거기서 착안한 거라는군요. 찍기 시작할 당시에는 그런 연출을 하는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은 상태였대요.



  은행 강도 씬은 샤이반은 '히트'를 많이 떠올리고 썼다네요. 가면 때문에 우습게 보일까봐 스태프들은 걱정이 많았지만 찍고 보니 근사했다고요. 자긴 스킨헤드 캐릭터가 쓴 해골 가면이 좋았답니다. 멀더에겐 원래 늑대인간 가면이 주어질 예정이었는데 데이빗 듀코브니가 어렸을 때부터 드라큘라 가면이 쓰고 싶었다고 자기한테 전화를 해와 대신 그걸 쓰면 안 되겠느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답니다.



  극장도 뱅쿠버에 있는 실제 극장이랍니다. 여기 매표원으로 나오는 배우 이름이 케이트 브래드우드인데요, 넵 바로 톰 브래드우드 씨의 딸이랍니다. 시켜보니 잘해서 썼다고요.^^ 인터넷의 캡쳐 사이트들을 뒤져봤는데 이 아가씨 캡쳐를 찾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세요. 닮았어요. 그리고 멀더가 테러리스트들과의 연락을 위해 사용한 모텔도 뱅쿠버 인근의 모텔인데, 뱅쿠버에 미국 모텔 분위기가 나는 모텔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엑스파일 촬영차 여러 번 사용했던 곳이라, 눈밝은 사람들은 알아봤을지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제 눈은 밝지 않았습니다^^)



5x18 The Pine Bluff Variant

ⓒ 20th Century Fox & 1013 Production



  위 사진은 티져의 공원 매복 장면 중 하나인데요, 멀더가 헤일리가 탄 차를 보내주고 딴 방향으로 뛰어가는 걸 스컬리가 목격하는 대목입니다. 뒷모습만 나왔는데 대역이었답니다. 눈치챈 사람들 별로 없었을 거라고, 어색하지 않게 잘 찍히지 않았느냐고 하네요. (역시 전 눈이 밝지 않다는...^^;;) 근데 스티브 키지악은 듀코브니와 허우대가 정말 닮았어요; 참, 이 공원은 워싱턴의 공원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는 뱅쿠버이고, 워싱턴에 벚꽃이 많기 때문에 벚꽃 많은 공원으로 골라 찍고, 국회의사당은 CG로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근사하게 됐다고 자랑스러워하던데 전 뛰는 멀더 보느라 그 장면 뒤에 배경으로 국회의사당이 지나가는지도 몰랐던OTL...;;



  에피소드 하나를 촬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8일이랍니다. 그래야 방송 스케쥴을 맞출 수 있다네요. 그런 환경에서 영화처럼 다양한 시도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엑스파일은 그렇게 해왔다고, 제작진이 정말 대단한 거라고 하면서, 이 에피소드에도 다양한 촬영 방식을 썼다고 하더군요. 스테디캠부터 에.. 그... 용어를 까먹었는데 카메라길을 설치하고 그걸 따라 찍는 걸 뭐라고 하죠? 멀더의 death march 씬에서 그 기법을 썼는데 아마 그때까지 엑스파일에서 같은 기법을 쓴 것 중 가장 긴 길이였을 거라고 하더군요. 이 부분은 저는 재밌게 듣긴 해도 뭔 말인지 잘 몰라서..(__)a;;



  우야든둥 항상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완성된 각본을 가지고 작업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한 에피소드 내에서 이 장면 찍는 동안 다른 장면 대본 쓰고 그런 일은 다반사라고 합니다. 이 에피소드도 멀더 손가락 부러뜨리는 장면을 찍을 때만 해도 그게 나중에 그렇게 중요해지리라는 생각은 못한 채로 쓰고 찍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작가진에서 '스컬리가 스물 여섯 군데의 은행강도 CCTV만 보고 어떻게 멀더를 알아보지'를 놓고 골머리를 싸매던 중 멀더의 손가락에 댄 부목을 이용하면 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하더군요. 고문씬을 쓸 때 작가진에선 어느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게 가장 효과가 크겠느냐는 걸 놓고 일장토론을 벌였답니다. 그런 취향이라면 엑스파일 작가 스태프 되면 재미가 좋을 거라네요. 자기 얘기 아닌가 싶었어요^o^;;



  은행강도 후 브레머가 돈을 태우는 걸 보고 멀더가 비로소 은행털이의 진상을 깨닫고, 헤일리가 브레머의 정체를 폭로하려다 브레머에게 반격당해 멀더랑 쌍으로 배신자로 몰리는 대목이 가장 쓰기 힘들었다고 하는군요. 워낙 반전에 반전으로 꼬여 있으니까요. 드라마의 대본은 팀웍이기 때문에, 쓰면서 여기저기서 피드백을 많이 받는데, 그게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 장면(멀더의 death march라고 자기들끼리 불렀다던)도, 앞에 언급한 대로 주인공이 죽을 위기에 몰리는 씬이라는 점 때문에 쓰기도 힘들고 찍기도 어려운 대목이었다고 - 어쨌든 시청자들은 이 캐릭터가 다음주에 돌아온다는 걸 아니까요 -, 그래도 자기는 멀더가 차 타고 도망가는 것까지 찍고 싶었지만 43분이라는 러닝타임 제한 때문에 못했다고, 이게 영화였다면 집어넣을 수 있었을 거라고 얘기하네요.



  카터는 항상 '현실처럼 보이는 게 가장 무섭다'고 강조한다고 합니다. 자기도 동의한다네요. 그래서 공포 효과나 충격 효과도 과도하지 않게, 실제처럼 찍으려고 애쓰는데 때로는 그게 쉽지 않다고, 극장에 두 아이녀석들이 숨어들어갔다가 살이 녹아내린 시체들을 발견하는 장면도 어떻게 하면 공포영화 클리셰처럼 찍지 않고 현실감 있게 가는가가 관건이었다고 합니다. 그 뒤 스컬리와 부국장이 시체들 사이를 걷는 것도 찍기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건 다른 것보다도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긴 보여줘야 하는데 (밀레니엄에서 다린 모건이 엄청 깐) 방송심의위원회를 거스르지 않도록 찍어야 해서 어려웠다는군요. 하지만 엑스파일에는 드라마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무적의 스포트라이트급 손전등 조명(뭔가 부르는 말이 있었는데 제가 잘 몰라서...;;)이 있으니까, 그걸 가지고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줄 수 있다고 합니다. 방송을 위한 트릭이라는 투로 들렸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다 보니 관객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제대로 했는가가 신경이 쓰였다는데, 그래도 모든 설명을 다 하지는 않고 남겨두는 것이 엑스파일다운 거라는 발언을 하시네요. 이 @*&#$^$ 같은...^o^;; 엑스파일은 다양한 장르를 모두 포괄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그런 면에서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해왔고 5시즌에서도 시청자들은 엑스파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걱정했을지 모르지만 제작진이 그런 시도를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엑스파일이 이만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아니겠느냐고 하는군요. 이건 제가 살짝 왜곡해서 전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이해한 바로는 그랬어요. 그리고 이 에피소드도 바로 그런 면에서 의미있었고, 특히 배우들이 새로운 연기를 시도해볼 수 있었기 때문에 좋아했다더군요. 멀더가 고문당하는 씬이라던가요. 아참, Pepsi challenge는 듀코브니의 애드립이랍니다. 마지막에 스컬리가 폭발하는 대목도 자긴 좋아한다는군요. 스컬리가 워낙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캐릭터라 언성을 높이는 신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나오면 나올 때마다 좋다고요. 아 그리고 질리언이 과학적인 대사들을 읊는 데 능하다는 칭찬을 합니다.



  이 에피가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았던 건 높은 완성도 때문이었는데, 코멘터리는 그 높은 완성도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졌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군요. 그런 의미에서 엑스파일 제작진들은 다 천재들인 것 같습니다. 샤이반은 사실 초자연 에피소드에선 그다지 잘하지 못해 팬덤에서 종종 까였었는데요, 자기 장기를 숨겨놓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근거는 없는 추측이지만 8-9시즌에서 그의 비중이 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끔 했었지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능한 것 같아요. 수퍼내추럴 팀에서 큰 플롯 전개를 잡아줄 사람으로 데려갔다는 것도 그렇고, 지금 찾아보니 현재 우리나라 케이블에서 방송 시작한 The Legend of the Seeker에도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네요. 이것도 스케일 큰 이야기를 소소한 레벨에서 하고 있지요. 이 코멘터리에서도 샤이반은 5시즌 전체에서 이 에피소드가 차지하는 위치와, 멀더와 스컬리의 관계의 변화가 이 에피소드의 배경을 까는 데 어느 정도로 작용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뉴 스파르탄스라는 이 테러리스트 그룹이 멀더에게 접촉해 오게 된 계기가 멀더가 MIT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반정부 발언을 대놓고 했기 때문이라는 발언이 에피 속에서 나오는데, 샤이반은 (많은 팬들이 추측한 바대로) 그게 Patient X의 컨퍼런스가 아니겠느냐더군요.^^ 콕 집어서 그게 그거였다,라고 하진 않습니다만. 사실 그래 주는 게 팬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제작진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해석을 제시해버리면 남는 게 없으니까요.



  전 다른 무엇보다도 멀더가 죽을 위기에 몰리는 걸 그렇게 근사하게, 믿을 만하게 연출했다는 점에서 이 에피를 오래 기억하고 높이 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텔링하고요. 하지만 제작진은 좀 더 많은 걸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 그 중 하나는 이 에피 다음다음이 바로 5시즌 피날레인 The End(다이애나 파울리의 첫등장)이라는 점에서 그를 위한 배경을 까는 의미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아요. 멀더와 스컬리의 신뢰가 벌어지는 걸 차근차근 깐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5시즌 전체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기억하려면 조금 더 공부(쿨럭;)해야겠네요.



  마지막. 샤이반에 따르면 이 에피의 주제는 중반에 헤일리의 대사로 나오는 Lies within Lies랍니다.


Posted by Iphinoe

  본즈Bones와 엑스파일을 비교하는 시청자들이 많다는 것 같다. 나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브레넌-부스 파트너쉽(AF님 표현마따나 동일인의 좌뇌와 우뇌 같은 그런 페어링, 로맨스를 내포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관계)이 가장 직접적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얼른 주목하게 되긴 하지만, 실제 두 드라마가 연계선상에 있는 건 조금 다른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엑스파일의 초기 시즌을 돌려보면서 새삼 실감한 거지만 초반 시즌의 장난스런 분위기는 본즈에서 몇 배로 노골적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매우 유사하다. 정공법으로 수사를 다루는 수사담치고 이렇게 농담하는 분위기로 밀고 나가는 드라마, 그리고 그걸 잘하는 드라마는 꽤 드문데, 나는 본즈가 그래서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를 다른 데서 본 건 NCIS가 유일한데, 그건 등장인물들간에 수평관계보다 수직관계가 더 주목받는 편이라 세팅이 좀 다르고, 그보다는 그 가벼움의 레벨이 다르다. NCIS에서는 그게 겉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면 본즈나 엑스파일에서는 삼가 말하기 식으로 한 겹 아래로 깔려 있다. 농담이나 재치있는 말주변 같은 요소로 장난같은 분위기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상황이나 묘사의 방식 등에서 가벼움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전자건 후자건 다 보기 즐겁기는 한데, 난 아무래도 후자 쪽에 더 끌려서, 본즈가 보기 더 재미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3시즌까지의 얘기고, 그 이후는 전개되어 가는 방향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과는 좀 달라서 어떨지 모르겠다.


Posted by Iphinoe

소사

카테고리 없음 2009. 3. 6. 23:50

  1.   근래 심사가 좋지 않더니 드디어 꿈에 악마까지 등장했다-_- 비록 목소리만 출연하셨지만 존재감은 물론이고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이 상당하더라. 잠에서 깨어나니 온몸이 긴장해 있었다. 얼마 전에 사탄이 나오는 소설을 읽었는데 그 영향이 지금까지 남아 있나. 하지만 그 작자는 매우 사근사근했는데.



  2.   제대로 음악을 들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살면 정말 곤란한데. 하지만 언제인가부터 음악은 그 자체보다는 실용적인 용도로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거 정말 곤란하다.



  3.   정신이 없고, 혼은 빼놓고 있고, 넋만 겨우 붙어 있는 것 같다. 바쁘다기보다는 정신이 없는 것 같은데, 한 말 또 하고 있네. 해야 할 일은 (드디어) 해서 다행이지만, 저것도 최종본이라기보다는 중간정산본이어서 나 자신으로는 미진하고 공적으로는 어마어마하게 늦어서 그저 죄송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최종본을 뽑았던 케이스로는 The Burden of Proof가 유일한가.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방향에서 압박이 장난아니게 들어왔던 상황이라서 가능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하니 L.A. 컨피덴셜 & 블랙 달리아 글도 있었다)



  4.   어디다 정식으로 다시 이야기해야겠지만, 실은 '수도원의 죽음Dissolution' 덕분에 예전부터 빼어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정도와 깊이에 그렇게까지 자신은 없었던 '옥스퍼드의 4증인 / 핑거포스트 1663'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복합적인 인간상을 모두 소화하면서 빨려드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진정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판단은 주관적인 것이지만. 내 감상이 꽤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5.   지난주에 좀 아팠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했더니 몸이 지쳤던 모양. 어렸을 때는 자주 배앓이를 하고 그 때마다 한두 번씩 토했지만 커서는 자주 아프지는 않는데, 대신 한 번 아프면 하룻저녁에 대여섯 번씩 토한다-0- 이번에는 식도에서 피가 올라올 정도로 심했다. 지금은 90%정도 회복되긴 했는데, 그러고 나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식욕을 잃은 것 같다. 아니 때 되면 배가 고프긴 하는데 뭘 먹어도 맛이 없다-0-



  6.   요새 Jose Chung's Doomsday Defense 음성파일을 만들어둔 걸 자주 돌려듣고 있다. 나중의 Satan Got Behind...의 그 날이 선 태도의 단초가 드러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훨씬 유쾌하고 - 그 색감! 밀레니엄에서 그게 가능할지 몰랐다. 파일럿과 비교해 보라 - 특히나 음악이 분위기를 많이 살려준다. 혐오가 느껴지는 사탄 에피소드와 달리 페이소스가 느껴진달까. 사유의 깊이는 From Outer Space와 비교한다면 떨어질지 모르겠으나 그건 내게 느껴지는 적실성의 문제겠지. 이 사람은 확실히 빼어나다. 주위 사람들이 감당하느라 힘들기는 하겠으나.

    그러고 보니, 그 색감은 다린 모건이 의도한 바였겠지? 처음에 명희님께서 캡쳐만 보여주셨을 때는 이게 MLM인가 싶을 정도로 놀랐었다.



  7.   XF를 비과학적인 드라마로 보는 시선들이 이해가 아주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잘 모르겠다. XF에선 사실 스컬리의 시각 역시 무시되지 않았었다고 생각한다. 과학 vs 신비의 컨셉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이 세상의 작동 원리(그런 게 있다면)를 다 알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드라마였다. 그래서 그런 방향에서 들어오는 비판은 약간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Posted by Iphinoe

  자, 이제 멀더와 스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죠. :-)






  당연하지만 스포일러 경고








  지금은 벌써 어언 네 달 전이 되었는데, 극장에 가서 처음으로 I WANT TO BELIEVE를 보고 나오던 그 때의 느낌은, '새 엑스파일이 나왔다'는 사실과 관련된 감상을 모조리 제외하면 당혹스러움에 가장 가까웠을 겁니다. 가장 두드러졌던 요인은 스컬리에 대한 묘사였지만, 찬찬히 생각해본 결과 멀더에 대한 묘사도 그 못지않게 결부되어 있었고, 그렇다 보니 결과적으로 M&S에 대한 묘사도 한몫 하고 있었어요.


  먼저 해둘 말은, 침대를 같이 쓰는 멀더와 스컬리라는 설정에는 전혀 거부감도 낯설음도 이질감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이 그다지 놀라울 것도 없었고요. 전 원래부터 멀더와 스컬리에게 좋은 결말이라면, 그러니까 두 사람이 행복하다면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었고, 그 두 사람의 관계가 어디로 수렴해 가고 있는지는 5시즌부터 명백했고 7시즌 이후로는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norm으로서는 진작 수용했던 것 같아요. 제가 스스로를 노로모로 간주했던 건 상당 부분 드라마 내에서 그게 잘 그려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확신이 없고 불안감도 컸기 때문인데, 의외로 이 부분에 대한 영화의 묘사는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솔직히 멀더, 외계인에게 납치 고문당하고 군사법정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탈옥수가 되더니 삶이 안정을 찾은 거냐 싶었지만 ㅋㅋ 어쩌겠습니까, 엑스파일에서 플롯의 개연성을 따지는 건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 쿨럭) 멀더와 스컬리의 로맨스가 드라마에서 직접적으로 그려지는 걸 꺼려했던 또다른 이유는 그것이 엑스파일의 형식과 전개에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는데, 이건 포맷이 TV 드라마에서 영화로 바뀐 지금은 더 이상 적용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I WANT TO BELIEVE를 보며 이질감이나 당혹감을 느낀 건 멀더 스컬리 로맨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멀더와 스컬리라는 개인에 대한 묘사가 기대를 너무 벗어났기 때문이었어요. 새 극장판에서는 멀더와 스컬리의 단점이 비대하게 그려졌고 플롯 전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소화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을 뿐더러,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드라마에서도 간간이 그려졌던 거지만 스컬리는 특정 계층/부류의 사람들, 특히 법의 경계선에 걸쳐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종종 필요 이상으로 적대적입니다. 군인 가정에서 자랐고 현재 경찰직에 몸담은 사람의 편견의 산물이라고 이해하려고 해도 실은 그렇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전과자라고 해서 그런 태도로 다루는 건 다분히 감정적이니까요. 지금은 FBI를 떠났다지만 그 전부터도 그랬거니와, 인생이 뜻한 바대로 풀려가는 건 아니라는 걸 아는 나이에 이르러서도 그런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공격적이 되는 건 사람이 성숙하지 못한 거잖아요. 수사를 위한 전략적인 선택도 아니었고, 실제로 도움이 되지도 못했죠.


  이 편견과 대결하는 과정이 이 영화에서 그려졌느냐 하면 실은 그런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결말이 다른 방향으로 나거나 아니면 결말에서 적어도 언급이 있었어야 할 겁니다. 이건 그냥, 조 신부에 대한 스컬리의 불신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로만 사용된 다음 (제가 보기엔) 휘트니 요원이 죽은 뒤 어딘가에서 그냥 영화 밖으로 사라진 것 같아요. 예전부터 스컬리의 그런 편견섞인 태도가 불편했던 터라 더 크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계속 거슬렸습니다. 피할 수가 없었어요T_T.


  멀더 역시, 다른 사람 특히 스컬리를 대할 때 자주 보이는, 대화가 안되는 먹통멀더^^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멀더는 협상 내지는 적어도 설득을 해야 할 시점에서 삐지는 경향이 있어요. 이 영화 내내 그랬다는 건 아니고, 중간에 병원 탈의실에서 스컬리랑 이야기할 때 그렇습니다. 스컬리가 '더 이상은 돕지 못하겠다'며 수사협조를 거절하는 그 시점은 화를 내야 할 시점이 아닌데, 멀더가 "Good luck." 하고 돌아서는 걸 보면 벌써 알 것 같죠. 그리고 심지어 휘트니 요원이 죽고 조 신부를 찾아왔다가 복도에서 두 사람이 대화할 때도, 스컬리는 위로를 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 자식은=_=; 아직 화를 내고 있어욧 (사실 여기서는 화낸다기보다는 자기 나름대로 결론짓고 사실전달을 하는 거지만).


  그렇잖아도 둘 사이가 많이 안정되어 보여서, 멀더의 일상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일에 몸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 즉 그 안정되어 보이는 모습이 실은 모래 위에 쌓은 성일지도 모르나 - 그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려는 판인데 멀더가 또 토라지고 있으니 이건 멀더답다고 해야 할지 카터답다고 해야 할지 싶더군요. 다행히 그들의 갈등은 엑스파일답게 한쪽이 위기에 빠지자 다른 한쪽이 구출하러 오면서 승화됩니다ㅡㅡ;; 정말 패턴은 바뀌지 않았어요.





  이 글은 '멀더와 스컬리' 이야기도 섞여 있지만 그보다는 '멀더'와 '스컬리'에 대한 것입니다. 멀더와 스컬리의 관계에 대해 이 영화가 취한 입장에 대해서는 (문장 좀 보게) 독립적인 글로 쓸 생각은 아직 없어요. 극장판 2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생각나면 또 건드릴지 모르지만, 이것으로 일단락짓겠습니다. 많이 길었고 별로 영양가 있는 내용도 아니었고 걸리기도 오래 걸렸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Iphinoe

  주티비의 '엑스파일: 나는 믿고 싶다' 단관행사 때 한 가지 눈에 띄었던 점은 스키너 부국장이 등장하는 순간 환호가 제일 컸다는 것입니다. 뒤통수만 보였는데도요. 심지어 스컬리와 멀더가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도 그렇지는 않았어요.


  물론 스컬리와 멀더는 정도차는 있지만 외양이 눈에 띄게 변한 채로 등장했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환호가 나올 수는 없었겠지요. 또 스키너 부국장은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번 영화에 재등장한 유일한 기존캐릭터였으니, 그런 열광적인 환성이 당연한 것이긴 했습니다. 그러니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접어도 되는 일이었겠지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어떤 면에서는 이 드라마를 그동안 부침없이 꾸준히 좋아해 오면서 종종 했던 생각의 연장선상이기도 합니다.


  바로 스키너는 이 드라마 시리즈에서 유보 없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캐릭터들 중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방점은 유보 없이에 찍혀 있는 거죠, 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다른 캐릭터들은, 심지어는 메인인 멀더와 스컬리까지도 좋아한다는 말이 그렇게 당연한 듯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 판단으로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엑스파일에서 스키너와 동급은 론건맨뿐입니다. 펜드렐이라던가 척 같은 좀더 마이너한 캐릭터들을 드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들은 드라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같지 않잖아요.


  멀더나 스컬리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말을 한 사람에 대한 가늠자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의 성향, 취향, 기타 등등에 대한 판단의 지표가 될 수 있죠. hidden agenda 혹은 subcontext 없는 호오가 존재하기 힘든 거예요 (→ 우리말로는 도무지 표현이 생각이 나지 않고, 영어 표현은 아무래도 사전적 정의를 멋대로 전용해다 쓰는 것 같긴 한데 도저히 적절한 단어를 못찾겠네요). 조연들도 상당수가 그렇습니다. 담배 피는 남자CSM을 좋아한다 말하는 것은 (무리없는 발언이고 결코 소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정치적 선언'이 됩니다. 상황과 개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발언을, 선택을 변호해야 하는 거죠. 제가 직접 체험한 건 삐약이 눈물 정도밖에 안 되겠지만, 팬덤에 지치지 않는 논쟁거리를 제공한 멀더리스트와 스컬리스트의 입장 차이 같은 현상이 한 예가 될 수 있겠군요. 물론 그 토론에는 다른 요소도 그 못지않게 작용합니다만.


  거기서 예외적인 캐릭터가 스키너와 론건맨입니다. 론건맨은 정말 보편적으로 사랑받고 거기에 아무도 이견이 없는 캐릭터들이죠. 스키너 역시 우리편과 적을 포괄하는 접촉 범위에 ― Memonto Mori를 보면 2시즌에 결별한 것처럼 나옴에도 불구하고 스키너는 CSM과 원하면 언제든 접선할 수 있습니다 ― 5시즌 초반까지도 필요하면 언제든 모호하게 그려지는 allegiance에도 불구하고 팬덤에서의 호감도는 종종 제 예상을 상회합니다.


  전 그 요인이 크게 두 가지에 기반하는 것이 아닌가 짐작하는데, 우선은 스키너에 대한 묘사가 경제적이었다는 데 원인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3시즌 Avatar, 4시즌 Zero Sum처럼 스키너에 온전히 바쳐진 에피들이 있다는 사실은 역으로 스키너가 외부적으로 '보여지는' 면이 많은 캐릭터였다는 뜻이죠. (Musings of CSM은 기능이 좀 다른 에피소드라 같은 맥락에서 평가해선 안된다고 보고요.) 캐릭터의 부정적인 면을 묘사하는 데 있어 집착적일 만큼 집요하게 파고드는 게 엑스파일의 특징이고, 그 과정에서 그걸 절대 매력적이지 않게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긴 하지만, 스키너나 론건맨 같이 약간은 기능적인 입장에서 출발한 캐릭터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예리한 메스를 들이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도겟과 레이어스가 M&S의 대체 캐릭터로 등장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함에도, 다른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 부분이 커요. 설득력이 있었는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적어도 도겟에게는 파고들 여지를 주려고 노력했지만 레이어스와는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었지요.


  두 번째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게 실은 더 흥미롭고 불명확한 문제인데, 스키너가 이 시리즈에서 일종의 '좋은 가부장' 역할을 담당..아니 전담한 캐릭터다 보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겁니다. 엑스파일의 대체가족 구도는 여러 분석에서 이미 논한 바가 있는 내용이라 굳이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그 속에서 스키너의 '좋은 상사/관리자/아버지/가부장'으로서의 역할이 어떻게 형성되고 작용하는지는, 뭐 그를 제외하고는 FBI에서 합리적이고 선이 분명하면서도 포용적인 간부급 인물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것을 상기한다면 그걸로 이미 Q.E.D.(증명종료)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얘기는 조금은 개인적이고 약간은 꺼려지는 이야기인데... 저는 사실 이 부분이 조금은 껄끄럽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껄끄럽다고 말하기조차도 껄끄러운데, 우야든둥 저도 스키너를 매우 좋아하고 이런 윗사람이 현실 속에 존재하기가 쉽지 않으며 있어주기만 한다면 그저 감사해야 할 존재라는 걸 알지요. 그리고 그런 걸 다 떠나서 드라마에서 묘사된 스키너라는 개인에 대한 애정도 당연히 크고요. 그럼에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 문제가 엑스파일이라는 드라마 자체에 대한 제 태도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쓰기는 거창하게 썼는데, 간단히 말해서 저는 이 드라마에서 가족주의에 반하는 시각을 보는 것이 좋았어요. 이건 개인적인 선호의 문제라, 제가 그렇다고 엑스파일이 그런 방향으로만 가야 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멀더와 스컬리의 관계가 명백하게 흘러가기 시작한 5시즌 이후로는 적어도 두 사람이 함께하는 것이 두 사람에게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했고, 아마 그랬기 때문에 I WANT TO BELIEVE에서 침대를 함께 쓰는 두 사람의 모습에도 그다지 저항감이 없었을 겁니다. 카터가 잘 그려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혹감도 별로 없었어요. 그러나, 혹은 그럼에도, 이 시리즈가 내가 알던 그 모습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은 셈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약간은 미묘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같지요. 그리고 선량한 가부장으로서의 스키너의 존재가 이 새로운 구도 속에 일종의 확인 도장을 찍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엑스필들의 극장판 2 단체관람 때 스키너의 등장에 쏟아진 환호 속에 느꼈던 당혹스런 이질감의 정체와 그 근원을 파악해 보려는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부디 너무 돌은 던지지 말아주세요^^;


Posted by Iphinoe

  1.   한동안 폭스채널의 노예처럼 살다가 (주로 몽크Monk와 본즈Bones 때문) 로앤오더Law & Order 2시즌부터 제대로 꽂혀서 한 달 넘게 The "soul" of L&O에 허우적대고 있는 중. 하지만 SVU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덜 먹힐 스타일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3시즌 방영 도중에 콜드 케이스Cold Case에 방송 시간을 내주고 자정으로 밀렸었다. 그러고는 더 할 계획이 없어 보였는데, 최근 7시 반 타임에 3시즌 재방송을 해주고 있어서 들며날며 보고 있다.

  역시, 다시 보는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정자세로 앉아 몰입하게 만드는 에피가 아주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중간중간 집중이 날아가는 경험도 솔찮이 하고는 있다. 재미가 없다는 뜻은 아닌데, 여러 번 보면서도 몰입도가 저해받지 않는 작품이 워낙 드문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엑스파일과 웨스트윙이 내 안에서 정말 대단한 작품인 것. 물론 그 둘 사이에서도 XF와 TWW의 격차는 꽤 크다.

  그럼에도 배우들, 특히 고정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subtle한 연기 할 때는 정말 좋다. 그런 점 때문에 결국 또 보고 또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정말 힘있는 에피소드들이 종종 터져주는 것 때문에.




  2.   L&O 3시즌 첫방 끝나고 나서 그 파트너쉽들이 아까워서 (→ 이 말은 좀 설명이 필요한데, 그러니까 로앤오더는 고정 캐릭터 여섯 체제로 움직인다. 역할에 따라 경찰 쪽에 셋이 있고, 검찰 쪽에 셋이 있는데, 3시즌 끝나면서 고정 캐릭터 둘이 한꺼번에 바뀐다) 만만한 팬픽션닷넷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아뿔싸, 갑자기 EFC에 불이 붙었다. 이 시리즈는 사실 그다지 좋아하는 수준까진 아니었는데, 거기서 놀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좀 뒤져보다, 나와 프로파일링 & 시리즈에 대한 태도가 모두 일치하는 작가들을 생각외로 은근히 많이 발견한 것이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B급 SF인데, 기본 설정이나 캐릭터들의 성숙도 때문에 성인 시청자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물론 내 취향과 비슷해 보이고 길지 않은 작품들만 취사선별해서 읽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원래 드라마에선 아주 가끔 꼬리를 드러냈던 기묘한 아름다움을 증폭시킨 팬픽들을 간간이 만날 수 있다.

  그 덕분에 시리즈 자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고, 그러다 어제 드디어 내가 이 드라마를 몇 편 녹화해 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0-; 잊고 있었다. 오매불망 다시 보고 싶어하는 단 하나의 에피소드는 녹화를 못 했었지만, 원래 시리즈가 어땠었는지 거진 잊어가고 있던 터라 어제 한 번 다시 걸어봤다.

  어설프긴 좀 많이 어설프더라 ㅎㅎ. 원래 이렇게 내놓고 미래세계인 SF는 스타트렉처럼 아예 배경이 다르거나 아니면 돈을 많이 붓지 않는 이상 티가 나기 마련인데, 파이널 컨플릭트Earth: Final Conflict는 돈 없어 보이고 배경도 지구인 데다 트와일라잇 장르적인 성격이 섞인 터라서 화면이 구린 건 어쩔 수 없었다. 좀 과하다 싶을 만큼 형광톤이 되는 것도, 그 때 볼 때는 잘 몰랐는데, 그 뒤에 다른 것들 보다 보니 어설픈 특수효과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 같거든. 배우들도 연기의 맥을 잘 잡지 못해 어설픈 것이 눈에 보인다. 4시즌이면 할 만큼 해왔고, 2-3년 이상 레귤러였던 배우들도 수두룩한데 연기하면서도 다같이 조금씩 어색해 하는 것 같았다OTL..



  원래 EFC는 드라마 그 자체보다도 그 설정에서 오는 가능성 때문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라서, 그 어색함에 몸이 근질거려 가면서도 재미는 있었다. 그런 시리즈들이 좀 있다. 다크 엔젤Dark Angel도 그랬고, 로스웰Roswell도 그랬었고. Roswell은 원작이 소설 시리즈였고, DA는 잘 모르겠지만 EFC는 뒤에 소설로도 좀 나온 모양인데 그건 기회 되면 읽어보고 싶다. 소설로는 훨씬 근사하게 뽑혀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서. 전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이 묘사되기 때문에, 무대를 조금만 바꾸어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고, 담길 수 있는 이야기도 많다.




  3.   중요한 건 가장 마지막에. 엑스파일에 대한 생각은 신기하게도 최근 줄어들었다. 나 자신의 원인도 있겠지만, 아마도 큰 부분은 I WANT TO BELIEVE 탓이 아닌가 한다. 이 영화의 존재가 은근히, 의식 못하는 사이에 많은 것을 바꾸었다.

  M&S에 대한 묘사 때문일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영화가 closure이긴 한데 - 후속편이 나오고 아니고를 떠나서 말이다 - proper closure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이건 내 문제일까? 내 문제일지도 모른다.


Posted by Iphinoe

산도발과 크라이첵

our town 2008. 11. 17. 13:05




  Earth: Final Conflict 4시즌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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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내가 Earth: Final Conflict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산도발 때문일 것이다. 원래도 모순된 캐릭터들이 흥미를 끌었거니와, 우연히 지나가다 마주친 4시즌의 한 에피소드에서 산도발이 굉장히 크라이첵 과로 보였기 때문이다. 크라이첵은 처음에 성우 때문에 내 눈길을 끌었고 (사람의 취향이 그렇게나 일관된 것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그 다음에는 그 캐릭터의 단호함과 모호함이 나머지를 채워준 케이스인데, 나는 그의 driving force, 즉 그가 움직이는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것 때문에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이기적인 캐릭터가 아니었고, 그 자신만의 생존을 노리고 움직이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정보의 전모가 전면에 드러난 적이 한 번도 없고, 따라서 겉보기에 양쪽 진영을 모두 오가며 상황에 따라 말바꾸기를 비굴할 만큼 쉽게 하는 모습에 걸맞는 논리를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EFC의 로널드 산도발은 이 시리즈에서 가장 명백한 악역 중 하나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는 2-4시즌까지 시리즈의 명실상부한 메인 악당이었던 조올Zo'or을 능가하는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조올이 인류에 대해 행하는 사악한 짓은 일견 나 또는 우리가 아닌 남에 대한 것이지만, 산도발이 조올의 행동대장으로서 그걸 돕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에 반하는 행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외계인인 Taelon들의 경호원이자 조력자들(Protectors)은 그런 윤리적 판단을 무력화시키고 오로지 Taelon에 대한 충성심만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장치를 머리에 이식하고 있으므로, 따지고 보면 그게 전적으로 그의 잘못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산도발이 조올을 돕는 데 있어 유독 철저했고 그 과정에서 그 스스로의 권력욕이 단 한 번도 경시된 적이 없기 때문에, 그의 가혹함이 유달리 돋보였던 것이다.


  그 구도가 일탈하기 시작하는 게 4시즌 후반부이다. 테일런이 인류를 돕는 척하면서 뒤에서 착취하고 있는 진정한 이유가 밝혀지면서 조올은 단순한 인류의 적이 아니라, 테일런과 인간 모두를 버리고 혼자 살아남으려는 이기적인 존재로 자리매김을 한다. 테일런은 단순히 자리디언이라는 적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에너지 소스의 부족으로 인해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었고, 조올은 인류를 통해 존속의 희망을 찾으려는 테일런 의회의 노력을 이용해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고 있었다. 그는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산도발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은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인데, 이 시리즈의 주인공이 (당연하게도) 산도발이 아닌 고로 자세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 이래서 팬픽 쓰는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겠다.^^ 그러나 밑그림은 주어진다. Companion Protector로서 머릿속에 이식했던 문제의 장치가 고장나면서 자신이 해온 일의 진정한 의미와 결과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된 산도발이 - 그리고 인류와 테일런 양쪽에 대해 숱한 음모를 획책해 온 조올의 오른팔인 그가 모든 진실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 테일런들을 등뒤에서 배반하여 그들과 전쟁 중인 적 자리디언들과 손을 잡고는 상당한 기간 동안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해왔던 것이다.


  이 정도 되면, 내가 왜 크라이첵과라고 했는지 이해할 것이다. 테일런은 인간들을 이용하고 있었고 조올은 그런 테일런들의 노력까지 이용할 마음이 있었으며 산도발은 테일런에 대해 무조건적인 헌신과 충성을 세뇌시키는 장치를 이식받아 그런 조올의 음모를 전적으로 돕고 있었다. 그러다 테일런들의 본질을 깨닫고는, 그동안 해온 일을 바로잡으려 노력한다. 다 좋다. 그런데 이 자가 취한 해결 방식이 지극히 자기중심적인데다 근시안적이어서, 그 점이 재미있달까 흥미있달까 그러했다.


  산도발이 취한 액션을 보자. 그는 우선 지구정부와 접촉해서 사면권과 금전적 보상을 얻는 대가로 테일런들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다. 그러나 자신의 진의를 사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모종의 배신감에 사로잡힌 것 같다. 이 계획이 불발되자 한 발 더 나아가 테일런들의 적인 자리디언과 뒷거래를 한다. 테일런들을 멸망시키고 나면 지구의 지배권을 넘겨달라는 것이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는 배신당하고 테일런과 인류는 함께 공멸의 위기까지 몰린다. 그럼 대안은 없었느냐? 있었다. 윤리의식이 모호하긴 하나 상황에 따라 손잡을 수 있는 좀 더 나은 테일런도 있었고, 활동 중인 저항 조직도 지구에 있었지만, 산도발 역시 다른 사람의 선의를 쉽게 믿지 못하고, 거기다 저항 조직의 능력을 의심한 터라 그는 자기 보기에 빠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뼛속까지 악당이라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데 방법까지 글러먹었다, 너무 재미나다.


  확실히, 테일런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충성을 담보하게 하는 그 장치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이후의 산도발은 여러 측면에서 크라이첵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산도발과 크라이첵을 같이 놓고 보다 보니, 크라이첵의 선의에 대해 믿고는 싶었지만 그다지 확신이 없었던 내 그동안의 숙제에 서광이 비치는 것도 같다.^^


  크라이첵에게는 권력욕이 없다. 산도발이 궁극적으로 괴물이 되는 것은 그가 문제의 기계장치를 이식하고 저지른 짓들의 사악함 때문이 아니라, 그 장치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이 그동안 무슨 짓을 해왔는지 깨닫고서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취한 방식이 너무나 엇나갔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본인이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 자기파괴적인 성향이야 없더라도 에고가 강한 인물이긴 하다 - 그렇다 해도 이미 그 시점에 이르러 그것밖에 대안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리고 거기 지구의 지배권을 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건 이 캐릭터가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는 얘기인 것...ㅡㅡ; 5시즌은 보지 않았지만 5시즌의 산도발이 이미 제정신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긴 5시즌에 이르러서는 시리즈 자체가 미친 상태였지만.


  하고자 하는 말이 내 안에서도 그다지 분명했던 것이 아니라 중언부연한 느낌이긴 한데, 어쨌든 이걸로 끗ㅡㅡ;







  P.S. 드라마 자체에 대한 첨언. 사실 그다지 좋아하는 시리즈도 흥미있어하는 시리즈도 아니었다만, 설정이나 산도발의 캐릭터 같이 당기는 요소들이 몇몇 있었다. 각 에피소드가 재미있다기보다는 전체 설정과 캐릭터 설정에서 보이는 가능성이 매력적이어서 관심을 가졌던 편이다. 그 가능성을 시리즈가 120% 다루어주진 않았기에 그 점이 아쉬웠으나, 전체적으로 B급 SF였던 터라 할 수 있는 한은 했다는 생각이다. 5시즌은 제외. 거긴 총체적 난국에 드라마에 대한 추억마저 (있었다면) 망쳤을 재앙이었다. 엑스파일 8-9시즌은 사실 여기 대면 명함도 못내민다.
  이 드라마는 주연급이 자주 교체된 편인데, 나는 르네 팔머 Renee Palmer, 리암 킨케이드 Liam Kincaid, 조올 Zo'or, 다안 Da'an, 로널드 산도발 Ronald Sandoval이 메인급이던 3-4시즌에 제일 익숙해 있다. 따뜻하고 넓은 마음씨의 휴머니스트 분 Boone 요원을 사랑하는 코어팬들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정작 나는 분 요원을 잘 모른다. 내게 이 시리즈의 여주인공은 (릴리가 아니라) 르네이고, 남주인공은 모르겠다. 산도발은 전 시즌 출연한 유일한 캐릭터이긴 하지만 나도 양심이 있지 주인공이라 부를 수는 없고, 리암에 대해서는 좀 유보적이다.




  P.S. II.  쓰긴 했는데, 이 시리즈에 대해 관심가지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E 채널에서 방송은 했었다.


Posted by Iphinoe

팬픽 잡담

afterwards/chitchat 2008. 11. 5. 21:52

  최근 팬픽션닷넷에서 놀고 있습니다. 제가 접했고 캐릭터 또는 스토리에 일부나마 관심을 가져봤던 미드가 생각보다 꽤 많더군요. Popular나 Earth: Final Conflict처럼, 우리나라에는 방송되지 않았거나 방송되었어도 거의 이야기되지 않았던 시리즈들도 있습니다.


  보통 TV시리즈 팬들은 웹에 팬픽션 아카이브를 별도로 가지고 있죠. XF에겐 고사머, 스타게이트 SG-1은 스타게이트팬닷컴이 있고, 로앤오더는 아포크리파에 주로 모이는 것 같더군요. 로스웰은 종영 전에는 크래쉬다운이 대표적이었는데 요즘은 활동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버피버스야 버피월드가 꽉 잡고 있지요. 그러니 팬픽션닷넷에서 접할 수 있는 정도를 가지고 경향성을 운운한다는 건 좀 부정확한지도 모르겠지만, 목록을 죽 훑으면서 관심가는 걸 골라내다 보면 모종의 일관성이랄까 경향 같은 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스타게이트나 엑스파일은 일단 대작들이 많고, 스케일이 큰 것들도 자주 나옵니다. 로앤오더는 의외로 비그넷 위주더라구요. EFC는, 최근에 찾아보고 놀랐는데, 시리즈의 메인 안타고니스트라 할 수 있는 산도발에 대해 양가적이거나 꼭 전향적이진 않다 해도 은근한 태도를 지닌 팬픽들이 제법 있더군요. 사실 원작에서는 그렇게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다뤄지진 못했었어요. (아쉬웠던 부분이라...)


  팬덤에서 팬픽이 나름대로의 경향을 수립해 가는 걸 보면 가끔 재미있을 때가 있는데, 스타게이트처럼 매 회가 포스트 에피 팬픽을 불러서 이게 독립장르화된다거나 아니면 엑스파일처럼 케이스파일/로맨스물의 분리 성향이 두드러진다던가 하는 장르적인 경향성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팬픽을 통해 캐릭터들에 대한 특정 프로파일링이 고착되는 현상이 제일 흥미로워요. 스타게이트 팬덤에서 잭과 다니엘 페어가 보이는 양상은 너무 정형화되어 재미가 없을 지경이고, 어느 드라마에서나 캐릭터에게 드리우는 트라우마가 강한 특정 에피소드들은 수없이 반복되죠. 심지어 겨우 2시즌 하고 끝났던 Popular에서도 커플링이 거의 정해져 있더라고요.


  집단적으로 형성되는 독립적인 우주란 (종종) 재밌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함께 창조한다는 게 굉장히 흥미롭고 매우 강렬한 경험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투입과 산출의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경우는 더 그렇죠.


  (결론은 없습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Posted by Iphinoe

소사

카테고리 없음 2008. 10. 17. 13:06

  생각을 떠올리기만 하고 발전시키는 데 약하다는 게 내 문제인데, 이건 끈기보다는 소질의 문제다.


  Anyhow, 폴 벤느의 책 중 그리스인들이 과연 신화를 진정으로 믿었던가 하는 문제에 천착한 책이 있다. 그 문제의식에서 시작하고 거기 집중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은 우리가 어떻게 현실을 인식하고, 서로 다른 물리법칙이 작동하는 것 같은 다른 세계관들과 어떻게 화해하고 그들을 한몸에 끌어안고 사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로 말하자면 현대 물리학의 법칙에 기반해 우리 우주가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 규정하고 예수가 죽은지 3일만에 무덤에서 되살아났다는 기적을 동시에 믿을 수 있느냐에 대한 얘기인 것.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나는 픽션의 세계에 있는 캐릭터들을 일면 내 이웃보다 가깝게 느끼고 있었고, 때문에 '결국 실제도 아닌 이야기에 왜 그렇게 마음을 쏟느냐'는 지적을 실제로 들어봤거나 아니라도 늘 의식하고 있었다. 저 책의 논의를 나는 내 멋대로 편의적으로 전용해 그런 내 성향을 정당화하는 데 써먹었던 것 같고, 덕분에 고마워하고 있다ㅡㅡ;;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니까 현실/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그것이 내가 그에 대해 감정을 느끼는 것에는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모든 감정은 그 자체로 진실이다. 하여 픽션과 현실을 기묘한 방식으로 섞는 나의 현실 감각은 이런 식으로 발전했다. 일단 정붙이게 된 캐릭터가 생기면 그를 둘러싸고 픽션적 현실이 생겨난다. 그에 대한 내 감정은 진실하다. 그리고 그 뒤로는 내 선호에 어긋나는 그 캐릭터의 행동은 작가와 제작진의 탓으로 돌린다. 매우 편리하긴 하지만 생각할수록 정신분열적인 현실 인식이다.


  그런데 최근 정붙이는 픽션 캐릭터가 하나 또 늘면서 이게 내 정신건강에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특정 드라마^^에 대한 내 애정이 힘들었던 90년대를 버텨내는 데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드라마에 몇 년 나왔다 사라지는 캐릭터들은 대부분 결말이 그다지 좋지 않다. The West Wing의 샘 시본의 경우 같은 건 매우 드물다. 오죽하면 소킨이 샘의 퇴장을 "graceful"하게 그려주기 위해 애썼다는 말이 당연하게 들렸을까.


  최근 눈에 들어온 캐릭터 역시 결말이 좋지 않다. 죄책감과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한 회의에 휩싸여 사임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난 아직 거기까지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 생각을 하면 기분이 언짢아져서 볼 생각이 없어진다. 이건 중증이다. Stargate SG-1 때도, [스포일러]다니엘 잭슨이 떠난다는 사실 때문에, 다시 돌아온다는 걸 충분히 아는데도 5시즌에 들어서자마자 더 이상 진도를 못 빼고 있다. 마음을 이렇게 쏟는 건 좋은 증상이 아니다. 게다가 현실에서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어떻게 해서 쇼를 떠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주변 이야기가 좋지 못하면 - 대부분은 또 그렇다 - 겹으로 슬퍼진다.


  하긴 크리스 오웬스가 CSM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다는 드라마 내러티브 외적인 사실을 CSM의 아들이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인정받은 적 없는 스펜더의 캐릭터에 대한 내 애틋한 마음에 연결지어 위안이라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러 있는 사람에게 뭘 바랄까마는ㅡㅡa;   (← 알아들을 수 있으면 이미 진 것. 흐흐)



  p.s. 지금 생각하니, 이런 마음자리를 가진 내가 어떻게 엑스파일 7시즌을 볼 수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볼 수조차 없었어야 맞을 것 같은데. 7시즌을 보기 시작할 때 나는 이미 8시즌 향방을 알고 있었다. 어떤 생각이었을까? 그 때에는?


Posted by Iphinoe

1013

our town 2008. 10. 13. 20:58

The Truth ep behind scene


올해도 변함없이. God bless you all.


Posted by Iphinoe

  아마 내일쯤이면 대부분의 극장에서는 엑스파일을 내릴 것 같은데, 컴퓨터가 여름이라고 상태 오락가락해서 자제하느라 하고 싶은 얘길 다 못 쓰고 있다. 사실 지금 좋은(=정리된) 글이 나올 수 있다 생각진 않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고 싶은 거니까.



  아래에서 감상적인 줄 알면서도 홀딱 반해버렸다고 썼던 마크 스노우의 스코어, 오늘 다시 듣다 XF답지 않다 느끼면서도 내가 무장해제됐던 진정한 이유를 깨달았다. 아니 매번 알기는 했었는데 메모를 안해두었더니 역시나 영화 끝나고 나선 까먹었었다-0-. 문제의 줄기세포 시술 장면에서 이 스코어가 첼로 선율로 시작한다. 아니 첼로 소리를 좋아하긴 하는데, 내가 이리도 단순한 생물체였단 말인가;;



  찾아보다 이젠 귀찮아서 목록 만드는 걸 중단했는데, 아무래도 이 새 영화에 나오신 분들은 아만다 피트와 이그지빗 빼고 다 1013 작품에 한 번은 출연했던 분들 아닌가 싶다. 리스트가 끝없이 길어-_-;; 아닌 게 아니라 대사건 설정이건 소품이건, 가끔은 심지어 그... 씬의 디자인(미장센이라고 하던가)까지 자기인용이라 느껴지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보면 볼수록 이 영화가 여러 층위로 이루어져 있고 그게 다름아닌 제작진의 의도라는 걸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내 가설은 세 층인데, 이건 앞으로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물론 제작진도 요소 요소에 XF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참여했는데, 그건 정말 반갑고 안심이 되었던 사실.



  엑스필로 짐작되지 않는 관객들과 영화를 볼 때 관찰한 사실인데, 드러미 요원이 "His sister was abducted by E.T." 하는 부분에서 어김없이 꼭 웃음의 잔물결이 인다.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완전히 이해가 가는 것도 아니라. 엑스필들이 실소하는 부분은 대개 스키너와 스컬리가 주고받는 "He wouldn't do anything crazy." - (스컬리 본다) - "Well, not overly crazy." 이 대화다. Not ashamed to say, 나도 솔찮이 낄낄댔다^^


Posted by Iphinoe


    오늘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잡설을.^^



  1.   그러기엔 까메오 이름들의 이야기가 제격. 멀더가 사건의 단서를 넘겨짚는 곳인 동물 관련 잡화점 이름 Nutter's Feed(데이빗 너터 - 감독), 멀더의 휴대폰 주소록에 Bowman(롭 보우만 - 감독), Gilligan(빈스 질리건 - 작가&프로듀서), Shiban(존 쉬반 - 작가&프로듀서) 등등 줄줄이 출연한 걸 보면서 왜 킴 매너스 씨는 없냐고 했었는데, 있었다! 중간에 장기이식을 위한 수술 하는 병원 이름이 Manners-Colonial Hospital이더군. 무슨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야든둥 나오셨다. 하나 더 의심가는 게 있긴 한데 그건 확인이 되면 그 때.
  (↑ Howard Dimsdale 이야기)


  2.   전부터 생각했는데 자꾸 쓰는 걸 까먹었었다. 스컬리 귀고리 스타일이 바뀌었다. 전에는 대개 귀에 붙는 형이었는데, 이제 늘어지는 스타일이더라. 하긴 영화 거의 전체에 귀고리 하나를 고수하긴 했다. 긴 머리에 예전 스타일도 잘 어울렸을 텐데, 여튼...... 질리언 앤더슨이 나이 들면서 얼굴이 더 입체형이 되는지 엑스파일 1-2시즌 때는 완전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형이었던 게 지금은 너무 입체형이 돼서 길어보일 지경인데 가뜩이나 머리칼도 길게 늘어뜨리고 귀고리도 길고...... (몰라;;)


  3.   휴대폰 자동응답 메시지, 원하는 내용으로 녹음도 가능한지 몰랐다. 스컬리는 스컬리답게 '스컬리입니다' 하고 시작하는데, 멀더는 '나예요'-_-+   니가 전화했냐? 자동응답에서까지-_-;



  +   이번 극장판에서 내게 가장 직접적으로 생경했던 건 뜻밖에도 음악이었는데(실은 살림차린 모드인 멀더와 스컬리도 그리 어색하지 않았고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았다. 나름 노로모였는데 말이다. 이 이야기는 깊이 들어가자면 별도로 해야 하므로..), 그게 좋으면서도 이상한 기분이라 분명히 하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

  전과 같이 마크 스노우가 작업한 '나는 믿고 싶다'의 스코어는 두 가지가 섞여 있다. 하나는 서스펜스용, 즉 긴장감과 긴박감을 뒷받침하기 위한 스코어이고, 다른 하나는 드라마용으로,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에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각각 1.멀더가 혼자 단서를 찾으려 범죄현장을 둘러볼 때 나오던 음악 그리고 2.스컬리가 크리스찬에게 줄기세포 치료 첫 시술을 할 때 나오는 음악. 첫 번째 부류의 음악은 엑스파일에서 자주 듣던 것이고 액션 스릴러 류의 영화에는 언제나 나오는 것. 엑스파일답고 여전히 좋았으나 특별히 새롭다는 느낌은 없었으니 여기서는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바로 두 번째 부류의 음악이 내게 생경한 느낌을 안겨준 장본인이었다.

  생각해 보면 엑스파일에는 저렇게 대놓고 감정선에 호소하는 음악이 드물었던 것 같다. 같은 마크 스노우의 1013 작업으로 조금 범위를 넓게 잡아 밀레니엄까지 포함한다 해도, 좋은 스코어야 많았지만 그 중 멜로드라마틱한 스코어는 매우 드물었다. 5시즌 이후로 시리즈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약간은 동화적인 분위기의 스코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감상적인 정도는 아니었다. 유일하게 전면으로 스코어를 끌어낸 시도가 8시즌에 도입된 스컬리 테마였는데, 그게 얼마나 끔찍한 실패였는지는 엑스필이라면 모두 공감하리라 믿는다. 나중에는 그 스코어가 나오기만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리모콘을 찾을 정도였으니까=_= 그런데 'I Want to Believe'의 새 스코어는 매우 아름다웠다. 크리스찬의 첫 등장 때 잠깐 깔렸다가 그 첫 시술 때 본격적으로 흐르는데, 러닝타임이고 뭐고 싹 까먹고 여기가 클라이막스구나 싶었을 정도다. (과장 한 12%쯤.)

  (초기 시즌 이후로 나와주지 않은 스코어 앨범 때문에라도) 엑스파일의 스코어에 미련이 많았던 터라 새 영화 음악도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엑스파일의 스코어라고 내가 생각하고 있던 그런 경향의 음악은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 너무나 좋았기에 좋았다.;; 문제는 사운드트랙이 국내발매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 구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Posted by Iphinoe

  1. 확실히, 오랜만에 돌아온 엑스파일의 이 새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에는 이 에피소드를 어디에 포지셔닝하느냐가 결정적인 것 같아요. 어제 엑스파일에 그다지 관심없는 친구와 얘기하다 깨달은 건데요 (역시 안에 있으면서 바깥의 시선을 가늠하기가 쉬운 게 아니군요), 제가 영화 같이 보러 갈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 말이, 극장판 1편을 못 봤는데 2편을 봐도 될까 하더군요. 그 친구에게 새 엑스파일 영화는 예전에 나온 '미래와의 전쟁'의 다음 편으로서 존재하는 거예요.


  그 얘길 듣고 나서 생각하니, '나는 믿고 싶다'를 엑스파일 영화로 보느냐, 혹은 엑스파일 후속 에피소드가 극장에 걸린 것으로 보느냐의 간극은 생각보다 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는 더 나아가 1993년부터 2002년까지 존속했던 쇼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그와 이질적일 수 있는 또다른 무언가로 보느냐의 문제도요.


  저는 이걸 '엑스파일 새 에피소드가 나왔다!'로 생각하는 쪽입니다. :) 기대치를 낮췄기에 나오는 말 아니냐고 하신다면,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동안 8시즌 전개와 화해하려고 무지하게 애썼던 게 한 역할 한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톨릭으로서의 스컬리라는 이슈가 '나는 믿고 싶다'에서 엄청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그걸 이해하거나 적어도 인식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드라마 전개를 따라오고 그 지난한 여정을 소화하려고 애썼던 전력=_=이 있어야 하고요. 멀더와 스컬리의 사생활에 대한 묘사가 팬픽이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노골적으로(으흠) 바뀌어 나타났음에도, 팬서비스라는 티를 팍팍 내며 크고 작은 웃음과 향수를 안겨주는 요소 요소의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다름아닌 바로 이 점이 새 이야기가 기존 시리즈와 연장선상에 있노라고 받아들이게 만들었어요. 그와 더불어 크리스 카터 참 끈질기다고 한탄도 한 번 해주고요. 그 일관됨을 알아줘야 할지 집착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입니다.



  아래로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 조셉 신부는 그 자체로는 그리 흥미롭지 않았어요. 극장판 1에서 커츠바일 박사가 흥미롭지 않았던 것과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이 둘은 기존 캐릭터(커츠바일의 경우는 멀더, 조셉 신부는 스컬리)와 얽혀들면서 그들에게 원치 않는 영향을 끼친다는 점 때문에 중요한 거니까요. 캐릭터 그 자체를 파고들 여지는 그다지 많지 않죠. 조셉 신부가 사건에 도움을 자청하는 동기가 애매모호한 것은 그 캐릭터에 대해 여백을 남기는 게 아니라 그 캐릭터를 바라보는 스컬리의 시선에 불명확한 공간을 남깁니다. 스컬리는 신부가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력("Don't give up")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를 명쾌히 하기 위해 그를 직면하는 거고요.


  그리고 엑스파일의 전통에 따라, 결말에 이르러 조셉 신부와 대량살인 간의 연결고리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당연해 보이는 공범설과 초자연적 가설(범인 중 하나가 과거의 피해자로서 조 신부와 이어져 있었다), 이렇게 두 가지의 가능성이 대두되지요. 현실^^의 사람들은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전자를 택하고, 역시나 전통에 따라 멀더는 후자를 고집합니다. 스컬리는 여전히 혼란스럽고요. 믿고 싶었고 어느 순간 믿기로 선택했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지만 설사 믿기로 한다 해도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입니다. 조 신부의 메시지는 누구에게서 왔으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었을까요? 스컬리와 맞대면할 의사가 없었던 조셉 신부는 스컬리의 거듭된 추궁에도 답을 주지 않고 피해갔으니까, 그 메시지에 의미가 있었는지조차도 지금 와서는 알 수 없게 된 거지요.


  사실 별 뜻 없이 한 말일 수도 있는 '포기하지 말아요'에 스컬리가 이렇게 집착하게 만드는 건 스컬리 자신입니다. 조셉이 스컬리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스컬리가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스컬리가 이 흔한 충고에 흔들리고 거기에 뭔가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지금 힘든 시술과 죽음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어린 환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지막에 멀더가 포치까지 스컬리를 따라나와 '조셉 신부의 그 말은 우리 인생 전체에 대한 발언이 아니었겠느냐'고 하는 것은, 스컬리가 그 아이의 치료를 계속할 것인지의 여부를 놓고 어떤 선택을 하건, 조셉 신부의 말은 그에 대한 계시가 아니었을 거라는 의미인 거죠. 답이 이미 조셉 신부를 통해 주어졌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스컬리의 선택을 주어진 답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 만들지 말라는 거죠. 그 뒤에 이어진 '조금이라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수술을 취소해요'의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건 그것이 스컬리의 선택이 되게 하라는 것, 다만 더 나은 길에 있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고 그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말라/말자는 것입니다.


  제가 어제 소화한 부분은 여기까지입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격인지도 모르죠 =) 팬들에게 윙크하는 식의 농담을 군데군데 하도 많이 박아놓아서, 영화 전체가 '즐겁게 보고 웃읍시다'로 느껴지는 게 커요. 기본 골격이야 어찌됐든 미스터리 스릴러고요. 그에 뭐 그리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더냐고 하신다면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3.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이 주제는 이미 드라마로 여러 번 얘기된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5시즌에 All Souls가 있었죠. 바로 이 점 때문에 결정적으로, '나는 믿고 싶다'가 극장에 걸리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엑스파일 시리즈의 새 에피소드라는 판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새 독립 에피소드요. 농담을 아주 많이 깔아넣긴 했지만, 그래서 스릴러의 외피를 벗겨내면 코미디라고 받아들이게 되지만 (특히 클라이막스에 그 농담을 스키너와 멀더를 갖다놓고 연출하다니 오해의 여지가 없어욧), 카터의 뚝심있는 일관성이건 집착이건 간에 이 영화의 주제는 - 제가 받아들인 대로는 - 시리즈 전면에 흘렀던 기묘한 낙천적/희망적/긍정적 기류의 연장선상에 서 있어요. 그래서 묘하게 만족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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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phinoe

  정식 리뷰를 쓸 깜냥은 아직 못 되고, 오늘은 잡스러운 사방 잡담입니다. 아무래도 보고 나니 대나무 숲에서 떠들고 싶어져서 말이죠;



  당연하지만 스포일러 경고 (사실 중요한 내용은 없습니다만.)

  ― . 맨 처음 사건 시작하는 시각이 10시 13분 맞나요? 오프닝에 정신빼고 있느라 유념한다고 했는데도 놓쳤습니다;
  (→ 10시 23분이군요.)



  ― . 맨 처음에 멀더가 스크랩하는 기사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초과학적 현상에 대한 연구를 위해 운영해 왔던 랩을 40여년(이렇게 봤는데 정확하진 않아요)만에 폐쇄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기사를 쓴 기자 이름이 Howard Dimsdale이었어요. IMDb의 '미래와의 전쟁' trivia란에 따르면 이 이름은 프랭크 스포트니츠와 존 쉬반이 American Film Institute에서 공부할 때 그들을 가르쳤던 분의 이름이라는군요. 이 분은 그 악명높은 매카시 시대 때 블랙리스트에 올랐는데, 당시 사용하던 필명이 아서 데일즈랍니다. '그' 아서 데일즈요. :) 이 분 이름은 '미래와의 전쟁'에서는 맨 마지막에 멀더가 읽고 있던 '텍사스의 한타 바이러스 진정 국면' 기사에도 기사 작성한 기자로 나왔답니다.
  (사실 전 Howard까지만 보고 Howard Gordon인가 하고 유심히 살폈었는데, Dimsdale이었어요^^)



  ― . 스컬리의 차 번호판은 SL8 326인데요, 중간에 한 번 뒷자리 숫자가 323으로 나오는 곳이 있습니다. 조셉 신부가 새 환영을 봤다고 해서 위트니가 멀더와 스컬리를 사건 장소로 다시 불러들이는 장면이요. 그리고, 멀더가 나중에 혼자 수사하느라고 사건 현장에 돌아갔다가 근처 도로를 달릴 때 (Nutter's Feed로 이어지는 씬) 보면 차의 뒷모습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교묘하게 그 자리만 번호판이 눈으로 덮여 있어요. 나중에 차번호가 왔다갔다한다는 걸 알고 가렸다에 100원;



  ― . 멀더가 개를 해쳤어요!!



  ― . 이건 이 사소한 이야기 나열에서도 더 사소하다면 더할 수 있는 얘긴데, 스컬리가 경쾌하기 짝이 없는 어조로 나열하는 의학전문용어를 듣는 순간 엑스파일의 새 내용을 보고 있다는 게 정말로 실감이 났습니다. 제작진에게 순간 고마웠어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스컬리, 데이나 스컬리' 피식 웃었습니다. 뭐 전매특허도 아니고, 제임스 본드만 그러라는 법은 없는 거지만요.^^



  ― . 부시 사진 뜰 때 거기 맞춰 깔리는 엑스파일 오프닝 테마, 뒤집어졌습니다. 이거 의도적인 거 맞죠? 그 곡이 거의 '미스터리 용 음악'과 동급으로 취급받는 것을 생각하면, 제게는 그게 꼭 '너 어떻게 당선됐니, 세기의 미스터리다' 하는 것처럼 들렸어요^0^



  ― . I WANT TO BELIEVE 포스터 구겨져 있던데, 설마 도겟이 수습한 옛날 그 포스터?



  ― . 멀더의 초반 구레나룻은 <캘리포니케이션> 때문이라는 데 백만스물다섯표.



  ― . 정말 작정하고 예전 XF 출연 배우들을 많이 기용했더군요. 칼럼 키이스 레니는 엔딩 크레딧 보고서야 출연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름과 XF과의 인연이야 알지만, 얼굴을 기억 못해서요... 하지만 "특수요원 포사" 사라 제인 레드몬드는 첫 등장부터 눈치챘고 매우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하쉬 렐름 때 금발이었던가요? 밀레니엄의 페브리칸트 박사도 반가웠습니다만 영어를 아예 안 하시더군요-0- 말 나왔으니 말인데 그 언어 어느 나라 말이에요?
  (→ 언어는 정황상 러시아어로 추정되는데^^ 알아들으신 분 계십니까. 그리고 두 번째로 납치된 아가씨, Supernatural에서 봤던 사람 같았는데 IMDb 찾아보니 무려 Rush의 채스티디; 납치된 FBI 요원도 PMP 에피소드에 출연했던 카페 종업원이었고, 화상회의에 나왔던 흑인 여자 의사는 Shadows를 비롯 복수 출연자셨고요. 그 외에도 목록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습니다.)



  ― . 침대 장면에서, 스컬리 옆 손탁자에 놓여 있던 책 제목이 'Beautiful Wasps Having Sex'였어요-0- 대체 왜 하필 그런 제목을;; 실제 책인지 궁금해서 아마존 찾아봤더니, 실제 있는 책이고 내용도 실하고 다 좋은데, 그 아래 엑스파일 관련 책 링크가 무더기로 걸려 있군요^^ 내용 전혀 관계 없던데;
  (→ 작가 Dori Carter가 크리스 카터 부인이랍니다;)



  ― . 멀더 휴대폰, 이번엔 스컬리 번호가 단축다이얼이 아니더군요! 맨 위에서부터 차례로 Bowman, Gilligan, Scully, Shiban이었고 반가웠고 다 좋았는데, 킴 매너스는 어디로?
  (→ 중간에 장기 적출 수술이 묘사되는 병원이 Manners-Colonial Hospital입니다. 그리고 혹시 스컬리 차 - 나중에 아작나는 그거 - 번호판 확인하신 분 계십니까?)



  ― . 마지막에 멀더가 '추워요' 할 때 뒤집어졌는데, 그 뒤에 스키너가 멀더 끌어안는 거 보고는 폭소가... 1013의 농담하는 센스는 어디 안 갔더군요. 극장판 1 Fight The Future의 그 구도 그대로, 그거 그 순간에 웃으라고 넣은 거 아녜요-0-;;



  ― . 촬영 초기에 공개되었던 장면 (멀더가 건물을 나와 성큼성큼 걸어가고 휘트니가 부르며 따라가는), 스틸컷으로 공개된 그 악명높은; 낭만적인 풍경 앞의 멀&스 장면, 둘 다 어디갔나요;; 그리고 예고편만으로는 멀더가 'I need you' 하자 스컬리가 'That's what scares me' 하더만 그거 편집의 농간이었군요.





  잡담을 조금 벗어난 내용 (스포일러 경고. 이건 나름 중대할 수 있습니다.)

  ― . 결국 범죄는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었고, 범죄를 풀어가는 방식에 초자연적인 개입이 있었다 ― 엑스파일을 모르는 관객들도 이 정도는 받아들이는 데 무리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싱겁다는 평이 나올 것을 염두에 두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거기 가톨릭이라는 요소가 끼어들면, 스컬리의 신앙과 그 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는가의 문제가 시리즈에 몇 년에 걸쳐 야기했던 긴장을 모르는 채로 보기에는 이야기가 복잡해집니다. 조셉 신부에 대한 스컬리의 편견이라고도 볼 수 있는 적대감, 신의 뜻이 어떤 입을 통해 전달될 수 있겠는가의 이슈가 스컬리 개인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등등은 스컬리에 대해 모르고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잖아요. 조셉 신부가 가톨릭이라는 설정이, 다른 그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넓은 관객층을 염두에 두지 않고 팬들을 향해 만들어진 영화라는 의사표현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처음 볼 때는 앞뒤 가리지 않고 '이 영화 보고 스컬리는 초나 치는 여자(AF님 표현)라 생각할 사람이 늘어난다면 크리스 카터 테러할 거야' 이런 마음이었습니다만.;



  ― . 아만다 피트와 이그지빗을 기용한 방식은 예상 외였습니다. 전 우선 두 사람이 파트너일 줄 알았고, 그 다음으로는 그 둘의 캐릭터는 극장판 2 이후를 보고 놓은 포석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일단 두 사람 관계가 상하관계였고, 휘트니는 죽어버렸죠. 실은 좀 놀랐습니다;; 죽일 줄은 몰랐거든요. 내용상으로 꼭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도 아직은 모르겠고요. 멀더가 자기 옆 사람이 죽으면 사건을 못 놓는 성향이 있긴 합니다만 설마 그걸 배려해 넣었을 리야...? 그 두 새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게 알려졌을 때부터, 반응이 좋으면 장기적으로(아주아주 희망적으로 생각해서요) 멀더와 스컬리를 대체하려는 거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는데, 그런 일은 없다는 의사표시라면 아주 확고하게 했긴 합니다만.



  ― . 어쨌거나 아만다 피트의 캐릭터, ASAC(Assistant Special Agent in Charge라는데, 아마도 특정 사건을 담당하기 위해 구성된 태스크포스의 팀장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어떤 급이 맡는 직책인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특히 공식적으로 도망자고 수배자인 멀더를 사면권을 보장하고 불러올 정도로 독자적인 행동을 할 만한 위치가 되는 인물인지가요. 멀더가 사건에 계속 관여하는 것에 대해 FBI 상부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에 대한 언급이 영화에 전혀 없는데, 경제적인 선택이긴 하지만 생각할 공간=팬픽의 여지를 많이 남긴 것 같긴 했어요) 다코타 위트니에 대한 묘사는 경제적이고 좋았습니다. 이그지빗은 좀 더 많이 조연이더군요. 두 사람이 직접적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이 영화에 한 씬도 등장하지 않았어요.^^



Posted by Iphinoe

1013

our town 2007. 10. 13. 15:36

  기념일입니다.


5x06 Post-Modern Prometheus


  잘 지내고 있겠지요.


Posted by Iphinoe



  멀더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에피로 제가 기억하는 것은 세 개입니다. Redux I하고 이 Patient X, 그리고 7시즌의 Closure. 여기서 멀더는 종교와 철학에 대한 거의 사변적인 고찰을 토로하고 있지만, 동시에 '불안'이라는, 엑스파일이 다루어 왔던 '세기말적'인 한 현상에 대해 짚고 있기도 하죠. 5시즌 초,중반에 걸쳐, 자기 믿음를 걸었던 무언가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버려야 했던 사람의 내면에 깃들 법한 황량함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지금 다시 들어 보니, 멀더가 말하는 내용과 DD의 날카롭고 감정이 섞이지 않은 낭독조의 목소리가 매끄럽게 맞아떨어지지 않고 약간 튄다는 생각도 드네요.


  939KB의 파일입니다. 시간은 정확히 1분.^^ (재어보다 놀랐습니다.)


  멀더가 말하는 내용은
  해보님 사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MULDER (V.O.): Before the exploration of space, of the moon and the planets, man hailed that the heavens were the home and province of powerful gods who controlled not just the vast firmament, but the earthly fate of man himself and that the pantheon of powerful, warring deities, was the cause and reason for the human condition, for the past and the future, and for which great monuments would be created on earth as in heaven. But in time man replaced these gods with new gods and new religions that provided no more certain or greater answers than those worshipped by his Greek or Roman or Egyptian ancestors. And while we've chosen now our monolithic and benevolent gods and found our certainties in science, believers all, we wait for a sign, a revelation. Our eyes turn skyward ready to accept the truly incredible to find our destiny written in the stars. But how do we best look to see? With new eyes or old?


  멀더: 우주 탐험이 시작되기 전, 달과 별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 사람들은 하늘에는 위대한 신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신은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 하늘 세계뿐 아니라, 땅에 사는 인간의 운명도 지배한다고 믿었다. 위대한 신이 서로 싸움을 벌이면서 인간 세계는 영욕을 거친다고 믿었다. 인간 세계의 과거와 미래, 이 땅에서 펼쳐지는 역사전 사건은 모두 신이 관장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사람들은 옛날 신을 버리고 새로운 신을 섬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 신도 고대 그리스나 로마나 이집트의 신보다 더 확실한 해답을 주진 못했다. 이제 위 현대인은 과학이라는 유일신을 택했고, 과학에서 모든 해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우리는 과학을 절대 신봉하며 어떤 신호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 어떤 계시가 내리길 기다리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 채 고개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하늘에 쓰여진 운명을 찾아보려 하지만, 과거의 눈으로 봐야 할지, 현재의 눈으로 봐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다.


Posted by Iphinoe

  언제나 친절한^^ zootv에 따르면, 이 에피는 방영 당시 그다지 좋지 못한 반응을 받았다고 하지요. KBS 본방 때 본 에피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이후로 접했다고는 해도 워낙 오랜만에 다시 보는 거라, 줄거리를 물론 알고 있음에도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다시 보니, 왜 그렇게 안 좋은 평을 받아야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사람이 좀 과할 만큼 많이 죽어나가고,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로 흘러가긴 합니다만, 재미가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거든요. 엑스파일에 SF적 요소가 한창일 시절이다 보니 범작이 졸작으로 평가받은 것은 아닌가 궁금해하는 중입니다. 보는 눈이 없다 보니 제가 받는 인상에 그다지 신뢰가 가진 않아요. :) 그러니까 이건 질문입니다.


  특히 결말에 대한 비판은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멀더와 스컬리가 바위 위에서 덜덜 떨며 나누는 대화 (DD 진짜 리얼하게 떨더군요^^) 와 연결되는 결말로 충분히 의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멀더가 찾던 게 그럴싸한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악어로 드러났다고 해서 멀더의 추구가 헛된 게 되는 건 아니라는 스컬리의 말이 이 에피의 주제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 사람을 살렸으니 그걸로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 아니냐고,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 멀더에게 묻잖아요. 바위 위에서 나눈 대화는 인생에서 무언가 그럴싸한 걸 추구하고 이룩해야 한다는 명제를 개인이 어떤 식으로 소화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 주제의 연장선상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결말이었다 싶은데 제가 뭘 놓친 건지, 결말이 왜 안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바위 위에서의 대화는 - 그러고 보니 KBS 본방을 봤습니다! 이 대화가 매우 혼란스러워서 이해가 안 됐던 기억이 나는 걸 보니 - 이번에야 제대로 (그리고 완전히)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꾸 이런 식으로 언급하게 돼서 죄송한데요, zootv 에피소드 가이드 비하인드 스토리에 인용된 멀더 대사가 KBS 방송 때 것이 맞나요? 그렇다면 번역을 완전히 반대로 한 거잖아요. 제가 혼란스러웠던 것도 그럴 만했군요. 이 대화 부분만 다린 모건이 썼다고 하던가요? 멀더가 생각하는 자기 모습에 대한 간결하고 효과적인 묘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모비딕하고 연결지어 그렇게 멋지게 풀어내다니 역시 부럽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멀더는 (이미) 의족과 갈고리손을 안고 사는 사람인 게 맞고, 그런 만큼 실은 스컬리가 멀더를 정확하게 보았고 멀더는 스스로에 대해 훨씬 겸손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거겠지요.


  아무래도 이 에피에 대해 제가 호의적인 건 바위 위에서의 대화가 좋았을 뿐만 아니라 여러 모로 멀더라는 캐릭터에 대해 정곡을 찌르고 있다는 점(그리고 그걸 볼 줄 아는 스컬리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대화 전후의 상황이 그에 맞게 주어져 있다는 것 때문인 듯합니다. 특히 결국 자기가 찾아 헤매던 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한탄하는 멀더에게 '사람을 구했는데 그런 소릴 하느냐'는 스컬리의 어조가 위로하는 게 아니라 믿기지 않아 하는 톤인 게 좋았어요. 스컬리는 멀더가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 '포식자'의 존재를 끈질기게 주장해 결국 잡아냈는데도,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았다는 사실보다는 근사하게 들렸던 빅 블루가 악어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우울해하는 걸 얼른 납득하지 못하지요. 위로하는 차원에서 발언하게 만들 수도 있었는데, 두 사람의 입장 차이를 그 부분에서 그렇게 짚어주고 넘어가는 게 정말 근사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초기 시즌답게 유머가 많아서 좋아요! 퀵퀙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 녀석이 먹히기 직전까진 다 유머고, 기념품 가게 주인 캐릭터도 빅 블루 사진에만 매달려온 사진작가(?)도 반쯤은 웃으라고 데려다 놓은 캐릭터지요. 바위 위에 둘이 옹송그리고 앉아 추위에 떨면서 나누는 대화가 '조난당하면 식인도 할 수 있을까요' 같이 초점 일탈한 멀더의 상상력으로 시작하는 것도 웃기고, 거기 스컬리가 거창한 용어들을 들먹이는 이론적 이야기로 답하는 것도 두 사람다운 모습이라 유머러스하고, 나중에 패러데이 박사가 손전등 들고 나타나 멀&스가 뻘쭘해하는 것도 엄청 웃기지요. 사람 머리가 호수에서 정수리부터 솟아오르다 옆으로 누우면서 잘린 목이 드러나는 그런 그로테스크하고 유머러스한;; 연출도 너무나 엑스파일스러워서 사람이 죽었는데 낄낄거리게 돼요.^^ (역시 엑스파일 보다 보면 고어에 강해지는 모양입니다.)


  해서 쌓이는 사람 시체와 개 시체 한 구와 멸종위기에 놓인 개구리들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유쾌하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생각할 거리까지 선사받았고요.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았을 때, 짧은 시간 내에 대량으로 죽어나가는 희생자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에피들 중의 하나가 아니었나 합니다.^_^






p.s. 고백하자면, 바위에서의 대화를 이번에 제대로 접한 이래 줄곧 6-7시즌 클리프행어 Biogenesis & The 6th Extinction I, II에 대한 에이프릴 풀 님의 리뷰와 연관지어 생각하고 있습니다. 피할 수가 없군요.


Posted by Iphinoe

3x22 Quagmire 중에서

our town 2007. 6. 5. 06:38

  MULDER:    Why did you name your dog Queequeg?


  SCULLY:    It was the name of the harpoonist in Moby Dick. My father used to read to me from Moby Dick when I was a little girl, I called him Ahab and he called me Starbuck. So I named my dog Queequeg. It's funny, I just realised something.


  MULDER:    It's a bizarre name for a dog, huh?


  SCULLY:    No, how much you're like Ahab. You're so consumed by your personal vengeance against life, whether it be its inherent cruelties or mysteries, everything takes on a warped significance to fit your megalomaniacal cosmology.


  MULDER:    Scully, are you coming on to me?


  SCULLY:    It's the truth or a white whale.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I mean, both obsessions are impossible to capture, and trying to do so will only leave you dead along with everyone else you bring with you. You know Mulder, you are Ahab.


  MULDER:    You know, its interesting you should say that, because I've always wanted a peg leg. It's a boyhood thing I never grew out of. I'm not being flippant, I've given this a lot of thought. I mean, if you have a peg leg or hooks for hands then maybe its enough to simply keep on living. You know, braving facing life with your disability. But without these things you're actually meant to make something of your life, achieve something earn a raise, wear a necktie. So if anything I'm actually the antithesis of Ahab, because if I did have a peg leg I'd quite possibly be more happy and more content not to be chasing after these creatures of the unknown.


  SCULLY:    And that's not flippant?



  (2007. 06. 04)

  아예 CotR(Conversation on the Rock)이라 관습화되어 불렸던 대화가 바로 이거였구나. 마지막으로 본 지 하도 오래 되어 새카맣게 잊고 있었거나, KBS판으로 볼 때 번역이 좋지 못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넘겼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내가 거의 같은 이야기를 멀더에 대해서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And that's not flippant?"라는 스컬리의 말은 나한테도 해당하는군. 하지만 스컬리 씨, 그 대목에서 꼭 그런 얘길 해야 하나, 농담으로 돌려 아닌 척하긴 했지만 멀더라고 모를 리 없는 것을. 자기 얘긴 죽어라고 안 하는 멀더가 간만에 자기고백적인 무드가 되었건만. 아니,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멀더는 결여를 안고 의족도 없이 사는 사람이고, 그런 만큼 'I'm not being flippant'라는 말도 틀린 게 아니다. 그럼 경박한 건 나 혼자뿐이군. 쳇.


  그새 무뎌졌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지, 이 에피 그런대로 괜찮은데 왜 혹평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하긴 초기에는 straightforward한 MOTW 에피는 대부분 혹평의 대상이 되었었다. 7시즌 쯤에 가서는 그런 에피(이를테면 Rush)조차 감사해하면서 보게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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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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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MULDER:  How are you feeling?
  SCULLY:  It's the first time I've ever played the target.
  MULDER:  Let's make sure it's not the last time.


  멀더의 이 기상천외한 격려=_=;;에 스컬리가 쳐다보는 장면.



Posted by Iphinoe

MULDER: Reverend, do something about these snakes, please.

REVEREND O'CONNOR: You got nothing to fear if you're righteous people.

MULDER: Just in case we're not, we could use a little righteous help here.



...................................................................................................


SCULLY: Though I don't understand it, O'Connor's church exerts a strong pull on these people.

MULDER: It's not so hard to understand. It's a culture with a very well-defined set of rules.

SCULLY: It's an intolerant culture, Mulder.

MULDER: I don't know, Scully. Sometimes a little intolerance can be a welcome thing.
           Clear-cut right and wrong, black and white, no shades of gray.
           You know, in a society where hard and fast rules are harder and harder to come by,
           I think some people would appreciate that.


SCULLY: You're saying that you, Fox Mulder, would welcome someone telling you what to believe?

MULDER: I'm just saying that somebody offering you all the answers... could be a very powerful thing.



Posted by Iph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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